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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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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 출장조사 후폭풍]
보고도 없이 '소환 원칙' 지시 거부
"이러면 MB 곰탕 얘기 나와" 격분
'법불아귀' 총장 취임 약속도 깨져

이원석 검찰총장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민생침해범죄 대응 강화방안 모색을 위한 세미나를 마치고 승강기를 통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서울중앙지검이 김건희 여사 직접 조사를 특혜성 '출장조사'로 마무리한 것을 두고, 이원석 검찰총장이 분노를 감추지 않으며 '감찰부 조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검찰 수뇌부' 갈등설을 무릅쓰고 이 총장이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을 공개적으로 질책한 것은 단순히 '총장이 패싱'당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해석이 검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검찰총장이 비공개 소환에 부정적인 입장을 수차례 표했음에도 사실상 일선 검찰청이 총장 지시를 거부했고, 이 총장이 밝혀 온 '성역 없는 수사' 원칙까지 검찰 스스로 깬 것으로 비춰지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검찰 내에선 "총장이 충분히 화낼 만하다"거나 "수사팀 사정도 이해해 줘야 한다"는 평가가 분분하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5월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누리홀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불만 ①: 헌정 첫 영부인 조사를 보고 없이?

22일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최재훈)와 형사1부(부장 김승호)가 20일 김 여사를 서울 종로구 소재 대통령 경호처 보안청사에 불러 조사하기 전 이 총장에게 사전 보고가 없었다는 점에 대해선 양측 이견이 없다. 현직 대통령 배우자를 헌정 사상 처음 조사하면서 검찰총장에게 사실상 '사후 통보'한 것이라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검은 '검찰총장 수사지휘권이 배제된 도이치모터스 의혹 조사만 정해진 상태여서 총장에게 사전 보고하기 어려웠고, 도이치 조사가 명품가방 조사로 자연히 옮겨갔는데 그 부분은 보안·경호 문제로 적시에 보고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검은 '명품가방 의혹 관련 조사 가능성을 따로 보고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사실상 대통령실과 사전에 조율을 끝낸 상태가 아니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11일 미국 워싱턴DC 민주주의진흥재단(NED)에서 진행된 북한인권간담회에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불만 ②: MB 꼬리곰탕 수사 될라

무보고의 이면엔 사실상 지시 거부도 있었다. 이 총장은 최근 이 지검장과 만날 때마다 '검찰청 소환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거나 '김 여사 측에서 비공개 조사를 이야기하면 사전 보고하고 상의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런 지시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 총장은 조사 소식을 뒤늦게 듣고 주변에 "이렇게 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BBK 특검 당시처럼) '꼬리곰탕'만 접대하고 수사를 제대로 못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차라리 조사를 안 하는 게 낫다"고 말하는 등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이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에 대한 조사가 끝나갈 무렵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뒤늦게 사실상 '통보'해 '총장 패싱' 논란이 일어난 2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이한호 기자

 

불만 ③: 산산조각 난 '법불아귀' 원칙

이는 평소 이 총장이 밝혀 온 원칙과도 이어진다. 이 총장은 2022년 9월 16일 취임 후 첫 일성으로 "법집행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며 한비자의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는다)와 승불요곡(繩不撓曲·먹줄은 굽은 것을 따라 휘지 않는다)을 언급했다. 김 여사에게 주어진 '극비 조사' 특혜는 총장과 검찰의 약속이 동시에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이 총장의 걱정이다. 이 총장은 이날 출근길에도 "대통령 부인 조사 과정에서 (취임 당시 말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검찰 내부 평가는 미묘하게 갈렸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영부인을 투표로 뽑은 것이 아닌데,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반 국민에게 적용되지 않는 방식의 조사가 이뤄지면 어떻게 신뢰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반면 한 차장검사는 "오랫동안 대면 조사를 이끌어내지 못하며 '봐주기 논란'이 일었던 사건을 어떻게든 매듭지으려다 나온 결과일 수도 있다"며 "이 총장과 이 지검장 모두 이해된다"고 말했다.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모두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는 의사는 분명한 만큼, 검찰 내부적으로는 이 총장이 지시한 조사 결과를 기다려 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다른 검사장급 간부는 "서울중앙지검이 대놓고 총장을 '패싱'하는 것이라면 문제겠지만, 일단은 중앙지검 얘기도 들어보고 사실관계를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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