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코노믹스
1976년 노벨 경제학상(诺贝尔經濟學賞)을 수상했고 2006년에 타계한 유명한 경제학자인 밀튼 프리드먼이 즐겨 사용(使用)하는 말이 있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이다.
얼핏 보기에는 공짜인 것 같아 보여도 사실 알고 보면 공짜가 아니라는 말이다. 공짜 뒤에는 몰래 숨어 있는 미끼가 있다는 말로도 해석(解釋)할 수 있고, 어떤 대가 없이는 공짜로 무엇을 기대(期待)해서는 안 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 있다.’는 러시아 속담이 있듯이 공짜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와 대가 없는 ‘진짜’ 공짜가 있다는 주장(主張)이 거세지고 있다. 악화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듯 무료가 유료를 구축하는 추세가 강화된 것이다. 영국의 격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08년을 전망(展望)하면서 이러한 추세를 ‘프리코노믹스(Freeconomics)’라고 명명했다. 공짜(free)와 경제학(economics)을 합성한 말이다.
2007년에 음반 업계(音盤業界)에서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인기 가수 프린스가 영국 조간신문 ‘데일리메일’ 구독자(購讀者)에게 신곡을 담은 새 앨범 ‘플래닛 어스(Planet Earth)’를 증정판 CD로 만들어 제공했기 때문이다. 증정 CD 수는 무려 300만 장이나 됐다. 물론 이 음반을 들은 사람들이 이들의 연주회(演奏會)에 올 가능성은 커졌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한편으로 음악을 무료로 배포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불법 복제(不法複製)해 유포할 것이라는 점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음반을 무료로 제공(無料提供)했을 수도 있다. 하여튼 놀라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2007년 LG전자에서 ‘랩소디 인 뮤직 폰’이라는 MP3 기능이 강화된 고급 휴대폰을 출시(出市)했다. 세계적인 음질 전문가인 마크 레빈슨은 이 휴대폰에 음향 효과(音響效果)를 보정하거나 손가락으로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전면 터치 휠을 장착(裝着)했고 고급 음질의 전용 이어폰 등을 통해 MP3 기능을 강화하는 튜닝을 했다. 이 휴대폰에는 가수 성시경, 손호영 등 정상급 가수 7명의 음반, ‘랩소디, 더 소울 오브 사운드’를 기본으로 탑재했다.
휴대폰 회사가 이런 무료 전략(無料戰略)을 구사하기 전에 구글은 대용량 저장 공간을 제공하는 G메일 서비스를 일찍이 제공했고 UCC 사이트인 유튜브도 동영상을 위한 대용량의 저장 공간(貯藏空間)을 제공했다. 또 인터넷 전화 서비스인 스카이프(Skype) 역시 소비자(消費者)가 장거리 전화, 국제 전화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예전부터 술집은 서비스 차원에서 안주를 공짜로 주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 전략이 주효(奏效)할까? 손님이 땅콩 같은 견과류를 안주 삼아 먹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술을 더 마실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미국 술집에서 물은 돈을 받고 판다. 그 이유는 손님이 물을 많이 마시면 비싼 술을 마실 가능성(可能性)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술과 안주는 보완재(補完財)인 반면, 술과 물은 경쟁재(競爭財)인 것이다. 술집 주인들은 과거의 풍부한 경험을 통해 아직까지도 이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사실 우리 주위를 보면 공짜 마케팅은 눈에 많이 띈다. 지하철역(地下鐵驛) 앞에 놓여 있는 무가지 신문(無價紙新聞)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일간 신문과 스포츠 신문을 크게 위협했던 무가지는 많은 사람들이 집어 가기 때문에 광고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다. 상대적(相對的)으로 인기가 없는 하위 무가지가 광고주(廣告主)를 많이 얻지 못하면 경쟁에서 탈락(脫落)하는데 살아남은 무가지는 점점 더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사업을 전개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금(資本金)이 많은 기업일수록 이런 무료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자칫하면 독과점(獨寡占)의 폐해를 소비자가 입을 가능성이 커진다.
프리코노믹스 시장의 또 다른 큰 폐해는 자원의 낭비(資源浪費)다. 무가지 경우를 예로 들면 무가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 주기 때문에 그만큼 신문 용지(新聞用紙)가 낭비될 수밖에 없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체제는 화석연료(化石燃料)의 과잉 사용(過剩使用)으로 이어져 지구온난화(地球溫暖化)의 가속화를 야기(惹起)시킨다.
