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 비상사태로 접어든 지 벌써 반년이 되었다. 미구에 극복할 수 있다는 초기의 성급한 낙관적 전망은 이제 허망한 집단적 백일몽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역병과 평화 공존해야 한다는 현실론으로 기울어진 것 같다. 의료 전문가들의 예측이 현실적인 것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나마 미국을 비롯한 열강 제국에 비해서 확진자나 희생자 수가 소규모인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동안 진력해온 방역 당국과 의료진의 모든 영웅들에게 심심한 경의와 사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거침없이 벌어지고 있는 불미스러운 권력층의 반(反)영웅적 오만과 편견에 대해서는 인내와 수기(修己)의 계기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위로를 찾아서
역병 비상사태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소소한 일상사와 관련된다. 가령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 지수가 낮아지고 그것을 실감할 수 있다는 것도 그 하나다. 무더위 속에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것을 실감했다. 필요에 따라 옛 그리스 비극을 다시 훑어보고 있는데 이 비상사태가 그것을 이해하는 데 일조한다는 생각을 하고 거기서도 위안을 찾았다.
그리스 비극은 기원전 6세기에 시작하여 수백 년 동안 중단 없이 상연되었다. 그러나 그 전성기는 기원전 5세기이며 현존하는 비극 텍스트는 그 무렵에 쓰인 것이다. 시기적으로 비극은 아테나이(Athénai, 이하 아테네)의 민주정과 나란히 발전하였다.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인구의 다대수가 정치에서 강력하고 정규적인 목소리를 내게 되고 결국엔 주요 역할을 하게 된 시기에 비극이 동반 발전하였다는 것은 우리가 유념하고 숙고해야 할 국면이다. 비극은 지리적으로 산재해 있던 그리스 세계에서 두루 환영받았고 기원전 4세기에는 많은 그리스 도시가 자기네의 극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원에 있어 비극은 아테네의 문화적 산물이다.
상황과 그 산물
비극이 발생한 서기전 6세기는 우리보다 열악하고 불안정한 인간 조건의 시대였다. 전쟁, 불안정, 불시로 닥치는 죽음은 일상생활에서의 항수(恒數)였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상해(傷害)의 공포, 고통과 임박한 죽음의 가능성이 일상적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것은 한반도에서 태어난 씩씩한 현대인에게도 결코 생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위협에 대한 세분화된 집단적 방어 수단을 가지고 있어 그 강도는 한결 약하다 할 수 있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존속 살해, 가족 살해, 근친상간과 같은 극단적 상황이 전개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원시적인 사나움이 보인다. 이것을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여러 성향의 결과로 보는 것은 비역사적인 분석이요 태도이다. 고대인이 처해 있던 각박하고 참혹한 상황과 연관된다고 보아야 옳다. 그리스 비극에는 전쟁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런 상황에서 나온 극단적이고 원형적인 사건과 인간을 다룬 것이니 원시적 사나움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비극 속의 역병
역병 사태에서 우리의 인간관계는 치명적 바이러스의 잠재적 숙주 관계라는 의도하지 않은 하부 구조에 부분적으로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불시의 임박한 죽음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현재의 역병 비상사태에서 느끼는 인간 존재의 본원적 취약성이나 임박한 죽음과의 불안한 동거 의식은 저 고대의 비극을 낳게 한 상황과 그 상황 속에 자리 잡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동병상련이나 공감이야말로 이해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모범 사례로 거론해서 더욱 주목받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Oedipus Tyrannus)』은 역병 얘기로 시작한다. 다양한 연령층의 탄원자와 제우스의 사자가 서 있고 이어 오이디푸스가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라를 창궐하는 역병으로부터 구해달라는 것이 탄원자들의 탄원 내용이다. 본시 오이디푸스 얘기는 호메로스, 핀다르, 아이스킬로스에 나오지만 거기에서 역병에 대한 언급은 없다고 피터 아렌스도프(Peter J. Ahrensdorf)는 말한다. 소포클레스는 역병을 극 속에 도입할 뿐만 아니라 역병으로 극을 시작하고 있으며 그것이 오이디푸스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한에서는 역병의 창궐을 연극의 중심에 두고 있다. 이 역병은 아폴론이 보낸 별나게 파괴적인 것으로 테바이(Thebai, 이하 테베)를 파탄에 빠트리는데 역시 아폴론이 보냈다는 기원전 430년에서 426년에 이르는 사이 아테네를 파탄에 빠트린 역병도 별나게 파괴적인 것이었다.
아테네의 역병
우리는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가 역병으로 쓰러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역병이 발생한 것은 기원전 431년 봄으로 펠레폰네소스 전쟁 발발 이듬해의 일이다. 전쟁이 일어나자 아테네는 전략상 시외의 전원(田園) 지대를 포기하고 주민들은 가재도구와 함께 성벽 안의 협소한 시가지로 이주한다. 좁은 공간에 주민들이 밀집 생활을 하게 되니 역병은 맹위를 떨쳐서 마침내는 아테네 시민 3분의 1이 사망하게 된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도 감염되어 고생을 했는데 그 때문에 역병에 대한 상세한 전문가적 기록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갑자기 머리 부분의 발열이 시작되고 목의 출혈, 가슴께의 통증, 심한 기침으로 이어지고 구토가 생기고 피부에는 조그만 종기가 생기고 환자는 고열에 시달리다가 발병 1주일 후에 사망하게 된다. 설사 첫 고비를 넘긴다 할지라도 장궤양이 생기고 설사로 기진하여 사망하는 것이 예사였다. 사망을 면했다 하더라도 후유증이 많았고 기억을 상실하기까지 하였다. 병명은 물론 알 길이 없어 뒷날 역사가는 여러 가지 전염병을 추정하였고 이미 병원균이 없어진 역병이라는 추론까지 생겼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체 발견과 검사로 장티푸스일 개연성이 높다는 쪽으로 결론이 난 듯하다. 페리클레스가 역병으로 쓰러짐으로써 아테네의 패색이 짙어졌다는 것은 사실인 듯싶다.
