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의 솔직성은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투명성과 동조(同調)한다. 그리고 한 개인이 얼마만큼 솔직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그 사회의 관용과 직결된다.
하지만 가치관이 혼재(混在)하는 오늘날의 우리들은 솔직하지 못하다. 한마디로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면 오해받기 쉬운 현실이다. 지금은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따로 놀고 있다. 몸은 음성적으로 점점 개방되어 가는 반면 머리는 아직도 가부장적 유교사상의 잔재(殘在)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주변의 잡다한 가치관에 발목을 단단히 잡히고 있다.
그래서인지 연애나 혼인, 혹은 사랑 역시 극단적인 상태로 치닫고 있다. 현실은 ‘시집장가를 못가는 것’이 아니라 ‘안 가’는 것이다. 어제의 ‘연애는 선택, 결혼은 필수’라면 오늘의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 됐다.
좀 헤비한 말이다. 한창 열광적인 사랑을 해도 모자랄 요즘 싱글들은 이런저런 상황으로 인해 굴절심리(屈折心理)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연인’이 아닌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용어를 잘 사용한다. 이 말의 뜻인즉 서로 ‘소유’하는 연인 사이는 아니고 그냥 서로 사랑하는 사이란 애매모호(曖昧模糊)한 표현을 곧잘 쓴다. 차라리 그냥 욕정이라고 실토하면 더 솔직하고 직설적인데 아예 빙빙 에둘러 내뱉는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 연인이 아니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마치 사랑 없는 ‘육체놀음‘만 한다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이 들린다. 이는 엄연히 너 좋고 나 좋아 저지르는 육체 서비스적인 ’불륜‘이다.
사실 진짜 불륜은 물론 의심의 여지없이 반윤리적이며 비도덕적이다. 하지만 언제랄 것도 없이 인류 아니 인간을 만든 신(神)조차도 불륜이라는 일탈적 행위가 공공의 담론으로 포섭(包攝)되어왔다.
불륜에 관한 주요 국가 관용지수를 보면 한국은 26위를 차지한다. 사회적 배경, 문화 사고방식 등으로 볼 때 다른 사람을 관용할 수 있는 질문에 가장 낮은 관용지수를 보인 한국인은 불륜에는 높은 관용을 보인다.
불륜은 분열되어 작용된다.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또한 남편 헤파이스토스를 속이고 불륜을 저질렀다. 아프로디테는 애인에게서 마음의 위로를 받았지만 남편 헤파이스토스가 다른 신들을 불러 모아 연인에게 복수를 하고 만다. 이렇듯 신들조차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 불륜인데 지상의 인간이야 더 말해 뭘 하랴!
유교문화와 가부장제의 엄숙함이 불륜의 도덕성을 강조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불륜을 저지르는 양상 콘텐츠에 감춰진 자아와 은폐된 현실은 비도덕을 폭로하는 기능을 상실해간다. 무엇보다 현실은 불륜에 대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단죄(斷罪)보다는 갈등 속의 현실이 되려 은근한 선망(羨望)의 대상이 된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인간의 이중적 성격을 둘러싼 모순을 경험하고 또 실천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륜에 대한 내재적인 심리모순에 관해 설파(說破)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온갖 잡음이 난무(亂舞)하는 세상에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 진솔하게 귀 기울일 때에 비로소 얻게 되는 힘을 주자는 취지이다.
잔잔한 호수에서 백조들이 우아한 자태로 수영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운 조화에 감탄한다. 하지만 백조들은 그 순간 가라앉지 않으려고 쉴 새 없이 물갈퀴를 휘저으며 먹이를 찾고 있다. 동시에 주변을 배회하며 새끼들을 노리는 솔개를 경계한다. 백조의 삶은 이렇듯 보이지 않는 긴장 속에서 자기의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싸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생존을 위해 부족한 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 애정을 위해 혹은 자존심을 위해 서로 상대를 위협하고 공격한다. 다양한 이유로 제기되는 경쟁은 매일 치열한 생존투쟁을 벌리고 있다.
길을 가다가 앞에 큰 돌이 나오면 약자들은 그것을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강자는 에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디딤돌이라고 말한다. 사랑의 패배자는 조그마한 장애물에도 겁에 질려 한 걸음 물러선다. 그러므로 누군가와 충돌이 예상(豫想)되면 비굴하게 자신의 실력을 한껏 포장해 보여 주게 된다. 예측불가능한 상태가 되면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진 존재라도 기가 꺾여 승부를 망설이게 된다. 결혼을 기피하거나 연애 실패의 원인은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정신적인 부담과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경제적 압력 때문이라고 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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