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라 하면 편지나 논문(論文), 보고서(報告書), 소설(小說)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편지나 이메일과 같은 개인적인 글이 아니라 평론(評論)이나 논문(論文), 논술(論述) 등 공적(公的)인 글을 주로 다루어 보렵니다. 이런 글에서 자신의 생각을 적절히 표현하려면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提示)해 남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공적인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글을 능숙하게 쓰는 방법도 스포츠에 통달하는 방법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합니다.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지금 자신의 신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자신의 상황이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파악하면 그것만으로도 완숙(完熟)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모르는 채 글을 써봤자 발전(發展)이 없으며 타인에게 의미를 정확히 전달(傳達)할 수도 없습니다.
예컨대 술을 마시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反復)하게 됩니다. 그런 이야기에는 요점(要點)이 애매할 뿐만 아니라 아예 없는 경우(境遇)도 있습니다. 술에 취해도 이야기는 할 수 있지만 글은 쓰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쓰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생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려운 작업(作業)입니다. 그러나 연습을 통해 일단 어느 정도 궤도(軌道)에 오르기만 하면 글쓰기가 한층 수월해지고 문장도 점점 세련(洗練)되어 집니다.
이백 자 원고지에 몇 장 정도는 생각나는 대로 쓸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십장 이상의 글을 쓸 때는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 글을 전개(展開)해나갈 것인지 충분히 생각하지 않으면 끝까지 쓸 수 없습니다. 즉흥적(卽興的)으로 글을 쓰다보면 글을 써나가는 동안에 추진력(推進力)이 떨어져서 논리가 일관적(一貫的)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조잡(粗雜)한 글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글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쓰는 힘’이란 이백 자 원고지 십장 분량(分量)의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런 긴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의 결과를 예상(豫想)하고 어떻게 쓸 것인지 계획할 수 있는 능력(能力)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글을 쓸 때 자신의 생각에 아무런 의미(意味)가 없으면 남들 역시 내 글에 공감(共感)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 다시 읽었을 때 스스로 공허(空虛)하게 느껴진다면 그 글에는 공공성(公共性)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유익(有益)한 줄 알고 말하던 사람도 막상 그것을 글로 써보면 그것이 얼마나 얄팍하고 무의미(無意味)한지 깨닫게 됩니다. 글쓰기는 그런 사실을 자각하는 좋은 계기(契機)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글을 쓸 때는 그 글에 과연 어떤 중요(重要)한 의미가 담겨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백 자 원고지 한 장의 짧은 글이라도 그 한 장에 어느 정도(程度)의 의미가 함축(含蓄)되어 있는지를 항상 체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톨스토이의 글을 읽어보면 잘 쓰고 못 쓰고를 논하기 이전에 한 문장(文章) 한 문장마다 너무나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 무의미한 문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뒤 문장은 앞에 나온 문장과 반드시 다르기 때문에 그 문장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문장은 항상 문어체(文語體)로 이야기 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쓰고 있는 문장이 얼마만큼 의미를 잘 표현(表現)할 수 있는지를 항상 의식하면서 생각을 정리(整理)해가는 작업입니다. 말은 순간순간 사라지기 때문에 지금 자기가 말하는 내용(內容)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지 일일이 파악(把握)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조리(條理)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글 쓰는 과정에서 글에 함축된 의미를 정확히 감지(感知)하는 감각을 길러야 합니다. 그런 감각이 있으면 말을 할 때도 문장을 쓸 때와 같이 의미(意味) 있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보통 한 시간 반 정도의 글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을 쓸 때는 마치 키보드로 문자를 빠르게 작성하고 있는 듯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주어(主語)와 술어(述語)가 서로 호응(呼應)하고 있는지, 혹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다음 이야기와 어떤 식으로 연결(連結)될 것인지 하는 글의 구성(構成) 즉 각 절과 장의 연결이 머릿속에서 정리됩니다.
머릿속에 그러한 이미지가 잘 정립(定立)되면 즉흥적으로 샛길로 빠지기도 합니다. 글을 제대로 구성해두면 크게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해도 어렵지 않게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흐름도 염두(念頭)에 두지 않고 두서없이 이야기를 꺼내면 자기 자신도 이야기가 어디로 진행(進行)될지 모릅니다. 작자 본인이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모르는데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當然)합니다. 그러면 보는 사람은 바로 싫증이 나게 마련입니다. 만일 작자가 주도세밀(周到細密)하게 한 시간 반 정도 글을 썼는데 보는 사람이 의미 있는 문장이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상당히 수준(水準) 높은 문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독자를 납득(納得)시킬 수 있는 이야기 즉 제대로 구성(構成)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지금까지 논문(論文) 쓰는 훈련(訓練)을 거듭해왔기 때문입니다. 의식적으로 문장을 물 흐르듯이 서술(敍述)함으로써 문장에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달(傳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장력(文章力)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말도 조리 있게 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사고력(思考力)도 향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자신의 생각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것인지를 항상 확인(確因)해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문장력을 길러주는 독서(讀書)를 잘 해야 합니다. 나아가 문장력을 향상시키고 문어체(文語體)로 말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독서(讀書)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방대(厖大)한 양의 책을 읽습니다. 그저 맹목적(盲目的)으로 아무것이나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장력을 기르기 위한 방법(方法)으로 독서를 합니다.
