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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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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의 감옥, 고독의 방, 혼자 있는 시간, 고독연습 혼자 할 용기 있을까?

홀로 고독연습을 할 용기(勇氣)를 가지고 이 글을 씁니다.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은 내안의 감옥, 고독의 방, 혼자 있는 시간이 나를 다시 성찰(省察)하게 합니다. 평범한 사람인 나를 강한 인간으로 만드는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는 혼자 있는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의 힘, 그 무한한 가치(價値)에 대해 알아봅니다.

사람은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외로움과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혼자 가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시간을 늘려가는 연습(演習)을 통해 외로움을 절망의 시간이 아닌 희망의 기회이자 위대한 가능성을 발효시키는 시간으로 만들어가야 비로소 도약(跳躍)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변변한 직업도 없던 나를 강한 인간으로 만든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은 거대합니다.

기회는 혼자 있는 순간에 오기 때문에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습니다. 함께 있다고 다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아니라 끝까지 나를 믿어줄 사람은 나뿐입니다. 자신의 상태를 상대와 비교(比較)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파악하되 남의 인정이 독(毒)이 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자기 긍정(肯定)의 힘을 키워야 성공은 자신감이 아닌 자기 기대감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익숙한 관계와 단절(斷切)해야 나쁜 감정도 에너지로 바꿀 수 있습니다. 혼자 잘 설 수 있어야 함께 잘 설 수 있습니다.

반백을 훨씬 넘긴 인생에서 몇 년 정도 더 늦어도 상관없다고 대범(大凡)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나라면 몇 년 늦은 정도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만 십대 때 일 년은 긴 시간으로 느껴졌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에 시름시름 앓다보니 입시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재수를 했지만 그렇더라도 다시 일 년 대입(大入)을 위해 허비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용납(容納)되지 않았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상황도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물론 일 년은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지금과는 달리 단체(團體)에 속해 매일 같이 경쟁(競爭)해야 했던 십대 때의 일 년은 정말이지 긴 시간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몇 년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悲慘)했습니다. 그 무렵 나와 술을 마셨던 사람들에게 상당한 주사(酒邪)를 부렸기 때문에 이 기회에 사과(謝過)하고 싶습니다.

사람이란 함께 있다고 다 좋은 영향(影響)을 주고받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좋은 영향을 주기도 때로는 나쁜 영향을 주기도 할 테이니 말입니다. 늘 좋을 수만은 없지만 아무튼 모두 자신을 너무 소중히 여깁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 진짜 자신의 모습(模襲)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스스로도 그것을 느낄 터이고 상대 또한 그것을 알기에 깊이 사귀려 하지 않습니다. 모든 친구에게 유쾌한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도량(度量)이 넓은 사람이라면 공평하게 모두를 배려(配慮)하겠지만 일반적으로 타인을 위해서라기보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 엄격하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친구(親舊)에게 호감을 살 생각은 접고 친구로부터 고립되어도 좋다고 마음먹고 자신을 관철(觀徹)해가면 진정한 의미에서 모두를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인정(認定)이 독이 될 수도 있으니 상대적으로 평가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평가(評價)해야 합니다. 끝까지 나를 믿어줄 사람은 나뿐입니다. 

나는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애독합니다. ‘인생독본’을 읽으면 나 역시 혼자만의 시간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독본‘에는 한가해서 쓸쓸한 것을 고민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기분일까를 알려줍니다. 다른 어떤 일에도 관여(關與)하지 않고 혼자 있는 나에게 힘을 가지라고 독촉(督促)합니다.

