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인생독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광범한 지식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깊고 훌륭한 지식을 선택(選擇)하라. 가령 추악한 것이 아닌 온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많음보다는 더 나은 소량(少量)을 택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참 좋은 글을 선택하는 기준(基準)이란 한마디로 단정 짓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글이란 읽는 사람의 심미관(審美觀)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간혹 책을 읽다 보면 오래 두고 좌우명(座右銘)으로 삼고 싶은 글이 있습니다. 또는 다른 사람에게 추천(推薦)하지 않고서는 못 견딜 정도로 아주 읽기 좋은 글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글들을 좋은 글이라고 점수(點數)를 주고 싶은데 바로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입니다.
‘인생독본’은 내용도 좋고 우리가 살아나가야 할 방향을 똑똑히 제시(提示)해줍니다. 북두칠성을 가리켜주는 나침반(羅針盤)으로 삼을 수 있는 글입니다. 하지만 좋은 글은 절대 내 것으로 되진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명언(名言)이라도 그건 ‘톨스토이‘가 한 말일 뿐이고 아무리 뜻있는 글이라도 해도 그 글을 쓴 사람의 관점일 뿐입니다. 그러나 맛있는 글은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소화시켜 자양분(滋養分)으로 삼을 수 있는 글이 됩니다. 삶을 생각하는 방식을 가르쳐주고 나를 배부르게 해주는 글입니다. 둘 다 마음의 양식(糧食)이라는 점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여 좋은 글만 찾아 읽는 나에게 맛있는 글은 기분을 전환시키는 좋은 변화를 가져다 주였습니다.
톨스토이 작가의 “인생독본”은 만인의 가슴에 동일하고 유일한 그 어떠한 것 자체의 빛을 던져주며 그리고 이 빛을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히 냉각(冷覺)하지 않는 따뜻함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더 맛있고 읽기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글 속의 뜻은 오묘(奧妙)하지만 읽기가 어렵지 않고 불꽃같이 심금을 울려주어 감화(感化)가 잘되는 글이라 생각됩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점차 내 물건의 크기를 실감(實感)하게 됩니다. 뭘 잘할 수 있고 또 뭘 잘 못하는지 스스로 알아갑니다. 경기(競技)에서 뒤처지는 게 두려워서 좋은 글을 찾아 읽고 그들이 전하는 교훈을 철칙(鐵則)으로 삼아 힘껏 달렸습니다. 근데 목숨 걸고 달린다고 막 속도가 내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삶이라는 게 생각한 것보다 쉽게 정해진 경주로(競走路)로 힘차게 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건 마치 달릴 땐 달리고 달리다가 지칠 때엔 멈추고 휴식(休息)하는 것 같습니다. 뭐 하나 정해진 게 인생(人生)인 것 같습니다.
인생의 출발점(出發點)에서 꼴등이라고 번번이 지란 법도 없고 일등이라고 매번 이기라는 법도 없습니다. 아니 애초 이 세상에 순위(順位)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를 좋은 길로 이끌어 줄 좋은 글들을 찾아서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또 심한 갈증(渴症)으로 목마름을 느낄 때에는 나의 목을 추기게 해 줄 맛있는 글을 읽어야 합니다. 쇼펜하워는 이렇게 말합니다. ’독서(讀書)는 단지 자기 사상의 샘이 고갈(枯渴)되었을 때만 하여야 한다. 이 고갈은 상당히 지혜 있는 사람들에게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종종 독서로 인하여 아직 확고(確固)하지 못한 자기 사상을 잃어버리는 수가 적지 않다. 그것은 마치 정신에 대해 죄를 범하는 것과 같다.‘
사실 책 리뷰라고 해놓고 책 내용은 하나도 안 쓴 기분입니다. 나만의 생각을 줄곧 늘어놨으니 책 리뷰가 아니라 책을 읽고 난 뒤의 내 마음 리뷰에 가깝습니다. 어떻게 보면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이 삶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 좋은 내용(內容)이라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 읽어보고 자신의 감상(感想)과 비교해볼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좌우명이지만 어쨌든 알아서 좋은 책이라는 느낌만을 잘 챙겨서 일독(一讀)하길 바랍니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읽으면서 나를 반추(反芻)해봅니다. 에세이와 일기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극과 극(極)은 통한다고 했습니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人生讀本)”을 읽으면서 톨스토이의 세련된 일기장을 숙독(熟讀)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잘 쓴 일기가 잘 쓴 에세이가 된 건지, 잘 쓴 에세이가 잘 쓴 일기가 된 건지. 하여간 이 노작(勞作)은 생명의 정령과도 같은 교훈적인 격언(格言)을 민중 본위로 캘린더 식으로 편집하는데 몰두(沒頭)했습니다. 따라서 솔직함과 부담 없는 감성(感性)은 나를 일기와 에세이의 무너진 경계 속에서 글쓰기의 또 다른 맛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나의 허물투성인 약점을 많은 사람에게 드러날까 봐 집구석에 그냥 숨어서 보내는 이야기나, 또 가만히 숨어서 다른 집안 부부싸움을 지켜봤다는 이야기처럼 '글이란 솔직히 쓰는 거야!' 따위의 결심이나 용기보다도 순수한 예술적인 성전(聖典)이라는 것을 무던히 느껴졌습니다.
톨스토이의 일기 같은 에세이를 읽으니 내 일기(日記)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어떻게 일기를 쓰고 있었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 필기노트에 저장(貯藏)되어 있던 일기 몇 개를 지금 쓰고 있는 관념(觀念)으로 옮겨 온 것도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읽은 직후였습니다. 일기를 쓰다 보면 나중에 다른 누군가 이걸 읽을 것만 같아서 꾸며서 쓰거나 창피(猖披)한 일은 에둘러 표현했습니다. 이중적인 관종(關種)이라 할 만합니다.
