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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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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는가 -루쉰[魯迅]

루쉰[魯迅]

깨어난 인형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려는 것은「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는가?」하는 것입니다.
입센은 19세기 후반 노르웨이의 작가입니다. 그의 저작은 몇 편의 시 외에는 모두 희곡입니다. 그의 희곡들은 한때 사회 문제를 대개 취급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사회극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노라』입니다.
『노라』는 일명『아인 퓨펜하임Ein Puppenheim』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인형의 집』이라고 번역하였지요. 그런데 퓨페(Puppe)란 줄을 매달아 조정하는 인형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안고 노는 인형이란 뜻도 있습니다. 뜻을 더 넓히자면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겠지요.
노라는 처음에는 이른바 행복한 가정에서 만족스럽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점차 깨달았지요. 자기는 남편의 인형이고 아이들은 또 그녀의 인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리하여 그녀는 집을 나갑니다. 문닫는 소리와 함께 극의 막이 내리게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에 자세하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어떻게 했어야 노라가 집을 나가지 않았을까요? 이에 대해 입센 자신이 해답을 주었다고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바다의 여인Die Frau Von Meer』이란 작품이 그것이지요. 중국에서는 이를『해상 부인』이라 번역한 사람도 있더군요. 거기서 여인은 이미 결혼한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옛 애인이 바다 건너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사람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같이 떠나자고 합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그 일을 남편에게 말하고, 남편은 그 사람을 만나보게 합니다. 남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지금 당신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겠소. 떠나든 말든 그건 당신 자신에게 달렸고, 그 책임도 당신이 져야 하오."
이렇게 되자 사태는 완전히 일변하여 그 여인은 나가지 않기로 합니다. 이것을 보면 노라도 만일 자유를 얻었다면, 집을 나가지 않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두 가지 길
그러나 노라는 집을 나갔습니다.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는지, 입센은 여기에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았고, 그는 이미 죽고 없습니다. 설사 그가 죽지 않았다 해도 답할 책임은 없지요. 왜냐하면 입센은 극을 썼을 뿐 사회를 위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를 대신해 해답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꾀꼬리가 노래하는 것과 같습니다. 꾀꼬리는 자기가 노래하고 싶어서 노래하는 것이지 사람들의 흥을 돋우어주기 위해 노래하는 것은 아니지요. 입센은 세상 형편에 어두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그를 파티에 초청했답니다. 그 자리에서 한 대표자가 일어나, 그가『인형의 집』을 써서 여성들의 각성과 해방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주었다고 사의를 표시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작품들을 쓴 것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저 극을 썼을 뿐입니다."

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는가?
여기에 대해서 몇몇 사람이 자신의 견해를 내놓고 있기도 합니다. 한 영국인이 쓴 희곡에서는, 신식 여성이 집을 나간 후에 갈 곳이 없어 끝내 창녀로 전락해 버립니다. 한 중국인은, 자기는 지금의 번역본과 다른『노라』를 읽었는데, 거기서는 노라가 나중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유감스럽게도 그 사람말고는 그 극본을 보았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아마도 입센이 직접 그에게 부쳐 준 모양입니다. 실제로 노라에게는 두 가지 길박에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나는 타락하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지요.
가령 한 마리 새가 있다고 합시다. 그 새는 새장 안에서는 물론 자유가 없었지요. 그래서 자유를 찾아 새장에서 나와보니 매라든가 고양이가 있고, 그외에도 온갖 것들이 새를 노리고 있지요. 새장 속에 오래 갇혀 있었기 때문에 날개가 굳어 날 힘도, 나는 법도 잊어버렸다면 이런 바깥 세상에서 도무지 살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굶어 죽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굶어 죽는다는 것은 생활과는 동떨어진 일이므로 문제삼울 수 없습니다. 그런 건 길이라고도 할 수 없지요.

