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5월 20일 전남 해남군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재심 첫 공판을 마친 김신혜씨가 1호 형사법정 밖으로 나오고 있다. 뉴시스
“위법 수사” vs “동기 충분…알리바이 없어”
아버지에게 다량의 수면제를 먹인 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김신혜(47·여) 씨의 재심 선고가 24년 만에 나온다. 사건 발생 28년, 재심 결정 9년 만으로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첫 재심 선고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재판방 박현수 지원장)는 존속살해·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된 김 씨에 대한 재심 선고 기일을 오는 18일 연다.
김 씨는 수면제를 탄 술을 아버지에게 먹여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2000년 3월 소아마비로 한 쪽 다리가 불편한 김 씨의 아버지는 자택에서 7km 이상 떨어진 전남 완도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현장에는 차량 방향 지시등 등이 깨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이에 경찰은 뺑소니 사고를 염두에 두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시체에선 어떤 외상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303%와 수면유도제 성분인 독실아민 13.02㎍/㎖이 검출됐다. 그러던 중 김 씨의 고모부가 ‘이복여동생을 성추행한 데 앙심을 품고 아버지를 살해했다 자신에게 말했다’며 김 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 조사결과 보험설계사로 일했던 김 씨는 같은 해 1월 아버지 명의로 상해·생명보험 7개(9억대)에 가입했다. 긴급체포된 김 씨(당시 23세)는 수사 과정에서 범행을 자백했다. 그러나 김 씨는 재판에서 진술을 돌연 번복했다. 김 씨는 “이복 남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겠다고 했을 뿐이다”며 “죽이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또 아버지 명의로 가입한 보험 중 상당수는 이미 해약됐고 나머지 보험들도 가입 2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없다며, 짜맞추기식 수사라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2001년 3월 대법원은 김 씨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김 씨의 사건이 재심 절차를 밟게 된 것은 방송 프로그램과 언론을 통해 재조명되면서다.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는 경찰의 위법 수사 의혹을 제기했고, 대한변호사협회는 2015년 김씨 사건을 재검토한 결과 경찰의 반인권적 수사가 확인됐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같은 해 말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재심 개시를 결정하면서 “경찰이 법원의 영장에 의해 압수수색을 실시하지 않았고, 압수수색 과정에서 경찰관이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압수 조서를 허위로 작성했다”며 “김 씨가 현장 검증을 거부했는데도 영장도 없이 범행을 재연하는 등 강압 수사가 있었다”고 했다. 다만 김 씨가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제출한 증거는 ‘근거 없다’며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의 항고로 재심 결정이 지연됐지만 2018년 결국 재심 개시가 확정됐고 2019년 재심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는 국내 첫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결정이다.
검찰은 재심에서 김 씨만 유일하게 가족 중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없고, 이마저도 당시 남자친구에게 거짓 진술을 부탁하는 등 조작하려 한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동생에게 허위 증언을 부탁한 사실이 들통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재심 개시 결정에 결정적인 이유가 된 위법 수사 의혹에 대해선 경찰의 불법 수사로 서류와 압수영장 누락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경찰이 강압이나 폭행을 행사한 사실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반면 김 씨를 변호하는 박 변호사는 “(김 씨는) 고모부로부터 이복 남동생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말을 듣고, 동생 대신 처벌받기 위해 거짓으로 자수한 것”이라며 “수면제 등 범행 수법을 미리 안 것은 부검을 참관한 친척에게 전해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선처받으려면 거짓 양형 사유를 밝혀야 한다는 고모부의 설득에 성추행을 꾸며낸 것이다”며 “보험 가입도 아버지에 대한 장애 고지의무를 위반하고 가입해 2년 뒤에나 수령이 가능한 사실을 보험설계사 경력이 있는 김 씨가 몰랐으리 없다”고도 했다. 박 변호사는 증거와 관련해서는 “수면제 30알로는 독사라민 수치가 부검 결과만큼 나올 수 없고 사망에 이를 수치도 아니다”며 “시신과 다른 증거에서도 수면제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알리바이에 대해서는 “집에 가려다 아버지가 술주정한다는 소리를 듣고 등대 앞에 차를 세워두고 잠이 든 것이고, 알리바이를 입증할 길이 없어 남친에게 진술을 부탁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위법 수사 의혹에 대해선 경찰 수사 과정의 위법성은 분명하다며 수사기관이 범행 계획이라고 밝힌 살인 계획은 연극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 쓴 여러 글 중 사건 관련한 내용만 발췌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이번 재판은 김 씨에게 최초 무기징역이 선고된 1심에 대한 재심으로, 해당 재판에서 유·무죄가 결정되더라도 검찰과 피고인 양측이 재판 결과에 따라 항소하면 다시 2심, 상고심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