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우크라전쟁 등 직격탄 맞아 아프리카국 상환 위기
中 ‘일대일로’사업 위해 적극 대출 아프리카국 부채 확 늘어
주요 선진국 대출보다 금리 4배 높고 대출기간도 훨씬 짧아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채권문제로 속을 끓이고 있다. 중국이 상환능력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대출해준 아프리카 국가들이 잇따라 채무상환 위기를 맞는 바람에 대출금 회수에 여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외교·경제·군사적 목적을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에 투자해온 중국이 정책적인 판단 미스로 과도한 대출을 해준 나머지 그 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18일 영국 런던의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Chatham House)를 인용해 보도했다.
채텀하우스가 내놓은 ‘아프리카의 부채 고통에 대한 대응과 중국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전체 외채 규모는 2020년 현재 6960억 달러(약 892조원)에 이른다. 20년 전보다 5배나 급증했다.
이 가운데 대중국 채무액은 12%인 835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에 진 빚이 무려 426억 달러에 이르는 앙골라가 아프리카 국가 중 대중 부채가 가장 많다. 에티오피아(137억 달러), 잠비아(98억 달러), 케냐(92억 달러), 나이지리아(67억 달러), 카메룬(62억 달러), 수단(61억 달러), 콩고공화국(54억 달러) 등의 순으로 많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아프리카 국가들에 공적개발원조(ODA·양허성 차관) 사업을 진행해 도로·철도·공항 등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아프리카의 경제 개발을 도왔다. 이를 통해 중국은 단기적으로 아프리카의 석유·철광석 등 천연자원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는 중국의 ‘세계 경영’을 위한 교두보로 삼았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집권한 2012년 이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Belt and Road Initiative·중국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차원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에 항구나 도로, 철도 등 국가 기반시설 구축 비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중국의 대출은 정책은행(국가개발은행·수출입은행·농업개발은행)과 국유상업은행(중국은행·중국공상은행·중국건설은행·중국 농업은행)에 의해 이뤄진다. 이들 금융기관은 대부분 중국 당국에 의해 통제되지만, 합법적 독립 주체로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은행은 관(官·정부)도 민(民·민간)도 아닌 애매모호한 지위에 있다. 그렇지만 많은 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은 다른 채권자들의 적절한 자금 지원, 즉 인프라 투자유치에 실패한 까닭에 이들 중국 은행의 손을 잡게 된 것이다.
이런 만큼 이들 은행은 주요 채권국들의 모임인 ‘파리클럽’(Paris Club)의 회원들과는 달리 개발자금 대출을 위한 담보를 요구할 때가 많다. 개도국에 대한 대출의 60%가 담보로 잡혀 있다. 한 국가가 채무 구제를 신청하면 그 국가의 중국 채권자들은 담보로 잡힌 자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중국의 대출조건이 서방국가들보다 매우 열악하다. 상업성 대출이 많아 금리도 높고 대출기간도 짧다. 금리는 약 4%로 시중금리와 비슷한 수준인데, 세계은행(WB)이나 프랑스, 독일과 같은 개별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제시하는 금리와 비교하면 4배가량 높다.
채무상환 기간 역시 대부분 10년 미만으로 다른 국가나 기관에서 개발도상국에 제공하는 ODA의 상환 기간이 28년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훨씬 짧은 편이다. 존 마구풀리 탄자니아 대통령은 2020년 중국이 자국에 자금을 대면서 ‘술주정뱅이나 받아들일,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걸었다며 10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취소하겠다고 폭탄 선언한 바 있다.
중국 정부의 공격적 대출 지원은 상환능력이 부족한 아프리카 국가들을 ‘빚더미 함정’에 빠뜨리는 부작용을 불렀다. 아프리카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적 여파와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와 식량가격 폭등의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더욱이 미국과 유럽의 물가폭등세로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나 지원이 줄어들면서 경제여건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에선 이를 중국의 ‘채무함정 외교’라고 비난했으나 실제로는 경제성 판단이 결여됐다는 것이 채텀하우스의 분석이다.
문제는 이들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이 부채상환 의지가 부족한 데다 이미 다른 나라의 수많은 부채까지 떠앉고 있다는 데 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은 채무상환 위기를 겪고 있다. 52개국 중 22개국이 부채 곤경(debt distress) 위험에 놓였다.
이런 와중에 중국의 대출이 논란이 되고 있다. 계약서상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면 중국이 상대국 주요 자산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문구가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국가 간 차관 계약 시 기밀 유지는 관행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주요 선진국들은 파리클럽에 가입해 대출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 리 존스 런던 퀸메리대 교수는 "기밀유지 계약은 국제 상업대출에서 매우 흔하다"며 "중국의 개발자금 조달 대부분은 근본적으로 상업에 관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중국의 개도국을 대상으로 한 공적자금 지원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중국이 이들 국가를 빚에 허덕이게 해 중국 정부의 압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리처드 무어 영국 해외정보국(MI6) 국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다른 국가로부터 이득을 취하기 위해 '채무의 덫'을 놓는다고 주장했다. 이는 중국이 다른 나라에 돈을 빌려주고 채무국이 이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주요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양도받는다는 얘기다.
중국은 이 같은 비판을 강력히 부인하며 일부 서방 국가가 중국의 국가이미지를 훼손하기 위해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 정부는 "중국으로부터 돈을 빌려 '빚더미 함정'에 빠진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고 일축했다.
중국이 개발도상국의 채무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에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는 점도 비난받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채무 재조정 논의에서 중국이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수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은 이전처럼 과도한 대출을 하기보단 지정학적·사업적 필요가 있을 때만 대출하는 식으로 그 규모와 방식을 줄이고 있지만 회수 여건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진단이 나온다.
중국은 채무상환을 독촉하기 위해 이들 국가를 압박하거나 정치적 유대를 이어가기 위해 관대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중국이 최초로 해외 상설 군사기지를 건설한 지부티를 그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은 지부티에도 14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인프라 대출을 제공했다.
미 해군 기지와도 인접한 이곳은 전 세계 선박의 30%가 홍해와 수에즈 운하로 가는 길목이라는 점에서 중국으로선 군사·안보·경제적 교두보로서 큰 성과를 거뒀지만 미국 등에는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채텀하우스는 “지부티는 중국을 상대로 빚더미에 올라 있지만, 중국이 디폴트를 허용하기에 이 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너무 중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출금을 제대로 상환하기 어려워면서 중국 금융기관들은 최근 아프리카에 대한 대출 규모를 대폭 줄였다.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신규 대출은 2016년 284억 달러에 달했으나, 2019년 82억 달러로 급속히 쪼그라 들었다. 2020년에는 19억 달러)에 불과했다. 채텀하우스는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대출 성격이 초반 인프라 연계에서 좀 더 계산된 비즈니스 혹은 지정학적 의사결정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글/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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