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반응형

충북 옥천군 송정마을 세개의 선돌 노부부-아들 세바위의 사연

충북 옥천군 송정마을 세개의 선돌

알터바위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에서 빠져나오면 37번 국도가 연결된다. 이 도로는 대청호가 만들어진 뒤 호수와 산이 어루어진 경치가 좋아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이 없다. 이 도로를 타고 보은 쪽으로 16 정도 오르면 안남면 소재지로 접어드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다시 안쪽으로 10리 정도 들어가면 도로변에 충북 옥천군 안남면 청정리 송정마을이 나타난다.
이 마을에는 흥미롭게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위, 그리고 알터바위가 삼각 구도로 자리 잡고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위는 부부로서 알터바위는 그런 점에서 이들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을 의미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위 사이에 알터바위가 위치하는 것 자체도 흥미로운 배치라 하겠다.
할아버지바위는 원래 삼화초등학교였다가 현재 수련원으로 사용하는 폐교 앞 옥수수 밭에 있다. 원래 이곳은 논이었는데, 밭으로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노출된 바위의 크기는 약 172㎝이며, 두 줄의 가로지른 선과 마치 턱처럼 갈라진 형상을 하고 있다. 머리 부분을 뾰족하게 다듬어 놓았기에 전체의 모습은 마치 성기와도 같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수염이 난 할아버지의 형상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 두 가지 형상은 모두 남성을 의미하기에 할아버지바위로서의 상징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할머니바위도 원래는 논 사이의 둑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를 키우는 축사 옆에 세워져 있다. 소가 울어대는 소리와 오물 등의 냄새로 범벅이 된 곳에 서 있는 할머니바위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논과 밭 사이에서 농작물이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살아왔던 세월에 대한 기억 혹은 추억으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할머니바위는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의 여근석에 비해 배 부분이 약간 밋밋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임신부의 형상을 연상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또한 바위의 위쪽이 할아버지바위에 비해서 평평하게 다듬은 것으로 보아 여성의 상징으로 표현한 것은 분명한 듯하다.
키도 물론 20㎝ 이상 크다. 우리 선조들은 여성이 더 큰 신체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이 마을을 찾은 이유는 사실 알터바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원래는 마을회관 옆을 흐르는 개울에 있다고 했는데, 개울은 복개되고 없었다.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원래 농협 창고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창고를 지으면서 약간 떨어진 개울 옆에 세웠는데, 공교롭게도 자선비와 선적비가 세워진 옆이다. 이들 비석도 1984년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알터바위도 이 무렵 옮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알터바위는 높이가 약 130㎝에 불과하다. 그런데 길이가 15 ㎝에 폭이 7㎝ 정도인 알터 모양의 흔적이 있다. 이것은 정면이 아니라 왼쪽 측면 중간에 새겨져 있다. 이 흔적은 구멍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어설프고, 길쭉한 홈 정도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 홈은 단순한 홈이 아니다. 이 바위에만 유독 금줄이 남아 있는 이유도 이런 사정과 관련이 있다.
이 바위를 할아버지와 할머니 바위가 낳은 자식으로 상상하는데, 문제는 왜 이 바위에 대해서만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기자행위가 행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유감주술(類感呪術)’의 의미로 본다면 할머니바위가 치성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아들을 많은 낳은 부인의 월경대를 차고 있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일반적인 주술행위로 연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아들바위가 자식을 기원하는 남근석의 기능을 맡고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한 부녀자가 이곳을 찾아와 선돌을 한 바퀴 돌고, 손가락을 넣었다 뺏다 하는 동작을 반복한다. 이렇게 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이 근방에 퍼졌다고 한다. 요즘에는 찾아와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하는데, 여하튼 효험이 있었던 듯하다.
이 선돌은 광개토태왕비와 같은 직육면체로서 위쪽은 완만하게 다듬어진 것처럼 보인다. 남근석처럼 굳건함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런 바위에 대고 치성을 드리는 부녀자들이 바위의 홈에다가 손가락으로 하는 행위는 분명 모의적 성행위다. 이 바위가 갖고 있는 성적 생산력을 빌려 자식을 낳을 수 있도록 기원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런데 왜 남근석에 여성의 손가락으로 성행위를 할까, 성의 역할이 뒤바뀐 것은 아닐까 자못 궁금하다. 여기에서는 그런 측면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성행위가 가져다주는 의미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몸으로 할 수 있는 성행위라면 당연히 남근석은 남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바위는 올라타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기능을 대신할 홈이 있기 때문에 단순한 역할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바위는 남근석의 형상과 유사하기 때문에 남성임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아들바위, 즉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낳은 자식인 것이다. 이것은 이 바위가 아들을 생산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효하다.
그런 점에서 이 바위는 알터바위라기보다는 아들바위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적당하지 않을까. 알터바위는 생산 기능을 의미하지만, 아들바위는 단순한 생산이 아니라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신통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이 마을에는 사모와 족두리, 함진애비 등을 형상화한 바위가 있다. 그리고 풍수지리상으로는 금두꺼비를 뱀이 잡아먹으려는 형국에다 이것을 본 황새가 뱀을 찍으려는 모습을 띠고 있다고 한다. 이들 형국은 바위로서 표현되며, 이와 관련한 전설도 전해온다.
하지만 도로를 새로 내면서 바위를 깨버리는 등 과거의 상상력을 재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제 사람들은 상상력이 소멸된 각박한 세계에서 살려고 마음먹은 듯하다. | 글 : 김종대 (문학박사·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발췌 : 세계일보

