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燕巖)의 문장은 퇴계와 율곡의 도학(道學), 충무공 이순신의 용병술(用兵術)과 더불어 조선의 세 가지 최고(最高)입니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연암 박지원(朴趾源)을 꼽는 데 이의가 있는 이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문장가로서 연암의 탁월함은 타의 추종(追從)을 불허합니다. 택당(澤堂) 이식, 계곡(雞谷) 장유, 상촌(象村) 신흠, 고산(孤山) 윤선도 등 최고라 꼽을 만한 문장가는 많지만, 현재도 꾸준히 독자에게 사랑을 받는 문장가는 단연 연암 박지원입니다. 그렇다면, 연암 박지원의 글은 어떤 이유(理由)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評價)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열하일기(熱河日記)”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은 조선을 대표하는 문장가 중 한 사람입니다. 새롭고 파격적인 형식과 날카로운 주제의식(主題意識), 탁월한 표현력을 가진 연암의 글은 18세기의 보수화된 조선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문체(文體)를 어지럽힌다’는 보수층(保守層)의 비난을 정통으로 받으면서도 한편에서는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기려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연암의 글은 여전히 찬탄(贊嘆)의 대상입니다. 고미숙 작가는 ‘열하일기’를 "조선 시대 최고의 기행기"라고 평했고 박희병 교수는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한국에는 박지원이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실제로 연암이 시도했던 글쓰기 전략(戰略)은 비단 조선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신선(新鮮)함을 잃지 않습니다. 글의 첫 머리에서부터 과감하게 논쟁을 촉발(觸發)시키는 도발적인 화법, 시시콜콜한 설명 대신 장면에 초점(焦點)을 맞추는 이야기 전개, 까마귀 깃에서 다채로운 색을 찾아내고 울음에서 통쾌(痛快)함을 끄집어내는 등 사물의 관습적인 이미지를 벗어나는 자유로운 표현력(表現力)은 오늘날에도 쉽게 쓰이기 어려운 참신(斬新)한 글쓰기 방법들입니다.
20년 동안 연암 박지원을 연구해 온 한양대학교동아시아문화연구소 박수밀(朴壽密) 교수는 이런 연암의 글이 글을 잘 쓰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도 훌륭한 본보기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의 책 “연암 박지원의 글짓는 법(돌베개)”는 연암의 글을 ‘글쓰기 전략’이라는 관점(觀點)에서 다각도로 분석한 책입니다. 세부적인 표현 요령(要領)이나 주제의식은 물론 글을 대하는 기본 정신, 글 쓰는 사람이 가져야 할 세계관(世界觀)과 문제의식까지 두루 다루고 있습니다.
내용이 오묘하지만 차근차근한 박 교수의 글을 읽노라면 깨달음도 찾아오고 궁금증도 생깁니다. 특정 지식인들만이 한자로 글을 나누던 옛날부터 SNS로 쪽 글이 날아다니는 오늘날까지 변하지 않고 적용(適用)될 수 있는 ‘좋은 글’의 비결이 과연 존재할까요? 존재한다면 대체 그 비결(祕訣)은 무엇일까요? 홍대의 한 카페에서 박수밀 교수를 만나 ‘조선 최고의 문장가(文章家)’ 박지원과 그의 글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창강(滄江) 김택영(1850~1927)이 연암의 글쓰기를 평가한 말입니다. 혹자는 연암을 ‘영국의 셰익스피어에 비견(比肩)될 만한 문장가’라고 일컫습니다.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을 펴낸 박수밀 교수가 연암의 문장에 대한 찬사로 강연(講演)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20여 년 전, ‘연암 박지원의 문예 미학 연구’로 박사학위(博士學位)를 받았고, 현재는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硏究敎授)로 재직 중입니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강연에서, 그는 연암에 관한 해박(該博)한 정보와 깊이 있는 발견을 독자와 나누었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박수밀 교수의 강연을 듣기 위해 서대문구(西大門區)에 위치한 이진아도서관에 모인 독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박수밀 교수는 글을 잘 쓰기 위한 요령(要領)을 일러주었습니다.
1) 서술어에 유의하라.
‘-이다. -하다’ 로 끝을 낸다. 흔히 ‘-인 것이다.’, ‘-라고 할 수 있다.’, ‘-인 것 같다.’를 많이 쓰는데 이런 문장들은 안 쓰는 편이 좋다.