꿈에서 깨어난다는 것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합니다. 아직 갈 길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라면, 가장 긴요한 것은 그를 꿈에서 깨우지 않는 것입니다.
당나라 때의 시인 이하李賀를 보십시오. 그는 평생을 괴롭게 살았는데, 그가 죽을 무렵,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옥황상제가 백옥루(白玉樓)를 지어놓고 저더러 낙성식의 글을 지어달라고 합니다."
이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나 이로 인하여 아들과 어머니, 죽는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 사이에서, 죽는 사람은 기쁘게 죽고 살아 있는 사람은 마음놓고 살게 되었습니다. 거짓말과 꿈의 위력을 여기서 볼 수 있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령, 길을 찾지 못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꿈은 절대 꾸지 말아야 합니다. 러시아의 소설가 아르치바셰프는 그의 소설에서 미래의 황금세계를 꿈꾸는 이상가를 보고, 따지듯이 묻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런 세계를 창조하자면 먼저 많은 사람들을 깨워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황금세계를 그들의 자손에게 약속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정작 그들에게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준 것이 있기는 합니다. 그것은 바로 미래에 대한 희망입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 대가는 너무 큽니다. 그 희망을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하여 자기의 고통을 더 깊이 느껴야 합니다. 영혼을 불러 깨워서 자기 자신의 썩은 시체를 직시해야 합니다. 이러해야만이 거짓말과 꿈이 위대함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길을 찾지 못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꿈이지만, 그것은 미래에 대한 꿈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꿈이라고 말입니다.

돈, 고상한 말로 경제
노라는 이미 깨어났기 때문에 다시 꿈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집을 나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집을 나간 뒤, 경우에 따라서는 타락할 수도 있고 돌아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면, 저는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각성한 마음 이외에 또 무엇을 지니고 나갔는가?" 만일 지닌 것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빨간 털목도리 하나뿐이라면, 그 넓이가 두 자이건 세 자이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녀는 그것 이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즉 핸드백 속의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이 좋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돈이 필요합니다. 돈이란 말은 매우 귀에 거슬리지요. 고상한 군자들에게 비웃음을 받을 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인간의 의견이란 것은 어제와 오늘이 다를 뿐만 아니라, 식전과 식후가 왕왕 다른 법이지요. 무릇 밥은 돈을 주어야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돈소리 하는 것을 비천하다고 하는 인간들은, 그들의 뱃속에 틀림없이 아직 소화되지 않은 고기와 생선이 남아 있는 부류들일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온종일 그를 굶긴 뒤에 다시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라를 위해서는 돈, 고상한 말로 경제가 제일 중요합니다. 자유는 물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지만, 자유가 돈에 팔릴 수는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한 가지 큰 결점이 있지요. 자주 배가 고픈 것입니다. 이 결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그리고 인형이 되지 않기 위하여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경제권이 제일 중요합니다. 따라서 첫째로, 가정에서 남녀간에 균등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로, 사회에서 남녀간에 동등한 세력을 갖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런 권리를 어떻게 해야 획득할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싸워야 한다는 것밖에는 모릅니다. 참정권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할는지도 모르지요.
경제권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아주 평범한 일입니다. 그러나 고상한 참정권을 요구하거나 폭넓은 여성해방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번거롭고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작은 일이 큰일보다 더 번거롭고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를테면 자신이 겨울에 솜저고리 단벌밖에 없는 처지인데, 당장 얼어죽을 불쌍한 사람을 구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보리수 밑에 가 앉아서 전인류를 구원할 방법을 명상해야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전인류를 구원하는 일과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은 그 비중에 있어 차이가 몹시 큽니다. 그러나 만일 나더러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 하면 나는 주저없이 보리수 밑에 가 앉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단벌뿐인 솜저고리를 불쌍한 사람에게 벗어주고, 정작 자기 자신은 얼어죽는 그런 처지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설령 가정에서 참정권을 요구할 때는 큰 반대를 안하더라도 경제의 균등한 분배를 운운하는 경우, 당장에 적을 만나게 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것입니다.