정치학자의 해석
트로이 전쟁 발발 이전에 고대 테베에서 일어난 얘기에 근거한 극을 소포클레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간 중 아테네에 터져나온 역병과 유사한 역병 얘기로 시작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고전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아렌스도프는 「참주정, 계몽, 그리고 종교(Tyranny, enlightenment, and religion)」라는 논문에서 정치학자답게 매우 이색적이고 설득력 있는 해석을 보여준다. 『오이디푸스 왕』을 아테네에 창궐하고 있는 역병과 유사 관계에 있는 테베의 역병 애기로 시작함으로써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의 테베와 소포클레스 자신의 페리클레스 아테네 사이에는 어떤 유사 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비전통적이고 합리주의적이고 계몽의 반종교적 정신을 특징으로 하는 오이디푸스의 테베 통치와 그 비슷한 정신이 특징인 페리클레스의 아테네 통치 사이의 평행 관계에 소포클레스는 주목을 집중시킨다.
그러한 정신은 두 도시를 습격한 치명적 역병에 의해서 시험된다. 그리고 두 도시의 역병에 대한 종교적 반응은 이성의 빛만으로 통치하려는 오이디푸스와 페리클레스의 아테네 시민들의 노력을 둘러싼 중대한 어려움을 드러내주고 있다. 페리클레스의 아테네 정부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사이의 유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투키디데스의 역사가 인용된다.
아테네의 영광
역병에 의해서 혹독하게 시험된 아테네 정부의 특징적 정신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전쟁 때 아테네 전사자를 추도하는 페리클레스의 장례 연설에서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페리클레스에 따르면 아테네의 특징은 최대한의 인간 자유와 법치를 결합함으로써 인간 본성이 효과적으로 만개하는 것을 허용하는 능력에 있다. “우리는 공동체를 염두에 두면서 정치를 자유롭게 실천한다.” 오직 아테네에서만 안정되고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강력한 공동체에서 사는 것의 이점을 충분히 향유하면서 인간은 쾌락, 지혜 그리고 영광에 대한 욕구를 자유롭게 충족시켜 온전한 인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회들은 법률과 공동체가 격정과 이성을 전통, 선조, 제신(諸神)에 대한 의문 없는 일체화된 경의에 종속시킴으로써 유지된다. 아테네는 그러나 이러한 경의를 거부하고 또 법에의 순종과 명철한 이성에 기반하여 공동체에 헌신함으로써 인간 사회가 번창하고 힘과 영광의 절정에 도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페리클레스는 역설한다.
투키디데스가 전하는 페리클레스의 아테네 정부는 인본주의적이고 계몽된 정치 제도이고 인간 격정과 이성을 전통적인 종교적 도덕적 제한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아테네 시민으로 하여금 고매함, 지혜, 영광 그리고 자신들의 도시의 힘을 사랑하기를 요구한다. 아테네 정부의 인본주의와 계몽의 비범한 정신은 그러나 아테네를 찬양하는 페리클레스의 장례 연설 직후에 아테네를 강타하는 유별난 파괴적 역병에 의해서 혹독하게 시험된다. 왜냐하면 투키디데스가 강조하듯이 역병의 위력 앞에서 의술도 다른 어떤 인간 기술도 소용이 없고 질병의 형태가 이성보다도 강력해지고 말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테네 시민들의 순리에 맞는 법에 대한 순종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은 역병의 파괴력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임박한 죽음이 편재(遍在)해 있는 것으로 보여 아테네 시민들은 즉각적인 쾌락을 탈법적으로 추구하며 모든 자기 절제를 포기하였다.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테네 시민으로 하여금 법을 무시하는 것은 방지하지 못하였지만 아테네 시민들이 역병은 신심 깊은 스파르타에 전쟁을 건 벌로 아폴론이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고 믿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페리클레스 자신도 투기디데스의 책에 나오는 네 번째이자 마지막 연설에서 역병을 신의 처사의 하나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렇듯 역병은 페리클레스 치하 아테네의 반전통적이고 반종교적이며 합리주의적인 성격을 약화시키고 어느 모로는 종교의 역습을 고무한 것으로 보인다. 아렌스도프의 치밀한 분석은 전문적이고 또 텍스트에 밀착해 있다.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오이디푸스왕』을 통해서 소포클레스가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계몽된 시인이 아테네의 동료 시민들에게 정치적 계몽의 위험을 경계하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성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반계몽적 종교의 역습으로 이어진다는 경고의 정당성 여부가 문제가 아니다. 노숙한 지혜가 동료 시민들에게 충고할 수 있는 한 아테네 민주정은 건실하였다. 소포클레스의 충고는 공동체 전체의 축제를 통해서 전달되었다. 지금의 세계 상황은 어떤가?
도처에서 권력의 목소리만이 우렁차게 퍼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끝으로
문화대혁명기의 중국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젊은 홍위병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곤욕을 치렀다. 굴욕감에서 자살한 지식인들이 많았다. 물리학을 공부했다는 덩샤오핑의 아들도 2층에서 몸을 던졌으나 생명은 건져 장애인으로 살았다. 그런데 역사 전공의 지식인 가운데는 자살자 혹은 자살 시도자가 없었다 한다. 역사와 마찬가지로 비극도 독자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 그것은 오만이 파멸로 가게 마련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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