오히려 누군가 내 일기를 봐주길 바라는 마음인 걸까? 꾸밀 대로 꾸민 '솔직한 내 이야기'를 누군가 우연히 들춰보며 나를 알아가 주길 바라는 마음일까?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변태욕망(變態慾望)입니다. 나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한데 다른 사람들에게 읽으라고 쓰는 글은 얼마나 꾸며댈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어디선가에서 읽은 한 구절(句節)이 떠올랐습니다. '글을 쓸 때는 시간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욕심을 부린다. 잘 쓰려고 한다. 그래서 어렵다."
쓰다 보니 글쓰기에 대한 횡설수설(橫說竪說)이 되어버렸는데 아무튼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읽었던 재밌는 에세이들의 특징은 솔직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일들에 공감(共感)을 잘 못하면 글을 쓰는 데 은근히 치명적(致命的)입니다. 이걸 보니 이런 생각이 들고, 생각해보니 저건 그렇고 이건 또 저렇다 하면서 현상(現象)에 숨은 의미를 나름대로 풀어나가야 하는데 느끼는 바가 없으니 뭐 딱히 할 말도 없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스쳐지나가게 됩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이야기입니다. 감정의 폭(幅)은 커도 깊이는 딱히 짚지 못해서 뭘 써야 할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참 고민(苦悶)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없는 내용을 꾸며서 쓰려고 하고 없는 느낌을 지어서 썼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읽어보니 '나는 감정의 깊이가 깊지 않아', '나는 성격이 날카롭지 않아서 그래'라고 하는 게 다 핑계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깨끗할 것만 같았던 이웃집도 똑같이 어질러진 모습이어서 묘한 안도감(安堵感)을 느꼈다거나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整理)해주지 못해 미안했다는 이야기는 그렇게 대단히 특별하거나 유별한 관점(觀點)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냥 사는 이야기의 문제는 그걸 관찰(觀察)하는 데 얼마나 능숙한지의 차이입니다.
억지로 나를 바꾸고 다른 사람인 척하다 보면 결국 바닥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한 주에 한 권 읽기를 권합니다. 좋은 글을 공유(共有)하는 티스토리 계정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독서(讀書)가 중요한 일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번 달까지는 그동안 메모해놓은 내용들로 업로드 분량이 충당(充當)됐습니다. 이번 달에 들어서면서 내용(內容)을 찾는 게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계발을 위해 시작한 '1주 1권' 프로젝트가 과제(課題)가 아닌 과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억지로 아무 음식을 마구 쑤셔 넣듯 책을 읽다 보니 독서습관(讀書習慣)에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좋게 표현하면 책임감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강박증(强迫症)이 생겼습니다. 아직 조회수가 1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계정이지만 누군가는 재밌게 읽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의무(義務)로서 책을 대하게 된 것 같습니다. 책 편식(偏食)이 사라진 것이 두 번째입니다. 자기 계발서적 일색(一色)이던 독서목록에 에세이와 명언집(名言集)이 끼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인간관계나 우울감(憂鬱感) 같은 주제에 대한 소재를 찾으려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읽어 보니 은근히 가볍고 후루룩 넘어가는 맛이 있었습니다. '1주 1권' 독서 습관(習慣)에서는 강약 조절이 필수입니다.
러시아의 위대한 얼로 유명한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은 마음의 열정, 사랑에 번민(煩悶)하는 육체의 열광, 영혼을 말끔히 씻어주는 고뇌의 그런 맥락(脈絡)에서 삶을 동반하는 반려로 되었습니다. 이 불멸(不滅)의 인생 등불은 영원히 우리들 가슴에 잊혀 지지 않는 성좌(星座)로 빛날 것입니다. ‘새로운 출발을 찬양하라’란 제목으로부터 ‘이성과 사랑’ 그리고 ‘아름다운 삶, 작은 자유’로 끝나는 인생교과서로 잘 어울리는 담백(淡白)한 에세이입니다.
나는 내 인생을 응원(應援)해주는 그런 따뜻한 감성보다는 덤덤하게 일상을 풀어나가는 실생활과 조화(調和)를 이루는 그런 글을 읽고 싶었습니다. 한 줄 한 줄에서 엿볼 수 있는 톨스토이의 생명의 고동(鼓動)을 “인생독본”에서 마음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명대가(名大家)의 다른 소설도 몇 권 읽어본 적이 있는데, 책을 보자마자 그 감성이 딱 떠올라 바로 다운로드했습니다. 제가 존경(尊敬)마지 않는 이 위대한 작가에 대한 첫인상은 '넘치지 않는 당당함', '부담스럽지 않은 자신감(自信感)'이었는데 그게 꾸미지 않은 모습이라는 걸 책을 읽고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톨스토이의 격언(格言)으로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당신의 조그마한 독서실(讀書室) 안에 무엇이 있는가 생각하라. 수천 년 동안 온갖 문명으로부터 선택(選擇)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사람들과 가장 지체(智諦) 높은 사람들과 사귀어, 그들의 연구와 지혜의 성과를 그대는 찾아내야만 하리라. 그들은 은둔자(隱遁者)이며, 그래서 가까이하기 어렵고 고독(孤獨)을 즐기며, 그 정일(靜逸)의 휘저음을 싫어하고 또한 예법에 있어서는 그대와 동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가까운 벗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위대한 사상이 여기 후세의 낯모를 우리들을 위하여 기록(記錄)되어 있다고 생각하라. 우리들은 지혜의 샘에서 솟아나는 가장 중요한 은혜(恩惠)를 책에서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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