망각의 죄악
전투란 좋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모두 다 전사가 되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평화적인 방법도 중요합니다. 그 평화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친권(親權)을 이용해 앞으로 자기 자녀들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친권은 절대적인 것이지요. 그렇게 하면 평화적으로, 충돌없이 자녀들이 모두 균등한 경제권을 얻도록 재산을 자녀들에게 균등하게 배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뒤에는 각자가 공부를 위해 쓰든, 돈벌이를 하든, 향락을 위해 쓰든, 아니면 사회를 위해 사업을 하든, 그저 탕진해 버리든, 제 마음대로 알아서 하게 하고 제 스스로 책임지게 하면 그만입니다. 이것 역시 아득한 꿈이기는 하지만 황금 나라에 대한 꿈보다는 상당히 가까운 편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핵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억력이 필요합니다. 기억력이 나쁘면 자기 자신만 이득을 보고 자손들에게는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사람들은 망각이라는 것이 있기에 자기가 겪은 고통에서 점차 해탈할 수 있기도 하지만, 망각이라는 것 때문에 왕왕 앞사람들이 범한 오류를 다시 범하게 됩니다. 학대받던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며느리를 학대합니다. 지금 학생들을 증오하고 있는 관리들은 모두 학생시절에 관리를 욕했던 사람입니다. 지금 자녀를 억압하는 자들 중 혹자는 십 년 전만해도 가정혁명가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연령이나 지위와도 관련이 있겠지만, 기억력이 나쁜 것도 큰 원인입니다. 이것의 구제책은 각자가 노트를 한 권씩 사서 자신의 지금의 사상과 행동을 모조리 적어 두었다가 후에 연령과 지위가 변한 다음에 참고로 하는 것입니다. 가령 아이가 공원에 가자고 졸라서 귀찮을 때, 그것을 꺼내 펼쳐 봅니다. 거기에「나는 중앙공원에 가고 싶다」라는 구절이 적혀 있는 것을 보면 곧 화가 누그러질 것입니다. 다른 일도 이와 마찬가지지요.

그래도 경제권
세상에는 '깡패기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요점은 다름 아닌 끈기입니다. 듣자하니「권비(拳匪)의 난」(의화단의 난)이 있은 뒤 천진天津의 청피(靑皮)라 불린 깡패들이 대단히 날뛰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그들은 남의 짐을 운반해주고 2원을 내라고 합니다. 이 짐은 작지 않느냐고 따져도 2원을 내라고 합니다. 길이 가깝다고 해도 2원을 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운반하지 말라고 해도 역시 2원을 내라고 합니다. 물론 청피를 본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 끈기만은 매우 탄복할 만 합니다. 경제권을 요구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그런 것은 케케먹은 일이라고 말하더라도 끝까지 경제권을 달라고 해야 하며, 이제 곧 경제제도를 개혁할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끝까지 경제권을 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어쨌든 지금은 노라가 집을 나가더라도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인물은 아주 비범하고 행동도 신선하기에 몇몇 사람들의 동정과 도움을 받아 살아나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의 동정을 받아 산다는 것은, 그것부터가 이미 자유롭지 못한 것이지요. 만일 백 명의 노라가 집을 나간다면 동정마저 적어질 것이고, 천 명이나 만 명이 집을 나간다는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경제권을 장악하는 것이 제일 든든합니다.
경제적인 면에서 자유를 얻으면 그것으로 인형이 아닐까요? 역시 인형입니다. 다만 남에게 조종당하는 일이 적어지고, 자기가 조종할 수 있는 인형의 수가 늘어날 뿐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인형으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사이에서도 그들끼리 서로 인형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여자의 인형으로 되는 경우도 흔하지요. 몇몇 여성이 경제권을 얻었다 하며 그들이 구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굶고 앉아서 이상적인 세계가 오기를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며, 최소한 목숨은 부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흡사 마른 수레바퀴 자국에 빠진 붕어에게는 우선 한 줌의 물이 시급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비교적 절박한 경제권을 요구하고 나서 한편으로 다른 말을 생각해야 합니다.

