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중앙일보
“무차별 현금 뿌리기가 아니라, 어려운 계층부터 우선 지원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2월 26일 성장ㆍ복지ㆍ일자리 정책 공약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혔다. 보편 복지보다는 취약계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선별 복지를 강조한 것이다.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전 국민 기본소득’을 내세운 것과 상반된다.
윤 당선인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도 “기본소득 같은 현금성 보편 복지는 증세로 이어지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며 효과가 크지 않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현금성 지원은 자원이 한정된 만큼 자립이 어려운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일할 수 있는 계층엔 현금보다는 근로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서비스형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윤 당선인이 특히 공을 들인 것은 임신과 출산, 아이 돌봄에 대한 지원이다. 난임 부부에게는 소득과 관계없이 인공수정ㆍ시험관아기 시술비를 지원하고, 난임 치료를 위한 유급 휴가를 현재 3일에서 7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산후우울증 치료 등 산후조리도 국가가 지원하고, 아기가 태어나면 생후 12개월까지 월 100만원의 ‘부모급여’를 지급하겠다는 공약도 선보였다.
영유아~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의 안정적인 육아를 돕기 위한 대책도 나왔다. 육아 휴직 기간을 부모 각 1년에서 1.5년으로 연장하고, 배우자 출산휴가 확대, 육아기 재택근무제도도 공언했다. 또 국가 인증 민간 아이돌보미 제도를 도입하고 돌보미 비용에 대한 정부지원과 소득공제를 추진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단계적으로 통합하고, 어린이집 교사와 민간 유치원 교사의 처우를 국공립 유치원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정부가 친환경 무상급식비와 아침ㆍ저녁 급식비를 지원하는 ‘영유아 하루 세끼 친환경 무상급식’도 추진한다.
65세 이상의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현행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것도 윤 당선인의 대표적 복지 공약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은 공공 주도에서 노인 채용 민간 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모든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를 목표로 하는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문 케어가 우선순위를 따지지 않고 비급여를 무차별적으로 급여화해 건보 재정을 악화시키고 국민에게 가장 절실한 간병ㆍ재난적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대상을 기존 6대 중증질환에서 모든 질환으로 확대하고, 가구 연 소득 대비 의료비가 10%를 초과하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중증환자 요양병원 간병비 지원을 늘리고, 자영업자 등도 아플 때 쉴 수 있도록 상병수당도 주겠다는 입장이다.
장애인 지원은 개인예산제를 도입해 주어진 액수 안에서 직접 원하는 복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액을 결정할 때는 근로ㆍ사업 소득 공제를 50%까지 확대하고, 생계급여 지급기준을 중위소득 30%에서 35%로 상향해 21만명이 추가 혜택을 볼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제도인 긴급복지지원제도는 국민안심지원제도로 확대,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취약계층만 지원 대상이 됐지만, 코로나19 등 국가 위기 사태나 실직ㆍ이혼ㆍ질병 등으로 갑자기 생계가 어려워진 국민 누구나 신청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이와 함께 복지 행정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도 적극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단전ㆍ단수ㆍ카드체납 기록 등 빅데이터를 활용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찾아내고, 영유아ㆍ초등학생 돌봄서비스 통합 AI 플랫폼을 만들어 가정ㆍ아동ㆍ상황에 따른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토론회에서 “모든 국민이 질병ㆍ실업ㆍ장애ㆍ빈곤 등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해 주는 복지는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초가 되고 성장은 복지의 재원이 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당장의 재원이다. 윤 당선인의 복지공약을 시행하기 위해선 캠프 측 추계로도 5년간 266조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복지를 위한 증세는 없다”는 입장이다. 기존 예산을 조정하는 지출 구조조정 등이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올 예산의 경우에도 절반 가까이가 손을 대기 어려운 의무지출이라 조정할 여지가 크지는 않다. 이에 따라 공약에서 제시된 다양한 현금성 지원의 적절성 등을 놓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 중앙일보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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