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막사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마애삼존불을 모신 칠보전과 남·여근석이 한 곳에 모여 있다.
경기도 시흥에서 안양으로 내려가는 길에 관악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예전에는 찾기도 편했는데, 지금은 마무리 도로공사를 하느라 한참 바쁘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으로 터널을 뚫어서 바로 연결된 것도 모르고 시흥대로를 거쳐 안양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삼막사로 오르는 길은 시민들의 등산로가 되어 평일에도 많은 차량이 주차해 있었다. 삼막사 주차장에서 삼막사까지는 약 2㎞ 정도가 되는 듯했다. 계속 오르막으로 된 길을 따라 오르는 것 자체도 운동이 될 법하다. 삼막사에 도착해서 보니 화강암으로 사찰을 온통 치장해 놓았다. 남·여근석이 위치하고 있는 칠보전까지의 계단도 온통 화강암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걸어 오르기는 편한데, 너무 돈으로 치장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다.
예전에 올 때는 이렇게까지 치장되지 않았다. 옛 흙길을 걷듯이 산길에 고즈녁한 분위기가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절을 찾아오면서 생긴 변화인 듯하다. 아니면 돈 많은 사람이 보시를 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칠성각(七星閣)을 칠보전(七寶殿)으로 암자 명칭을 바꾼 것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삼막사(三幕寺)는 신라시대 유명한 승려인 원효와 의상, 윤필 등이 창건한 절이다. 세 사람이 이 곳에서 막(幕)을 치고 수도를 했기 때문에 삼막사라고 하는 유래담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은 듯하다. 또 다른 전설에는 원래 이곳 주위에 일막사, 이막사, 삼막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막사와 이막사는 폐사가 되어 터만 남고, 삼막사만이 명맥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삼막사가 주목을 받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 사찰의 칠보전에 모셔진 마애삼존불의 앞에 세워져 있는 남근석과 여근석 때문이다. 이처럼 기자신앙의 대상물로서 산신각이나 칠성각에 해당되는 칠보전과 남·여근석이 한곳에 모여 있는 사례는 삼막사가 유일하다. 이런 지형적 특징 때문인지 몰라도 자식 낳기를 기원하는 기도처로서 전남 돌산의 향일암과 함께 잘 알려진 곳이다. 특히 이 남·여근석은 1983년에 경기도 민속자료 3호로 지정되어 일찍부터 주목받았음을 알게 한다.
삼막사의 남·여근석 과 관련해서 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금실이 좋은 부부가 있었는데, 자식이 없는 것이 큰 걱정이었다. 시어머니는 씨받이라도 들이라 난리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꿈에 웬 할머니가 나타났다. 그 할머니는 삼막사의 남·여근석 을 문지르면서 소원을 빌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고 하였다. 부부는 그 바위를 찾아 근처에 움막을 짓고 치성을 드렸다. 하늘이 감응했는지 과연 아들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자손이 번창하고 잘 살았다는 것이다. 이런 소문에 자식을 낳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치성을 드렸으며, 지금도 사월 초파일과 칠석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한다.
삼층석탑 앞에 놓여 있는 무수한 동자상도 삼막사라는 사찰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석탑은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으로,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칠보전 안에 모셔진 마애불의 코가 완전히 납작해질 정도로 갉아낸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왜 코를 그렇게 갉아냈을까. 이것은 장승과 같이 나무도 아닌 화강암이기 때문에 코를 갉아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코를 갉아낸 것은 자식을 얻고자 하는 여인네의 심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코를 갉아낸 돌가루를 물에 삶아 먹으면 바위가 지닌 뛰어난 생산 능력을 지닐 수 있게 된다는 전통적 사고방식이 반영되어 있다. 이런 사정은 줄다리기에 사용되는 수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창녕 영산의 줄다리기는 지름이 50㎝ 이상이 될 정도로 굵다. 그런데 이곳의 줄은 수줄과 암줄을 비녀목이라는 굵은 막대기로 연결하게 되어 있다. 여기서 수줄의 머리통이 바로 남근 모습을 띠고 있다. 그래서 줄다리기가 끝나면 사람들은 수줄의 머리를 베어간다. 이것을 지붕에 올려놓으면 잡귀가 근접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또 아기를 낳지 못한 사람은 이 줄로 삶아 먹으면 잉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삼막사를 찾을 때마다 묘한 인연이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항상 여근석 가운데 물이 고여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누군가 물을 뿌려놓은 것은 분명히 아니다. 이것은 전날 비가 내렸기 때문에 고인 물이다. 너무나 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관심을 끌었던 것은 물이 조금 고인 여근석 안에 누군가 백원짜리 동전을 넣어 놓았다는 점이다.
◇남근석(왼쪽), 여근석.
