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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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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루이제 린저[독일]

루이제 린저(Luise Rinser 1911.4.30-2002.3.17)

루이제 린저 (Luise Rinser)  소설가[1911년 4월 30일(독일) ~ 2002년 3월 17일 (향년 90세)]
사람들은 완전히 자기 자신일때만이 행복하다. 그리고 자기자신이 되려고 하지 않을때가 바로 자기자신이 되는 때이다. 
에고이스트란 자기의 자아를 유별나게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갖고자 원하면서 그것을 찾아 자기에게로 끌어 잡아다니려 하나 뜻대로 못 갖는 사람이다. 
에고이스트들은 불행하다. 그들은 항상 확증을 갖고 싶어하며 몹시 예민하다. 그래서 어떤 비평의 그림자도 그들에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 여러분들도 그런 사람들을 알고 계시리라 나는 믿는다. 그리고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기를 나는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항상 그런 시기를 갖고 있고 또 그것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들은 다른 사람의 무관심에도 마음이 상해 스스로 업신여김을 당한 것처럼 느낀다. 따라서 행복할 때가 없다. 
나는 다음과 같은 때 행복을 느낀다. 행복을 바라지 않거나, 일에 몰두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을 때가 바로 행복하다. 요컨대 어떤 인간이나 어떤 사건에 자신을 완전히 잃었을 때 나는 행복하다. 
사람들은 완전히 자기 자신일 때만이 행복하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하지 않을 때가 바로 자기 자신이 되는 때이다. 그러므로 정신과 의사나 고해신부나 모든 의사들은 소위 불행하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를 해 준다. 자기 자신에 몰두하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다른 사람에게 몰두하고 어떤 사건에 몸을 맡겨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도록 하라고 충고한다.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할 때인가. 사랑을 할 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이 시작되는 시기에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때,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어떤 다른 존재나 타인에 대한 순수한 기쁨에 충만했을 때이다. 
만일 사랑이 그렇게 계속되면 불행한 사람이나 파경에 이르는 결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자기를 찾을 때 타인을 소유하고 제어해서 자신의 육체나 정신적 욕구를 위해 이용하고자 할 때 불행은 시작된다. 
첫사랑과 더불어 대개 행복은 시작된다. 낙원이란 사람들이 완전히 자기를 잃고 상대를 똑같이 사랑할 때에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죄악은 항상 새로이 되풀이 되나 우리들은 항상 새롭게 인내와 노력과 체념을 통해 그 낙원을 다시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말하자면 사랑하는 그대에게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는 일을 배운다. 물론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을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사랑하는 자들은 항상 제 3의 대상, 말하자면 사랑 그 자체를 갖고 있다. 자신들에의 그런 사랑은 참과 비교할 수가 있다. 그대에게 헌신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기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게 자기를 잃는다는 것이다. (박근영 옮김, 안암문화사)


什麼讓我們幸福-路易熱·林傑[德國]


路易絲·林澤小說家[1911年4月30日(德國) ~ 2002年3月17日 (享年90歲)]
人們只有在完全屬於自己的時候纔會幸福。 而且不想成爲自己的時候就是成爲自己的時候。
"Egoist"不是特別擁有自己自我的人,而是想要擁有它,想要找到它,將其拉到自己身上卻無法如願的人。
EGOIST們很不幸。 他們總是想要確證,非常敏感。 因此,任何批評的影子對他們本身都不重要,自己總是重要。 我相信大家也知道那些人。 我希望你不是那樣的人。
但是我們每個人都有這樣的時期,而且隨時都有可能再次發生。 那時候我們覺得即使別人的漠不關心,心裏也受傷了,好像自己被欺負了一樣。 因此,沒有幸福的時候。
我在以下時候感到幸福。 不期盼幸福、埋頭工作、因爲擔心別人而沒有時間去思考的時候就是幸福。 總而言之,當我完全失去對任何一個人或任何事件的信心時,我感到很幸福。
人們只有在完全屬於自己的時候纔會幸福。 而且不想成爲自己的時候就是成爲自己的時候。 因此,精神科醫生或告解神父等所有醫生都對所謂"不幸"的人這樣忠告。 他忠告說,與其埋頭於自己,還不如埋頭於某個人,把身體交給某件事情,讓自己完全忘記。
什麼時候是最幸福的時候呢? 該相愛了。 準確地說,愛情開始的時候最幸福。 還有什麼都不想要的時候,什麼都不計算,充滿了對其他存在或他人的純粹喜悅的時候。
如果愛情繼續這樣下去,就不會有不幸的人或離婚的婚姻。 當人在尋找自己時,想要擁有和控制他人,用於自己的身體或精神需求時,不幸就會開始。
和初戀一起幸福一般都會開始。 我相信,樂園只有在人們完全失去自己,完全愛上對方的時候纔有可能。 罪惡總是會重演,但我們總是可以通過新的忍耐、努力和死心重新創造這個樂園。 換句話說,向心愛的你學習忘記我們自己的事情。 當然,失去自信並不是放棄自己。
純真相愛的人總是擁有第三對象,換句話說,愛情本身。 對自己地那種愛是真比得上地。 獻身於你並不是單純地把自己交給你,而是讓愛失去自己。 (樸根英譯,安巖文化史)