잘 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완전(完全)한 내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되어 자신의 개성(個性)과 성격을 전부 드러내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맞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자신의 중심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톨스토이는 고독(孤獨) 속에서 창조의 풍요로운 시공을 보고 있었습니다. 즉 문학가들이 정신적으로 강한 것은 고독의 힘을 스스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강인함은 단독인(單獨人)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누구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이 세상에 자신을 이해(理解)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절망감(絶望感)에 빠집니다. 그럴 때 직면한 상황의 의미를 찾고 자신만큼은 항상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훈련이 되어 있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고독을 긍정적(肯定的)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떠한 시련에도 쉽게 꺾이지 않습니다. 중요한 순간에는 대인관계(對人關係)를 끊어도 좋습니다. 즉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어야 세상물정을 헤아리는 소중한 경험을 체득(體得)하게 됩니다.

인생에는 승부(勝負)를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교제(交際)를 완벽하게 끊고 하고 있는 일도 철저히 정리하여 생활 전체를 점검(點檢)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거의 모든 시간을 온전하게 활용(活用)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수입이 없어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감수(感受)한다면 귀한 시간을 손에 넣기란 의외로 간단합니다. 원치 않던 고독에 빠지면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들지만 적극적으로 고독을 직면(直面)하면 강해집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일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혼자 있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 봐도 젊은 시절에 몇 년 정도는 고독의 시간을 경험(經驗)했습니다. 그 단독자의 혼이 밑바탕에 수맥(水脈)처럼 쉼 없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혼자가 되면 되는 대로 충실하고 창조적(創造的)인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이용하여 혼자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세계를 즐길 수 있다면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어도 충실한 날을 보낼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고 혼자가 되어도 만족(滿足)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젊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습관 즉 고독의 기술(技術)을 익혀둬야 가능한 일입니다.

친구와 함께 안락(安樂)한 날만 보낸 사람은 갑자기 혼자가 되었을 때 외로움을 감당(堪當)하지 못합니다. 애초에 뭘 해야 할지를 모르니 그저 단골술집에 드나들며 좋아하는 술이나 안주가 나오면 기뻐하는 발전 없는 즐거움이 인생의 목적(目的)이 되어버립니다. 단골술집에서 낯익은 사람과 잡담(雜談)을 나누다가 돌아와 잠자리에 드는 인생이라면 고독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후회(後悔) 없이 살았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혼자가 되었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여기에서 좋은 고독과 나쁜 고독의 갈림길이 나뉩니다. 무리(無理)하면서까지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은 우정과 연애(戀愛)도 중요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됩니다. 적극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기 안의 샘을 파고 지하수(地下水)를 퍼 올려야 합니다. 자유롭게 내면에 축적(蓄積)된 내공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매력적(魅力的)으로 보입니다. 혼자여도 괜찮다는 당당함이 여유로움과 안정감(安定感)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는 일마다 제대로 풀리지 않고 친구도 연인(戀人)도 떠나는 순간은 누구나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때의 외로움은 겪어본 사람만이 압니다. 그러나 고독을 극복(克服)하고 내면에 깊이를 더한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수동적(受動的)인 고독을 넘어 적극적인 고독을 선택한 사람은 안락(安樂)한 자리를 뿌리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멋지고 빛납니다.

별 어려움 없이 평탄(平坦)하게 자라서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어두워 보이지 않지만 내면에 어두운 성격(性格)이나 기억을 깊숙이 감추고 견디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만큼 암울(暗鬱)한 시기를 보냈기에 다시는 그 시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거나 그 시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 소중하게 여기자는 마음이 강하게 숨겨져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여러 명 있다는 것은 축복(祝福)입니다. 그러나 가까운 친구와 사이가 틀어지거나 멀어지면 그 고독을 감당하기는 더욱 힘듭니다. 하지만 긴 인생에서 그런 일도 종종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이때 곁에 친구가 없어도 침울(沈鬱)해 하지 말고 이 정도 외로움은 견딜 수 있고 나만을 위해 충실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을 전환(轉換)할 수 있는 취미가 있으면 좋습니다.

