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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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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의 서식처와 먹이가 사라진다 


참새 하면 문득 음력 보름날이 떠오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밭으로 달려가 귀가 따갑도록 짹짹거리는 참새 떼를 쫓는다. 후여! 후여! 바지랑대로 대나무를 후려갈긴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녀석들은 놀라 어쩔 줄 모르고 떼거리로 후르르 도망을 친다. 딴 집보다 먼저 대밭의 녀석들을 쫓아야 그 해 벼논에 참새들이 꾀지 않는다. 정말 그럴까? 따질 일이 아니다. 가을 들판에 달려드는 참새 쫓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는가? 허수아비를 여기저기 세우고, 그것도 부족해서 새끼줄을 논두렁 둘레에 죽 쳐놓고 구석구석에 깡통을 주렁주렁 매달아 줄을 당긴다거나 꽹과리를 두드리며 이 논 저 논으로 놈들을 쫓는다. 술래잡기가 따로 없다. 수십 마리, 때로는 수백 마리가 뒤끓어 설익은 벼 젖물을 쭉쭉 빨아버리니 그냥 두면 실농(失農)할 건 번한 노릇이다. 제 놈이 아무리 ‘참(眞)새’라지만 밉다! 밉다 미워! 애간장을 다 태우게 하는 놈들이 밉다. 여든여덟 번이나 손이 간 벼(米)다. 태어나 미음(米飮)으로 만나고 죽으면서 입안에 가득 담고 가는 쌀이 아니던가! 조상의 넋과 혼이 밴 나락이다!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하고 “참새가 죽어도 짹 소리를 낸다”고 한다. 참새께서도 벼를 키우는 데 저도 한몫을 했다는 것이다. 벼논에 달려드는 해충(害蟲)을 얼마나 잡아먹어 줬는데 우릴 괄시하느냐고 되레 투정을 부린다. 저들이 구충(驅蟲)하지 않았다면 논에 벼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을 거라는 거지.(농약이 없던 옛날에는 정말로 그랬다.)
참새(sparrow)를 빈작(賓雀), 와작(瓦雀) 또는 황작(黃雀)이라 불렀다. 약한 동물들은 떼거리를 짓는 특징이 있듯이 참새도 군서(群棲)하며, 인가(人家) 근처에 주로 서식(棲息)하는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조류(鳥類)다. 몸길이는 약 14㎝이며, 머리는 짙은 갈색, 등은 갈색에 검은 세로줄 무늬가 규칙적으로 나있고, 날개에는 두 줄의 가는 흰 띠가 있다. 눈 밑의 얼굴은 희고 귀털(이우·耳羽)과 턱 밑은 검으며 배는 흐린 흰색이다. 암수가 같은 색이고 크기도 비슷하다. 새까만 눈에 야무지고 딱딱한 부리도 참새의 특징이다. 한 배에 황갈색에 갈색 반점이 있는 알을 4~8개 낳으며,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 걸쳐 사는 텃새이다. 여름이면 사닥다리 걸쳐놓고 처마 끝에서 알을 꺼내 구워먹었고, 겨울밤엔 이엉집 안에 잠자리 튼 그 놈들을 통째 잡아 구이를 해 먹기도 했다.
그런데 요새는 눈을 닦고 봐도 참새 보기가 어렵다. ‘작아도 알만 잘 까는 참새’가 왜 이렇게 줄어버렸을까? 뭣보다 번식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참새가 집 짓기 좋아하는 초가집과 기와집(지붕)은 사라지고 말았다. 게다가 강력한 농약(農藥)과 제초제(除草劑)에 참새가 번식기에 많이 잡아먹던 곤충의 애벌레(새끼에게는 벌레를 잡아먹임)와 주식(主食)에 가까운 잡초 종자가 줄어든 탓이다. 결국 먹이와 집(food and space)을 잃어버린 참새의 수는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할수록 참 아깝고 아쉽다. 세계 어디를 가도 맞닥뜨리는 참샌데…. 제비라는 동물도 같은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한데 어쩌다가 우리는 출산율이 줄어들어 저 야단이란 말인가!?
그래도 아직은 참새 씨가 마르지 않았다. 강한 생명력을 가진 참새가 정말 가상타. 부디부디 굳세어라, 참새들아!  | 글 : 권오길 (강원대학교 명예 교수)