2)같은 표현은 반복 하지 마라.
‘노래를 하고 티비를 시청하고 식사를 한다’라는 표현보다는 ‘노래를 부르고, 티비를 보고, 밥을 먹는다’가 좋은 표현이다. 한자어나 관념적, 추상적인 사어보다는 감각적인 동사를 사용하라.
3) 말을 아껴라.
실용적인 글을 쓸수록 형용사, 부사를 삭제하라. ‘굉장히’, ‘많이’, ‘아주’보다는 ‘퍽’, ‘참’을 쓰면 좋다. 중언부언하거나 늘어지는 느낌이 줄어든다.
그는 세 가지 비결(祕訣)을 독자들에게 일러주며 요령의 문제는 시간 안에 해결(解決)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요령 밖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연암 박지원의 문장이 독보적(獨步的)인 이유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것입니다. 그의 글쓰기 정신이 오늘 날에도 통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믿음의 근거(根據)를 따라가 봅니다.
연암의 글을 논하기 전에, 그가 살았던 시대의 보편적(普遍的)인 글쓰기를 알아두면 좋습니다. 압도적(壓倒的)으로 우세했던 고문(古文)과 소수의 학자가 주장했던 금문(今文)이 있습니다. 고문(古文)스타일의 글쓰기는 과거 경전(經典)에 쓰인 글을 모범으로 한 글쓰기입니다. 반면 금문(今文) 스타일은 내면의 자유로운 생각과 형식이나 수사(修辭)를 중시합니다.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는 ‘법고창신(法鼓昌新)’이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옛것을 본받되, 변화의 정신을 갖는 것입니다. 나아가 저자는 이것을 상생의 의미로 확대(擴大)했습니다.
옛것을 전범(典範)으로 삼는 사람은 낡은 자취(自取)에 빠지는 것이 병통이고 새롭게 만드는 사람은 상도(常道)에 어긋나는 게 걱정이다. 진실로 옛것을 본받되 변화(變化)를 알고 새롭게 만들되 법도(法道)에 맞는다면 지금 글이 옛글과 같을 것이다.-박지원, <초정집서(楚亭集序)>
저자 박수밀이 이야기하는 연암의 글쓰기의 본질은 ‘천지자연(天地自然)을 문장으로 보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글자는 기호(記號)이며 책을 문장이라 봅니다. 그러나 연암은 자연의 생동, 몸짓을 문장으로 여겼습니다. 이는 문자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轉換)입니다.
연암은 그의 저서 “종북소선자서(鍾北小選自序)”를 통해 ‘벌레의 더듬이와 꽃술에 관심이 없는 자는 도무지 문장의 정신(精神)이 없는 것이고, 사물의 형상을 음미(吟味)하지 못하는 자는 한 글자도 모른다고 말해도 상관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고 교감(交感)하는 등 하찮은 것에서부터 관심을 갖고 출발(出發)해야 제대로 된 문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연암의 글쓰기의 본질(本質)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작가 박수밀이 말하는 연암의 글쓰기 비법(祕法)을 엿볼 시간입니다.
1. 기록하고 메모하라.
열하일기의 한 대목 중에 그의 봇짐 안에는 필담(筆談)했던 초고와 여행 중에 쓴 일기가 두툼하게 들어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성호사설(星湖僿說)’, ‘열하일기(熱河日記)’, ‘지봉유설(芝峰類說)’ 등의 책이 모두 그의 기록하는 습관의 산물(産物)들이다.
2. 사물의 생태를 꼼꼼히 관찰하라
저 까마귀를 보라. 그 날개보다 더 검은색이 없긴 하나 얼핏 옅은 황금색이 돌고, 다시 연한 녹색으로 반짝인다. 햇볕이 비추면 자주색으로 솟구치다, 눈이 어른어른하면 비취색(翡翠色)으로도 변한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은 것이고 다시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상관없는 것이다. 저 삼루(三漏)는 본디 정해진 색이 없는데도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 버리는 것이다.
연암은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를 통해 까마귀 깃털색의 미묘함을 짚어냈다. 모네가 루앙성당을 시시각각 다른 빛의 양에 따라 달리보이는 색채로 칠한 것과 같은 맥락(脈絡)이다. ‘왜 사람들은 개성과 스타일, 가치를 하나로 두는가’에 대한 물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로움 추구, 예법을 벗어나는 성품(性品)이 글에서 드러난다.
