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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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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동이면 선돌 임산부형상 여근석… 다산 기원

선돌의 전체 형태와 함께 임신한 여성의 모습을 표현

석탄리 여근석 선돌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을 지나면 금강휴게소가 있다. 필자는 옥천 밑의 지방을 가게 되면 대개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 강을 끼고 있는 휴게소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강휴게소에서의 식사는 즐겁다. 옥천에는 이상스럽게도 선돌이 많이 존재한다. 그 선돌들은 누가 세운 것일까. 그들도 금강을 보면서 식사했을까. 이처럼 먼 과거의 사람과 교통하기 위한 증거로 선돌은 매우 유효한 역할을 한다.
옥천군의 선돌은 대청호가 세워지면서 많이 이동됐다. 선돌과 고인돌들도 자신의 고향을 떠나 2005년에는 ‘선사유물 테마공원’ 내로 모일 예정이다.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문화가 훼손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든다.
옥천에는 선돌이 많이 산재한다. 이 선돌은 신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처럼 선사시대의 유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도 선돌은 의미 있는 대상이었다. 무엇보다도 왕성한 생산력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렇기에 선돌은 마을 공동체 신앙의 중요한 신체(神體)로서 역할을 했왔다. 하지만 테마공원을 만들기 위해서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으로 모아 둔다는 발상은 분명 재고돼야 한다.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는 3기의 선돌이 있다. 이웃 마을인 남곡리에도 선돌이 있다. 이들은 다른 지역의 선돌과는 달리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석탄리 마을 뒤쪽에 있는 선돌은 남근석으로 생각된다. 이 선돌의 크기는 80㎝ 정도에 불과하지만 남근과 유사한 형태이다.
마을 입구의 우측 언덕에 위치한 여근석 선돌은 마치 배가 부른 임신부의 모습을 띠고 있다. 크기도 남근석보다 2배가 넘는 190㎝ 정도 된다. 충북대학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땅 밑에 묻힌 부분까지 합하면 260㎝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마치 사람의 배에 해당하는 부분에 직경 84㎝의 둥근 원이 음각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임신부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왜 돌의 중간부에 원을 형상화했을까. 과연 그것은 단순한 표현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원의 형상은 임신을 뜻하는 것으로서 달의 상징일 가능성이 높다. 충북대학교에서 발간한 ‘옥천군의 선사유적·유물’에는 태양숭배사상의 한 표현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임신한 모습을 상징화했다면 그것은 분명 달의 상징이다. 한국의 기층문화가 달을 근간으로 삼고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추정은 함부로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의 달 상징은 생산 기능과 결부돼 만들어진 관념이다. 특히 달은 여성의 월경(月經)을 관장하는 존재로 알려져 왔다. 월경을 달거리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달이 여성을 관장하며, 여성신이라는 점을 잘 알 수 있는 예로 ‘개보름쇠기’를 들 수 있다. 정월 보름에는 개에게 밥을 주지 않는다. 개기월식과 같은 달의 변화는 개가 물어뜯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있다. 달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은 풍요로운 생산에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달의 정기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개에게 밥을 주지 않고 굶긴다는 것이다. 만약 정월 보름에 개에게 밥을 준 여자는 자신의 생산력을 빼앗긴 꼴이 된다고 생각했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마다 마을 제의가 행해진다. 그 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 마을 제사가 끝나면 대동놀이가 행해진다. 왜 이들 놀이가 정월 보름날 행해지는가. 바로 달의 정기가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정기를 받게 되면 여성의 생산력도 높아질 뿐만 아니라 토지의 생산력도 강화된다고 믿었다.
만월이 떠오르는 때에 여성들의 집단놀이가 행해진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전남 지방의 강강술래나 경상도의 해안 지역에서 행해진 ‘월월이청청’ 등은 좋은 예이다. 이런 놀이는 여성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놀기 위한 목적만을 갖고 있지 않다. 바로 둥근 보름달의 정기를 한몸에 받아 생산력을 강화하는 여성의 집단놀이였던 것이다.