채찍이 중국의 등을 후려치리
만일 경제제도가 개혁되는 날이 온다면 지금까지 한 말들은 전혀 쓸말이 없겠지요.
그런데 위에서 한 말들은 노라를 보통 인물로 간주하고 한 얘기입니다. 가령 그녀가 아주 특출한 인물이어서 스스로 뛰쳐나가 희생되는 것을 기꺼워했다면 문제는 별개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희생하라고 권유할 권리도 없거니와, 남이 스스로 희생하는 것을 막을 권리도 없습니다. 하물며 세상에는 기꺼이 희생하거나 기꺼이 고난에 뛰어드는 사람이 적잖은 바에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유럽에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갈 때, 아하슈바Ahasver의 집 처마 밑에서 좀 쉬어가려 했답니다. 그러나 아하슈바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리하여 그는 저주를 받아 최후의 심판 날까지 영원히 쉴 수가 없게 되었지요. 아하슈바는 이때부터 쉼 없이 계속 걸었고, 지금도 걷고 있지요. 그런데 그는 왜 편히 쉬지 않을까요? 저주를 받아 그렇다고는 해도, 아마 편안히 쉬는 것보다는 걷는 편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언제나 걷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희생이 마음에 든다는 것은 그 자신의 일로서 이른바 지사(志士)들이 말하는 사회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대중, 특히 중국의 대중은 영원히 연극의 구경꾼입니다. 희생하는 장면이 등장한다고 합시다. 그 장면이 만일 감격적이었다면 그들은 비극을 구경한 셈이 되고, 만일 비겁하였다면 그들은 희극을 구경한 셈이 될 뿐입니다. 북경의 양고기 정육점 앞에는, 언제나 입을 헤 벌린 채 양가죽 벗기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재미있어 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희생이 그들에게 주는 유익함이란 것은 어쩌면 그러한 것에 불과할 뿐인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그들은 일이 끝나면 몇 발짝 안가서 그 보잘것 없는 즐거움조차도 잊어버리고 말지요.
이같은 대중에 대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그들이 구경할 연극을 없애버리는 편이 오히려 구제책일 것입니다. 세상을 한때, 그리고 짧게 놀라게 하는 희생보다는 끈기있는, 묵묵한 투쟁이 더 나을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중국에서는 변혁이 너무도 어렵습니다. 책상을 하나 옮기거나 난로를 하나 바꾸려 해도 피를 흘리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피를 흘린다 해도 옮겨놓거나 바꾸는 일이 꼭 이루어지는 게 아니지요. 중국은 아주 커다란 채찍이 등을 후려치지 않는 한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채찍이 언젠가는 틀림없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좋든 나쁘든, 어쨌든 분명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올지, 그것은 나도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나의 강연은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출처; 나무늘보]

 

露拉離家後怎麼樣了- 魯迅

醒來的娃娃
我今天要跟大家說的是'離開黃家後怎麼樣了?是''的意思。
伊普森是19世紀後期挪威的作家。 他的著作除幾首詩外都是戲曲。 他的戲曲一度大都涉及社會問題,世人也稱其爲社會劇。 其中之一就是《盧羅》。
《諾拉》又名《艾因·普芬海姆Ein Puppenheim》,在中國翻譯成《娃娃之家》。 但是"Puppe"不僅意味着繫着繩子進行調整的玩偶,還有兒童們抱着玩的玩偶的意思。 如果想拓寬自己的意願,按照別人指示去做的人也可以包括在其中。
諾拉一開始在所謂幸福的家庭中過着滿意的生活。 但是她逐漸明白了。 她說自己是丈夫的玩偶,孩子們又是她的玩偶。 於是她離家出走。 隨着關門聲,劇情將落下帷幕。 這個大家應該也都知道,所以不會詳細講的。
怎樣才能讓Nora離家出走呢? 對此,也有人說伊普森自己給出了答案。這就是《大海的女人Die Frau Von Meer》的作品。 據說在中國也有人將其翻譯成《海上夫人》。 在那裏,女人已經結婚了。 但舊情人卻住在大海對面。 有一天那個人突然找上門,說要一起離開。
於是,那個女人把那件事告訴了丈夫,丈夫讓他見一面。 丈夫是這麼說的。
"我現在給你完全的自由。 離開與否都取決於你自己,責任也應該由你來承擔。"
這樣一來,事態完全一變,那個女人決定不出門。 從這個情況看,如果諾拉也獲得自由,說不定她不會離家出走。

