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주제(主題)의 글을 쓰던지 간에 우리는 좋을 글 내지 감동적(感動的)이고 아름다운 글을 쓰려고 무척 노력합니다. 글을 잘 써보려는 생각에서 어려운 어구나 절묘(絶妙)한 비유 등을 발굴(發掘)해 내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 글이 잘되지 않으면 글쓰기는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은 글재주가 없다고 생각하고 글 쓰는 일을 멀리 팽겨 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글의 유혹에 못 이겨 꺾어버렸던 필을 찾아듭니다. 우리의 이런 불미(不美)스러운 글쓰기 자세와 불손한 태도를 반성(反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좋은 글을 쓸려고 하는 사람은 잘 쓰려는 생각에 앞서 바르고 정확한 문장을 쓰려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문장과 글은 일정한 원리에 의해 구성(構成)되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그 구성 법칙(法則)에 맞는 문장과 글을 쓰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글, 효과적인 글, 감동적인 글 또는 훌륭한 문학작품들을 관찰(觀察)해 보면 그러한 글은 모두 문법(文法)에 맞는 바른 문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주목(注目)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쓰기는 구성성분들로 문장을 구성하는 작업과 문장들을 연결(連結)하여 글을 구성해 나가는 작업으로 대별(大別)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작업을 문장쓰기와 글쓰기로 구분(區分)하여 살펴보기로 합시다. 문장과 글의 구성 원리를 간략히 설명(說明)하고 각각의 과정에서 틀리기 쉬운 내용들을 중심으로 글쓰기의 방법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글의 장르는 다양(多樣)합니다. 한 술 더 떠서 말하면 문학이나 예술의 부문·종류·양식·형 등 구분이 다양합니다. 특히 문학용어로서 문학형태의 종별(種別)은 천차만별입니다.
문학 개론(槪論)에는 시,ᆞ 소설, ᆞ희곡,ᆞ 수필,ᆞ 평론,ᆞ 시나리오의 여섯 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문학 이론의 장르 구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체(文體)는 문장의 형태로 구어체, 문어체, 논문체, 서한체, 서사체, 간결체, 만연체, 강건체, 우유체, 건조체, 화려체 등으로 사용합니다. 또한, 작가가 개성적인 특색(特色)을 발휘한 스타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문체론(文體論)은 언어학과 문예학의 중간 영역에 있기 때문에 다의적(多義的)이어서 뜻매김하기가 곤란합니다. 문장작성법에 의하면 '쓰는 사람 또는 이야기하는 사람의 본성(本性)이나 의도에 의해서 결정되는 표현수단의 선택(選擇)에서 생기는 서술의 여러 가지의 모습'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상 글짓기에서 많이 사용되는 수필(隨筆)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수필이란 ‘물 흐르듯’ 쓴 문장입니다. 혹은 ‘무형식의 형식’인 글이라고 합니다. 또한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라고 합니다. 결국 자유의 글이란 말이 됩니다. 따라서 수필은 진실(眞實)만을 표현해야하며 글 쓰는 이의 사실고백 이외는 추호의 개입을 불허(不許)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허구(虛構)이란 수필의 근방에는 얼씬도 못할 ‘고백문학(告白文學)’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지금도 그걸 종교처럼 맹신(盲信)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리 자유로운 글이라 해도 수필(隨筆)은 정말로 물 흐르듯 줄줄 쓰기가 어렵습니다. 진정 거침없이 줄줄 물 흘러내리듯 쓰이어지지 않습니다. 수필은 갈피를 잡지 못함으로, 일으킴도 없이, 끌고 나감도 없이, 깊이 파고듦도 없이, 끝맺음도 없이, 탈 형식의 참다운 자유분방 속에서 씌어질 수 없습니다. 수필은 사실의 미화(美化)나, 효과의 극대화(極大化)를 위하여, 잠재적 자기 합리화(合理化)를 위해서는 어휘 한 개 구절 하나라도 허구라면 뱀 밟은 듯 기겁을 하며 쓰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수필이 과연 글의 가장 권위 있는 지침(指針)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수필을 잣대나 저울로 달아보고 무거울 중(重)자와 가벼울 경(輕)자를 덧붙여 누구의 글은 이쪽이고 누구의 글은 저쪽이라는 식의 논란(論難)할 하등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읽는 사람의 감성에 따라 우열(優劣)이 가릴 뿐입니다.
