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반응형

음성언어와 문자언어 또는 광의언어와 협의언어로 말과 글을 이해하기


글의 목적(目的)은 생각이나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傳達)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나'와 '남'은 다릅니다. 그래서 나의 뜻을 다른 사람에게 온전(穩全)하게 전달하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가령 '저것은 사과다'라는 짧은 문장 정도(程度)라면 말로든 글로든 어렵지 않게 그 뜻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과의 빛깔, 생김새, 향기, 맛 따위를 설명(說明)하는 것은 말로든 글로든 쉽지 않습니다.

말이나 글은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온전하게 상대방(相對方)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따라서 나의 생각이나 알고 있는 사실을 상대방이 얼마나 받아 들였느냐로 의사소통(意思疏通)의 목적 달성 정도를 가늠합니다. 그 목적 달성 정도(達成程度)를 높이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이해(理解)하기 쉽도록 의사를 전달해야 합니다. 이는 말과 글의 구분(區分)이 없으며 이해하기 쉬운 글을 써야 하는 이유(理由)입니다.

1. 언어의 특성
인간을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를 언어사용(言語使用) 능력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감정(感情)을 표현하고 의사를 소통할 뿐만 아니라 갖가지 정보와 지식을 교환하여 문화를 창조 계승(創造繼承)하고 이를 발전시킵니다.

언어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구체적(具體的)으로 생각해 봅니다.

일반적으로 ‘언어’란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협동(協同)해서 만들어 놓은 자의적인 음성 부호(音聲符號)의 체계입니다. 이를 깊게 생각해 보면 언어의 구체적인 모습(특성)이 드러나게 된다. 이를 정리(整理)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언어는 음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언어는 음성언어(音聲言語)와 문자언어(文字言語)로 또는 광의의 언어(廣義言語)와 협의의 언어(協議言語)로 나누어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언어의 본질적인 뜻은 인간의 발성기관(發聲器官)을 통하여 나오는 음성에 의한 표현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인간의 음성은 다른 동물이 내는 소리와는 달리 분절음(分節音)입니다. 다시 말해 자음과 모음으로 분석될 수 있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변별적 특성(辨別的特性)에 따라 의미의 차이가 생기게 됩니다. 따라서 인간의 음성은 막연한 소리가 아니라 의미를 담고 있는 소리라는 점에서 다른 동물들이 내는 소리와 근본적으로 차이(差異)가 있습니다.

둘째, 언어는 기호입니다
기호는 어떤 사물을 특정한 형식을 통해 대신 나타내는 상징체계(象徵體系)입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기호(記號)는 그 나름대로 독특한 형식(獨特形式)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 특정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언어도 어떤 사물을 특정한 형식을 통해서 그 사물이 지닌 독특한 개념(槪念)을 나타내 주는 기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셋째, 언어에서 소리와 의미의 관계는 자의적(恣意的)이고 관습적입니다
언어는 형식에 해당하는 소리와 내용에 해당하는 뜻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합관계(結合關係)는 임의적인 뿐입니다. 가령 사람이란 말에서 ‘사람’이라는 소리와 ‘인’이라는 뜻의 결합관계가 오늘날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말이 역사적으로 변천(變遷)해온 과정을 살펴보면 이것이 결코 필연적인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언어에서 소리와 뜻의 결합관계가 관습적(慣習的)이라는 것은 앞서 말한 언어의 형식과 내용의 관계가 나라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인)’을 지시(指示)하는 같은 말인데도 일본에서는 ‘히토(Hito)’, 영어에서는 ‘맨(man)’ 등으로 각기 달리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그 예입니다.