경영 구루 중에 톰 피터스(Tom Peters)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유명해진 결정적인 사건은 1982년 로버트 H. 워터맨과 함께 “초우량 기업의 조건”을 출간(出刊)한 것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그들이 원고를 가제본(假製本)으로 만들어 복사판(複寫版) 1만 5,000부를 자신의 책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들에게 배포했다는 것이다. 물론 출판사(出版社)는 기겁을 했다. 그리 많이 팔릴 책도 아닌 것 같은데 가제본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이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바로 무료 가제본 덕분이었다. 가제본을 읽어보고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정식 책이 출간되자마자 책을 대거 구입(大擧購入)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료 배포 전략 덕분에 톰 피터스는 메가셀러 작가가 됐고 최고의 강연자(講演者)가 됐으며 최고의 컨설턴트가 됐다.
우리나라는 공무원(公務員)이나 기업인(企業人)들의 비리로 항상 시끄럽다. 그래서 예전에는 업체로부터 술 향응이나 식사 대접(食事待接)을 받는 것을 당연시했으나 이제는 금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실 이러한 대접은 대가를 바라고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포스트잇과 스카치테이프로 유명한 3M은 윤리경영(倫理經營)을 철저히 하기로 유명하다. 이 회사의 기업윤리 규정집을 보면 선물 증여(膳物贈與) 항목에 이러한 글이 있다. “사업과 관련해 상대방에게 연간 50달러 이상의 금품(金品)이나 향응(饗應)은 제공할 수 없다. 대신 커피와 도넛은 제외된다.” 따라서 상대방으로부터 커피와 도넛 정도를 무료로 제공받아 먹는 것까지 죄책감(罪責感)에 시달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이렇게 결론 내려 보자. “공짜 점심은 없어도 공짜 커피는 있다.”고 말이다.
스놉 효과
부자들은 일반 대중들이 자신의 소비 행태(消費行態)를 따라하는 것을 싫어한다. 여기에 적합한 용어가 있는데, 영어로 ‘스놉 효과(snob effect)’라고 한다. 스놉 효과는 물건을 살 때 남과 다르게 나만의 개성(個性)을 추구하는 의사 결정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 말로는 왜가릿과에 속하는 새 이름을 따서 ‘백로 효과(白鷺效果)’라고 한다. 스놉이란 잘난 척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인데 자신이 줄곧 사용하던 물건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대중화(大衆化)가 되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상품으로 소비 대상(消費對象)을 바꾸는 것이다. 마치 까마귀들이 몰려들면 백로가 멀리 떨어지려 하는 것과 같아 보인다.
1950년 미국 경제학자 하비 레이번슈타인(Harvey Leibenstein)은 타인의 사용 여부에 따라 구매 의도(購買意圖)가 증가하는 효과인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와 함께 타인의 사용 여부에 따라 구매 의도가 감소하는 효과인 스놉 효과도 같이 발표했다. 어떤 상품이 인기(人氣) 있는 상품이라고 알려지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사려고 하는데 이런 현상을 밴드왜건 효과라고 한다. 밴드왜건은 길거리 행사 대열에서 앞서서 행렬을 주도(主導)하는 악대차를 말하는데 보통 길거리에서 사람들은 밴드왜건을 보면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는 줄 알고 무작정 따라가 보는 데서 유래한 용어이다. 즉, 무작정 남을 따라 하는 소비 행태를 말한다. 스놉 효과는 이와 같은 밴드왜건 효과와 반대 현상(現象)이다.
그러나 스놉 효과의 진정한 의미는 대중적으로 소비하는 제품을 사지 않는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스놉 효과는 비대중적(非大衆的)인 제품에 대한 구매 효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스놉 효과는 고급 지향적 개성(指向的個性) 추구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스놉 효과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상황에서 발생(發生)한다.
첫째, 무언가 고급스러운 제품이 시장에 처음 나왔을 때 그 제품을 신속하게 구매하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그 순간에는 그 ‘고급(高級)’ 제품을 소비하는 ‘영광(榮光)’을 아무나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아무리 열광적으로 ‘찬양(讚揚)’하던 제품이라도 그 제품의 시장점유율(市場占有率)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늘어나서 일반 대중이 아무나 다 사용하는 제품이 돼 버리면 그 제품을 더 이상 구매하지 않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아무나 다’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은 영광스럽지도, 고급스럽지도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스놉 효과가 아무 제품에서나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스놉 효과는 가격(價格)이 비쌀수록 그리고 고급품(高級品)으로 인식되는 제품 중에서도 그 제품의 소비가 개인적으로 이뤄지는 경우 가장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격이 비싼 고급품이라 해도 그 소비가 개인적(個人的)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과 그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형태로 소비가 이뤄지는 제품의 경우에는 가격이 오르면 수요(需要)가 오히려 늘어나는 베블런 효과가 발생한다.
