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
홍도야 우지 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구름에 싸인 달을 너는 보았지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
네 마음 네 행실만 곱게 가지면
구름을 걷어주는 바람이 분다
1936년에 악극단 <청춘좌>는 무명 작가인 임선규씨가 쓴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동양극장에서 초연하여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일찍 부모를 잃은 두 남매가 서로 의지하고 살았는데, 동생 홍도는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기생이 됩니다. 오빠 친구인 부잣집 아들 광호는 부모의 반대 속에서도 약혼녀와 파혼하고 홍도와 결혼하지만, 홍도는 남편이 유학을 떠나자 시댁에서 쫓겨납니다. 유학에서 돌아온 남편조차 홍도가 부정한 여자라는 집안 식구들의 모함만 듣고 예전의 약혼녀와 다시 결혼하려고 합니다. 이에 이성을 잃은 홍도가 과도로 약혼녀를 살해하고 순사가 된 오빠에게 수갑을 채이고 잡혀가게 된다는 기구한 운명이 줄거리입니다. 전형적인 여성 수난극이자 한국형 '최루(催淚)극'의 원조인 이 악극이 악극 사상 최장기 공연을 기록했는데, 전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로 인파가 몰렸고, 홍도와 자신들을 동일시 한 장안의 기생들이 단체로 찾아와 함께 눈물바다를 이뤘으며, 어느 기생은 한강에 투신자살을 했는가 하면, 기생들을 구경하려고 극장을 찾은 한량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한성은 물론이고 지방 공연까지 연일 만원일 만큼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자 이듬해인 37년에 같은 이름/내용의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그 주제가는 심연옥씨가 부른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였으며 (가사: 거리에 핀 꽃이라 푸대접 마오. 마음은 푸른 하늘 흰구름 같소…..), 김영춘 선생님이 부른 이 《홍도야 우지 마라》는 삽입곡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제가보다 삽입곡의 가사인 “홍도야 우지 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는 노랫말이 열병처럼 삼천리 방방곡곡에 울려 퍼져서 《홍도야 우지 마라》 레코드가 무려 10만 장 넘게 팔리는 대성공을 이루며 신파극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힘든 일제 시대에 희망을 던져준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 여러 번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되곤 했는데, 94년에는 극단 <가교>가 악극으로 재현했습니다. 또 이 노래는 술 한 잔 걸친 남성들이 마치 교가나 군가처럼 목청껏 합창하는 애창곡이기도 합니다.
가수 김영춘 (본명: 김종재, 1918 ~ 2006) 선생님은 김해농고를 졸업하고 양복 재단 일을 배우던 1938년 스무 살 때 콜롬비아 레코드사가 주최한 전국 가요 콩쿠르에 입상한 후 《항구의 처녀설》로 가수가 되었습니다. 이 노래를 비롯한 40여 곡을 불렀지만, 《홍도야 우지 마라》의 인기가 너무 높았고 후속 히트 작이 없어서 다른 노래들은 상대적으로 가려져버렸습니다. 게다가 50년대에 박재홍 선생님이 이 노래를 리바이벌 해서 크게 히트하자, 처음 노래를 부른 김영춘 선생님의 성함조차 흐려지게 되었습니다. 쓸쓸한 노후를 보내시다가 2005년에 교통사고를 당하셨고 이듬해에 후유증으로 타계하셨지만, 선생님께서 남기신 이 노래는 한국인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이서구(1899~1981) 선생님은 호가 고범(孤帆)이었고 남궁춘이란 필명을 사용하신 기자/극작가/연출가/방송 작가셨습니다. 한성 토박이로 방송에서 옛날의 모습과 생활상을 해박하게 설명해주시던 입담 좋고 아는 것이 참 많으신 분으로 기억됩니다. 1995년에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에 세워진 묘소의 추모비에는 《홍도야 우지 마라》 가사와 방송작가 한운사님이 지은 추모의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1919년 동아일보 창간과 함께 기자로 근무했고, 21년에는 조선일보 동경 특파원을 맡았습니다. 22년 동경 니혼대학 예술과를 중퇴했으며, 23년에 박승희/김기진 등의 유학생들과 동경에서 극단 토월회(土月會)를 창립하고 연극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25년부터 경성방송국 연예주임과 동양극장 전속 작가 등으로 극작에 전념하였습니다. 이후 한국 무대예술원 원장, 대한 연극협회장, 서울특별시 비서실장 및 국방부 종군극작가 단장을 지냈습니다. 전후에 라디오/TV의 드라마와 연속극을 많이 썼는데, <강화도령> 〈폐허에 우는 충혼〉 <민며느리> <장희빈> 같은 역사극과 <파계> 〈동백꽃〉〈배소(配所)의 월색(月色)〉 〈어머니의 힘〉(1930) 같은 신파희곡이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그리고 한국 방송극작가 협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습니다.
신파극이란 일본 연극계가 1900년대 초에 서양의 연극 기법을 모방해서 만든 새로운 연극 양식으로서, 전통연극인 가부키(歌舞伎)를 신파와 반대되는 “구파극”으로 부른 데서 연유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정치 선전이나 실화를 소재로 한 계몽극에 국한되었으나, 점차 통속적인 대중연극으로 확산되었습니다. 1910년대에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 30년대에 화려한 꽃을 피웠고 50년대에 악극과 유랑극단으로 발전한 신파극에는 비극적인 내용이 많았습니다. 한편 배우들의 억양이 마치 무성영화 시대의 연사처럼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럽다고 해서, 신파는 촌스럽고 수준이 낮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으며 “신파조”라는 비어(卑語)까지 생겨났습니다. 게다가 90년대 이후에는 신파극을 우스꽝스러운 코미디 극처럼 변질시켜서, 20세기 초에 우리나라의 가장 대중적인 연극 양식이라는 고유한 성격과 역사적 의미를 무시하고 파괴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수천 년 전 희랍의 비극을 우대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토양에서 자란 신파극과 악극을 폄하하거나 선입견으로 무시하지 말고 연극사적인 가치를 찾아서 계승하고 보존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 자료제공 : sandjay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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