넷째, 언어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입니다
언어의 정의에서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협동(協同)해서 만들어 놓은’이란 부분에 주목해 보면 언어의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언어는 한 개인의 독자적인 또는 어떤 특정한 조직(組織), 사회(社會), 국가(國家) 등에서 강제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국가나 사회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태어나 부지불식간에 공인(公認)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언어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것과 언어는 그것이 쓰이고 있는 사회를 반영한다는 사실입니다. 언어는 역사적으로 음운, 형태, 의미 면에서 변천되어 왔을 뿐 아니라 이러한 과정을 통해 특정한 시대와 지역의 풍물(風物), 정신(精神), 정서(情緖) 등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언어는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언어가 자연발생적인 것이고 그 구조를 이루고 있는 형식(形式)과 내용(內容)의 관계가 자의적이라고 해서 언어가 무질서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언어의 구조를 음운론적(音韻論的), 형태론적(形態論的), 통사론적(統辭論的), 의미론적(意味論的) 측면 등으로 나누어 분석합니다. 분석은 우선 그 대상이 체계성을 띠고 있을 때 가능합니다. 언어를 분석해 보면 이를 이루고 있는 요소나 단위들이 일정한 법칙을 통해 배열(排列), 결합(結合)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법칙(法則)은 각 민족이 쓰고 있는 언어마다 각기 다를 뿐만 아니라 한 민족이 쓰고 있는 단일한 언어일지라도 그 언어가 쓰이고 있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모국어(母國語)이든 외국어(外國語)이든 그것을 바르고 정확하게 구사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목적에 들어맞게 언어를 구사하려면 그 언어가 지니고 있는 체계성, 즉 문법을 정확히 파악(把握)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언어는 그 나름대로 독특한 성질(性質)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어를 바르게 구사(構思)하려면 언어의 이러한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유의(留意)해야 할 것은 언어는 한낱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언어는 어떤 사물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이고 총체적인 속성을 완벽(完璧)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어를 지나치게 맹신(盲信)하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평소 언어가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성을 인식(認識)하고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무단히 강구(講究)하여 언어를 신중하게 다루고 정확하게 구사해야 합니다.

언어의  기능

의사소통(意思疏通)이 이루지는 과정은 어떠한가? 그리고 과정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요소는 무엇인가? 의문을 갖고 그에 대한 해답(解答)을 마련해 봅니다.

이는 언어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으며 더 나아가 언어가 근본적(根本的)으로 지닌 기능이 무엇인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로만 야콥슨(Roman Jacobson)은 언어가 소통되는 근본적인 요소(要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1. 말하는 주체와 듣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2. 이들 사이에 공유되어야 할 전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전언이 성립되려면 그것이 산출(算出)될 수 있는 기본 상황(關聯狀況)이 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또 의사소통의 도구인 언어(信號體系)가 있어야 하고 이것이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 원활히 소통되기 위해서는 물리적 또는 심리적 연결 매체(接觸)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쓰일 수 있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면 언어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구실을 하고 있는가?

첫째, 언어는 표현적 또는 정서적, 사고적 기능을 지닙니다. 
이것은 화자에 초점(焦點)을 둔 언어 행위일 때 드러나는 언어의 기능입니다. 화자를 위주로 언어가 사용될 때에는 사물 또는 이야기 내용에 대한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오직 화자 자신의 태도, 감정만이 드러내게 됩니다. 특히 우리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표현할 때 대상에 대한 사실적 표현(表現)보다는 어조, 발음의 형식을 통해 과대(過大) 또는 과소(過少)의 언어적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좋다’는 감정을 나타낼 때 그냥 평이하게 늘여 놓게 되는데 그것이 한 예(例)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사역적(使役的) 또는 지령적 기능(指令的機能)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청자(聽者)에게 초점을 둔 언어행위일 때 드러납니다. 이러한 언어행위(言語行爲)의 목적은 화자가 단순히 청자에게 어떤 이야기 내용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화자 자신의 의도한 행동이 청자로 하여금 실행(實行)에 옮겨질 수 있도록 어떤 사물에 대한 함축적 또는 연상적 의미를 앞세워 논리보다는 정감(情感)을 바탕으로 언어를 구사합니다. 대표적인 예는 상품을 선전 또는 광고하는 담화형식(談話形式)을 들 수 있습니다.

셋째, 참조적 기능 또는 정보 전달적, 지시적 기능이 있습니다.
이 기능의 특징은 화자가 청자에게 대상에 관련된 내용(關聯狀況)을 지시, 전달함에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화자의 주관적(主觀的)인 감정과 생각이 가급적 배제됩니다. 또 청자에게 일방적으로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 의도나 목적도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관련 상황에 대한 내용을 최대한 객관 그대로 언어를 통해 나타내는 데 초점을 둡니다. 따라서 이러한 기능의 특징은 대상이 지니고 있는 개념적 의미(槪念的意味)를 중시하고 그 의미를 손상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전달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따라서 그 대상이 갖고 있는 개념적 의미가 무엇인가에 관심(關心)이 모아집니다.

