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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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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선바위 "아들 하나만 점지해 주소서"

인왕산 선바위(禪岩)

땅 속에 박혀 길쭉하게 서 있는 선바위는 선사시대 이후 집안의 평화나 아기를 낳기를 기원하는 이들의 치성 대상이었다.
선바위 혹은 입석(立石)이라고 부르는 바위는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길쭉하게 서 있는 바위를 선바위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선사시대 이후 늘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왜 이들 바위가 주목을 받았는가 의문이 들 만하다.
무엇보다도 이들 바위는 땅속에 박혀 있다. 그런 형상 자체도 매우 의미심장하지만, 실상은 이런 바위 형태가 무언가를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기자(祈子)신앙과 같은 민간신앙의 치성 대상으로만 존재해 왔던 것일까.
벚꽃이 한창 바람에 날리던 일요일,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아들을 데리고 인왕산의 선바위를 찾았다. 물론 등산을 핑계로 올랐다. 등산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막내는 무엇인가 재미있는 것이 있는 줄 알고 나섰다. 그러나 선바위까지 오르는 동안 계속 씩씩거렸다. 아무런 재미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선바위 주위를 맴돌면서 계속 사진을 찍어대고, 그곳을 찾은 사람들 곁에서 얼쩡거리는 것이 더 신기했던 모양이다. 숨을 돌린다고 계단 밑에 앉아 있던 아이가 선바위까지 올라와 나에게 물었다.

“저 바위에다 왜 사람들이 절을 하는거야.”
“응, 절하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는 전설이 있대.”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몇 번에 걸쳐 절 시늉을 하였다. 막내에게도 무언가 빌고 싶은 소원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공양이 없는 그 소원도 이루어질 수 있을까 궁금하다. 왜냐하면 선바위의 앞쪽과 좌우측에는 초와 사기등잔으로 만든 공양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도성과 인접한 곳에 왜 이런 바위가 있었고, 그리고 사람들은 왜 이곳을 찾아서 치성을 드리는 것일까. 더욱 흥미로운 것은 독립문 위쪽에 위치한 안산에도 선바위가 있다는 것이다. 즉 골짜기를 하나 사이로 선바위가 2개 놓여 있는 형국이다.
인왕산에 위치한 선바위는 국사당을 밑에 두고 있다. 원래 이 국사당은 태조 이성계를 모신 사당으로 남산에 있었던 것인데, 일제 때 남산에 신사를 세우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국사당 위에 있는 선바위에는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관련된 전설이 있다. 선바위를 성 안쪽으로 넣으면 불교가 성하고 유교가 퇴보한다고 해서 성 밖에 놓이게 되었다고 한다.
선바위는 자연의 조화로 만들어졌는데, 마치 남녀가 같이 서있는 것 같은 형국이다. 그래서 이 바위의 모습을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일설에는 무학대사 상이라고도 한다. 안내판에는 선바위의 ‘선’을 스님이 장삼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여 참선한다는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로 불렀다고 적혀 있다. 이 설명은 견강부회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둥처럼 솟아 있는 바위를 대개 선바위, 즉 입석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바위의 일반적인 특징은 남근의 형태를 띠고 있다. 다만 그것을 상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고상하다고 생각되는 표현을 찾은 것은 아닐까. 일제시대에 발간된 ‘조선의 귀신’에도 이 바위를 부부암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기자와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는 석신(石神)으로 그 대석 앞에는 소원을 기원하는 축문도 새겨져 있다고 한다.
선바위에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치성을 드린다. 이때 공양을 올리는데, 대개 과일 공양과 촛불 공양이 일반적이다. 그런 후에 바위를 향해서 절을 올린다. 소원은 일반적으로 아기를 낳기를 기원하는 기자속(祈子俗)이 주류를 차지한다. 선바위의 뒤쪽에 가보니 동자상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많은 사람이 아들 낳기를 기원하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바위에 올랐을 때 한 젊은 여성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절을 올리고 있었다. 아마 아기를 점지해 달라고 치성을 드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외에도 집안의 평안이나 사업 번창 등을 기원할 때 찾기도 한다. 이곳을 찾아온 한 아주머니의 말씀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성취해주는 영험한 산신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렇기에 아기만 점지해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소원들도 잘 들어준다는 것이다.
인왕산에서 내려와 서대문형무소 자리를 끼고 안산으로 올랐다. 안산의 기상대로 오르는 길목에도 거대한 남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바위가 있다. 그런데 이 바위는 잘 찾아봐야만 한다. 다른 한 면은 넓적한 바위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남근처럼 잘 보이는 한 쪽이 있는데, 이쪽 방향으로 성혈(性穴)이 패어 있는 흔적들이 많다. 아마 그곳에 돌멩이를 갖고 문질러야만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발전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바위 밑쪽으로 따로 둥근 홈이 파인 조그만 바위가 짝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즉 남·여근석을 맞춘 듯한 느낌을 준다. 요즘도 이 바위에는 검게 그을린 흔적이 있다. 아직도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 바위의 영험함이 남아 있다는 증거라고 할 만하다.
이런 바위와 달리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던 붙임바위는 세검정 쪽으로 도로를 만들면서 없어졌다. 부암동이라는 명칭 자체가 이 바위 때문에 생겨난 지명이다. 즉 붙을 부(付), 바위 암(岩)자를 써서 부암동이라고 한 것이다. 아들을 낳을 수 있는 바위 때문에 동네가 만들어진 것인가 궁금하다. 서울에는 이 외에도 불광동 선바위 등 여러 곳에서 믿음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 글 : 김종대 (문학박사·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발췌 : 세계일보 ▒


