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반응형

엄마야 누나야(김일용 원장님 연주-제24호)

https://youtu.be/2F-Q0SziAjE?si=bg5HHQqcZ-FkiS9b

"일전에 업로드한 새로운 김일용원장님 아코디언연주 동영상입니다.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 요 김광수 곡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소월 님의 이 시에 곡을 붙인 곡이 두 곡 있던데 그 중 오늘 부르는 이 곡은 김광수라는 작곡자의 곡이다. 주로 1940년대에 활동하였다고 하는데 이분은 동요 작곡자로서보다는 오히려 바이올린 연주자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당시 여러 방송국 악장을 맡으며 대중음악계에 큰 공헌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김소월 님의 시는 1922년에 발표된 것이지만 이 노래가 언제 작곡되었는지 그 작곡연대는 찾을 수가 없었다.​

'엄마야 누나야'가 슬프게 느껴지는 까닭

 

1902년 8월 6일 김소월(金素月)이 태어났다. 김소월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정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시인으로 이름이 높다. 〈진달래꽃〉, 〈산유화〉, 〈금잔디〉, 〈초혼〉, 〈왕십리〉, 〈못 잊어〉, 〈엄마야 누나야〉 등은 그가 남긴 시 중에서도 특별히 우리나라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절창이다. 〈엄마야 누나야〉를 읽어본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소월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고 노래한 때는 1922년이다. 소월은 어린 사내아이의 목소리로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이 있고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가 있는 강변에서 살자고 했다. 시의 길이가 짧은 것은 내용과 형식 두 측면에서 모두 동요(童謠) 형태를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뜰에는 금모래, 뒷문 밖에는 갈잎

이 노래를 부르면 까닭 없이 애잔한 슬픔이 밀려온다. 현대인들은 첨단과학(尖端科學)의 발달에 힘입어 풍요의 극치를 누리며 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뜰에 반짝이는 금모래가 있고 뒷문 밖에 갈잎의 노래가 있는 곳에서 살게 될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부르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간구(懇求)하는 것만 같아 저절로 눈가에 슬픔이 고이는 것이다.

 

심지어 현대인의 대부분에게는 와유(臥遊)를 즐길 만한 여유조차 없다. 와유는 누워서 노닌다는 뜻으로, 한양에 사는 조선 시대 고관대작들이 방 안에 산수화(山水畵)를 걸어놓고 자연회귀의 꿈을 스스로 위무한 것을 가리킨다. 그들은 벼슬을 그만두면 돌아갈 고향에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광활한 농토를 소유하고 있었고, 별서(別墅, 별장)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 도시인의 대부분은 소형 아파트에 갇힌 채로 살아가고 있다. 거실 벽에 시원한 그림 한 점 걸지 못하는 형편의 각박(刻薄)한 삶에 짓눌려 있는 처지다.

 

남의 노예로 살았으니 일제 때는 더 곤궁했다

당연히 소월이 살았던 일제 강점기(日帝强占期) 시절에는 더욱 삶이 팍팍했다. 철없는 소년은 엄마와 누나에게 뜰에는 금모래가 반짝이고, 뒷문 밖에는 갈잎이 노래를 부르는 전원(田園)으로 가서 살자고 조르지만, 애당초 이룰 수 있는 꿈이 아니다. 필자가 여기서 '조른다'고 표현하는 것은 시의 첫 행과 마지막 행이 한결같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인 데에 주목(注目)한 결과다.

 

주권(主權)을 강탈당한 노예 신세였으니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민족이 겪은 곤궁(困窮)함은 재삼 되짚어 볼 필요도 없다. 소월이 〈엄마야 누나야〉에 아버지를 등장시키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언제 집에 누워 쉴 겨를이 있었을까? 어떻게든 한 푼 두 푼 벌어야 가족이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아래는 1925년에 발표된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이다.

 

나는 꿈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지런히

벌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저물 손에

새라 새로운 탄식을 얻으면서.

 

동이랴, 남북이랴,

내 몸은 떠가나니, 볼지어다.