麻雀的棲息地和食物消失


一提起麻雀,忽然想起農曆十五。 早上一起牀就跑到竹田裏,趕着一羣叫得耳朵刺痛的麻雀。 呼啊!呼啊!用褲腳把竹子砍下來。 "魂飛魄散"一詞就是這種時候使用的。 小傢伙們嚇得不知所措,成羣結隊地逃跑。 只有先於別家趕走田間小傢伙,那年水稻田纔不會吸引麻雀。 真的會那樣嗎? 不是計較的事情。 你知道追逐秋野麻雀有多難嗎? 到處豎起稻草人,還不夠用,把繩子搭在田埂周圍,在每個角落都掛滿易拉罐子,或敲鑼打鼓,用稻田裏的稻田追逐敵人。 沒有別的捉迷藏。 數十頭,有時數百頭翻滾,把不成熟的稻穀奶水都洗掉,如果放任不管,該失農的就該了。 我這傢伙再怎麼叫真鳥,真討厭! 討厭討厭!討厭那些讓人心急如焚的傢伙。 這是經過八十八次加工的稻米。 出生時喝着米飲相識,死的時候嘴裏裝滿了米,不是嗎! 祖先的靈魂和靈魂都出竅門!
"姑娘生孩子也有話要說","麻雀死了也會發出吱聲"。 麻雀在栽培水稻方面也起到了一定的作用。 他們反而耍賴說:"給水稻田吃了多少害蟲,還瞧不起我們嗎?" 也就是說,如果他們沒有驅蟲,稻田裏就不會有一粒稻穀了。
麻雀(sparrow)被稱爲賓雀、瓦雀或黃雀。 就像弱小動物成羣的特徵一樣,麻雀也是羣棲,主要與棲息在人類家附近的人有着密切關係的鳥類。 身長約14釐米,頭呈深褐色,背部呈褐色,有規律地呈黑色豎線花紋,翅膀上有兩條細細的白帶。 眼下的臉是白色的,耳羽和下巴下面是黑色的,肚子是模糊的白色。 雌雄同色,大小也差不多。 烏黑的眼睛和堅硬的嘴也是麻雀的特徵。 它是一隻產有4~8個黃褐色斑點的蛋,是橫跨歐洲和亞洲等地的土鳥。 一到夏天就搭上梯子,在屋檐下取出蛋烤着吃,冬夜還抓着睡在草編房裏的那些傢伙烤着吃。
但是最近擦眼睛看也很難看到麻雀。 "小而能剝蛋的麻雀"爲什麼會這麼少呢? 因爲繁殖地消失了。 麻雀喜歡蓋房子的茅草房和瓦房(屋頂)消失了。 再加上強大的農藥和除草劑,麻雀在繁殖期經常捕食的昆蟲幼蟲和接近主食的雜草種子有所減少。 最終,失去食物和家園(food and space)的麻雀數量只能一落千丈。 越想越覺得可惜。 無論走到世界任何地方,都會遇到麻雀……燕子這個動物也陷入了同樣的處境。 可是我們的出生率怎麼就減了,還鬧得那麼厲害呢!
儘管如此,麻雀還沒有乾涸。 擁有強大生命力的麻雀真是個假象。 麻雀們, 一定要堅強! | 文章:權五吉(江原大學名譽教授)

 

중국인 4천만 명 죽은 이유가 '참새' 때문?

어설픈 사고방식을 가진 독재자가 불러온 참극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설픈 사고방식으로 국정을 좌지우지 한다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고작 몇 개월 전까지 그런 나라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고작 독재자의 말 한 마디로 국민 4천만 명을 죽게 한 일이 있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총 3년 동안 중국 인구 4,000만 명이 사망한 사상 초유의 대기근이 일어났다. 이는 4,7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던 2차 세계대전과 맞먹을 정도로 끔찍하고 엄청난 사건이다. 그런데 엄청난 사망자를 발생시킨 대기근은 믿을 수 없게도 ‘참새를 죽였기 때문’에 일어났다.

