삼국지 인물사전 - 주태(周泰) 주태(周泰, ? ~ 229년)는 중국 후한 말의 무장(武將)으로 자는 유평(幼平)이며 양주(揚州) 구강군(九江郡) 하채현(下蔡縣) 사람이다. 손권(孫權)이 나중에 주태의 공을 치하하며 한 말에 따르면 출신이 한미(寒微)했다. 생애 처음에 장흠(蔣欽)과 함께 손책(孫策)의 측근이 되었다. 손책이 회계태수 왕랑을 무찌르고 회계군을 점유(占有)하면서 별부사마가 되어 병사를 받았다. 손권(孫權)과 주태가 처음 조우했는데 손권이 주태(周泰)의 풍채를 마음에 들어하여 형에게 주태를 달라고 요청(要請)했다. 손책이 육현(六縣)의 반란을 토벌하러 간 차에 주태는 손권과 함께 천 명이 되지 않는 병사를 이끌고 선성(宣城)을 지키다가 방어 태세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산월 수천 명의 갑작..
삼국지 인물사전 - 장흠(蔣欽) 장흠(蔣欽, ? ~ 219년)은 중국 후한 말의 무장(武將)으로 자(字)는 공혁(公奕)이며 양주(揚州) 구강군(九江郡) 수춘현(壽春縣) 사람이다. 생애 흥평(興平) 원년(194년), 손책(孫策)이 원술(袁術)에게 의탁하고 있을 무렵에 손책(孫策)의 측근이 되었고 흥평 2년(195년), 손책이 강동(江東)으로 진출할 때 별부사마(別部司馬)로 임명되어 병사를 받았고 손책의 측근이였던 주태(周泰)와 함께 손책을 따라 단양, 오, 회계 3군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예장 공격에도 참가했다. 갈양위(葛陽尉)가 된 뒤로 세 현의 장을 역임(歷任)하여 도둑을 잡았고 서부도위로 승진(昇進)했다. 동야에서 여합(呂合)과 진랑(秦狼) 등이 손씨에 복종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을 토..
삼국지 인물사전 - 허저(許褚) 허저(許褚)는 후한 ~ 위나라의 무장(武將)으로 자는 중강(仲康)이며 예주 초국(譙國) 초현(譙縣) 사람이다. 호치(虎癡)란 별명이 있다. 우월한 완력(腕力)과 우직한 성품으로 조조의 신임(信任)을 받아 그 경호(警護)를 맡았으며 용맹을 떨쳤다. 생애 괴력의 사내 : 후한 말 수천 명으로 자경단(自警團)을 조직해 도적을 방비(防備)했다. 여남군(汝南郡) 갈피(葛陂)의 도적 1만여 명이 쳐들어오니 비록 수는 적었지만 극한(極限)에 다다를 때까지 사력을 다해 싸웠다. 화살이 떨어졌어도 돌을 던지며 저항(抵抗)하니 도적이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식량마저 동나자 일단 강화(强化)하고 소를 주는 대신 먹을 것을 받기로 했다. 도적(盜賊)이 와서 소를 몰고 가려 했는데 자꾸 도망치는..
삼국지 인물사전 - 조인(曹仁) 조인(曹仁, 168년 ~ 223년)은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장군(將軍)으로 자는 자효(子孝)이며 예주(豫州)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이다. 영천태수(潁川太守) 조포(曹褒)의 손자이자 장수교위(長水校尉) 조치(曹熾)의 아들이며 조조(曹操)의 사촌동생이다. 일생 궁술, 마술, 수렵을 좋아해서 190년에 조조(曹操)가 군사를 일으켰을 때에 천 명의 군사를 거느려서 조조의 부하로 들어왔다. 그 이후에 조조 아래에서 행봉교위(厲鋒校尉)로서 대도겸전, 대원술전, 관도전투(官渡戰鬪) 등에서 활약한다. 209년의 남군 공방전(攻防戰)에서는 오의 주유(周瑜)가 인솔하는 6천기의 군대와 싸워서 궁지(窮地)에 빠진 부장 우금(牛金)을 구했다. 이후에도 마초(馬超) 토벌전에 따른..