석탄리 마을에서 남자와 여자로 생각하는 선돌에 금줄을 치고 동제 때 치성 대상으로 모시고 있는 것도 그런 풍요 기원의 목적을 지녔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그런 전승은 끊어지는 과정에 있다. 원래 해마다 동제가 거행됐는데, 2004년에는 마을에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마을에 있는 사찰 호국정사에서 대신 치성을 올려주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고인돌과 같이 서 있는 선돌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만난 승룡 스님(43)이 설명해줬다. 그가 호국정사에 온 지는 약 3년 정도 된다고 한다.
이 돌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관심도 점차 떠나는 것 같다. 마을 입구에서 여근석에 대해 물었을 때 답변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을 장승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선돌이라고 말해준 이도 있었다. 오히려 자기 동네의 선돌보다는 남곡리의 선돌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승룡 스님의 안내가 없었다면 여근석을 찾지도 못할 뻔했다. 이것은 이 선돌이 선사공원으로 옮긴다는 결정에 대한 반발심리와도 무관하지 않은 듯한 인상을 받았다.
여자가 임신한 모습을 원으로 표현한 선돌과 달리 남곡리에서는 줄무늬 선돌이 있다. 줄무늬 선돌은 이웃의 수북리에서도 발견돼 이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선돌이라고 할 만하다. 왜 선돌의 앞쪽에 줄무늬를 새겼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남곡리의 선돌은 약 165㎝의 높이에 앞면 폭 52㎝ 정도의 크기다. 돌의 모양은 마치 남근처럼 곧고 윗 부분은 뾰족하지만, 날카롭기보다는 완만한 편이다. 앞면에는 가로로 45줄이 새겨져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 선돌의 형태는 어떤 유의미한 면을 암시하고 있다. 남근의 줄무늬를 새긴 것인지, 아니면 다른 용도의 의미를 담은 표현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아니면 일반적으로 추정하는 것처럼 죽은 자를 기념하기 위한 비석의 기능을 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글 : 김종대 (문학박사·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발췌 : 세계일보


忠清北道沃川郡東二面仙石孕婦像呂根錫… 茶山起源


石炭裏餘根石旋石
沿着京釜高速公路經過大田,就能看到錦江服務站。 筆者到玉泉下的地方,通常都會在這裏用餐。 因爲幾乎沒有靠江的休息站。 因此,在錦江休息站吃飯很愉快。 沃川奇特地存在着很多仙石。 這些石子是誰建造的呢? 他們也會看着錦江吃飯嗎? 作爲與這樣遠古的人交通的證據,船石起到了非常有效的作用。
玉泉郡的船石隨着大清湖的建立而移動了很多。 船磚和支石墓也將離開自己的故鄉,於2005年聚集到"船史遺物主題公園"內。 真擔心文化會不會以保護的名義遭到破壞。