누구에게나 가장 좋은 동료(同僚)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친구로 되어주어야 합니다. 특히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세상에 자기편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럴 때에도 '나만은 내편'이라는 생각을 분실(紛失)하지 않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나는 남의 흉내나 내는 글은 쓰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 십대 나이였던 나는 자신이 지향(志向)하는 문학의 방향성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목표가 보이지 않는 여정(旅程)을 혼자 걸어가면서 외로움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안이(安易)하게 자신을 위로해줄 친구나 가벼운 문학을 찾아 쉽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 동안에 철저하게 힘을 비축(備蓄)했습니다. 비축한 힘을 바탕으로 작업해나갔고 그 힘을 다 소모(消耗)한 후에는 다시 작업을 하며 힘을 비축했습니다. 문장의 아이디어는 변해도 기본노선(基本路線)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필요 없는 버려야 할 감정(感情)은 진작 흘려보내야 합니다. 이 말의 느낌이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귓가에 달콤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생각을 일정 정도 자기 안에 꾹꾹 담아두면서 성숙(成熟)시키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생각한 것을 말하지 않으면 체한다는 말도 있듯이 담아두기만 하면 머릿속에 부정적(否定的)인 생각이 가득 차 정신적으로 위험(危險)해질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꾹꾹 눌러두었다가 한꺼번에 터지면 큰일이기 때문에 그 전에 능숙하게 생각과 감정을 해소(解消)해야 합니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만 되뇌면 그것은 자신을 상처(傷處) 내는 칼이 됩니다. 그러나 감정을 능숙하게 표출(表出)하면 마음에 쌓인 것이 해소됩니다. 말이 마음속의 더러움이나 응어리를 흘려보내는 역할(役割)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혼자일 때는 담아둬도 좋지만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는 표현(表現)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항상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는 물음으로 스스로를 들볶고 의미 없는 답으로 쉽게 나는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궁지(窮地)로 몰아넣습니다. 고독에 삼켜져 세상에 대한 공격적(攻擊的)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을 방지(防止)하려면 먼저 마음의 상태에 영향을 주는 몸의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고독(孤獨)합니다. 내가 완전히 공감(共感)하기엔 많은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시이지만 조금이나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화자(話者)의 감정에 공감하고 있다면 서글픈 일입니다. 나는 감수성(感受性)이 지나칠 정도로 예민해서 남의 기분을 앞서 이해하는 바람에 오히려 자신을 상처(傷處)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언어로 승화(昇華)시키는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때문 자기 생각과 감정을 능숙하게 해결(解決)하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평범한 사람을 싫어한다는 나를 발견했을 때 내가 어딘가 심보가 삐뚤어진 사람인 것 같습니다. 친구도 없는 자신을 동정(同情)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악인‘을 너무나 닮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오만(傲慢)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 그 정도의 오만함은 가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강한 자신과 그로 인한 오만함에 의해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이 생겨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젊은 시절에 가눌 길 없는 고독을 버티게 해줄 힘은 자신에 대한 기대(企待) 밖에 없습니다. 나는 자기에 대한 기대를 뜻하는 '자기력(磁氣力)'이라는 말을 학창 시절 내내 가슴에 새겼습니다. 실연(失戀)이 주는 상실감은 빨리 떨쳐낸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괴롭겠지만 그때가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을 철저하게 느끼고 이별(離別)의 이유에 대해 곱씹어보아야 합니다. 그러고는 애련(愛戀)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게 좋습니다. 그런 시간을 보내야 성숙(成熟)해집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사람의 마음도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내면에 깊이가 생깁니다.

심리적으로 남자들이 이별 후에 오는 고독(孤獨)을 훨씬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혼자 남겨진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스토커처럼 상대에게 집착(執着)하며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상대를 사랑해서 헤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가 되기 싫어 쫓아다닐 뿐입니다. 사랑 후에 오는 고독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은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두려워도 사랑의 고독을 견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주는 의미 있는 순간들을 충분(充分)히 누릴 수 없습니다.