삼국지 인물사전 - 장료(張遼) 장료(張遼, 169년? 170년? 171년? ~ 222년)는 중국 후한 말 ~ 삼국시대(三國時代) 위(魏)나라의 장수로 자는 문원(文遠)이며 병주(幷州) 안문군(雁門郡) 마읍현(馬邑縣) 사람이다. 생애 장료의 선조(先祖)는 전한의 섭일(聶壹)로 섭일이 흉노(匈奴)를 해치려 했던 일 때문에 원수(怨讎)를 피하여 성씨를 고쳤다. 젊어서 군리가 되었으며 병주자사 정원(丁原)이 종사로 삼아 군을 이끌고 수도로 가게 했다. 대장군 하진(何進)은 장료를 하북으로 보내 병사 천 명을 모았다. 그러나 돌아왔을 때에는 하진이 십상시에게 암살(暗殺)당하고 정국이 혼미한 틈을 타 동탁(董卓)이 조정과 중앙군을 장악한 상태여서 장료도 동탁(董卓)에게 속했다. 동탁이 패망한 후 여포(呂布)를 좇..
삼국지 인물사전 - 조운(趙雲) 조운(趙雲, ? ~ 229년 11월)은 중국 후한 말 ~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무장으로, 자는 자룡(子龍)이며 기주(冀州) 상산군(常山郡) 진정현(眞定縣) 사람이다. 생애 초반 조운은 처음에 원소(袁紹)에게 졸백(卒伯-병졸의 우두머리)으로 임관하였으나 원소의 그릇이 크지 않다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看破)하여 공손찬(公孫瓚) 아래로 들어갔다. 소설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는 창술(槍術)의 명수로 등장(登場)하며 처음에는 원소의 부하였으나 스스로 공손찬 밑으로 달려가고 문추(文醜)를 상대하여 공손찬(公孫瓚)을 궁지에서 구하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한다. 유비와의 만남 그 무렵 유비(劉備) 또한 공손찬(公孫瓚) 밑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공손찬이..
삼국지 인물사전 - 황충(黃忠) 황충(黃忠, ? ~ 220년)은 후한 말의 무장(武將)으로 자는 한승(漢升)이며 형주(荊州) 남양군(南陽郡) 사람이다. 생애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가 그를 중랑장(中郞將)으로 삼아 유반(劉磐)과 함께 유현(攸縣)을 수비하게 했다. 조조(曹操)가 형주를 점령하자 임시로 비장군(裨將軍) 직을 대행하게 하니 예전 임무에 종사(從事)하며 장사태수(長沙太守) 한현(韓玄)에 속하게 되었다. 유비(劉備)가 남쪽으로 여러 군(郡)을 평정하자 황충(黃忠)이 마침내 몸을 맡기기로 하고는 그를 수행해 촉(蜀)으로 들어갔다. 가맹(葭萌)에서 임무를 받아 군대를 돌려 유장(劉璋)을 공격하니 황충은 늘 앞장서서 적진에 올라 함락(陷落)시켰고 용맹하고 굳셈이 삼군(三軍)의 으뜸이었다. 익주(益..
삼국지 인물사전 - 마초(馬超) 마초(馬超, 175년 ~ 222년)는 중국 후한 말기의 군벌(軍閥)이며 삼국시대 촉한의 무장이다. 자는 맹기(孟起)이다. 관우(關羽), 장비(張飛), 황충(黃忠), 조운(趙雲)과 더불어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으로 불렸다. 생애 마초는 192년(초평 3년) 마등과 한수(韓遂)가 군대를 이끌고 장안(長安)으로 진입하자 한 왕조는 한수를 진서장군(鎭西將軍)에 임명해 금성으로 귀환(歸還)시키고 마등을 정서장군에 임명해 미에 주둔시킨다. 192년 한수(韓遂,와 마등(馬騰)이 서로 불화해지자 군을 이끌고 대립(對立)하였다. 이때 마초와 염행(閻行)이 1대1로 붙어 마초가 크게 패하고 죽기직전까지 패하였다. 사례교위 종요(鍾繇)가 관중으로 부임해 한수와 마등에게 서신을 보내 복종하는 ..
