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6월 30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오른쪽 두 번째) 필리핀 대통령이 마닐라 국립박물관에서 취임식을 마친 뒤 사라 두테르테(오른쪽 세 번째) 부통령의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AP뉴시스
두테르테 딸인 현직 부통령 ‘내란급’ 고백 “대통령·영부인·하원의장 암살 지시…농담 아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 갈등을 빚고 있는 세라 두테르테 부통령이 유사시 마르코스 대통령 등을 암살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세라 두테르테 부통령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이다.
23일(현지시간) AP·AFP·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두테르테 부통령은 이날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겨냥한 암살 계획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같이 밝혔다.
두테르테 부통령은 “이미 내 경호팀의 1명에게 얘기했다”며 “만약 내가 살해당하면 BBM(마르코스 대통령의 이니셜), 리자 아라네타(영부인), 마틴 로무알데스(하원의장)를 죽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두테르테 부동령은 “(이는) 농담이 아니다”라며 “내가 죽으면 그들을 죽일 때까지 멈추지 말라고 말했고 그는 ‘알았다’고 답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두테르테 부통령의 이 같은 위협 발언에 대해 대통령궁은 즉각 마르코스 대통령에 대한 보안 조치를 강화하고 이 문제를 국가 안보 문제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궁은 성명을 내고 “대통령의 생명에 대한 모든 위협은 항상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이 위협이 명확하고 확실한 용어로 공개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비서실장 격인 루커스 버사민 행정장관은 두테르테 부통령의 발언이 마르코스 대통령에 대한 “적극적인 위협”이라며 “즉각적인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대통령 경호실에 주문했다.
대통령 경호실은 “대통령과 대통령 가족에 대한 모든 위협을 탐지, 억제하고 막기 위해 법 집행 기관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멀 마르빌 경찰청장도 “그(대통령)의 생명에 대한 직접적 또는 간접적 위협은 가장 긴급하게 해결해야 한다”며 즉각 수사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두테르테 부통령이 이처럼 ‘내란급 막말’을 한 것은 마르코스 대통령의 사촌인 로무알데스 의장 등 여당 의원들이 자신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데 대한 반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로무알데스 의장은 부통령실 예산을 3분의 2 가까이 대폭 삭감했다. 하원은 또 두테르테 부통령의 예산 유용 가능성 조사에 착수했으며,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두테르테 부통령의 수석보좌관 줄레이카 로페스를 구금하기로 결정했다.
마르코스 대통령과 두테르테 부동령의 충돌은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이뤄졌던 두 가문의 정치적 동맹이 파산했음을 보여준다. 친중 성향인 두테르테 전 대통령과 달리 마르코스 대통령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충돌하고 친미 노선을 걸으면서 두 가문의 불화가 시작됐다. 여기에 마르코스 대통령의 헌법 개정 추진,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남부 민다나오섬 독립 주장 등이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내년 중간선거에서 자신의 정치적 본거지인 남부 민다나오섬 다바오시 시장으로 출마, 정치 일선에 복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