仁王山仙岩"請賜予一個兒子"


鑲嵌在地下長長的太陽石是祈願史前時代以後家庭和平或生下孩子的人們的治城對象。
在全國任何地方都可以看到被稱爲"仙岩"或"立石"的岩石。 一般將長長的岩石稱爲"立巖",他們在史前時代以後一直受到人們的關注。 這不禁讓人產生疑問,這些岩石爲何受到關注?
最重要的是,這些岩石嵌入地下。 雖然這種形象本身也意味深長,但實際上似乎認爲這種岩石形態象徵着某種東西。 那麼,這究竟是什麼呢? 就像我們現在所知道的那樣,難道一直只存在於祈願者信仰等民間信仰的治城對象嗎?
在櫻花盛開的星期天,他帶着小學4年級的小兒子來到了仁王山的太陽石上。 當然是以登山爲藉口登上的。 第一次聽說要爬山,老幺以爲有什麼好玩的。 但是,在爬到岩石的期間,他一直在氣喘吁吁。 因爲沒有發現任何樂趣。 相反,我環繞在岩石周圍,不停地拍照,在來到那裏的人身邊晃來晃去似乎更神奇。 爲了喘口氣,坐在樓梯下的孩子爬到石頭上問我。

"人們爲什麼在那塊岩石上行禮呢?”
"嗯,聽說能滿足行禮者的願望。"

聽到那句話的孩子跟別人一樣,分幾次行禮。 看來老幺也有許願的心願。 但是,沒有供養的願望能否實現呢? 因爲太陽石的前面和左右兩側都裝滿了用蠟燭和瓷燈做成的供養。
在首爾的都城附近爲什麼會有這樣的岩石,人們爲什麼來到這裏獻上一片赤誠呢? 更有趣的是,位於獨立門上方的鞍山也有太陽石。 也就是說,一個山谷中間有2塊岩石。
位於仁王山的太陽石位於國師堂下方。 據說,該國祠堂原本是供奉太祖李成桂的祠堂,位於南山,日本殖民統治時期在南山建立神社時移至此處。 在國師堂上的仙岩上,有與李成桂和武學大師有關的傳說。 據說,如果將岩石放入城內,佛教就會盛開,儒教也會退步,所以纔會放在城外。
天石由自然和諧組成,宛如男女站在一起。 因此,該岩石被稱爲李成桂夫婦的像,也有說法稱其爲無學大師像。 指示牌上寫有"禪"字,指法師穿着長衫,取參禪的"禪"字稱爲"禪石頭"。 這個說明被認爲是牽強附會。 因爲在韓國,像柱子一樣聳立的岩石通常被稱爲立石。
另外,這塊岩石的普通特徵是南根形態。 只是因爲覺得這個很粗俗,所以才找到了高尚的表達方式吧? 在日本帝國主義時代發行的《朝鮮的鬼魂》中也明確指出,這塊岩石是夫妻巖。 據說,作爲祈願記者和子孫繁榮的石神,大石前還刻有祈願願望的祝文。
直到現在,仍有很多人來到岩石上,致以誠摯愛。 這時候供養,一般都是水果供養和蠟燭供養。 然後向岩石行禮。 一般來說,祈願生孩子的祈願俗佔主流。 到天石的後面一看,發現放着童子像,可見還有很多人爲了祈願生下兒子而來到這裏。 登上天石時,一位年輕女性流着汗行禮。 我似乎在真誠地要求他給孩子一個指點。
除此之外,在祈願家裏平安或事業興隆時,也會去拜訪。 來到這裏的一位阿姨說:"她是一個靈驗的山神,她可以實現自己想要的一切。" 因此,不僅是給孩子占卜,其他願望也會得到滿足。
從仁王山下來,沿着西大門刑務所的位置登上了安山。 在通往安山氣象臺的路口,也有象徵巨大南根的岩石。 但是這塊岩石必須好好找一找。 因爲另一面像一塊寬大的岩石。 有一側看起來像男根一樣清晰,往這邊挖了很多性穴的痕跡。 也許是因爲他相信只有用石頭在那裏揉搓才能生下兒子。
更有趣的是,在這塊岩石下方,有單獨的圓槽的小岩石。 即,給人一種男、女根石相配的感覺。 最近這塊岩石上也有被燻黑的痕跡。 現在還有人在尋找,這足以證明這塊岩石的靈驗性。
與這樣的岩石不同,位於首爾鍾路區釜巖洞的貼身岩石在細黑色方向修建道路後消失。 釜巖洞這個名稱本身就是因爲這塊岩石而產生。 也就是說,使用支付、岩石、巖等字稱爲付巖洞。 不知道是不是因爲能生兒子的岩石而建的村子。 此外,在首爾,佛光洞、仙岩等多處地方都成爲了信任的對象。
文章:金鐘大(文學博士,國立民俗博物館民俗研究科長) 摘錄:世界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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