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반응형

번지없는 주막(김일용 원장님 연주-제13호)

https://youtu.be/sP38A9trhz0?si=bx1IoD70vIxVwH3d

"일전에 업로드한 새로운 김일용원장님 아코디언연주 동영상입니다.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번지 없는 주막  / 노래: 백년설 (작사: 추미림, 작곡: 이재호)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 비 내리는 이 밤이 애절쿠려,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석유등 불빛 아래 마주 앉아서

따르는 이별주에 밤비도 처량쿠려,

새끼손을 걸어놓고 맹세도 했건만

못 믿겠소 못 믿겠소 울던 사람아.

 

아주까리 그늘 아래 가슴 조이며

속삭이던 그 사연은 불같은 정이었소,

귀밑머리 쓰다듬어 맹세튼 그 시절이

그립구려 그리워요 정녕 그리워.

 

(2/3절이 믹스된 최근 2절 가사)

 

아주까리 초롱 밑에 마주 앉아서

따르는 이별주에 이 밤도 애절쿠려

귀밑머리 쓰다듬어 맹새는 길어도

못 믿겠소 못 믿겠소 울던 사람아

 

이 노래는 《나그네 설움》”과 더불어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영원한 애창곡(愛唱曲)으로 남게 될 명곡(名曲)이다. 이 노래가 82년이란 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굽이굽이 꺾어지듯 이어지는 멜로디뿐 아니라,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이란 첫 구절의 강렬한 이미지가 뇌리(腦裏)에서 쉽게 잊혀 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그네를 주제(主題)로 하는 노래를 많이 불렀던 백년설(白年雪; 본명: 이창민, 1915-1980) 선생님은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성주 농업보습학교 (현 성주고)를 졸업하자마자 연극을 하겠다는 희망을 갖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서는 일본 보험회사의 외판원(外販員)으로 취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술자리에서 한 곡 부른 것을 계기로 콜롬비아 레코드사의 테스트를 받아 합창단(合唱團)에 들어갔는데, 문장력을 인정받아 전속(專屬) 작사가로 활동했다. 노래에 천부적 소질을 타고난 이창민(李昌敏)은 얼마 후 백년설(白年雪)로 이름을 바꾸고 38년에 태평레코드사에서 자신이 작사한 《유랑극단》이란 노래를 취입해서 히트를 치며 가수로 데뷔했다. 1939년에 《두견화 사랑》과 《마도로스 박》을 발표했는데, 《두견화 사랑》은 장안에서 홍등가의 최고 인기곡으로 각광 받았다. 이어서 이재호씨와 콤비를 이뤄 《나그네 설움》 《어머님 사랑》 《번지 없는 주막》 《산팔자 물팔자》를 연속으로 발표하자, 그 중 《나그네 설움》은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숫자인 10만장의 레코드 판매고(販賣高)를 올렸고 그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았다. 1941년에는 《복지만리》 《대지의 항구》 등을 불러 여전히 큰 인기를 얻었고, OK 레코드사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고향설》 《경기 나그네》《더벅머리의 과거》 등의 히트곡을 내놓았다.

 

《유랑극단》이란 노래 한 곡으로 단숨에 인기가수(人氣歌手)가 되었고, 《나그네 설움》으로 태평레코드사에게 최고의 호황을 안겨주었던 그는 <태평 연주단>을 조직해서 공연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또 광산사업(鑛山事業)에 성공해서 번 거금 2000원 전액을 ‘13도 레코드 예술상” 제정에 내놓아서 백난아 같은 가수를 배출(輩出)하기도 했다. OK 레코드사로 옮길 때도 축하금/ 전속료 5000원과 350원의 월급을 받았는데, 당시에는 최고급 양복 한 벌이 40원, 커피 한 잔에 10전, 술집에서 팁으로 1원을 주면 두고두고 고마워하던 시절이었다. 40년대 초반에 악극단이 전성기를 이루자 <화영 악극단>을 결성해서 중국과 만주를 순회하면서 동포들을 위문하고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해방 직후에도 대구에서 <공화 악극단>을 만들어 활동했으며, 서라벌 레코드사와 센추리 레코드사를 설립하고 경영했다. 또 6.25 전쟁 중에는 위문대(慰問隊)로 전선을 누볐고, 9.28 수복 후에는 목재상(木材商)을 경영해서 돈을 모았다. 가수들이 사업을 하면 빈털터리가 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선생님께서는 사업과 경영에 탁월한 수완이 있어서 윤택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가수로 데뷔한지 불과 15년 뒤인 1952년에 《마음의 고향》과 《신라제 길손》을 끝으로 신곡 발표를 중단하신 선생님은 1958년에 “대한 가수협회”를 창설하여 초대 회장을 역임하셨다. 그리고는 63년에 시민회관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에서 너무 일찍 은퇴공연을 가지셨는데, 작고하신 영화배우 김승호(金勝鎬)씨가 고별사(告別辭)를 낭독하셨다. 자신이 부른 노래의 상당수를 직접 작사하신 작사가이자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히트하는 명가수(名歌手)였을 뿐 아니라 손만 대면 돈이 벌리는 뛰어난 사업가셨던 선생님의 시름 섞인 듯 애틋한 노래는 그렇게 공식적인 막을 내렸다. 은퇴 후에도 수출회사(輸出會社)를 경영하시면서 ‘여호와의 증인’ 교파 신도로 열성적인 전도활동(傳道活動)을 하시다가 1979년 미국 LA로 이민을 떠났지만 이듬해에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2002년에 옥관(玉冠) 문화훈장(文化勳章)이 추서되었고, 2003년부터 <백년설 가요제>가 열리고 있으며, 2009년 모교인 성주고교에 노래비와 흉상(胸像)이 건립되었지만, 《아들의 혈서》 《지원병의 어머니》 등의 노래를 불렀던 전력으로 친일 인명사전(親日人名辭典)에 올랐음은 가슴 아픈 일이다.

