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촬영영상의 무단유포 ‘관행’에 제동 건 연예인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 곽현화 씨의 긴 싸움이 갖는 의미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이 된 성폭력과 미투 사건들을 맡아 해결해 온 이은의 변호사의 기록,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한 노출영상이 IPTV에 배포돼
곽현화 씨의 사건을 맡게 된 것은 2017년 초, 독립PD협회에 소속된 김영미 PD의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당시 곽현화 씨는 ‘명문대 출신 개그우먼’, ‘미녀 개그우먼’ 등으로 불리며 대중의 인기를 모으고 있었지만, 나는 사건을 맡기 전까지 그에 대해서도 그가 겪고 있던 사건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김영미 PD에 따르면, 재능 있는 젊은 여성 연예인이 있는데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게 된 영화를 촬영하던 중 가슴노출 씬을 찍게 되었고,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기로 했던 장면이 임의로 유포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이 사건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기소가 되었으나, 1심에서 곽현화 씨의 노출 영상을 동의 없이 사용한 감독에게 ‘무죄’가 선고된 상태였다. 거기에 가해자인 감독으로부터 곽현화 씨가 무고죄 고소를 당하고, 이후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고소까지 이어지던 중이었다.
대강의 사정을 전해 들은 후 곽현화 씨를 만나보기로 했다. 사건기록 봉투가 처덕처덕 쌓인 무채색의 사무실에 연예인이 들어섰다. 두툼한 형사기록 봉투를 들고 있었다. 곽 씨는 연예인으로서, 또한 젊은 여성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여러 피해를 입었고, 법원으로 간 사건마저 난항에 부딪히며 되려 여러 피소 사건에서 피의자가 되어있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멘탈이 무너질 법도 한데, 맞은편에 앉은 변호사가 자신이 건네는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는지 찬찬히 살피며 불필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온라인에서 그는 누리꾼들로부터 제멋대로 성적 대상화로 소구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장시간 그에게 고통을 준 영화 〈전망 좋은 집〉과 그의 가슴 부위만을 CG로 만들어 사용한 다른 영화가 크게 자리했다. ‘19금 영화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할 땐 각오했어야 할 일 아니냐’, ‘어차피 전망 좋은 집 찍은 후에 야한 영화를 또 찍지 않았냐’, ‘여자 연예인들이 서른 넘어 스타성 떨어지면 노출은 수순 아니냐’ 등의 비방이 난무했다. 여성 연예인을 성적으로 대상화하여 소비하는 것이 대중의 권리이자, 연예인의 의무인양 떠들어댔다. 피해자에 대한 연민이나 지지에 기대어도 힘겨울 싸움을, 곽현화 씨는 자신을 관전하고 수군대는 복판을 관통하듯 걷는 중이었다.
곽현화 씨가 입은 피해와 1심 형사재판의 결과는 우리 사회가 성적인 폭력을 둘러싸고 ‘보호할 여성’와 ‘보호하지 않아도 되는 여성’으로 이분화하는 고질적인 문제와, 가해자 중심의 사고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동시에, 이 사건은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 성폭력 사건들의 예고편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는 노출 씬 등은 협의 하에 촬영하기로 약속 받고서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다. 가슴노출 장면을 촬영할 당시, 해당 장면을 찍거나 공개하는 것에 대해 갈등했다. 감독은 촬영을 마치고 극장 상영본을 편집하면서 그를 불러 문제가 된 장면을 보여주었고, 곽현화 씨는 이를 사용하지 말라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었을 때는 문제가 된 노출영상이 빠졌다. 그는 약속이 지켜졌다고 믿었다. 하지만 1년 남짓 시간이 흐른 후, IPTV를 통해 배포된 영화에는 그 영상이 삽입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영화는 극장에서는 별반 호응을 얻지 못하고 며칠만에 종영되었지만, IP TV에서는 배포 순위가 높았다. 그 영화에는 포함하지 않기로 했던 곽 씨의 노출 장면이 포함되었고 표현 수위도 더 높았다.
곽현화 씨는 감독에게 해당 영상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청했었고, 그 대화는 우연하게도 또한 다행스럽게도 녹음이 남아있었다. 나중에 감독이 자신과 한 약속을 저버리고 가슴 노출 영상이 유포되었음을 알고 전화해서 항의하자, 감독은 자신의 뜻이 아니었다고 빌며 사죄의 뜻을 밝혔다. 이 역시도 녹음이 남았다. 곽현화 씨가 감독을 고소하여 이루어진 수사단계와 1심 재판에서는 이런 통화 녹음 내용이 제출되지 않았었다.
생업이 달린 자리, 누가 증인이 되어줄 것인가
형사 항소심 재판을 맡으면서, 나는 피해자와 꼼꼼히 소통하며 사건 당시와 남아있는 자료들을 검토했다. 또, 피해자가 SNS에 쓰는 내용으로 인해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가 명예훼손 피의자가 되는 일이 없도록 점검했다. 반성 없는 가해자의 뻔뻔한 변론 과정과 피해자에 대한 고소 행각이 피해자를 흔들었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하려다가 자칫 실수로 괜한 책임을 질 일이 빚어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했다. 고소를 당한 사건에는 필요한 소명 자료를 내고, 가해자에 대한 재판에는 추가 증거를 내고, 1심에서 불러보지 않은 증인들을 신청했다.