우리는 처음 사물과 만나게 될 때 대상의 본질적 의미(本質的意味)를 인식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그 사물이 지닌 개념을 정립(定立)하고 적절한 이름을 부여합니다. 이름을 부여(附與)한다는 것은 곧 언어행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이 탄생된 언어는 다시 일상적인 언어 행위를 통해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쓰이게 됩니다. 따라서 이 참조적 기능(參照的機能)은 언어의 기능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기능(核心的機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넷째, 친교적 또는 상황적 기능이 있습니다.
화자의 의사가 청자에게 전달되려면 양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心理的)인 끈이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의사가 원활히 소통될 수 있는 상황이 조성(造成)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화자가 단순히 의례적으로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컨대 사람들이 서로 만났을 때 ‘안녕하십니까?, 편안하시죠? 등의 인사말과 같은 것이 그 예입니다.

또한 말하는 도중에 전달(傳達)하고자 하는 내용과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내용을 삽입시켜 청자의 관심을 끈다든지 주의를 환기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언어 행위를 통해 인간적이고 우호적(友好的)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하기 위함입니다.

다섯째, 초언어적 또는 부연적, 관어적 기능(款語的機能)입니다.
우리가 말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 관련 상황의 내용을 대상으로 삼고 이를 구체화(具體化)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일반적인 사물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일 경우가 있습니다. 단어의 뜻을 풀이한다든가 전문용어(專門用語)의 개념을 정의하고 자기가 한 말에 대한 부연 설명(敷衍說明)을 하는 일 등이 이에 해당(該當)됩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언어가 초언어적 기능(超言語的機能)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언어를 습득하고 우리 삶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축적(蓄積)하고 체계화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 미적 기능 또는 시적 기능입니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일은 전언(傳言)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마련하고 또 그것을 청자에게 전달(傳達)하는가에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화(發話)의 내용을 어떻게 형식화하고 구조화(構造化)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컨대 ‘복남이와 영희’ 구조보다는 ‘영희와 복남이’ 구조가 발음(發音)하기 편하고 듣기에도 부드럽습니다. 이것은 단어들을 병렬(竝列)시킬 때 음절수(音節數)가 적은 것을 앞에 두고 발음하는 것이 우리의 언어 감각 면에서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언어의 시적 기능은 발화의 내용을 장식적으로 아름답게 꾸며 나타내는 데에만 그 특징(特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그 언어의 구조적 특징에 맞게 전언의 내용을 형식화(形式化)해서 효과적으로 언어를 사용하고자 할 때 드러납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의 모습은 언어가 소통(言語疏通)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언어의 기능도 다양합니다. 우리는 여섯 가지 기능을 알게 모르게 혼용(混用)해 가면서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과  글
글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음성언어를 문자언어로 나타냅니다. 즉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고 있는 말을 그대로 문자로 기록(記錄)해 놓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 사용하고 있는 말(口語)을 그대로 문자로 기록했다고 해서 글다운 글이 될 수 있겠는가? 또한 말이 이루어질 때의 상황을 과연 완벽(完璧)하게 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말과 글이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쓰일 때 어떤 차이점(差異點)이 있는가를 살펴봅니다.

말은 일반적으로 화자와 청자가 대면한 상태에서 소통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말을 통해서 의사를 소통할 때에는 청각적(聽覺的)인 매체인 소리 외에도 표정, 몸짓, 손짓 등의 보조 표현 수단을 빌어 언어 자체가 지니고 있는 표현 전달의 한계성(限界性)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말의 고저(高低), 장단(長短), 강약(强弱) 등을 통해 화자의 감정, 의사 등을 섬세하고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의 경우는 어떤가? 글은 우선 시각적 매체인 문자를 통해서 의사전달(意思傳達)이 이루진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자는 우리의 생각, 음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를 기호로써 대신 나타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문자가 음운 문자라 할지라도 엄밀히 말해서 말소리를 다 기록(表現)할 수가 없습니다. 또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말할 때의 모든 상황이 현장감(現場感) 있게 표현되기는 어렵습니다. 문자는 생각을 기호로써 간략화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자가 지니고 있는 한계성은 문자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글의 한계성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대표적인 한 예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생활인(生活人)으로서, 글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글로써 자신의 의사,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감하게 됩니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극복(克服)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노력해야 하겠지만 우선 문자 언어가 지닌 한계성을 이해하고 글이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要件)에 맞게 글을 써 보는 훈련을 부단히 쌓아야 합니다.