과격한 속단(速斷)일지는 모르지만 수필의 근본적 접근방식은 ‘일반적인 인간에서 출발하여 일반적인 인간으로 귀착(歸着)해야 한다.’는 그 명제(命題) 하나를 기둥으로 삼고 싶을 뿐입니다. 극히 인간적인 인간이 사물과 접하고 느끼고 인간이 사건에 휩싸이고 인간의 의지와 소망, 인간이 웃고 아파하고 인간끼리 교감(交感)하고 때리고 맞고 사기치고 당하고 또는 자연과 오작교를 놓을 수 있는, 슬플 수도 아름다울 수도 있는 인간적인 글이 가장 훌륭한 수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란 '우리'라는 범주(範疇)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한계인이므로 ‘우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最大公約數)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수필이 갖추어야할 구비요건(具備要件)은 무엇일까요? 수필의 구비요건은 그 주장론(主張論)이 하도 많아서 정작 이거다 하고 꼬집어내기가 까다로우며 다른 장르와의 경계가 모호(模糊)한 속성이 있어 서로 넘나들기가 일쑤입니다. 또 그렇다하여 크게 탓하지도 않는 속성까지 가지고 있으니, 수필 작가나 아니면 독자의 마음은 왼고개를 갸우뚱하기는 해도, 실체의 요건을 항상 긴가민가 하는 심정으로 넘어가는 수가 많습니다. 하여, 여기 유명한 소품문(小品文)에 대한 구비요건을 살펴 제시할 테니 함께 음미(吟味)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 걸음 더 비약(飛躍)한다면 그게 수필요건과 비슷하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코올도 거기에 맛을 붙이려면 맹물을 적당히 섞어서 하나의 실체를 갖추어야 술맛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즉, 농도(濃度)에 따라 소주도 되고 위스키도 된다는 뜻입니다. 알코올이나 맹물 혼자서는 아무 맛이 없습니다. 소주(燒酒)라는 실체가 되려면 몇 대 몇의 농도가 맞아 떨어져야 소주라는 실체가 생기는 법입니다. 소주가 생산되면 그걸 마셔 즐기는 꾼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수필에서의 농도’ 이것이야말로 맛 나는 수필이 되게 하는 구비요건의 핵심(核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명필가(名筆家)가 주장하는 소품문의 구비요건을 좀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수필은 청신(淸新)해야 합니다. 남이 쓰던 것을 따르지 않으며 맑고 참신(斬新)한 글을 말합니다. 재탕삼탕의 버릇을 따르지 않으며 새롭고 참신한 글을 말합니다. 재탕의 버릇은 피해야 하고 특히 훔치는 글은 글이 아닙니다. 그림도 표절(剽竊)하고 글도 표절하고 연일 신문지상에 시시비비(是是非非)하는 꼴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를 그는 먼저 경계(警戒)하고 있습니다. 청신함, 이것만으로도 우(優)의 범주에 들 만하다는 뜻입니다.
수필은 진솔(眞率)해야 합니다. 견해가 명철(明哲)해야 하며 솔직해야 합니다. 진솔(眞率)한 표현을 수필에서는 격을 높여 평가(評價)하고 있음을 보더라도 참된 지식으로 참된 방향을 가리켜야 참 글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된 방향이란 말은 반드시 윤리적인 참된 지향(志向)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견해(見解)의 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위조지폐(僞造紙幣)는 돈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수필은 한가(閒暇)해야 합니다. 문을 활짝 열고[門], 달구경하듯[月] 한가한 정취(情趣)가 깃들어 있어야 하며 벗과 단 둘이서 정담(情談)을 나누듯 음조(音調)를 한껏 낮추어야 합니다. 그는 여기서 주작인(周作人)의 산문(散文)을 극찬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수필은 실사구시(實事求是)해야 합니다. 쓴 글은 읽어야 진가(眞價)가 발휘됩니다. 읽지 않는 글은 낭비요, 허문(虛文)입니다. 읽혀지려면 쉬운 말로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잎이 무성하고 수 없는 가지를 치더라도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 일 뿐입니다. 열매를 맺기 위한 노력에 정진(精進)하여 충실, 포만한 열매가 맺혀야만 수(秀)의 범주에 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청(淸), 진(眞), 한(閒), 실(實)의 요건이 아우러질 때 한 개의 명 글이 태어하니 귀담아 둘만합니다. 그는 ‘인간이 극히 동물(動物)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동물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다소 방지(防止)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감히 옷깃을 여미고 임어당(林語堂)의 한마디를 대체해 볼까합니다. ‘글이 극히 잡문(雜文)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잡문과 같은 글쓰기는 다소 방지(防止)될 것입니다.’
위에서 이미 수필에 대한 정의(定義)와 글쓰기 과정을 문장 구성과 텍스트 구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수필 구성에서는 문장의 성분 갖추기, 수필의 성분 사이의 의미 호응(呼應), 능동과 피동, 존대법(尊待法)을 중심으로 국어의 문법적인 문장 구성 시에 주의를 요하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문법상 못지않게 중요한 명료(明瞭)한 수필을 쓰기 전략을 점검(點檢)하여야 합니다.
수필을 구성하는 방법에서나 텍스트를 작성하는 방법에서 드러난 중요한 사실의 하나는 글은 언어학적인 구성방법(構成方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문법적이고 명료(明瞭)한 수필 쓰기에서는 수필 구성에 앞서 생각이 정리(整理)되고 다듬어져야 함을 보았고 텍스트를 구성하는 데에서도 여러 개의 명제로 하나의 주제를 형상화(形象化)하는 능력이 절대적인 작용을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수필'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중국 남송 때 사람인 홍매(洪邁)라고 합니다. 홍매는 ‘용재수필(容齋隨筆)’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나는 버릇이 게을러 책을 많이 읽지 못하였다. 생각나는 대로 혹은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적어 놓았기 때문에 차례(次例)가 맞지 않아 수필이라고 해 둔다."
홍매는 수필(隨筆)을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라는 뜻으로 썼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필류(隨筆類)의 글이 이전부터 있었지만 조선 시대, 박지원(朴趾源)이 청나라 연경(燕京)을 다녀오며 쓴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일신수필(日新隨筆)'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서양에서는 우리의 수필에 해당하는 글을 '에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프랑스의 몽테뉴가 자신의 저서 ‘수상록(Les Essais)에서 처음 쓴 이후 사용되었습니다. 몽테뉴는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省察)한 글을 썼는데, 이렇게 소설이나 희곡(戱曲)과 달리 자유롭게 쓴 글이 서양에서는 문학의 한 양식(樣式)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의를 내리면 수필은 소설과 달리 허구의 문학이 아니라 체험(體驗)의 문학이라고 합니다. 수필은 글쓴이의 상상력으로 꾸며 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필에서도 글쓴이가 상상력을 발휘(發揮)하여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글쓴이가 옛사람과 만나는 장면을 상상을 통해 그려 낼 경우 글쓴이의 느낌이 더 잘 표현되기도 합니다. 수필에서는 보통 글쓴이가 자신의 상상으로 쓴 글이라는 것을 밝혀 널리 알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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