성장의 기회가 되는 이 시간을 충분히 누리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새로운 애인(愛人)을 찾지 않는 것도 방법입니다. 마음이 정리(整理)되기 전에 다른 이성을 만날 경우 같은 문제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헤어진 원인(原因)과 자신의 반응 등 한 번의 사랑을 통해 알게 된 나의 문제를 반추(反芻)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몇 번의 사랑이 와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뿐입니다. 친구가 돌아서거나 배신(背信)당했을 때는 일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섰을 때에는 감정의 세계에 푹 빠져야 그때 우리는 성장(成長)할 수 있습니다.

성장하려면 적어도 한 번은 익숙한 지점(地點)에서 빠져나와 그것들과 단절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수집가처럼 자신의 쾌락(快樂)에 안주하는 것은 행복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안정감(安定感)을 주지만 결국 어른이 되지 못한 남자로 남을 뿐입니다. 그런 사회성(社會性) 없는 상대를 인생의 파트너로 삼는 것은 불안한 일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평소 많이 듣고 접했던 내용들을 자신의 경험을 통한 예시와 좋아하는 문구들로 길게 풀어 엮어놓은 글을 읽은 것 같습니다. 새로울 건 없었지만 생각하고 있던 바를 좀 더 명확히 해준 ’인생독본(人生讀本)‘은 혼자 있는 시간과 타인과 공유하는 시간의 적절한 균형이 중요합니다. 고독을 정신적인 성장과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構築)하는 발판으로 삼으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의 고독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려주진 않지만 그 시간 속에서 스스로 성장해야하는 이유(理由)를 끊임없이 일컬어 주고 있습니다. 최소한 그것만으로 읽을 가치는 충분(充分)하다는 생각하고 그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 해결방법(解決方法)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依存)하는 성향이 강해서 자신의 존재감(存在感)을 타인의 인정으로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너무 강한 저자(著者)의 가치관에 탄복을 금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지독하게 고독한 사람들이 읽는다면 아마도 새로운 생각의 환기(喚起)를 가져다줄 좋은 책이 되지 않을까 추천(推薦)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자기와 정면으로 대면(對面)해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건 혼자만 있다고 무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렵고도 난해(難解)합니다. 이제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스스로에게 자문(自問)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습니다. ’인생독본‘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든 생각인데 톨스토이는 왜 이런 글을 썼을까요? 책을 펼쳐든 순간부터 제목이 한 눈에 안겨와 흡인력을 강하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완전한 내가 될 수 없는가를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점차 나는 다른 사람을 의식(認識)하게 되면 자신의 개성과 성격을 전부 상대방에 맞추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중심(中心)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고 이러한 기회(機會)는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있는 시간에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혼자 있기를 두려워해 소속감(所屬感)이나 가까운 친구가 없으면 낙오자(落伍者)가 된 것 같아 관계에 필요 이상으로 힘을 쏟습니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관계에 휘둘리는 사람은 평생 다른 사람의 기준(基準)에 끌려 다닐 뿐입니다. 타인에 휘둘리지 않는 미움 받을 용기(勇氣)는 혼자 있는 시간에 더 강해집니다. 사람은 혼자일 때 성장(成長)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방랑(放浪)은 그 자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책략입니다. 마음이 한곳에 머물면 상태는 악화(惡化)되지만 걷기 시작하면 주변의 풍경이 바뀌어 갑니다. 주변 풍경이 내 뒤로 흘러가고 그런 흐름에 융화(融化)되면 마음도 흘러갑니다. 이것이 외롭고 우울하다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은 지금껏 누군가에게 신세졌다는 의미(意味)입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는 사람일수록 남에게 폐를 끼치기 쉽습니다. 