삼국지 인물사전 - 장비(張飛) 장비(張飛, 165년 ~ 221년 6월)는 후한 말 ~ 촉한의 군인으로, 자는 익덕(益德)이며 유주(幽州) 탁군(涿郡) 사람이다. 유비(劉備), 관우(關羽)와 함께 황건적(黃巾賊) 토벌에 나서며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장판교에서 기지를 발휘해서 조조(曹操)의 대군을 막았으며 서촉정벌 시 엄안(嚴顔)을 회유하여 파촉정벌(巴蜀征伐)에 큰 공로를 세웠다. 이후 파서태수(巴西太守)의 자리에 올랐고 한중정벌 당시 위나라의 장합(張郃)과 맞서 싸워 승리하였다. 그러나 관우의 복수(復讎)를 위해 출정을 준비하던 도중 휘하 무장 범강(范疆)과 장달(張達)에게 암살당했다. 장남 장포(張苞)가 장비보다 (약간) 일찍 요절(夭折)하여 차남인 장소(張紹)가 가계를 이었다. 장비의 장녀와 차녀..
삼국지 인물사전 - 관우(關羽) 관우(關羽, 162년? ~ 219년 음력 12월)는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자(字)는 운장(雲長)이며 본래의 자는 장생(長生)이다. 사례(司隷) 하동군(河東郡) 해현(解縣) 사람이다. 동생 장비(張飛)와 더불어 유비(劉備)를 오랫동안 섬기며 촉한(蜀漢) 건국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 충성심(忠誠心)과 의리, 당당한 성품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장수(將帥)로 손꼽히며 한대(漢代) 이후로 남송(南宋)의 악비(岳飛)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각 중국사서(中國史書)에 등장하는 후세사람들은 ‘용맹한 자’ 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관우(關羽), 장비(張飛)의 경우를 들어 말하였다고 한다. 의리(義理)의 화신(化身)으로 중국의 민담(民譚)이나 민간전승(民間傳承), ..
삼국지 인물사전 - 유비(劉備) 유비(劉備)의 생애 유비(劉備, 161년 음력 6월 7일 ~ 223년 음력 4월 24일)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초대 황제(재위: 221년 음력 4월 6일 ~ 223년 음력 4월 24일)이다. 자는 현덕(玄德)이다. 삼국지(三國志)에서는 조위가 한나라의 대통(大統, 임금의 계통)을 계승한 정통 국가라 보았으므로 유비를 황제(皇帝)로 존칭하지 않고 선주(先主)라고 불렀다. 진서 열전(晉書列傳)에서 유비의 묘호(廟號)를 열조라고 칭한 바가 있으나 이것은 그의 정식 묘호가 아니고 후세의 역사가들이 추증(追贈)한 묘호이다. 유주 황건적 평정 이후 그 세력이 한창 상승할 때에는 유예주(劉豫州), 유좌장군(劉左將軍), 의성정후(宜城亭侯)라고도 불렸다. 유비는 어릴 때 돗자리를..
모사 제갈량, 세객 제갈근이 “삼국지연의”에서 미치는 영향과 특수 관계 제가 어려서부터 제일 좋아한 책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이고 또 제일 많이 읽은 책이 “삼국지연의”입니다. 아마도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거의 오백 번 이상은 읽은 것 같습니다. 너무 뒤지고 만지다 보니 책은 그만 너덜너덜해졌습니다. 그래서 찢어진 부분을 밥풀로 붙였는데 참 가관(可觀)이었습니다. 이렇듯 “삼국지연의“는 저의 인생행로(人生行路)에 도움이 되는 양서(良書)라 생각되어 여기서 모사 제갈량과 세객 제갈근이 “삼국지연의”에서 미치는 영향과 특수 관계(特殊關係)에 대해 알아봅니다. 제갈 근(諸葛瑾, 174년 ~ 241년)은 중국 후한 말 ~ 삼국시대(三國時代) 오(吳)나라의 정치가로 자는 자유(子瑜)이며 서주 낭야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