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이민정책-②문화적 차이 넘으려면]
금기였던 제노포비아 점점 외부 표출 중
이주민 고깝게 보는 나라로 누가 오려나
유럽 실패 거울삼아 '이주민 2세' 통합을
인구소멸과 기후변화 등으로 구조적 위기가 닥쳐오고 있지만 5년 단임 정부는 갈수록 단기 성과에 치중해 장기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정권교체마다 전 정부를 부정하는 정치적 갈등으로 정책적 혼선도 가중됩니다. 한국일보는 창간 70주년을 맞아 이런 문제를 진단하면서 구조 개혁을 이루기 위한 초당적 장기 전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불법 체류자에 대한 제보가 전국에서 쏟아집니다. 제보만 확실하면, 며칠 잠복도 해서 잡는 거죠."
박진재 자국민보호연대 대표는 본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단체는 홈페이지를 통해 '불법체류와 외국인 범죄 신고를 받는다'고 밝힌다. 그러나 실체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사적으로 제재하는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 단체에 가깝다. 박 대표는 미등록 외국인(불법체류자)을 잡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인기몰이를 하다가, 폭력행위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 단체의 활동 방식은 대개 이렇다. 미등록 외국인 제보를 받아 현장에서 직접 체포하고, 경찰이나 출입국사무소에 인계하는 식이다. 일부 회원들은 외국인을 붙잡는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돈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들의 눈에 비친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인의 고혈을 빨아먹는 사람들'이다. 딴 남자와 바람이 나 살림을 차린 태국 여성, 단기관광비자로 입국한 뒤 불법 취업과 무면허 운전으로 범법행위를 일삼은 베트남 남성 등에 대한 제보가 그의 휴대폰에 쉴새 없이 날아든다.
수사를 받고 있음에도, 불법체류자 제재와 처벌에 대한 박 대표의 의지는 쉽게 꺾이지 않는다. 그를 지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의 유튜브 영상에는 "당신이 진정한 애국자" "외노자 척결에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의의 사도, 화이팅" 등 응원의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박 대표는 인터뷰에서 "정부가 반드시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아 대신하고 있는 것"을 강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22대 총선 때 대구 북구에서 자유통일당 후보로 출마하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주민 혐오 정서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까지 표출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다름'에 대한 수용성은 여전히 낮다. 총인구는 이미 줄고 있고, 지금 합계출산율(0.72)이면 한 세대 후 동나이 남녀 200명이 '72명'으로 급감한다는 소린데, 근본 없는 순혈주의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이렇게 밀어내려는 힘이 강한데 외국인에게 '살아보고 싶은 국가'로 매력이 있을 리 없다.
1월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실태조사보고서 내용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이주민의 인권이 존중되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36.7%만이 "존중된다"고 대답했다. 이 응답비율은 여성(81.2%), 아동·청소년(78.3%), 노인(67.6%), 장애인(50.4%) 등 다른 집단의 인권 존중 정도에 비해 유독 낮았다.
수출로 먹고살며 해외여행도 많이 가는 한국 사람들은 내심 스스로를 '문화적 수용성'이 높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론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인은 이주민에 대해 선택적 수용의 태도를 보인다"며 "다문화 공존 문제에선 수용하지만, 이주민이 사회 주류에 합류하는 상황이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은 스스로를 고정관념 없이 개방적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나, 이주민이 본 한국인이 그보다 덜 수용적"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이주민이 한국인이 되거나, 사회 지도자가 되는 상황'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는 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주노동자가 선출직 공무원이 되는 상황이 불편하다는 응답은 2019년 48.9%에서 지난해 65.3%로 크게 증가했고, 결혼 이주민 선출직 공무원 반대 비율도 53.8%다.
이런 광범위한 거부감은 한국이 이민을 통해 지금 경제 규모를 유지하는 '대전환'을 가로막고 있다. 이주민의 사회적 신분 상승에 대해 아니꼬운 시선을 보내는 나라는 이민 목적지로서의 매력이 확 떨어진다.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하는 저숙련 노동 인력만이 한국을 찾아오려 하고, 미국처럼 고학력·고숙련 이민자를 유치할 기회는 아예 차단되는 것이다. 이창원 이민사회연구원 연구실장은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지역특화형 비자도, 이주민을 노동공급이 부족한 지방에 묶어두려는 취지"라며 "계층 상승 희망이 보이는 사회일수록 범죄율이 낮은데, 제한을 하나씩 둘수록 오히려 이민 2세의 일탈과 범죄 가담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전세계적으로 생산가능인구 감소 시점이 도래하면, 이민가고 싶은 나라로서의 한국의 매력도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충훈 한국이민학회 연구이사는 "이민을 내보낼 여력이 있는 곳은 아프리카와 인도만 남고, 중국 인구도 2050년까지 1억 명 이상 줄어들 것"이라며 "이주를 받고 싶어도 받기 어려워지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혐오는 상당 부분 감정의 영역이라 쉽게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과거 반유대주의나 마녀사냥 등에서 보듯, 혐오 정서는 대부분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일단 확산되면 걷어내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이주민을 밀어내려는 이들이 감정적으로만 이 현상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논리적 근거도 있다. 특히 이들은 오랜 기간 이민자 포용정책을 펼친 서유럽의 다문화주의가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서유럽의 사례는 이민 정책 성공을 위해선 △정교한 설계 △제도 변화 △인식 전환 △정권과 상관 없는 정치권의 일관성 등 총체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전문가들은 통합 과정에서 갈등을 완전히 피하긴 어렵지만,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통합의 단초는 '이주민 2세'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바로 유럽이 실패한 부분이 이 지점이다. 다문화가정 교육불평등을 해소하고 2세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 통합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차별은 불만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누적된 불만은 이주민이 세를 불리면 언젠가 대폭발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창원 실장은 "제조업과 농축산업 등 힘든 업종에만 몰려 있는 등 이주민이 하위 계층으로 아예 분리되면 양쪽 모두의 불만이 더 심화될 것"이라며 "바코드처럼 내국인과 이주민이 여러 계층에 섞여 있어야 서로 인식이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설립이 본격화되고 있는 이민청 또한 '규제기관'인 법무부 주도가 아닌,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등 각 부처의 목소리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은 "이민청의 기조는 '관리'가 아닌 '통합'이어야 한다"며 "독립적 기관으로 지방자치단체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도 고민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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