증인을 불러 실제 신문 과정을 지켜보면서, 부당하지만 당연하다는 듯 흘러온 관행과 맞선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험난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생업이 달린 자리는 별 이해관계 없이 공명심으로 움직일 수 있는 관찰자의 자리와 다르다. 계속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과의 이해관계를 등지고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증언해줄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증인에게는 용기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으레 그러려니 하며 무심하게 지나친 일들, 가령 노출 씬 촬영을 앞두고 배우가 촬영을 망설이고 이미 동원된 스텝들을 생각해 우선은 촬영에 임하는 것과 같은 상황을 시간이 흐른 후에도 기억할 이가 누구인가. 이를 기억하려면, 배우의 망설임을 단순히 촬영이 지연되는 불편이나 번거로움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그 입장을 이해하는 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가치관이 전제된 기억이 필요한 일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증인을 신청했다. 가해자 측이 소환한 증인은 문제된 장면이 대본에 있고. 출연계약서에 기재된 ‘노출 씬은 상호 협의 하에 촬영한다’라는 구절은 그의 계약서에만 기재된 특별한 것도 아니라며 감독을 옹호했다. 문제의 장면이 협의 하에 촬영되었는지나 이후에 해당 장면을 삭제해달라고 하였는지 등은 알지 못했는데, 마치 곽현화 씨가 해당 장면의 촬영이나 사용에 대하여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업계의 잘못된 관행에 반발하는 이를 두고 ‘남들은 너보다 못 나서 참고 사는 줄 아느냐’며 트러블메이커 취급하는 일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곽현화 씨의 말에 따르면 문제의 장면을 촬영할 당시, 촬영 스텝들이 촬영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으나 곽 씨의 반대로 촬영이 지연되었다고 한다. 이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 중 한 명을 간신히 설득해 증인으로 불렀다. 증인이 이를 증언하자, 가해자 측이 당시 촬영이 지연된 이유가 곽현화 씨와 감독 간에 협의가 안 되서였는지를 증인이 확인할 수 있냐고 추궁했다. 배우 대기 공간에서 배우와 감독 간에 오간 이야기니, 상황은 뻔하지만 스탭이 확인해줄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영화제작에서 배우와 감독이 어떤 종류의 촬영에 있어 협의를 한다는 궁극적인 의미는 촬영이 아니라, 이를 촬영물로써 사용할 것이냐에 방점이 있다. 그러니 편집 과정은 제작 단계이고, 그 과정에서 배우가 협의가 필요한 촬영물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이에 감독이 동의하였다면, 당연히 이는 사용이 정당화될 수 없는 촬영물인 것이다. 그러니 촬영 당시 어떠하였냐가 영향을 줄 일도 아니었다.
일단 찍혔다면, 어쩔 수 없다?
곽현화 씨의 가슴 노출 영상을 불법 사용한 감독에 대한 형사 1심에서는 해당 영상이 ‘동의되지 않은 촬영물이란 점이 소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가 나왔다. 2017년 내내 치열하게 공방된 형사 항소심 판결을 얼마 앞두고, 감독 측은 문제의 영상이 촬영과 배포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곽현화 씨가 거짓말을 한다는 취지의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육성이 생생한 녹음파일이 있으니, 곽현화 씨야말로 기자회견으로 맞불을 놓을 법도 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법원을 믿고 판결을 기다리기로 했다.
피해자가 제작 단계에서 문제의 촬영 장면을 빼달라고 말하는 육성 파일과, 가해자가 무단으로 배포하고 이를 들키자 약속을 어긴 것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육성 파일이 존재하고 법정에 제출된 상황이었다. 재판부도 알고 있지만, 당연히 피고인 감독도 이를 알고 있었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객관적 증거들이 존재하고,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 수치심을 줄만한 촬영물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법과 상식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언론에 호소하여 법원을 압박하는 방식을 지양하고자 했다.
그런데, 항소심의 결론은 당황스러웠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긴 하였으나, 배우출연계약서에 감독에게 영화와 관련된 여러 권리들이 기재되어 있고, 피해자가 밝힌 의사가 영화관 상영본에서 해당 장면을 빼달라는 것이긴 한데, 영화관 외의 상영본에서‘도’ 빼달라고 말하진 않아서라는 취지였다.
지금은 사진 스튜디오 촬영물 불법유포 문제를 제기한 양예원 씨의 사건이나, N번방 사건 등을 거쳐오면서 ‘촬영을 당한 사람의 의사에 반하는 유포’에 대한 법률의 해석이 그 입법 취지나 국민의 법 감정에 좀 더 부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불과 5년 전의 우리 법원은 ‘일단 찍혔다면, 이를 어디 어디에 유포하지 말라고 일일이 지정하지 않았다면, 감독의 사용은 잘 몰라서였을 수 있으니 무죄’라는 수준이었다.