희망의 반짝임은, 별빛의 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 다리에.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느른 길이 이어 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 새벽 동무들,

저 저 혼자······ 산경(山耕)을 김매는.

 

농기구(보습)를 써서 해마다 붙박이로 농사를 지을 땅이 없는 까닭에 들판(벌가)에서 해가 질 때까지 농사일을 하다가 석양(夕陽) 무렵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꿈인 우리 겨레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김소월이라면 온통 결이 고운 서정시(抒情詩)만 쓴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는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같은 사회성 짙은 시도 썼다. 그래서 김소월은 더욱 위대한 시인이다.

 

8월 6일은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

1910년 한반도(韓半島)를 강점한 일본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죽이고, 인권(人權)을 짓밟고, 재산을 빼앗았다. 남의 나라 국토를 점령하고 그곳 주민들을 수탈(收奪)하여 자국의 풍요를 도모하는 제국주의 국가였으니 그들로서는 당연한 행위였다. 우리 민족은 그들의 강박(强迫) 아래서 목숨을 잃었고, 고통을 받았고, 곤궁하게 살았다.

 

민족의 한을 노래한 김소월이 현실 사회의 진면목을 알지 못할 리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다.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같은 시는 소월의 그러한 현실인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소월은 일본의 항복을 보지 못하고 서른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귀천한 날은 1934년 12월 24일이다.

 

김소월이 요절하지 않고 살아 있었으면 1945년 8월 6일 자신의 43회째 생일날에 히로시마 원폭 투하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왕족 중 가장 두드러지게 반일 감정을 드러낸 인물로 알려진 이우(李鍝, 고종의 손자)가 원폭 피해로 8월 7일 사망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원폭 피해로 히로시마에서 20만 명이 죽었으며, 그 중 3만 명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비보도 접했을 것이다.

 

소월이 오래 살았으면 틀림없이 세계 평화를 기원하고, 전쟁 없는 지구를 염원한 명작을 남겼을 것이다. 그가 태어난 날을 맞으며, 아직도 좋은 세상이 오지 않아 여전히 〈엄마야 누나야〉가 슬프게 느껴지는 애잔함을 혼자서 토로해본다. | 정만진 : 오마이 뉴스(시민기자)

 

이 아코디언 코너는 세계적인 아코디언 연주가이며 레슨 전문가이며 인간문화재인 김일용원장님 승인을 거치고 허락을 받아 아코디언연주 영상물을 올립니다. 음악애호자나 아코디언에 취미를 가지신 분들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많은 이용 바랍니다. 김일용 아코디언 연구소(카페주소: 김일용 아코디언 연구원 - Daum 카페)입니다.

 

 

◐ 원장님 소개 ◑

- 연변대 예술학부 아코디언 전공

- 중국 길림시 신초 예술단 악장 역임

- 용정중학교 음악교사 역임

- 일용 아코디스쿨 대표

- 사단법인 다문화 예능예술 연예인 협회 대표

- 연락처 : 010-9060-8636

◈ 전국 지부 안내 ◈

☞ [서울 본원]

서울 종로구 수표로 110(종로구 낙원동 178) ☎ 010-9060-8636

☞ [오산지부]

경기 오산시 오산로 195 지하 1층(오산동 882-1 지하 1층) ☎ 010-9060-8636

☞ [고양지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장백로 172 3층(장항동 898-1) ☎ 010-9060-8636

☞ [부천지부]

경기 부천시 자유로 67(심곡본동 553-1) ☎ 010-9060-8636

☞ [대전지부]

대전 중구 보문로254번길 13 2층(대흥동 468-3) ☎ 010-9060-8636

☞ [수원지부]

경기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29번길 7(영화동 424-3) ☎ 010-9060-8636

☞ [강릉지부]

강원 강릉시 토성로 169(임당동 20-6) ☎ 010-9060-8636

☞ [속초지부]

강원 속초시 수복로 135-1(청학동 486-42) ☎ 010-9060-8636

카페주소/(김일용 아코디언 연구소): https://cafe.daum.net/kimaco

반응형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