兩條路
但是諾拉離開了家。 離家出走後怎麼樣了,伊普森沒有給這裏任何答案,他已經死了。 縱使他沒有死 即使做了也沒有責任回答。 因爲伊普森只是寫了一齣戲,並不是爲了社會提出問題,代替社會給出答案。 這就像黃鶯在唱歌。 黃鶯是自己想唱歌才唱歌的,並不是爲了助興而唱歌。 伊普森是個不瞭解世界的人。
有這樣一句話。 聽說很多女性都邀請他參加派對。 一位代表當場站起來表示謝意說,他寫了《玩偶之家》,給女性的覺醒和解放帶來了新的啓示。
"我寫這些作品並不是出於這種意圖。 我只是寫戲而已。"

露拉離家後怎麼樣了?
對此有幾個人提出了自己的見解。 一位英國人寫的戲曲中,新式女性離家出走後無處可去,最終淪爲娼婦。 一位中國人說,自己讀了和現在的譯本不同的《Nora》,據說Nora後來回家了。 很遺憾,除了他,沒有一個人看過劇本,大概是伊普森親自寄給他了。 實際上,Nora應該說沒有兩條路吧。 一個是墮落的路,另一個是回家的路。
假設有一隻鳥。 那隻鳥在籠子裏當然沒有自由。 所以爲了尋找自由,從鳥籠裏出來一看,發現有梅拉或貓,除此之外還有各種東西都在覬覦鳥類。 如果因爲長期被關在籠子裏,翅膀變硬,我忘記了飛翔的力量,我完全無法在這種外面的世界裏生存下去。 確實有餓死的方法。 但是餓死是脫離生活的事情,不能當作問題。 那也算不上路吧。

從夢中醒來
人生中最痛苦的是從夢中醒來時沒有路可走。 做着夢的人還是很幸福的。 如果還沒有發現去路,那麼最要緊的是不要把他從夢中叫醒。
請見唐代詩人李賀。 他一輩子都過着痛苦的生活,據說他臨死時對母親這樣說。
"媽媽,玉皇大帝造了白玉樓,讓我寫落成式的文章。"
這不算什麼大謊話嗎? 但是,兒子和母親,死人和活人之間,死人高興地死去,活人安心地生活。 在這裏可以看到謊言和夢想的威力。 因此,我認爲,如果找不到路,我們所需要的反而是夢想。
但是絕對不能夢想未來。 俄羅斯小說家阿爾奇巴舍夫在他的小說中看到了夢想成爲未來黃金世界的理想家,像追問一樣問道。 因爲要想創造這樣的世界,首先會喚醒很多人,給他們帶來痛苦。
"你們向他們的子孫承諾黃金世界。 但是你們真正給他們的是什麼?"
確實有給你的東西。 那就是對未來的希望。 但即便如此,代價還是太大了。 爲了這個希望,人們應該更加敏銳地感受到自己的痛苦。 喚醒靈魂,正視自己腐爛的屍體。 只有這樣,謊言和夢想才能發揮偉大。 所以我是這麼想的。 找不到路的時候,我們所需要的是夢想,但那不是對未來的夢想,而是對現在的夢想。