만약 목표 시장(目標市場)에서 스놉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다음 세 가지 점에 유의해서 마케팅 계획을 수립(樹立)할 필요가 있다.
첫째, 시장점유율보다는 평생가치(平生價値)에 집중한다. 즉, 고객 수의 확대보다는 기존 고객(旣存顧客)의 철저한 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시장 확대(市場擴大)에 마케팅 활동의 초점을 맞추면 어느 순간에는 기존의 고객마저 모두 떠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새로운 고객을 늘리지 않는 정도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고객이 더 이상 유입되지 않도록 막는 마케팅, 즉 디마케팅(demarketing)이 주요 마케팅 활동이 돼야 한다.
둘째, 가격 경쟁(價格競爭)은 절대 피해야 한다. 가격을 낮추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유발(誘發)한다. 보다 저렴해진 가격은 가격에 민감한 일반 대중이 그 제품을 구매하도록 만든다. 그것은 그 제품의 희소성(稀少性)을 낮춰 기존 구매자(購買者)들을 떠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이 시장에서는 가격이 품격에 대한 일종의 지표로 작용하므로 가격 인하(價格引下)가 곧 제품의 품격 하락(品格下落)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셋째, 후발 사업자(事業者)로서는 성공할 수 없으므로 ‘나도 한다’ 방식의 신규 사업 추진(事業推進)은 매우 곤란하다. 스놉 효과가 나타나는 시장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수익률이 탁월하고 경쟁자(競爭者)도 그다지 없는 시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사업자가 시장에 참여하는 순간 시장 자체가 붕괴된다. 신규 사업자(新規事業者)의 참여로 소비가 증가하면 스놉 효과의 나쁜 영향이 발휘돼 기존 고객들이 시장을 떠나기 때문이다. 기존 사업자는 그나마 그 순간까지 누릴 수 있었던 고수익(高收益)으로 인해 투자 회수가 가능할 수 있으나 신규 사업자는 막대한 손실을 부담(負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많은 활동을 했던 미국의 제도학파(制度學派) 경제학자 중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이 있었다. 그는 저서 “유한계급론(有限階級論)”에서 물건의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떤 물건들은 가격이 오르면 수요(需要)가 오히려 늘어난다는 사실을 밝혔다. 값비싼 명품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라 하고 이런 특성을 가진 재화(財貨)를 베블런재(Veblen goods)라고 한다.
반대로 가격이 떨어질 때 수요가 오히려 줄어드는 재화를 기펜재(Giffen goods)라고 한다. 가격이 떨어지면 대체효과(代替效果)에 의해 수요가 늘어나는데 가격 인하로 인해 소득이 상승하는 소득효과(所得效果)가 훨씬 커서 해당 재화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매우 예외적(例外的)인데 해당 상품에 대한 지출이 전체 지출(全體支出)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야만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또 후진국이 선진국의 소비 양식(消費樣式)을 모방한다든지 저소득자(低所得者)의 소비 행태를 따라하는 것을 ‘전시 효과(展示效果)’라고 한다. 경제학자 뒤젠베리(Dusenberry)가 붙인 용어다. 소비는 자신의 절대 소득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위 다른 사람의 소득에 비해 자신의 소득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상대소득(相對所得) 가설이다. 전시 효과의 핵심(效果核心)은 다음과 같다. 사회에 하급재(下級財)부터 고급재에 이르는 여러 상품이 있을 때 하급재보다는 보다 고급재(高級財)를 구하려고 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욕구(慾求)다. 그런데 그 욕구는 사회적으로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接觸)이 많은 사람일수록 크다.
어떤 상품을 구입하면 수요가 그 제품과 관련 있는 다른 상품으로 파급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파급 효과(波及效果)로 ‘디드로 효과(Diderot effect)’가 있다. 디드로는 18세기 프랑스 계몽 사상가(啓蒙思想家)의 집단이었던 백과전서파(百科全書派) 철학자였다. 어느 날 디드로가 오래된 실내복(室內服)을 버리고 새 실내복을 입었다. 그랬더니 왠지 집안에 있던 모든 가구들이 형편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실내복에 어울리게끔 책상을 바꿨고 이어 서재 벽에 걸린 벽걸이 장식(裝飾)을 바꿨으며 결국엔 모든 가구를 다 바꾸고 말았다. 이것을 디드로 효과라고 하는데 인테리어 업자들이 매우 좋아할 마케팅 효과(效果)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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