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시작된 전면전이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작년 여름부터 격렬한 전투가 계속되던 도네츠크 주의 바흐무트 시가 러시아 군에 완전히 점령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게 불과 며칠 전이었는데, 이제는 우크라이나 군이 바흐무트에서 러시아 군을 다시 밀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침략군 내에서 러시아 정규군과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일단, 최근 전황은 침략자 쪽이 어떤 실질적 전과도 자랑하기 힘들어지는 형국으로 치닫는 중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는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이 단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의 군대만이 아니다. 작년에 전면전이 시작되고 난 뒤에 세계 각국의 여론 또한 지극히 복잡한 지형을 그리며 갈라졌다.
우파 쪽에서는 정통 우파가 미국과 한 편이 되어 우크라이나 정부를 응원하지만, 전부터 푸틴 대통령을 동지처럼 여겨온 극우 포퓰리즘 세력은 지금도 내심 러시아 정부를 두둔한다. 좌파 쪽은 분열이 더욱 심각하다. 미국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대러시아 포위 전략을 전쟁 원인으로 지목하며 우크라이나를 그런 제국주의 야욕의 주구쯤으로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우크라이나 정부를 강대국 침략에 맞서는 약소국의 상징으로 보고 무조건 지지를 외치는 이들도 있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지정학 논리를 끌어와 푸틴을 미국-NATO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사나 되는 양 추켜올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지원 외에 다른 고민이나 주장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들도 있다. '진보'라 자처하는 이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선의 서로 다른 쪽에 서서 또 다른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또 다른 전선을 지켜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제국의 권력자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장기판처럼 굽어보며 두는 훈수는 흔해도 정작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그곳 민중들에 주목하는 입장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블라디미르(푸틴)나 볼로디미르(젤렌스키)이기라도 한 것처럼 내뱉는 주장이 이토록 많은데, 양 편의 시민들이 무엇을 느끼고 고민하며 희망하는지에 관한 관심은 너무도 희귀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두 나라 (정부가 아닌) 시민사회 상황을 생생히 전하는 정보를 접하기도 쉽지 않다.
러시아의 반체제 사회주의자 카갈리츠키
그래도 우크라이나 쪽은 좀 낫다. 서방과 동맹 관계라서인지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친정부파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의 목소리도 인터넷에서 영어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정보를 통해 우리는 러시아 선전당국이나 친푸틴 좌파(?)의 주장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병력이 극단적 민족주의자나 파시즘 지지자 일색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가운데에는 푸틴 독재정부의 침략에 맞서 자발적으로 무기를 든 좌파나 노동운동가들도 있다.
반면에 러시아 내부의 동향을 전하는 글은 찾기 쉽지 않다. 전면전이 시작되기 전에 비해 훨씬 엄격하게 언론을 통제하고 있음이 확연히 느껴진다. 그나마 러시아 국내와 바깥 세계를 잇는 정보원 중 하나는 반푸틴 저항세력에서 나오는 글들을 영어로 옮겨 전하는 '러시아 반체제파Russian Dissent'(https://russiandissent.substack.com/) 같은 온라인 사이트다. 이 사이트에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한 지식인-운동가의 글도 주기적으로 올라온다. 바로 보리스 카갈리츠키다.
카갈리츠키는 1990년대 초에 주로 창비 출판사를 통해 '까갈리쯔끼'라는 표기로 몇 권의 저작이 번역, 소개된 저자다. 이 무렵 그의 글과 책은 소비에트연방의 개혁-개방과 뒤이은 급작스러운 붕괴를 공산당이나 자유주의 반체제파와는 다른 시각에서 증언하고 설명해 주는 흔치 않은 통로로 주목 받았다. 그럴 만도 했다. 카갈리츠키는 1980년대에 불과 20대의 나이에 당국을 비판하는 지하 간행물을 내다 박해를 받은 반체제 인사였지만, 그가 체제에 반대한 근거는 A. 솔제니친의 민족주의도, A, 사하로프의 자유주의도 아니었다. 사회주의였다.