루이제 린저(Luise Rinser 1911.4.30-2002.3.17)


1. 개요
독일의 문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서독의 대표적 소설가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생전 페미니즘, 좌파 지식인, 나치 저항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전후 독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970~80년대 쯤 대한민국의 가정집 책꽂이에 한 권 씩은 꽂혀있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끈 소설 '생의 한가운데(Mitte des Lebens)'의 작가이다.
루이제 린저를 처음 한국에 소개한 작가는 독문과 교수이자 작가였던 전혜린이다. 전혜린이 번역한 '생의 한가운데'가 1961년에 한국에 출판되었다.

2. 생애
히틀러 정권에 저항한 반(反)나치 여성문인으로 유명하였다. 뮌헨대학교에서 교육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뒤 1935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1939년 학교에서 나치에 가입하라는 강요에 직장을 그만두고 같은 해 작곡가 슈넬과 결혼 후 소설을 쓰기 시작해 1940년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유리반지(한국에서는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라는 이름으로 출판)'를 완성했고 이 소설은 헤르만 헤세가 찬사의 편지를 보낼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그러나 1944년 남편이 전사하고 자신은 히틀러 정권에 반발했다는 이유로 작품 출판 금지를 당하고 게슈타포의 감시를 받게 되어 결국 반 나치 활동으로 투옥, 1944년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종전으로 1945년 석방되었다...고 했으나(후술 참조)
첫 남편 슈넬[1] 사이에서 첫째 아들 크리스토프 린저를 얻었다. TV 프로그램 감독이었던 연인 사이에서 둘째 아들 슈테판 린저(1941-1994)[2]를 혼외 출산으로 얻었다. 1944년 작가 클라우스 헤르만(1903-1972)[3]과 결혼하여 1949년까지 함께 살았다. 1954년 독일 작곡가 카를 오르프(1895-1982)와 재혼했다가 1959년 이혼하였다.
루이제 린저 자신의 자전적 색채가 짙은 소설로 평가되었던 '생의 한가운데'(1950)의 여주인공 니나는 파란만장한 생의 한가운데에서 두려움 없는 의지를 가지고 신념 속에 살아가는 이지적인 여성으로 형상화되어있다. 이 소설은 여 주인공 니나를 사랑하는 남자인 슈타인의 입장에서 니나를 그리고 있다. 여주인공 니나는 수동적이고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격정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인물이다. 반 나치 투쟁으로 투옥되기도 하고 자살 기도까지 하는 격정적인 인물이다.
전후 카톨릭 좌파쪽 입장을 보이면서 1968년 반권위주의 좌파 학생운동이 서독에 퍼지고 극좌 테러단체인 적군파(Rote Armee Fraktion)가 프랑크푸르트 상업지구의 한 백화점을 방화하여 체포되었을 때 이들을 석방할 것을 주장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여 서독 사회를 놀라게 했다. 극좌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양심적 지식인 이미지에서 1972년 서독 하원 총선에서는 갑자기 사회민주당의 빌리 브란트를 지지하는 문화예술인으로 변신했다.
1970년대에는 낙태 조항 폐지 캠페인에 힘썼다. 이란의 호메이니를 '제3세계 국가들의 빛나는 본보기'라며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김일성한테도 그러더니...
작곡가 윤이상과 절친한 관계가 잘 알려져 있고, 윤이상과의 만남을 다룬 책 '상처받은 용'(1977)을 펴냈다. 윤이상이 말하는 자기 자신이 잘 드러나 있어 윤이상 연구자라면 반드시 접하게 되는 인터뷰 서적이다.
1984년 서독 대통령 선거에서 녹색당의 후보로 출마했으나 의회 투표에서 낙선하였다. 당선자는 80%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인 기민련의 카를 폰 바이츠제커.[4]