金錢,高尚的話語經濟
因爲諾拉已經甦醒,所以很難重新回到夢鄉。 所以她只能離家出走。 但是離家出走後,根據情況可能會墮落,也有可能會回來。 如果有人說不是,我想問這樣的問題。 "她除了覺醒的心之外,還帶了什麼東西呢?"如果只有一條和大家一樣的大紅毛圍巾,那麼無論是兩碼還是三碼都毫無用處。 她還需要別的什麼東西。 即手提包裏要有準備。 直截了當地說應該有錢。

我喜歡你的夢想。
不然的話需要錢。 錢這個詞很刺耳。 說不定會受到高尚君子的嘲笑。 但人類的意見,不僅昨天和今天不同,而且飯前和飯後也往往不同。 凡是承認飯要花錢才能買來吃,卻說錢是卑賤的人,他們肚子裏肯定是還沒有消化的肉和魚。 對那些人來說,最好整天餓着他再聽聽他的意見。
因此,爲了Nora,金錢、高尚的話語經濟是最重要的。 自由當然是用錢買不到的,但是自由可以賣到錢上。 人類有一個很大的缺點。 經常肚子餓。 爲了彌補這個缺點,爲了不成爲娃娃,當今社會,經濟圈是最重要的。 因此,第一,在家庭中男女之間要實現均等的分配。 第二,在社會上男女之間要擁有同等的勢力。 但遺憾的是,怎樣才能獲得這樣的權利,我不知道。 除了要打架以外,我什麼都不知道。 也許應該進行比要求參政權更激烈的鬥爭。
要求經濟權當然是非常平凡的事情。 但是比起要求高尚的參政權或要求廣泛的女性解放,也許更麻煩、更困難。 世界上經常發生小事比大事更麻煩、更困難的情況。 比如說,自己冬天只有一件棉襖,要麼馬上救出凍死的可憐的人,要麼就去大麥樹下坐着冥想拯救全人類的方法吧。 拯救全人類和拯救一個人在比重上差距很大。 但是如果讓我二選一,我就毫不猶豫地到麥穗下坐。 因爲這樣做的話,可以把只有一件棉襖脫給可憐的人,自己也能避免凍死的處境。 從這點來看,即使家庭要求參政權時沒有太大的反對,如果談論經濟均衡分配,也會馬上遇到敵人,這樣的話當然會展開激烈的戰鬥。

遺忘的罪惡
戰鬥不能說是好的,也不能讓所有人都成爲戰士。 因此,和平的方法也很重要。 和平的方法之一就是利用親權,今後解放自己的子女。 在中國,親權是絕對的。 這樣就可以和平地、無衝突地將財產平等地分配給子女,讓子女都能獲得均等的經濟權。 之後,不管是各自爲了學習還是賺錢,還是爲了享樂,或者爲了社會做生意,只要揮霍殆盡,讓自己看着辦,自己負責就可以了。 雖然這也是遙遠的夢想,但與對黃金國家的夢想相比,還是相當接近的。
爲了做到這一點,首先需要記憶力。 記憶力不好的話,只會讓自己受益,給子孫後代帶來損失。 人們因爲有遺忘的東西,所以可以從自己經歷的痛苦中逐漸解脫出來,但是因爲遺忘的東西,往往會再次犯下前面的人犯下的錯誤。被虐待的兒媳成爲婆婆的話,就會像什麼時候那樣虐待兒媳。 現在憎恨學生的官員都是學生時代罵過官員的人。 現在壓迫子女的人中,有人在十年前還是家庭革命家。 這可能與年齡和地位有關,但記憶力差也是一大原因。 這個救濟措施是每個人買一本筆記本,把自己現在的思想和行動都寫下來,等年齡和地位發生變化後再做參考。 例如,孩子纏着去公園,覺得麻煩的時候,把它拿出來翻開看看。 看到上面寫着"我想去中央公園"的字句,火勢很快就會平息下來。 別的事情也如此。