항소심 중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을 다시 하던 날, 증인신문이 끝나고 곽현화 씨와 술을 마셨다. 우리의 대화에서 여러 차례 오고 간 말은 ‘여한이 없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인데, 이게 이렇게 다퉈서 법원을 설득해야 할 일인 것이냐’, ‘잘못된 일도 오랫동안 묵인되다 보면, 잘못인 일보다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불편해 한다’ 같은 것 등이었다. 씁쓸했다. 그렇지만 상식과 법률, 물증이 있는데도 ‘가해자가 잘못이지만 잘못인 줄 몰랐을 수 있어서 무죄’라는 판결이 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현기증이 났다.
곽현화 씨가 감독을 고소하고 법에 처벌을 구했던 것은 실제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한 젊은 여성의 삶, 유망한 여성 연예인의 삶에 미친 폐해가 컸다. 그런데 우리 사회와 법원에서는 ‘성인지 감수성’ 개념이 이제 막 태동하던 시기였고, 혹여 몰라서 잘못을 저질렀을지도 모를 가해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크게 여겼다.
문제는 법원의 이런 판결이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고 잘못을 범죄로서 선언하지 못한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사건의 내막을 제대로 모르는 많은 이들에게 마치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한 것이 문제고, 피해자가 우선은 동의하여 신체를 노출해 촬영했다면 이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돌리거나 보는 것이 정당한 일인 것처럼 잘못된 인식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곽현화 씨가 처음 고소를 하며 가졌던 문제 의식이나, 이 사건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로 했다. 급하게 합정동에 기자회견을 할 공간을 물색하고 보도자료를 작성해 기자회견을 열고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적어도 대놓고 곽현화 씨의 문제 제기가 잘못이었다거나 감독이 억울하게 재판을 받았다는 식의 기사나 관련 포스팅은 사라졌다.
의사에 반하는 ‘유포’, 영화계 노출 촬영 문제 수면위로
하지만 피해자로서나, 그를 지원한 변호사로서나 아쉬움이 너무 컸다. 곽현화 씨의 사건이 영화계의 갑을관계에서 열악한 지위에 있는 배우로 하여금 협의되지 않은 촬영을 하게 만들거나, 그런 촬영물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피해자가 어떤 사정에 의해 촬영에는 동의하였다고 하여도, 그걸 찍었으니 그럼 봐도 된다는 식의 생각이나 행동이 폭력임을 인식하는 전환점이 되길 바랐다.
다행히, 불법행위 손해배상소송의 시효 문제로 2017년 봄에 우선 감독에 대해 제기해 두었던 민사소송이 남아있었다. 소송을 제기한 날로부터 1심에서만 판사가 여러 차례 바뀌면서 3년 5개월 여가 흘렀다. 2017년 대한민국 형사법원에서 범죄로 선언받지 못했던 곽현화 씨의 피해는, 2020년에 민사법원을 통해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정받으며 ‘승소’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결국 가해자에게 형사처벌이 안 되지 않았냐’, ‘민사배상 판결에 3년 5개월이나 걸리지 않았냐’의 문제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후 양예원 씨를 비롯하여 수많은 어린 나이의 피해자를 양산한 사진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회의 촬영물 유포 사건이나,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폭력 사건이 이슈가 되어 엄단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되는 등 진일보를 이루는 과정에 곽현화 씨의 사건이 한 몫을 했다고 본다. 영화계 내에서 배우의 노출 장면 촬영과 관련하여 여러 자성의 목소리를 이끌어 낸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성과였다.
곽현화 씨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함께 달렸던 그 다툼의 과정을 생각해본다. 피해자에게는 길고 외로운 싸움이었고 비록 형사처벌하는 결과를 낳지는 못하였으나, 문제 의식을 갖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피해자 일인이 자신의 삶과 존엄, 그리고 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그런 속에서 과거의 한 때에는 내가 걸었던 고단했던 과정이 있었으나, 나 역시 다른 누군가의 고단한 행군으로 수혜를 받은 오늘을 살고 있음을 환기하였다. 그렇게 함께 사건을 마무리했고, 이제 나는 멀리서나마 곽현화 씨에게 그 사건이 상처가 아닌 훈장과 동력이 되길 응원한다.
[필자 소개] 이은의. 2014년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후, 서울 서초동 법원검찰청 코앞에 ‘이은의 법률사무소’를 열고 지금까지 여러 성폭력, 성차별 사건들을 다뤄왔다. 특별한 정의와 굉장한 진보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게 처리되는 세상을, 합리적인 사고와 담론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어느새 9년째 말하고 글 쓰며 싸우는 최전방에서 세상을 계속 배워가는 중이다. 저서로 『삼성을 살다』, 『예민해도 괜찮아』, 『불편할 준비』, 『상냥한 폭력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