 

박재홍/심수봉/나훈아/이성애/주현미 씨 등도 불렀고, 같은 이름의 악극이 1991년 “극단 가교”에 의해 초연되었다. 그리고 1961년 (김승호/박암/도금봉 출연, 강찬우 감독)과 1994년 (최주봉/김성녀 주연, 김상렬 감독)에 같은 이름의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원곡은 3절까지인데,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 하면서 2절과 3절을 믹스해서 새로운 2절로 바꿔 부른 것이 요즘의 표준 가사가 되었다. 이 가사는 국내 가라오케에서 채택(採擇)하고 있는 새로운 2절 형태이고 멜로디도 완벽하게 같다.

 

궂은 비 내리는 밤 허름한 주막에서 아쉬운 이별주(離別酒)를 마주한 두 연인의 모습이 그림처럼 잘 묘사되어 있다. 창밖엔 버드나무가 비바람에 요동치고 (태질하고) 흐릿한 석유 등잔불 아래에서는 떠나야 한다는 님을 쓰라린 가슴으로 말려도 보고 다짐도 받아보지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여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괴로운 신음을 토하고 있다. )꼭 성공해서 돌아오겠다고 새끼손가락을 걸기도 하고 귀밑머리를 쓰다듬으며 맹세했건만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죄스럽고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다는 내용이다. 요즘도 이별의 순간에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 언젠가 다시 그대 곁으로 돌아오마 다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별 경험이 부족하다거나 미숙하다고 놀림을 당하겠지만, 이런 이별이야말로 단칼에 절교(絶交)하는 살벌한 이별(離別보다 얼마나 아련한 추억을 가슴에 오래 남기는지 모른다. 물론 다시 오겠다는 약속이 쉽게 지켜지지 않을 것임을 서로가 알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렇듯 쑥스럽고 어색한 추억(追憶)조차 겹겹이 쌓여질 때 진정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들을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아갈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 곡의 실제 작사가는 월북작가인 조명암 (본명: 조영출, 1913 ~ 93)이다. 오늘날 K-Pop이 전세계적인 주목(注目)을 받고 있지만, 우리의 정서와 멜로디는 이런 흘러간 노래에서 진화한 것이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술 한잔 걸치고 노래방에서 구성진 옛 노래를 합창(合唱)하기 마련인데, 해외에 나가서 듣는 우리의 국악(國樂)이나 농악(農樂)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격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대가 바뀌어도 이런 우리의 한 맺힌 가요가 오래 이어지고 사랑 받기를 기원해(祈願) 본다. 아울러 옛 것을 사랑하고 익혀서 세계가 놀랄만한 한국적인 문화를 더 많이 창조할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자료제공 | sandjay님의 블로그

 

이 아코디언 코너는 세계적인 아코디언 연주가이며 레슨 전문가이며 인간문화재인 김일용원장님 승인을 거치고 허락을 받아 아코디언연주 영상물을 올립니다. 음악애호자나 아코디언에 취미를 가지신 분들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많은 이용 바랍니다. 김일용 아코디언 연구소(카페주소: 김일용 아코디언 연구원 - Daum 카페)입니다.

 

◐ 원장님 소개 ◑

- 연변대 예술학부 아코디언 전공

- 중국 길림시 신초 예술단 악장 역임

- 용정중학교 음악교사 역임

- 일용 아코디스쿨 대표

- 사단법인 다문화 예능예술 연예인 협회 대표

- 연락처 : 010-9060-8636

◈ 전국 지부 안내 ◈

☞ [서울 본원]

서울 종로구 수표로 110(종로구 낙원동 178) ☎ 010-9060-8636

☞ [오산지부]

경기 오산시 오산로 195 지하 1층(오산동 882-1 지하 1층) ☎ 010-9060-8636

☞ [고양지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장백로 172 3층(장항동 898-1) ☎ 010-9060-8636

☞ [부천지부]

경기 부천시 자유로 67(심곡본동 553-1) ☎ 010-9060-8636

☞ [대전지부]

대전 중구 보문로254번길 13 2층(대흥동 468-3) ☎ 010-9060-8636

☞ [수원지부]

경기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29번길 7(영화동 424-3) ☎ 010-9060-8636

☞ [강릉지부]

강원 강릉시 토성로 169(임당동 20-6) ☎ 010-9060-8636

☞ [속초지부]

강원 속초시 수복로 135-1(청학동 486-42) ☎ 010-9060-8636

카페주소/(김일용 아코디언 연구소): https://cafe.daum.net/kimaco

반응형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