우리는 남이 해준 것을 쉽게 잊어버리지만 자신이 해준 것은 사소한 것까지 기억(記憶)합니다. 그러한 모순(矛盾)을 인정하면서 쌍방 양보 중 의견 교환(交換) 부분만 철저하게 떠올려보면 자신의 진짜 마음이 보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고 어떤 일이든 혼자서 잘 극복(克服)할 수 있다는 자심감도 잃어갑니다.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주위의 불필요한 관심사(關心事)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야 합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 남의 일, 걱정해도 달라지지 않을 일들을 정리(整理)해서 버리기 위한 연습은 혼자 있는 시간에 옵니다.

나이가 들수록 꿈과 타협(妥協)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형편없는 사람으로 꿈을 현실로 이루지 못한 사람으로 여기고 실패자(失敗者)로 생각하게 됩니다. 혹시 좌절(挫折)을 경험했다면 그 후에 꿈을 조금씩 수정(修正)해가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참다운 공부가 필요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마치 세상에 내 편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럴 때 중요한 건 '나만은 내편'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자기 긍정(肯定)의 힘과 '나만은 내편'이라는 생각이 어우러지면 남과 비교(比較)되었거나 외로울 때 잃었던 자신감이 회복(恢復)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원래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理解)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어쩌면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가능한 한 상대의 입장(立場)에서 생각하게 되고 더 이해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진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전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일들이 이해되며  '공감 능력(共感能力)'이 생기고 상상력, 아름다움, 이해력, 포용력(包容力)이 점차 갖춰지게 됩니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은 이러한 감정들을 나의 내면과 대면시켜 더욱 성숙(成熟)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남의 눈치 안보고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때는 혼자 있는 시간입니다.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찾아내고 즐기다 보면 '혼자'라는 것이 부정적(否定的)으로 다가오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자기만을 위한 재충전(再充電)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긍정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부러지지 않는 마음을 단련(鍛鍊)해야 합니다. 혼자서도 위축(萎縮)되지 않을 때 비로소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타인이라는 ’감옥(監獄)‘의 탈출을 위해 ’이기적 삶‘의 권유(勸誘)가 필요합니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기 위한 여러 단계 여정(旅程)을 거치면 내 안의 ’선물(膳物)’이 보입니다. 변화(變化)의 시작은 하루 조금 생각하면 족(足)합니다. 

타인의 시선(視線)으로 보는 세상은 더 소중(所重)한 삶을 위해 지금 멈춰야 할 것들입니다. 남과 다른 나를 찾는 자기 발견의 기술(技術)의 키워드는 ‘나답게’입니다. 나답게 살아가기를 삶의 중심(中心)에 둔다면 ‘인생투정이’의 행복(幸福) 찾기도 가능해집니다.

나는 단단하게 살 것이라는 결심은 결국 단단하게 사회를 살아내기 위한 방법이자 욕구(慾求)입니다. 그 변화는 나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솔직히 나는 고독을 느끼고 삶을 개발(開發)하려고 간절히 생각하면 반드시 강하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행복을 포기(抛棄)하지 말고 간절함이 열정을 이기며 내 인생의 기적(奇績)은 나로부터 시작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건 바로 자기계발서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자기계발(自己啓發)의 힘은 자신감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계발의 경우 더더욱 자기계발서의 포인트를 잘 살려 문장전체를 자기계발로 만들어낸 글이 재미있고 재치 있고 잘 엮어진 글이라 주장(主張)합니다. 어쩜 센스 있게 잘 엮어 마음에 드는 글이라 생각되어 공들여 적어봅니다.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는 그다지 선호(選好)하지 않습니다. 인생스토리와 삶의 내용은 제각각이지만 결국 시사(時事)하는 바는 비슷하고 몇 줄 읽으면 비슷한 내용들이 많아 이제는 일부러 찾아보는 종류의 글은 아닙니다. 넘쳐나는 자기계발서 속에 실제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자기계발서는 몇이 안 됩니다. 성공스토리와 무용담(武勇談)을 나중엔 꼭 써보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평범한 나의 이야기를 엮는다는 부푼 기대감(期待感)을 안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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