카갈리츠키는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만이 진정 사회주의일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소련 사회가 사회주의에 미달하거나 그로부터 이탈한 체제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함께 하는 사회주의를 추구한 당시 서유럽 공산당들의 노선이나 서구 마르크스주의에서 대안을 찾았다. 이런 입장에 따라 그는 연방이 붕괴하던 혼란기에 사회당이라는 독자 좌파정당을 창당해 정치 활동에 뛰어들었고, 서구와 동구, 더 나아가 남반구까지 아우르는 대안적 좌파 노선을 탐색하는 <변화의 변증법>(송충기 옮김, 창비, 1995), <근대화의 신기루>(유희석 외 옮김, 창비, 2000) 같은 저작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후 카갈리츠키라는 이름은 한 동안 한국 지식사회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푸틴이 독재체제를 다져간 21세기의 20여 년 동안에도 그는 기존 입장의 연장선에서 늘 사회운동에 함께 했다. 노동운동에 바탕을 둔 좌파정당을 창당하려는 시도를 거듭했고, 영문 칼럼을 통해 영미권 주류 언론이나 친푸틴 세력과는 다른 입장에서 러시아 상황을 계속 소개하고 분석했다. 2010년대에 주로 대선을 전후해 반푸틴 민주화 투쟁이 폭발할 때마다 카갈리츠키의 글도 더 빈번히 인터넷에 올라왔다. 그러다 작년, 침략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의 원인은 러시아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조기에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려 한 침략군의 의도가 무산됨으로써 전쟁이 장기화할 게 분명해진 2022년 여름, 해외 언론과 나눈 대담에서 카갈리츠키는 이 전쟁의 원인이 푸틴 정권의 위기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를 코끝까지 압박하는 미국-NATO의 동진 전략 탓인가? 아니면 우크라이나 내부의 러시아어 사용 인구를 핍박하는 나치 세력 탓인가?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꺼져들 푸틴의 생명과, 억누르고 또 억눌러도 수그러들 줄 모르는 젊은 세대 중심의 민주화운동이라는 두 요인에 쫓긴 독재정권의 자충수라는 것이었다.
물론 카갈리츠키도 미국-NATO의 제국주의적 대러시아 전략이나 우크라이나 내 극우 민족주의의 성장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전쟁의 '배경'이지 '원인'은 아니다. 2022년 2월 24일 새벽에 러시아 정규군이 일제히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영토로 진입한 직접적인 이유는 아닌 것이다.
전쟁의 배경이 되는 요소들이 모두 곧바로 전면적 군사행동을 촉발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인류 역사에서 평화 시기를 찾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카갈리츠키는 단호히 지적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에 2014년부터 지속된 국지전을 갑자기 전면전으로 전환시킨 러시아 정부 측 결정의 이유는 러시아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다.
대담에서 그는 첫 번째 국내 요인으로 러시아 국가자본주의의 과잉축적을 든다. 뜻밖에도 러시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준이 실시한 양적 완화 정책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였다. 2010년대 내내 산유국 러시아로 달러가 물밀 듯 들어왔고, 이는 고스란히 푸틴의 국가기구와 일체화한 재벌들(올리가르히) 주머니에 쌓였다. 카갈리츠키에 따르면, 러시아 국가-재벌이 이렇게 과잉축적한 자본의 가장 효과적인 투자처로 삼은 것이 군수산업이고, 이번 침략전은 그 투자 행위의 일환이다. 미국만 군산복합체의 나라가 아닌 것이다. 오랫동안 그 호적수였던 러시아를 잊어선 안 된다.
카갈리츠키가 지적하는 또 다른 요인은 러시아 시민사회 내의 반푸틴 정서 증대다. 팬데믹 이후 경제가 침체 상태인데도 초호화 대통령궁을 새로 짓는 푸틴 정권의 모습은 전형적인 독재정권 말기 증상이다. 게다가 엄격한 보도 통제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심신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러시아인은 거의 없다. 거리에 시위대가 쏟아져 나오지 않을 뿐이지 러시아 사회는 밑에서부터 들끓고 있다.
이 상황에서 푸틴파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카드는 다름 아닌 계엄령이었다. 계엄령을 선포할 근거를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푸틴 정부가 느닷없이 전쟁을 일으킨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서방의 진보파 벗들에게 보내는 호소
이런 입장이기에 카갈리츠키는 전쟁을 끝내는 방법에 관해서도 단호하다. 러시아 시민인 그가 지지하는 종전 조건은 자국 정부가 아니라 교전 상대국 우크라이나 정부가 주장하는 내용이다. 즉, 러시아 군이 작년 2월 24일 이후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모조리 철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점에 관해 타협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그것은 곧 푸틴 독재정권을 편드는 것일 뿐이다. 푸틴 독재체제에 맞서 싸우는 러시아인들이 바라는 것은 정확히 푸틴 정권의 패배다. 독재정권은 종전협정 내용 중에 조금이라도 '승전'의 근거로 들 만한 게 있다면, 이를 훈장처럼 내세우며 국내 독재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침략군에게는 단 한 뼘의 땅도 성과로 내주어서는 안 된다. 푸틴 정권의 철저한 패배만이 한 나라가 아닌 두 나라 민중의 역사적 기회가 될 것이다.