忠清北道沃川郡鬆亭村三座石墓老夫婦和兒子三岩石的故事

阿爾特巖
從京釜高速公路玉川出入口出來,就能連接37號國道。 這條公路在大清湖建成後,湖山交錯,景色優美,不愧爲自駕遊路線。 沿着這條公路往報恩方向攀登16公里,就能看到進入安南面所在地的三岔路口。 從三岔路口往裏走10裏左右,就能看到忠北沃川郡安南面清井裏鬆亭村。
有趣的是,該村有爺爺奶奶的岩石和阿爾特岩石。 爺爺和奶奶的岩石是夫妻,從這一點看,阿爾特岩石意味着他們夫婦之間出生的子女。 阿爾特巖位於爺爺和奶奶的岩石之間本身就是非常有趣的佈局。
爺爺的岩石原本是三和小學,現在位於廢校前的玉米地裏,作爲修煉院使用。 原來這裏是水田,據說是旱地改造的。 裸露的岩石大小約爲172釐米,與兩排橫貫的線條形成像下巴一樣的裂縫。 因爲頭髮部分修得很尖,所以整體的樣子就像生殖器一樣。
但是,從另一個角度看,感覺像是長了鬍子的爺爺的形象。 兩種形象都代表男性,可見其作爲爺爺岩石的象徵非常明顯。
奶奶巖原來也在水田之間的堤壩上。 但是,現在建在養牛的畜舍旁邊。 站在牛叫聲和污物等氣味瀰漫的地方的奶奶岩石也許會感到歲月的無常。 看着農作物在稻田和旱田之間茁壯成長的樣子,人們也許會懷着對歲月的記憶或回憶而生活。
與沃川郡東二面石灘裏的餘根石相比,奶奶岩石的腹部略顯平淡。 但是讓人聯想到孕婦的形象並沒有太大負擔。 另外,岩石的上方與爺爺岩石相比修整得平平的,可以肯定這是女性的象徵。
個子當然也高20釐米以上。 難道我們的祖先認爲女性應該擁有更大的身體嗎? 來到這個村莊的理由其實是出於對阿爾特岩石的好奇心。 本來在村會館旁的小溪上,但小溪被填平了。 向村民們打聽,原來是在農協倉庫的位置。 在建倉庫時,建在稍遠的小溪旁邊,恰好是慈善費和裝船費立起來的旁邊。 據記載,這些石碑也是1984年建造的,據推測,阿爾特巖也是在這個時候移走的。
阿爾特巖的高度只有約130釐米。 但是有長15釐米、寬7釐米的阿爾特模樣的痕跡。 這個不是刻在正面,而是刻在左邊中間。 這個痕跡看起來有點笨拙,相當於一個長長的槽。 但是這個槽並不是單純的槽。 唯獨在這塊岩石上留下金線的原因也與此有關。
人們想象這塊岩石是爺爺和奶奶所生的孩子,但問題是爲什麼只對這塊岩石進行祈願生子的記者行爲呢? 如果從"類感巫術"的意思來看,老奶奶岩石應該成爲治城對象。 這就像多生兒子的夫人的月經帶,就可以生兒子的一般咒術行爲。 但在這裏,兒子岩石承擔着祈願子女的南根石的功能。
沒有生下兒子的婦女來到這裏轉一圈,反覆做手指伸進和搶奪的動作。 據說,這樣一來,生兒子的傳聞就傳遍了周圍。 雖說最近很少有人上門做客,但總而言之,似乎還是有效果的。
該石墓與廣開土太王妃一樣,是直六面體,上面看起來像是修整的。 就像南根石一樣,他表現出了堅定的態度。 在這種岩石上致敬的婦女們用手指在岩石的槽上的行爲分明是模擬性行爲。 這一行爲是爲了藉助這塊岩石所具有的性生產力,祈願自己能生下孩子。
但是,爲什麼南根石用女性的手指進行性行爲呢? 在這裏可以解釋爲,與其從這個角度理解,不如說是因爲性行爲帶來的意義。 如果是身體力行的性行爲,當然南根石象徵着男性。
但這塊岩石不僅很難爬上,而且還有可以代替其功能的凹槽,因此可以說只是單純的角色變化而已。
特別是這塊岩石與南根石的形象相似,所以分明是男性。 正因爲如此,他們纔有了兒子岩石,也就是爺爺奶奶生下的孩子。 這足以凸顯這塊岩石在生產兒子方面具有卓越的能力,這一點非常有效。
從這一點看,這塊岩石與其說是阿爾特巖,不如說是兒子巖。 阿爾特巖意味着生產功能,但兒子巖不是單純的生產,而是具有生兒子的新傳統。
此外,該村還有將舍母、足頭裏、鹹津崖碑等形象化的岩石。 據說,從風水地理上看,在蛇要捕食金蟾蜍的情況下,黃雀看到了這一情況,表現出要拍蛇的樣子。 這些形態作爲岩石表現出來,還流傳着與此相關的傳說。
但是,在開闢新道路的同時,打破岩石等,很難再現過去的想象力。 現在人們似乎決心生活在一個想象力消亡的刻薄的世界裏. | 文章:金鐘大(文學博士·國立民俗博物館民俗研究科長) 摘錄:世界日報

반응형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