2.1. 경력 논란
루이제 린저와 오랜동안 교류했던 철학자이자 신부인 호세 산체스 데 무리요가 린저의 첫째 아들 크리스토프와 함께 루이제 린저 탄생 100주년인 2011년에 출판한 린저의 전기('모순 속의 삶')가 충격을 주었다. 처음에 무리요 신부는 그녀를 독일의 '잔 다르크'로 그리고자 기획했으나 자료 연구를 해가면서 루이제 린저의 숨겨진 사실과 왜곡이 드러난 것이다. 1944년 나치에 체포될 때까지 열성적인 나치 교사로서 나치 찬양 시를 썼고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의 유태인 교장을 비난했던 증거들이 나왔다. 나치의 청년여성 조직인 '독일소녀동맹'의 한 교육소 책임자가 되었으며 이후 괴벨스의 영화부서인 UFA가 제작하는 선전영화의 대본작가로 활약하면서 두둑한 보수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루이제 린저, 한때 나치주의자였다
무리요 신부는 루이제 린저가 보통의 나치 추종자들을 넘어서는 나치에 꽉 엮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옥중기' 등은 모두 자신을 미화한 거짓 이야기이며 나치 시절 그녀가 출판금지 조치를 당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음으로 드러났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인 작가 클라우스 헤르만의 유품(베를린 국립도서관 소장) 중 유고에 따르면 루이제 린저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헤르만이 나치를 추종하는 그녀의 잘못된 생각을 깨우쳐주기 위해 당시 정세를 설명하는 가운데 히틀러를 지원하는 대기업가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지원정치자금의 규모 등을 말해주었는데 린저는 친구에게 이 말을 전해주었고 그 친구의 남편이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린저를 나치의 게슈타포에 고발했다는 것이다. 이에 구치소에 구금되었다가 풀려났던 것이다. 린저의 주장처럼 국가반역죄를 받은 것이 아니었고 사형 선고를 받지도 않았으며 1945년 이전 조기 석방되었다는 것이다.
전후 서독 민주주의를 재건하는 가운데 반나치 깃발의 명예를 지킨 '잔 다르크'가 나타나주기를 갈망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루이제 린저가 '생의 한가운데'라는 작품을 발표해 자신이 반나치 저항작가이며 사형 직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양심이라고 미화하기 시작하면서 첫 거짓의 단추를 채웠다는 것이다.


2.2. 친북 논란
북한을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여러번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서방의 친북 인사로서 북한을 마약중독, 성범죄, 자살 등 서구가 겪는 문제가 없는 '인간적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곳으로 높이 평가했다. 1986년 평양 방문 때에는 김일성대학의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이것이 독일 여류작가 루이제 린저의 정체다
린저는 ‘북한 기행문’(1981, 한국에는 '또 하나의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출판)에서 북한 체제를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 ‘위대한 지도자’, ‘범죄 자체가 없고 가난이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에는 형무소가 없다’, ‘교화소는 쇠창살이 없고, 교육생들은 언제든 자기가 원하는 시점에 교화소에서 출소할 수 있다’, 등 완전히 북한 관변주장을 그대로 옮겨 썼다. 반대로 남한에 대해서는 반민주적이고 종속적인 독재정권이라고 비하했다.# 김일성에 대해서는 "그보다 더 자연스럽고, 부드럽고 겸손한 정치가를 본 적이 없다"면서 "북한의 사회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김일성의 사상, 실천, 대안은 이제껏 가보지 못한 제3의 길"이요 "서구가 깊이 연구해야 할 대상"이라는 등 침이 마르도록 극찬했다.# 이러니 오죽했으면 김일성과 애인관계 아니냐는 억측까지 나왔을 정도. 히틀러와 이란의 신정독재자 호메이니도 찬양한 걸 보면 내심 '카리스마 있는' 독재자를 원했던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다.
한국 학계에서는 린저가 윤이상의 영향을 받아서 친북성향을 가지게 된 점, 박정희를 비판했던 점 때문에 오랫동안 그저 북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 것 정도로 에둘러 넘어갔지만 외국 학계에서는 균형감각을 잃고 독재자를 추앙했다고 까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으며[5] 루이제 린저 평전에서도 이 부분은 큰 비중은 없지만 곱게는 보고 있지 않다.
어쨌거나 이한영이나 성혜랑을 비롯해서 고위급 탈북자들의 수기에서도 수차례 언급되는데, 루이제 린저 방북 직전에 북한에 린저 전집이 전혀 없어서 온갖 책이 다 있던 성혜랑 집에 들러 김정일이 루이제 린저 전집을 빌려갔다고 하며, 이한영의 말에 따르면 김일성이 외국 남자 손님은 껴안아도 외국 여자 손님은 내외를 한다고 껴안지 않았다고 하는데, 린저는 거리낌없이 껴안을 정도라서 그 모습을 본 김정일이 밥먹다말고 두 노인네가 떨어질줄을 모른다, 둘이 눈이 맞은거 아니냐?라고 김일성 책임부관과 전화하면서 농담할 정도였다. 이후 김일성은 간부들에겐 린저 전집을 주면서 린저를 본받으라고 했는데, 린저가 북한 사회의 문제점도 있다고 좀 지적하기는 해서 인민들에게 배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 나무위키


[1] 1942년에 이혼했으며 1943년 독소 전쟁에서 전사했다.
[2] 어릴 때 고아원에 맡겨졌으며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다.
[3] 전후 동독에서 작가생활을 이어갔다.
[4] 내각책임제인 독일에서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로 실권은 거의 없는 자리이며, 선거도 지방의회가 지명한 선거인단의 간선제로 치뤄진다.
[5] 가령, Joanne Miyang Cho(2018), Luise Rinser’s Third-World Politics: Isang Yun and North Korea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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