即便如此,經濟圈也是
世界上有"流氓行徑"。 其要點是毅力。 聽說"拳匪之亂"(義化壇之亂)後,被稱爲天津青皮的流氓們非常猖獗。 比如說,他們要別人搬運行李,交2元錢。 即使問這個行李是不是小,也要交2元錢。 即使路近也要交2元錢。 所以即使不讓搬運,也要交2元錢。 當然,這並不是學習青皮的事情,但這種毅力還是值得佩服的。 要求經濟權也是如此。 無論誰說那些是件老大難的事情,都要堅持要求經濟權,現在馬上就要改革經濟制度,所以即使不用擔心,也要堅持要求經濟權。
不管怎樣,現在即使露拉離家出走,也許也不會遇到什麼困難。 因爲這樣的人物非常非凡,行動也很新鮮,在一些人的同情和幫助下也能活下去。 但是得到別人的同情生活,這已經是不自由的了。 如果100名Nora離家出走,那麼同情也會減少,1000名或萬人離家出走的人也不會理睬。 所以自己掌握經濟圈是最可靠的。
在經濟方面獲得自由的話,不就是玩偶嗎? 果然是娃娃。 只是被別人操縱的事情變少,自己可以操縱的玩偶數量也會增加。 因爲在當今社會,女人是男人的玩偶,而且在男人和男人之間,她們也是互相玩偶。 男人變成女人偶的情況也很常見。 一些女性獲得經濟權並不意味着她們會得到救濟。 但是也不能餓着肚子等待理想的世界到來,至少要保住性命。 對於陷入類似乾涸的車輪痕跡的鯽魚來說,首先就像急需一把水一樣。 首先應該要求比較迫切的經濟圈,然後再考慮其他的話。

鞭子抽打中國的後背
如果經濟制度改革的那一天到來,那麼到目前爲止所說的話將毫無用處。
但是上面說的話卻把Nora看成普通人物而說的。 假如她是一個非常出衆的人物,欣然地跳出來犧牲,那麼問題就另當別論了。 我們既沒有勸人犧牲的權利,也沒有阻止別人犧牲的權利。 何況世界上有不少人甘願犧牲或甘願投身於苦難之中,更不用多說。
歐洲有這樣的傳說。 耶穌被釘在十字架上時,他想在阿哈什瓦阿哈斯伯家屋檐下休息一下。 但是阿哈什瓦卻不允許。 於是他被詛咒到最後的審判日,永遠無法休息。 阿哈什瓦從此開始不停地走,現在還在走。 但是他爲什麼不安心休息呢? 就算是被詛咒了,但比起舒服地休息,我更喜歡走路,所以無論何時都會走路。
但是,喜歡某種犧牲與所謂"志士們"所說的"爲了社會而那樣做"沒有關係。 大衆,特別是中國的大衆永遠是話劇的看客。 犧牲的場面登場吧。 如果那個場面很激動,他們就等於觀賞了悲劇,如果膽怯,他們就等於觀賞了戲劇。 在北京羊肉店前,總有人張着嘴看剝羊皮。 他們好像很有趣。 人類的犧牲給他們帶來的益處也許只是這樣而已。 而且他們工作結束後不會走幾步,連微不足道的快樂都忘卻了。
對於這樣的大衆,沒有其他方法。 取消他們要看的話劇反倒是救濟之策。 比起曾經、短暫地震驚世界的犧牲,有毅力、默默的鬥爭會更好。
遺憾的是,在中國,變革太難了。 即使想搬一個桌子或換一個爐子,如果不流血是不可能的。 況且流血 即使做了,也不一定能完成搬動或更換的事情。 只要中國不抽打巨大的鞭子,中國就不會主動行動。
我想這把鞭子總有一天會來的。 那好壞,總歸是會來的 但是那個從哪裏來,我也不清楚。我的演講就此結束。 [出處;樹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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