글의  요건
글은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글은 말하기 방식 가운데 둘이서 주고받는 대화형식(對話形式)의 말하기보다는 혼자서 일방적으로 말하는 강연 또는 강의형식(講義形式)의 말하기에 가깝습니다. 이 두 말하기 방식의 차이(差異)를 통해 글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건(要件)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둘이서 주고받는 말하기에서는 화제(話題)가 수시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예를 보기로 합시다.

A : 너 오늘 강의 끝나면 뭐 할래?
B : 도서관에 갈거야.

A : 얘는 우리 영화나 보러 가자.
B : 그럴까?

A : 그런데, 너 지금도 그 사람 만나니?
B : 그럼

위에서 A와 B의 대화는 어느 하나의 화제에만 초점(焦點)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특정한 화제가 깊이 있게 논의(論議)되지가 않습니다. 위의 두 사람의 대화는 피상적(皮相的)으로 일상적인 의사를 주고받는 일로 끝나고 있을 뿐입니다.

둘이서 주고받는 말하기에서는 화제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말의 내용에 통일성(統一性)도 없고 말의 흐름에도 일관성이 없게 됩니다. 결국 말하기가 끝났다 할지라도 말(對話) 자체가 짜임새 있는 전제로 완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반해 혼자서 말하기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선 화제가 일정합니다. 어떤 특정한 화제를 설정하고 이야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의 내용이 그 화제의 범주(範疇)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오직 그 화제를 토대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통일성과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화제가 깊이 있게 논의됩니다. 따라서 이야기 전체는 일반적으로 처음, 중간, 끝의 구조를 갖추고 완결됩니다.

우리가 음성언어를 문자로 기록해서 이를 글이라고 할 때 글은 혼자서 말하기의 방식과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한 편의 글도 혼자서 말하기의 경우에서처럼 일정한 화제(主題)를 중심으로 통일성을 유지하고 일관성 있게 전개되어 종국(終局)에는 하나의 구조체로서 완결됩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말하는 '읽기 쉬운 글'은 내용의 이해를 위해 별도(別途)의 지식이나 정보가 필요하지 않은 글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나 말을 하는 사람이나 항상 자신이 알고 있는 것, 경험한 것이 기본 배경(基本背景)입니다. 하지만 상대방도 나만큼 알고 있다는 보장(保障)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정도는 알고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는 것도 읽는 이를 배려(配慮)하지 않는 글입니다. 읽기 쉬운 글은 상대를 이해를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상대(相對)를 배려한 글입니다.

◐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만드는데 25년이나 걸렸고 벨은 오랜 연구 끝에 전화기(電話機)를 발명했다. 그러나 브린과 페이지는 대학교의 일개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단 5년 만에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수십억 달러짜리 기업을 일궈냈다. 성공의 속도(速度)가 이미 예전과 다른 세상이다.

위의 글은 문장 자체로는 크게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불확실(不確實)한 것들이 있습니다. 에디슨, 벨은 워낙 유명하니 그냥 넘어간다 하더라도 브린, 페이지가 누구인지 궁금해집니다. 또 '대학원의 일개 연구 프로젝트'가 무엇인지도 불명확(不明確)합니다. 상세한 내용을 추가(追加)로 쓰지 않는다면 관련한 지식이나 정보 없이는 글쓴이만큼 이해하기는 어려운 글입니다.

◐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만드는데 25년이나 걸렸고 그레헴 벨은 4년의 연구 끝에 전화를 발명했다. 그러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그들이 다니던 스탠퍼드 대학교의 디지털 도서관(圖書館) 프로젝트에 참여해 만든 데이터 마이닝(데이터 추출/수집) 기술로 검색 엔진을 개발, 단 5년 만에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수십억 달러짜리 기업 구글(Google)을 일궈냈다. 성공(成功)의 속도가 이미 예전과 다른 세상이다.

이렇게 좀 더 상세한 설명이 붙으면 글이 의도(意圖)하려는 내용이 더 명확해집니다. 즉 상황이 허락된다면 문장을 좀 더 끊는 것이 좋습니다. 또 읽는 이는 의문이나 궁금함이 덜해져 글을 읽는 부담(負擔)이 적습니다. 읽기 쉬운 글은 글쓴이의 배경이 중심이 아니라 읽는 이가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좀 더 손이 가더라도 읽는 이의 이해(理解)를 높이기 위해 배려하는 글쓰기 습관(習慣)을 들여야 합니다.

반응형
반응형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