대대적인 ‘참새소탕작전’ 시작
참새를 죽이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당시 주석이었던 마오쩌둥(모택동)이 벼 이삭을 쪼아 먹는 참새를 발견하고 ‘참새는 해로운 새다’라는 말 한 마디를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베이징에 ‘참새섬멸 총 지휘부’가 신설됐고, 지휘부는 참새가 곡식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참새 한 마리가 1년에 2.4㎏의 쌀을 먹는다고 가정하면, 320만 마리의 참새는 7,680만 톤을 쌀을 먹는다. 이는 한 사람이 1년에 240㎏의 쌀을 소비한다는 기준으로 봤을 때, 무려 3만 2,000명의 중국인이 1년 간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쓰촨성 농촌마을에 약 320만 마리의 참새가 머무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윽고 1958년 2월, 참새섬멸 지휘부는 중국 쓰촨성 치옹라이현을 필두로 대대적인 ‘참새소탕작전’을 실시하게 된다.
중국인들은 참새를 잡기 위해 800곳이 넘는 시내에 독이 들어간 과자를 뿌려 독살하거나, 빗자루와 깃발 등을 흔들고 꽹과리를 쉴 새 없이 두드려 참새가 앉지 못하도록 했다. 둥지 안의 새끼와 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들도 나뭇가지로 만든 새총으로 참새 잡이에 참여했다.
작전 첫날 8만이 넘는 참새가 죽고 사흘 만에 40만 마리가 죽었다. 참새를 소탕하는 모습이 전국으로 방송되자 이에 영향을 받아 총 21만 8,007명의 중국인이 이 사업에 참가하게 된다.
참새소탕작전은 밤낮없이 진행됐고, 참새는 논이나 나무에 앉지 못하고 허공을 날다 지쳐 떨어졌다. 결국 중국 전역에서 무려 2억 1,000마리가 넘는 참새가 잔혹하게 학살당하게 된다.

참새 죽였는데... 쌀 수확량 오히려 줄어
그런데 황당하게도 참새소탕작전을 벌인 첫 해의 쌀 수확량은 오히려 극심하게 줄어들었고, 식량 부족으로 굶어 죽은 사람들의 수는 무려 172만 명으로 급증했다. 또한 해를 거듭할수록 쌀 수확량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굶어 죽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게 됐다.
그렇게 계속되던 도중, 참새소탕작전 실시 후 1년이 지난 1959년, 중국 정부는 뒤늦게 작전에 ‘치명적인 오류’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참새가 벼에 해를 끼치는 해충들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참새소탕작전으로 해충의 천적인 참새가 사라지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해충들은 닥치는 대로 벼를 갉아먹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중국에서 아사한 인구는 공식발표 1,000만 명이지만 실제 사망자 수는 최대 4,000만 명에 이르렀다. 중국은 뒤늦게 소련에서 참새 20만 마리를 공수했지만 이미 늦었다. 참새는 해로운 존재라는 인식이 끔찍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마오쩌둥이 벌인 참새소탕작전은 ‘제사해운동(除四害运动)’의 일환이었다. 제사해운동은 중국 인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모기, 파리, 쥐 그리고 참새 네 가지를 박멸하자는 운동이다. 당시 중국인들은 위생관념이 부족해 여름만 되면 쉽게 전염병이 돌아, 이를 근절하기 위해 학교에서는 위생 검사, 양치질하기 운동, 집이나 거리 청소하기 운동, 여러 방역구제가 실시됐고 농촌 지역에서는 재래식 화장실을 만들기도 했다.
제사해운동은 전반적인 위생개선운동과 같이 실시됐다. 그러나 위생과는 상관없이 애꿎은 참새만 죽어나가게 됐다. 마오쩌둥은 이 작전의 실패로 국가 주석을 사임했다.
참새소탕작전의 결과는 독재자의 아마추어리즘이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준 확실한 예시가 될 수 있다. 국민들의 여론수렴과 사회적 공론화, 격렬한 의견충돌, 상호교차검증, 투표와 법률화를 거쳐서 정책을 수립하는 민주주의 사회에 비해 1인 혹은 극소수의 권력자들이 철저하게 상명하복 체계로 운영하는 독재가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위험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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