3. 사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사물과 대화적 관계(對話的關係)를 만드는 것이 글쓰기의 본질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물은 자연사물을 말한다.
연암의 대표작 “호질(虎叱)” 은 형식적, 정신적인 면에서 뛰어난 작품입니다. 학교에서는 이 작품을 위선적(僞善的)인 유학자에 대한 풍자(諷刺)로 가르칩니다. 하지만 박수밀은 인간과 문명의 관계를 짚어낸 차원 높은 문제의식(問題意識)이라고 봅니다. 자연사물을 대표하는 호랑이의 관점에서 작품을 쓴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나 제임스 캐머런의 ‘아바타’와 비슷한 맥락(脈絡)입니다.
4. 상식을 의심하고 관습에서 벗어나라
마을의 어린애에게 천자문(千字文)을 가르치다가 읽기 싫어하기에 꾸짖었더니, 그 애가 말합디다. “하늘은 푸르고 푸른데 하늘 천(天) 자는 푸르지가 않아요. 그래서 읽기 싫어요.” 이 아이의 총명함이 창힐(蒼頡)을 굶어 죽이겠소. ‘답창애지삼(答蒼厓之三)’ 中에서
천자문의 시작 하늘 천(天), 땅 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은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하늘은 푸른데, 천자문(千字文)에서는 하늘은 검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상식이라고 생각하던 것의 맹점(盲點)을 짚었습니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상식 중에 콜럼버스의 달걀이 있습니다. 콜럼버스의 달걀이 창의적(創意的)인 발상이라고 강의를 하던 중, 한 학생이 지적(指摘)을 했습니다. 물리적으로 달걀을 억지로 깨뜨린 것을 제국주의적 발상(發想)이 아닌지 묻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新大陸)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원주민들의 터전을 침략(侵略)한 것입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을 뒤집어 보면 다르게 다가옵니다. 관점(觀點)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진실(眞實)은 달라집니다.
연암이 우리나라의 명동(明洞), 인사동(仁寺洞) 격의 북경의 유리창이라는 번화가(繁華街)를 간 기록을 보면, 그 곳에서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 장면이 나옵니다. 어느 곳에 가든, 관습적(慣習的)인 생각보다는 독특한 감수성(感受性), 길들여지지 않는 시선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특정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描寫)하는 그의 서술방식은 세밀한 관찰(觀察)을 통해 앎을 얻고 다작(多作)을 이룰 수 있었던 비법입니다.
5. 경계에서 생각하라
당시는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으로 ‘청은 오랑캐’라는 인식이 팽배(澎湃)했다. 그러나 연암이 바라본 북경의 문명은 유럽의 도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물론 척결(剔抉)의 대상을 인정한다는 것은 위험한 사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진리는 경계(警戒)에 있음을 박지원은 믿었다. 어느 한쪽편이 아닌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취하겠다는 입장이 그의 저서 ‘도강록(渡江錄)’에 드러난다.
내가 말했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닐세. 이 강은 이쪽과 저쪽이 만나는 경계로써,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지. 무릇 천하에 존재(存在)하는 백성의 도리와 사물의 이치(理致)는 물이 언덕에 경계한 것과 같다네. 도는 다른데서 구할 게 아니라 곧 이 경계에 있다네”
경계를 생각하는 연암의 인식이 열하일기(熱河日記)를 탄생시켰습니다. 각자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번역본(飜譯本)을 찾아서 일독(一讀)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외수(李外秀) 작가는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육안으로, 머리로(지식으로), 심안, 영안으로 본 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대상을 알기 위해서 관찰(觀察)하는 것이 영안(永安)을 보는 것이다. 모든 대상에는 양면성(兩面性)이 있다. 아무리 나쁘다고 하는 사람도 좋은 면이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양면을 보아야 객관성(客觀性)을 획득할 수 있다. 무엇이 나의 본질인지는 모르지만 하나하나는 다 진실이다.”
연암처럼 글을 쓰기를 위해서 ‘관찰’하고 ‘교감(交感)’하고 ‘대화적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박수밀교수가 이 글을 통해 최종적(最終的)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먼저 그는 일상의 평범한 것들에 의미를 발견해보길 당부(當付)했습니다.
“의미는 주어져 있지 않다. 그 자체가 의미(意味)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견해냈기에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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