玉泉上散落着很多仙石。 很明顯,該石墓像新石器時代和青銅器時代一樣是史前時代的遺物。 但是,進入歷史時代後,船頭也是非常有意義的對象。 最重要的是,他們相信自己擁有旺盛的生產力。 正因爲如此,石墓一直作爲村莊共同體信仰的重要神體發揮了作用。 但是,爲了建設主題公園,應該重新考慮把公園聚集到沒有任何關係的地方的想法。
沃川郡東二面石灘裏有3座船磚。 鄰村南谷裏也有磚頭。 他們與其他地區的船磚不同,具有獨特的形態。 石灘裏村後邊的石子被認爲是南根石。 雖然該船身大小隻有80釐米左右,但形狀與男根相似。
位於村子入口右側山坡上的呂根石船石,宛如一個肚子飽的肚子飽了。 大小也是南根石的兩倍多,約爲190釐米。 據忠北大學調查,埋在地下的部分加起來高達260釐米,規模巨大。 更有趣的是,相當於人腹的部分陰刻着直徑84釐米的圓形圓圈。 人們看到這一情況後還主張這是孕婦的樣子。
爲什麼在石頭的中間部分畫圓呢? 那真的是單純的表達嗎? 但事實並非如此。 特別是李圓的形象意味着懷孕,很有可能是月亮的象徵。 忠北大學發行的《沃川郡的史前遺址·遺物》中,認爲是太陽崇拜思想的一種表現。 但如果把女性懷孕的樣子象徵化,那分明就是月亮的象徵。 如果知道韓國的基層文化是以月球爲基礎形成的,就不會輕易做出這樣的推測。
女性月亮的象徵是與生產功能結合而成的觀念。 特別是月亮一直被認爲是掌管女性月經的存在。 將月經稱爲月經也是因爲這個原因。 月亮掌管女性,女性神的這一點可以舉出"十五大月"的例子。 正月十五不給狗餵飯 傳說月全食同月的變化是因爲狗啃食。 月球的大小減少對豐饒的生產有很大的影響。 因此,爲了維持月亮的正氣,不給狗餵食,而是讓狗捱餓。 她認爲,如果在正月十五給狗餵飯的女人,自己的生產力就會被奪走。
元宵節,村村寨寨都舉行提議活動。 祈願這一年豐饒的收穫和村莊的安寧。 這個村子的祭祀結束後,將進行大同遊玩。 爲什麼這些遊戲會在正月十五進行呢? 因爲他們認爲,正是月球的正氣能夠產生最強烈影響的時刻。 她相信,如果得到這樣的正氣,不僅女性的生產力會提高,土地的生產力也會得到加強。
在滿月升起的時候,女性們進行集體遊戲也是出於這樣的原因。 全南地區的羌羌水越來和慶尚道的海岸地區進行的"月月清聽"等都是很好的例子。 只有女性才能參與這種遊戲。 但並不是單純爲了玩。 那就是將圓圓的滿月精氣融爲一體,強化生產力的女性集體遊戲。
在石灘裏村,在被認爲是男人和女人的石子上設立金鍊子,並在同濟時期將其視爲治城對象,這也是出於這種祈願富饒的目的。 但是現在這種傳承正處於斷裂的過程中。 原來每年舉行冬祭,但2004年村裏沒有舉行同祭典。
因此,據說位於該村的寺廟護國正寺替他提高了治城能力。 在調查支石墓和站在一起的船磚的過程中見到的僧龍大師(43歲)說明了這一事實。 據說,他來到護國正寺大約有3年左右。
村民們對這塊石頭的關心似乎也漸漸淡出了。 在村口問起呂根碩時,沒有人爽快地回答。 有人將其稱爲長生柱,也有人將其稱爲柱石。 反而推薦南谷裏的石子,而不是自己村裏的石子。 如果沒有僧龍大師的指引,恐怕連呂根石都找不到。 這似乎也與對李先石遷移到先史公園的決定的反抗心理不無關係。
與把女人懷孕的樣子表現爲圓圈不同,南谷裏有條紋的圓圈。 在鄰居的樹北里也發現了條紋的船磚,因此可以說這是隻出現在這一地區的船磚。 我不清楚爲什麼在石船的前面刻上條紋。
南谷裏的磚頭高約165釐米,正面寬52釐米。 石頭的形狀像男根一樣筆直,上部尖尖,但與其說尖,不如說平緩緩緩。 正面刻有橫45行。
最重要的是,這些船磚的形態暗示着某種有意義的方面。 到底是刻了男根的條紋,還是含有其他用途的表達方式,目前尚不清楚。 還是像一般推測的那樣,負責紀念死者的石碑的功能。 | 文章:金鐘大(文學博士·國立民俗博物館民俗研究科長) 摘錄:世界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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