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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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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을 뜯는 소처럼 독서(讀書)하고 글 쓰고 싶다

황소  파우뤼스 포터르

소는 풀을 뜯는다. 부지런히 풀 뜯어먹는다. 소는 봄바람에 꽃향기 흩날리는 푸른 언덕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 풀만 뜯는다. 때론 오줌 누고 똥을 싼다. 우유와 함께 분뇨(糞尿)는 소가 흙에 남긴 향긋한 걸작(傑作)이다.
 
나는 소가 좋다. 그래서 파우뤼스 포터르의 “황소” 그림을 좋아한다. 파우뤼스 포터르(1625-1654)는 27세에 요절(夭折)했지만 독창적이고 영향력(影響力)이 있는 그림들을 남겼다. 아주 초창기(草創期)부터 동물들을 묘사(描寫)하는 데 집중했던 그는 처음으로 동물을 중심 주제(主題)로 삼은 화가 중 한 사람이다. 본질적으로 네덜란드 그림인 이 작품은 황소라는 미천한 주제에 당당한 위상(位相)을 부여하였다. 포터르가 겨우 21살 때 그린 이 그림은 초원(草原)에 있는 평범한 동물들을 묘사했지만 캔버스의 크기만큼은 기념비적이다.

그림 속의 황소는 소, 세 마리의 양, 버드나무에 기댄 농부(農夫)와 함께 있다. 대형 작품이지만 포터르는 전경의 개구리, 세심하게 묘사(描寫)된 풀, 동물들 주위를 날아다니는 파리 같은 작은 디테일에까지 아낌없는 관심(關心)을 기울였다. 저 멀리 배경(背景)에는 헤이그 근처의 레이스베이크에 있는 교회의 첨탑(尖塔)이 있다.

이 그림은 오랫동안 실제 황소를 보고 묘사한 것으로 간주(看做)되었지만, 실제로는 여러 연령대의 황소를 묘사한 여러 습작(習作)에서 각 부분을 취합(聚合)해 만들어낸 것이다. 한 살배기처럼 보이는 황소는 다 자란 소의 이빨(牙), 두 살 된 소의 뿔(角), 성숙한 가슴과 목 밑에 처진 살을 가지고 있다. 자세히 관찰(觀察)해 보면 황소의 몸은 약간 덜 자란 듯 보이는 뒷다리와 근육(筋肉)이 잘 발달한 궁둥이(骶), 목(頸), 가슴(膈), 어깨(肩)와 합쳐져서 어쩐지 불안정(不安定)해 보인다. 포터르는 분명히 실물(實物)과 똑같은 황소를 그리기 위해 최고의 부분들을 선택(選擇)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주문자(注文者)가 누구인지, 어디에 걸려있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나는 어린 시절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그래서 소가 풀 뜯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때 나는 저 소는 뭘 생각하며 풀을 뜯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했었다. 풀 뜯는 소를 바라보며 나무그늘에 비스듬히 앉아서 책을 읽던 소년시절(少年時節)에 꿈도 많았다. 

소는 소과(牛科) 우속(牛屬)에 속하는 동물이다. 소의 명칭(名稱)은 우리말로는 수소·암소·송아지 등으로 불리지만 한자어로는 더욱 복잡(複雜)하고 상세하다. 즉 수소를 특(特), 암소를 고(牯)라고 하며 송아지도 갓난 것은 독(犢), 두 살짜리는 패(㸬), 세 살짜리는 삼(犙), 네 살짜리는 사(牭)라 한다. 또 한 가지 색으로 된 것은 전(牷)이라 한다.