카갈리츠키의 이런 발언은 미국이나 어느 서유럽 국가에서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소셜 네트워크에 별 고민 없이 올리는 위악적 문구 따위가 결코 아니다. 자신의 생명과 안위를 걸고 내놓는 절박한 성명이다.
개전 이후 카갈리츠키가 발표하는 글들에서 거듭 확인되듯이, 지금 러시아에서는 억압 통치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전쟁 발발 직후 예상 외로 치열하게 전개된 반전운동이 요즘 종적을 찾을 길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푸틴 정권의 탄압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국기를 연상시키는 오렌지 색 상의와 청바지만 입고 다녀도 바로 체포돼 실형을 받는다. 반전 성명을 발표한 지방의원은 7년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제3공화국에 가까웠던 푸틴 정권은 이제는 1979년 가을 언제쯤의 유신 체제와 판박이가 되었다.
이런 엄혹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5월 23일에 '러시아 반체제파' 사이트에는 카갈리츠키의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제목은 '아주 간단한 요청 – 서방의 진보파 벗들에게 보내는 호소'다. 이 글의 논조는 사뭇 처연하기까지 하다. 즉각적인 평화를 위해서라며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양보와 타협을 주장하는 유럽과 북미의 좌파 인사들에게 카갈리츠키는 호소한다. 제발 가만히나 있으라고. 중요한 대목을 인용해 보겠다.
"전쟁이 시작된 지 1년 넘게 지난 지금, 푸틴과 그 정권을 이해해주자고 계속 주장하는 서방 동료들에게 간단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당신들은 자유 언론도 없고 사법부의 독립도 없는 나라에서 살기를 바라는가? 경찰이 영장도 없이 집에 쳐들어오는 나라를 바라는가? (중략)
물론 바라지 않을 것이다.
우리 러시아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러시아 문화의 인간주의적 전통에 바탕을 둔 우리의 신념과 원칙에 따라 저항하고 있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이런 신념과 원칙을 지키려 한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푸틴을 이해해주자'거나 '푸틴의 요구를 조금은 들어주자'는 주장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를 억압하고 망치는 범죄자와 같은 편에 서겠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런 주장은 러시아 민중에 대한 뿌리 깊은, 거의 인종주의적인 경멸에 바탕을 두고 있다. 러시아 민중은 부패한 독재체제 아래에서 살아도 괜찮다는 서구 자유주의자-평화주의자들의 믿음 말이다."
푸틴과 타협하자는 주장은 이제 그만
카갈리츠키는 러시아 바깥의 좌파에게 부탁한다. 제발 푸틴 정권과 타협하자는 모호한 성명은 그만 내라고. 이런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푸틴 정권은 더욱 기고만장해져 억압 통치를 강화하기만 할 것이라고. 따라서 "정말 러시아와 러시아인이 잘 되길 바란다면, 푸틴 정권과 불구대천의 적이 되는 수밖에는 없다."
글쓴이의 신변을 걱정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그러나 카갈리츠키가 이 정도로 위험을 감수하며 러시아 바깥에 메시지를 전하는 이유가 있다. 그는 이 전쟁이 러시아 역사에서 반복됐던 대전환의 계기 중 하나가 되리라 예감한다.
침략 전쟁에서 패배할 때마다 러시아에서는 반드시 개혁과 혁명의 거센 물결이 일었다. 크림전쟁 패배 뒤에는 농노해방이 뒤따랐고, 러일전쟁 패배 후에는 1905년 혁명이,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는 1917년 혁명이 폭발했다. 이런 혁명적 국면이 다시 열리기 위해 푸틴의 침략군은 가능한 한 가장 철저히 실패해야 한다는 것이 카갈리츠키의 흔들림 없는 결론이다.
푸틴 정권은 가장 피하려 하고 투쟁하는 러시아 민중은 가장 바라는 이러한 미래가 과연 도래할 것인가? 누구도 이를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카갈리츠키가 호소하는 것처럼 적어도 이를 가로막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분명히 있다. 그것은 지정학 놀음과 대항 강대국의 환상에 빠져 좌파가 주목해야 할 진정한 대립 구도를 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