앞으로 사물을 제대로 판단(判斷)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매우 불리한 시대가 올 것입니다. 예컨대 사업가도 양분(兩分)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생각하는 일 즉 일을 기획(企劃)하고 그것을 실행하거나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수행(遂行)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정사원(正社員)으로 회사의 중심이 됩니다. 그리고 그 이외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직종은 아르바이트나 파견사원(派遣社員)으로 구성될 것입니다. 결국 생각하는 능력(能力)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크게 좌우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문장력을 길러서 사고력(思考力)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꼼꼼히 생각하는 능력을 어떻게 기를까? 기획안(企劃案)을 쓸 때 사실 서식이나 형식(形式)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기획안의 내용(內容) 자체에 의미가 있는지 그것이 남에게 어느 정도 영향(影響)을 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기획안의 내용이 좋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傳達)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획 자체에 별 의미가 없다면 표현이나 문체가 아무리 잘 정돈(整頓)되어 있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發揮)하지 못합니다. 즉 쓰는 형식이나 시각적(視覺的)인 면에서의 작은 아이디어 혹은 문안 작성자(文案作成者)처럼 센스 있고 세련(洗練)된 표현은 별로 중요한 사항이 아닙니다.
기획 자체가 가치(價値)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주제(主題)에 대해 철저히 파악(把握)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必要)합니다. 즉 기획을 제시(提示)하는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획안 자체를 정리(整理)하는 방법이 문제인 것입니다. 정리한다는 것은 머릿속에서 모든 상황(狀況)을 설정하고 남들이 의문(疑問)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점에 대한 답안(答案)을 모두 찾은 뒤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기획안으로 완성(完成)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결국 다른 사람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을 대체할 만한 아이디어를 쉽게 생각해낼 수 없을 정도로 완벽(完璧)하고 꼼꼼하게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고(思考)를 끈기 있게 하는 것도 문장력을 향상(向上)시켜주는 방법입니다.
문장은 새로운 의미를 창출(創出)합니다. 우리는 무언가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글을 씁니다. 그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글을 적절(適切)히 구성해야 합니다. 논리적이면서도 생명력(生命力)이 넘치는 글은 그것이 개인적인 체험(體驗)이냐 객관적인 내용이냐 하는 것보다 잘 구성된 글인지 여부(與否)에 달려 있습니다. 잘 구성된 글은 주제를 정확(正確)히 전달하기 때문에 독자가 어떤 질문(質問)을 제기해도 답변(答辯)해줄 수 있습니다.
나는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몇 번이나 읽었는데 그때마다 ‘이 책에 이런 부분이 있었나?’하고 새삼 놀랍니다. 그것은 작가가 이 계몽적(啓蒙的)인 글을 즉흥적(卽興的)으로 쓴 것이 아니라 그만큼 철저하게 구성(構成)했기 때문입니다.
글쓰기에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무의식적(無意識的)으로 문장이 술술 떠올라서 마치 서기가 된 것처럼 글을 받아 적지는 않습니다. 자기 자신과 정면(正面)으로 마주할 때 사람은 비로소 글을 쓸 수 있으며 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내면세계(內面世界)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가 책 속에 쏟아 넣은 방대한 의미에 압도(壓倒)되어 그가 얼마나 천재적(天才的)인 작가였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글을 쓰는 것은 새로운 의미를 창출(創出)해내는 행위입니다.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은 곧 가치를 창조(創造)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것은 전문 작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평가(批評家)들 중에는 남의 작품을 비방(誹謗)하고 헐뜯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남의 작품(作品)에 대해 비평을 할 때 그 작품의 의미(意味)를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방해서 가치(價値)를 떨어뜨리는 글만 씁니다. 그런 비평을 읽으면 독자는 그 작품을 읽을 의욕(意欲)이 사라집니다. 비평가들은 작품을 비판(批判)함으로써 ‘나는 이렇게 작품을 보는 안목(眼目)이 있다.’, ‘나는 견식(見識)이 있어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자기주장(自己主張)을 피력하는 것입니다.
어떤 작품을 비평할 때는 그 작품(作品)과 접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만남의 장을 제공(提供)해야 합니다. 정확하고 예리한 비평문(批評文)을 쓰는 것이 참된 의미이기도 합니다. 독자에게 그 작품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시야(視野)를 넓히는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그렇게 독자의 뇌와 작가의 뇌가 서로 감응(感應)해서 불꽃이 튀는 듯한 만남의 기회(機會)를 만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비평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주변(周邊)에서는 이러한 만남을 가져다줄 만한 비평을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의미를 창출하기는커녕 가치 있는 작품을 우습게 보는 비평가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이지만 가치(價値)를 떨어뜨리거나 가치를 잃게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簡單)합니다. 그러나 가치를 높인다거나 가치 있는 것을 발견(發見)한다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創出)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톨스토이가 ‘부활’을 창작하자 문학세계(文學世界)는 크게 변했습니다. 그때까지 세상에 없었던 문학이 창조(創造)된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음미(吟味)하고 주제를 분석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은 더더욱 방대한 양의 가치를 창출(創出)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톨스토이가 창작한 소설에 대해 누군가 “이런 소설은 재미없어. 볼만한 가치도 없어”라고 비평하고 그런 인식(認識)이 널리 퍼졌다면 아마도 톨스토이의 가치를 저하(低下)시킬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을 기회와 오묘(奧妙)한 문학의 세계를 맛 볼 기회를 잃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위대한 작품은 그 속에 엄청난 의미를 함축(含蓄)하고 있습니다. 천재적인 작품에는 한 사람이 평생을 들여도 흡수(吸收)하기 어려울 만큼의 깊은 의미가 내재(內在)되어 있습니다. 소설이나 에세이, 혹은 평론 등 대부분의 글 쓰는 일은 많든 적든 반드시 소재(素材)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소재로 글을 쓸 때는 거기에는 새로운 가치(價値)를 발견하고 창조(創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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