또 소를 생구(生口)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말에서 식구(食口)는 가족(家族)을 뜻하고 생구(生口)는 한집에 사는 하인(下人)이나 종을 말하는데, 소를 생구라 함은 사람대접을 할 만큼 소를 존중(尊重)하였다는 뜻이다. 이렇게 소를 소중(所重)히 여기는 까닭은 소가 힘 드는 일을 도와주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며 소 없이는 농사(農事)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소 값이 비싸서 재산(財産)으로서도 큰 구실을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를 한 집안의 가족처럼 여겼기에 소를 인격화(人格化)한 일화가 많다. 인(仁)의 사상에 따라 소를 인격화한 이야기로는 황희(黃喜)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황희(黃喜)가 길을 가다가 두 마리의 소가 밭을 가는 것을 보고 농부(農夫)에게 묻기를 “어느 소가 밭을 더 잘 가느냐?” 하니 농부는 황희 옆으로 다가와서 귓속말로 “이쪽 소가 더 잘 갑니다”라고 하였다. 황희가 이상히 여겨 “어찌하여 그것을 귓속말로 대답하느냐?”고 물으니, 농부는 “비록 미물(微物)일지라도 그 마음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으니 한 쪽이 이것을 질투(嫉妬)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는 것이다.

또, 김시습(金時習)이 소의 꼴 먹는 것과 불자(佛子)가 설법을 듣는 것을 비교(比較)한 것 등도 있다. 또 소의 우직(愚直)하고 인내력 있고 충직한 성품을 나타내는 전설(傳說)이 있다.

그리고 경상북도(慶尙北道) 상주시(尙州市) 낙동면(洛東面)에는 권씨라는 농부의 생명을 구하고자 호랑이와 격투 끝에 죽은 소의 무덤과 관련된 전설(傳說)이 있고, 개성(開城)에는 눈먼 고아에게 꼬리를 잡혀 이끌고 다니면서 구걸(求乞)을 시켜 살린 전설이 전해지는 우답동(牛踏洞)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처럼 한국이란 나라는 기나긴 세월을 거쳐 소를 사랑했고 자랑스레 여겼다. 그리고 육식문화(肉食文化)의 원리와 초식문화(草食文化)의 원리를 융합(融合)시켰다. 이것이 바로 한국 문화의 원리(原理)가 아닌 원리였다. 구운 쇠고기에 상추를 싸먹는 한국문화는 묘한 조화(調和)를 이루었다.

중국문화와 한국문화의 내실(內實)에는 같은 면이 있다. 서로 유사한 친근성(親近性)이 존재하는 것은 육식문화(肉食文化)를 공유해온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동양 2국이 유사(類似)하면서도 또 다른 문화를 공유한 문화적 콘텐츠를 만들었다. 소와 소등에 앉아 피리를 부는 목동(牧童)과도 같은 자연중심의 묵가적(墨家的)인 또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과 불교(佛敎), 도교(道敎), 유교(儒敎)의 요소들이 긴밀(緊密)히 결합되었다.

서양적 근대의 합리주의(合理主義)와 속력(速力)을 추구하는 질주학(疾走學)의 논리가 동양에서도 유행되고 있다. 지금은 소들마저도 꼬리를 깃발로 추켜들고 말처럼, 자동차처럼 질주(疾走)해야 하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자칫 그런 질주의 무한한 경쟁(競爭)과 배제사회에서 소의 뿔은 타자를 공격하는 문명충돌(文明衝突)의 예리한 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적어도 사고, 사색의 절주를 한 박자, 두 박자 줄여서 천천히 일하면서 사고(思考)하고 싶다. 왜냐면 동양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명사들이 손을 꼽을 정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유연(悠然)한 소처럼 걸으면서 사고하고 지식의 풀을 섭취하고 싶다.  그리고 천천히 저작(咀嚼)하고 소화(消化)시켜서 유연한 아이디어의 발상를 여과(濾過)시키고 정신적 우유로 배설(排泄)하고 싶다. 부침개, 전 같은 우분(牛糞)과 감주(甘酒),  막걸리 같은 우뇨(牛尿)도 줄기차게 배설하고 싶다. 또 섭생(攝生)도 배설(排泄)도 소와 같은 유연(悠然)과 유연(柔軟)의 맵시를 내고 싶다. 그러면서 소처럼 즐기면서 놀면서 책을 읽고 사고(思考)하고 글을 부지런히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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