동전이 여러 개가 있다는 것을 보면 한 사람의 소행은 아니다. 누군가 치성을 드리고는 그 안에 백원을 넣은 것임이 분명하다. 삼막사의 여근석에는 백원짜리와 같은 동전을 문지르는 특징이 있다. 10년 전에 찾았을 때도 백원짜리 동전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던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치성이 끝나고 그 돈을 던진 듯하다. 아들을 낳기 바라는 마음에서 그 안에 돈을 넣은 것은 마치 음양의 교합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글 : 김종대 (문학박사·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발췌 : 세계일보 ▒
三幕寺內聚集了全國唯一供奉摩崖三尊佛的七寶殿和男、女根石。
從京畿道始興去安養的路上,有一條去冠嶽山的路。 以前方便找,現在忙着修路。 在首爾冠嶽區新林洞打通隧道,並不知道直接連接,就選擇了經由始興大路前往安養的道路。
通往三幕寺的路上成了市民們的登山路,平日裏也有很多車輛停在那裏。 從三幕寺停車場到三幕寺大約有2公里。 繼續沿着上坡路攀登本身就是一種運動。 到了三幕寺一看,整個寺剎都被花崗岩裝飾好了。 南、呂根石所在的七寶殿的臺階上全部都是花崗岩。 雖然走上去很方便,但讓人懷疑是不是太花錢了。
以前來的時候沒打扮成這樣。 我想起了像走舊土路一樣在山路上有黑漆漆的氛圍。 也許是很多人來到這座寺廟後發生的變化。 或者是有錢人看管的。 這與將七星閣更名爲七寶殿有關。
三幕寺是新羅時代著名的僧侶元曉和服飾、尹弼等人創建的寺廟。 由於三人在這裏搭建了幕牆,所以有"三幕寺"的由來,但似乎並不準確。 另一個傳說中,原來這裏周圍有叫日幕寺、二幕寺、三幕寺的寺廟。 但是日幕寺和二幕寺成了廢寺,只剩下遺址,只有三幕寺維持了命脈。
三幕寺受到關注的還有另外一個原因。 因爲位於供奉在該寺廟七寶殿的摩崖三尊佛前立着的南根石和呂根石。 像這樣,作爲記者信仰的對象,三幕寺是唯一一個山神閣或相當於七星閣的七寶殿和男、女根石聚集在一起的事例。 也許是因爲這種地形特徵,作爲祈願生孩子的祈禱處,與全南突山的香日庵一起廣爲人知。 特別是李南和呂根石1983年被指定爲京畿道民俗資料3號,很早以前就備受關注。
相傳有關三幕寺男、女根石的傳說。 有一對琴瑟相依的夫妻,很擔心沒有子女。 婆婆亂哄哄地要種種子。 苦惱不已的某一天,夢裏出現了一個老奶奶。 那位老奶奶一邊揉搓着三幕寺的男、女根石,一邊許願,就可以生孩子了。 夫婦倆找到那塊岩石,在附近搭建窩棚,並獻上一片赤誠。 也許是上天感應到的,他不僅生下了兒子,而且子孫昌盛,日子過得很好。 據說,很多沒能生下孩子的人來到這裏獻上愛心,現在四月初八和七夕也有很多人在那裏聚集。
三層石塔前擺放的無數銅字像也充分體現了三幕寺這一寺廟的性質。 該石塔被指定爲京畿道有形文化遺產,展現了高麗時代的典型面貌。 另外,供奉在七寶殿內的摩崖佛的鼻子被颳得完全扁平,這也是一個有趣的事實。 爲什麼那麼摳鼻子呢? 這跟長生柱一樣,不是木頭,而是花崗岩,不容易摳鼻子。 儘管如此,她還是摳出了鼻子,這充分體現了女人想要生孩子的心思。
這反映了傳統思維方式,即,把刮鼻子的石粉用水煮熟後食用,就能擁有岩石所具有的卓越生產能力。 這種情況在拔河中也可以找到。 昌寧靈山的拔河直徑可達50釐米以上。 但是這裏的繩子和巖繩是用叫做簪子木的粗棒連接的。 在這裏,樹繩的頭部正露出男根的樣子。 因此,拔河比賽結束後,人們會砍掉數根頭髮。 把它放在屋頂上相信雜鬼不會靠近。 另外,沒有生育孩子的人認爲,如果用這一條煮着吃,就有可能孕育嬰兒。
每當我來到三幕寺時,都給人一種有着奇妙姻緣的感覺。 因爲女根石中經常積水。 當然,這裏肯定不是有人灑了水。 這是積水,因爲前一天下雨了。 這不能不說是非常奇妙的緣分。 但更引人關注的是,在略有積水的餘根石中有人放了100韓元硬幣。
◇南根石(左)、呂根石。
看到有好幾枚硬幣,不是一個人的所爲。 很顯然,有人在致敬後,在裏面放了100元錢。 三幕寺的女根石上,有像百元硬幣一樣的特點。 我記得10年前去的時候,100韓元的硬幣也沒有掉下來,而是粘在了一起。 因此,他似乎是在結束"治城"之後,將這筆錢扔了出去。 爲了生兒子而把錢放進裏面,也許就意味着陰陽的交融。 | 文章:金鐘大(文學博士·國立民俗博物館民俗研究科長) 摘錄:世界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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