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은 불편한 이슈다. 그러나 문화비평가이자 흑인 여성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Bell Hooks)는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라는 반어적 표현으로, 계급과 계급 사회에 침묵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는 문학동네가 해제를 추가하고 번역을 새롭게 해 출간한 책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Where we stand : Class matters)>의 2008년 초판 번역본 제목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모두 자기 자리에 그대로 갇혀서 우리의 계급이나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일이 불가능해지기 전에, 바로 지금, 계급에 대해 말하고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위의 책, 9쪽)
노동계급·흑인·여성· 페미니스트
당신의 자리는, 우리의 계급은 어디인가. 벨 훅스는 노동계급이자 흑인 여성이라는 자신의 계급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1952년생인 그는 "석유탐사 인부들이 묵는 임시 주택"에서,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은 환경에서 자랐다. 특히 "인종차별 폐지를 법제화했음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흑인은 아무리 돈을 벌어도 흑인 구역을 벗어날 수 없"어 "계급이 아니라 인종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았다.
그는 대학 시절 기숙사에서 유일한 흑인 학생으로 멸시의 대상이었다. 쇼핑을 하러 간 고급 백화점에서 직원 취급을 받고, 작가로 성공한 이후 부유한 동네에 살면서는 보모 취급을 받기도 했다. 자신을 멸시한 건 특권계급 백인뿐 아니라 흑인 엘리트도 마찬가지였다고 그는 말했다.
"계급에 관한 대화는 늘 인종 문제와 결부되었지만, 우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노동계급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다. 스스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먼저 노동의 세계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이는 결국 인종과 계급에 부닥쳐야 함을 의미했다.(위의 책, 51쪽)
벨 훅스는 특히 특권계급 백인 여성들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한 페미니즘의 본래 자리에 대한 환기도 잊지 않았다. "혁명적이거나 급진적인 페미니즘 사상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훨씬 일찍부터 고민하고 맞섰던 레즈비언들의 경험의 소산"이라는 것.
"인종과 계급을 떠나 레즈비언들이 가부장제에 대한 현대 여성들의 저항을 급진적으로 바꾸는 선봉에 섰다. 이는 성적 선호 때문에 이들이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이미 이성애자가 특권을 누리는 영역 밖으로 내몰려서이기도 했다. 어떤 계급이건 이들은 사회에서 이방인이며 가부장제 사회에서 학대와 경멸을 받는 대상이었다. 게다가 여성과 달리 이들은 경제적인 면에서 남자에게 기대지 않았다. 그들은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을 원했고 그것이 필요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훅스는 자신의 어머니가 두 딸이 딸린 10대 이혼녀였으나 자신의 위치를 바꾸기 위해 결혼을 택했다면서 특권계급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곧 '여성의 해방'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하층계급 여성들에게 결혼은 억압이 아니라 탈출구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반자본 급진주의자·특권계급 흑인
반자본주의를 부르짖던 계급이 어느 순간 개인의 이익에 천착한 '재정 보수주의자'가 됐다고도 훅스는 지적했다.
그는 "억압적인 자본주의를 타파하려고 노력했던 특권계급 출신의 급진적인 신진 정치꾼들은 기존 경제체제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립하려고 열을 올리는 기성세대가 되었다"면서 "이 체제로 미국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세상으로 양분된다면 이들은 특권계급에 남고 싶어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판 강남좌파에 관한 지적인 셈이다. 이에 더해 "이들은 다른 인종이나 젠더에 지속적으로 충성하기보다는 더 많은 이윤을 계속 창출하려는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고 그는 비난했다.
벨 훅스는 백인 남자들과 똑같이 행동하는 특권계급 흑인을 향해서도 펀치를 날렸다.
그는 "상류계급에 편입된 흑인들은 자기 이익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가난한 흑인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서 "계급 권력에서 밀려난 경계인 집단 출신의 사람이 입신출세해 높은 계급으로 편입하면 이미 그 계급에 속한 '전형적인 백인 남자들'과 똑같이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훅스는 "가난한 노동계급 출신 흑인 가운데 엘리트 수준으로 교육받는 학생들이 점점 줄"고 있다며 "지원 받은 몇몇 학생들도 부유한 상대방의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경계했다.
'빈곤층=기생충'이라는 인식
벨 훅스는 나날이 심화하는 계급화의 원인으로 언론을 지목했다. 노동계급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왜곡된 모습이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유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빈곤층을 일자리보단 지원금을 좋아하는 존재로, 약탈자로 묘사"하고 "빈곤층은 나태하고 비생산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유복한 사람의 자원을 쓰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훅스는 주장했다.
"1970년대 초에는 언론을 통해 빈곤층은 기생충이자 포식자이기에 이들의 지속적인 욕구를 채우느라 정작 다른 사람이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특권계급은 자신이 생존하려면 빈곤층에게 등을 돌려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위의 책, 235쪽)
관련해 벨 훅스는 "이 나라는 가난을 만들어내는 조건을 없애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누구나 기본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들기 위해 저항 전략을 세우는 한편, 빈곤층의 인간성 상실에 저항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계급은 돈 이상의 것"
그렇다면 계급은, 타파할 수 있는 것인가? 계급이라는 제도가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벨 훅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돈을 벌고 가진 것을 나누는 방법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계급 억압과 착취가 벌어지는 현실을 바꿀 수 없음은 자명하다. 계급은 돈 이상의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이해할 때까지, 우리 삶의 모든 문제가, 특히 빈곤층과 가난한 사람이 겪는 문제가 돈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계속해서 약탈적인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상황에서 권력을 쥐지 않은 그외 우리는 계급을 초월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위의 책, 2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