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큼 내용도 도발적이다. 제목의 ‘사정’은 어떤 일의 형편을 남에게 간청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남성의 생식기에서 정액을 배출하는 그 ‘사정’이다. 제목을 직설적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남성들이여) 책임감 있게 정액을 배출하라’.
저자인 가브리엘르 블레어는 여성 크리에이터와 기업가를 위한 세계적인 커뮤니티 ‘알트 서밋’의 설립자로, 월스트리트저널 최고의 블로그로 선정된 ‘DesignMom.com’을 운영 중이다. 여섯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소위 낙태라고 표현하는 ‘임신 중단’의 책임이 남성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임신 중단’을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 태아의 생명권 간 충돌이라는 전통적 기준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임신 중단의 원인은 ‘사정’을 한 남성이라고 단언한다. 임신 중단을 한 건, 원치 않는 임신을 했기 때문이고, 원치 않는 임신은 남성이 자신의 정자를 여성의 몸 안에 배출했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28단계에 걸쳐 차근차근 설명한다. 제시되는 이유는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는 사실만큼 단순하다. 여성의 배란은 비자발적이지만, 남성의 사정은 자발적이다. 여성은 난자를 통제할 수 없지만, 남성은 자신의 사정 시기를 조절하며 정자의 배출을 통제할 수 있다. 여성의 피임이 까다롭고 위험한 반면, 남성의 피임은 손쉽다.
저자는 말한다. 제발 콘돔을 쓰라고. 콘돔을 거부하는 남성들에겐 정관절제술을 권한다. 그마저도 싫다면 체외사정이라도 하라고 조언한다. 효과는 떨어지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낫다면서.
책은 임신과 출산 모두 여성의 책임이라는 사회의 뿌리 깊은 인식을 정조준한다. 모든 책임을 남성에게 돌리는 논지가 무리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지만, 저자의 문제의식은 최근 논란이 됐던 정우성의 사례에도 유효하게 적용된다. “문가비가 미성년자도 아닌데 왜 정우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느냐”는 한 작가의 주장이 큰 호응을 얻은 데 대해 저자를 대신해 반박하면 이렇다.
정우성이 문가비와 진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자녀를 함께 양육할 생각이 없었다면, 사정해선 안 됐다. 설령 여성이 원했더라도 사정할지 선택권은 남성에게 있다. 남성은 선택에 따른 결과에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232쪽, 1만7000원.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