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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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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양산박 두령 천죄성(天罪星) 단명이랑(短命二郞) 완소오(阮小五)

[圖片信息  천죄성(天罪星) 단명이랑(短命二郞) 완소오(阮小五)] 


수호전 108성(水滸傳百八星)은 “수호전(水滸傳)”에 등장하는 108명의 호걸을 가리킨다. 36명의 천강성(天罡星)과 72명의 지살성(地煞星)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 역사 기록에는 송강(宋江)이 36명을 이끌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72명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송강은 실제 인물이나 기록에 따라서 송강이 36명에 포함되기도 하고 “대송선화유사(大宋宣和遺事)”같은 책에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36명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진 인물은 양지(楊志), 임충(林冲), 왕영(王英), 노지심(魯智深), 사진(史進), 무송(武松) 정도다. 공식적인 역사 기록상에는 "송강이 36명의 무리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장숙야(張叔夜)에게 토멸(討滅)당하였다" 정도가 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양산박이 의(義)를 내세우는 집단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초대 두령(頭領) 조개(晁蓋)는 포함되어 있지 않고 송강(宋江)의 취임식 행사 때 발견된 비문(碑文)에 의해 서열이 결정되어 이후 주장과 부장을 결정하는 데에도 이 서열(序列)에 따랐다는 점이다.

천죄성(天罪星) 단명이랑(短命二郞) 완소오(阮小五)의 별명은 단명이랑인데 '목숨을 내놓은 둘째' 라는 뜻이라고 한다.

처음에 등장할 때는 오용(吳用)이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을 만나서 채경(蔡京)의 생신선물(生辰膳物)을 절도하려고 완소이(阮小二), 완소칠(阮小七)과 만날 때 완소오(阮小五)가 안보이자 완소이가 자신들의 집으로 오용을 모셔가서 완씨 삼형제의 어머니가 소오는 내 비녀을 챙기면서 도박(賭博)하러 갔다고 한다. 완소이는 껄껄 웃고 완소칠는 재산까지 날렸는데 또 날렸다고 완소오를 깐다. 오용은 속으로 오히려 완씨삼형제를 쉽게 이용(利用)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세히 보면 완씨의 재산(財産)은 가난한 편 물론 가난하게 만든 원인은 옆에 양산박이 석가촌(石碣村) 호수에 약탈(掠奪)하거나 독점(獨占)하기 때문이다.

석갈촌(石碣村)에서 형제들과 어부(漁夫) 노릇을 하였다. 오용(吳用)과 친분이 있어 그의 설득(說得)에 의해 생신강(生辰綱) 강탈사건(强奪事件)에 참여하였다. 형제들과 같이 수군두령(水軍頭領)으로 활약하였으나 방납(方臘)의 난 때 누민중(婁敏中)의 칼에 맞아 생을 마감하게 된다.

완씨삼웅(阮氏三雄)의 둘째인데 이름은 다섯째이다. 큰형인 완소이가 태어났을 때는 둘째였지만 성인(成人)이 되었을 때 맏형이 된 것처럼 완소오(阮小五)도 태어나기야 다섯째로 태어났지만 나이를 먹고 보니 아마도 완소이가 결혼할 무렵이 아닐까 생각된다. 역시 둘째인지라 별명에는 이랑(​​二郞)이란 말이 들어간다. 그러고 보면 이름에 소(小)자가 들어가고 태어난 항렬로 부르는걸 보면 완씨삼웅(阮氏三雄)의 이름은 정식 이름이라기보다는 둘째, 다섯째, 일곱째와 같은 뜻이며 이것은 개똥이나 돌쇠 비슷한 막 부르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태어난 순서대로 이름을 적당히 지어 붙이고 성인이 되면 정식이름을 다시 지어 붙어야 하지만 가난하게 물고기를 잡아 팔아먹는 소시민(小市民)인지라 그럴 여유가 없어 이름으로 그냥 굳어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

유독 수호지 등장인물들 중에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의 이름만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완소오(阮小五)는 형 완소이(阮小二) 보다는 강렬한 인상을 내게 심어주었는데 가슴에 아로새긴 야차의 문신이나 야차인지 귀신인지는 불확실하다. 천강성의 별 이름이 '죄'이고 별명도 일찍 죽어버릴 둘째라는 뜻의 단명이랑(短命二郞)인지라 단명이랑 완소오가 아닌가싶다.

완소오(阮小五)는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인 “수호전(水滸傳)”의 등장하는 인물로 108성 중 29위이자 천강성(天罡星)의 천죄성(天罪星)에 해당한다. 눈빛이 날카롭고 가슴에 표범 문신(文身)이 있으며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이 하나같이 일찍 죽는 탓에 단명이랑(短命二郞)이라는 별호(別號)로 불린다. 완소이(阮小二)·완소칠(阮小七)과 형제 관계이며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 중 둘째이다.

양산박(梁山泊) 인근에 있는 석갈촌(石碣村)에 거주하는 완씨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형제들과 함께 어부(漁夫)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관리들의 가혹(苛酷)한 세금 징수와 양산박의 산적(山賊)들로 인해 생활고를 겪었고 착실하게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도박장(賭博場)에도 손을 대는 등 생계를 위해 불법적(不法的)인 일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도박장(賭博場)에서 도박을 하다 자신의 어머니의 비녀까지 저당 잡힌 뒤 집에 돌아와 보니 평소에 자신들이 신세를 지고 있던 오용(吳用)이 찾아왔으며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는 자신들의 삶의 처지에 대해 불만(不滿)을 토로하며 자신들의 솜씨를 발휘할 만한 방법이 없다고 한탄하였다. 이 때 오용은 완씨 심형제(阮氏三兄弟)에게 자신과 친분이 있는 조개(晁蓋)가 유당(劉唐)과 함께 북경(北京)의 유수사(留守使)인 양세걸(梁世傑)이 자신의 장인인 채경(蔡京)의 생일 선물로 보내는 생신강(生辰綱)을 강탈하려는 계획(計劃)을 세웠으니 함께 협력(協力)해달라고 부탁하였고 평소에 자신들이 모시고 싶어 했던 조개(晁蓋)와 함께 하기를 원했던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는 기꺼이 수락했다.

이후에 합류한 공손승(公孫勝)까지 총 7명으로 생신강 강탈(生辰綱强奪)을 계획했으며, 이들이 함께 계략을 꾸며 생신강을 탈취(生辰綱奪取)하는 데 성공했다. 그 뒤 관군의 추격을 피해 양산박(梁山泊)에 몸을 의지하려는 조개를 따라 함께 양산박으로 갔으나 이전과 마찬가지로 양산박의 두령인 왕륜(王倫)이 자신의 지위 보전을 위해 조개(晁蓋)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임충(林冲)이 왕륜을 설득(說得)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임충(林冲)이 왕륜을 살해한 뒤 조개를 새로운 두령으로 삼자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 또한 양산박의 일원이 되었다. 그 직후 조개 일행을 공격(攻擊)하기 위해 제주(濟州)의 관리 하도(何濤)가 관군을 이끌고 양산박으로 왔으며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는 어부로서의 경험과 양산박의 지형(地形)을 이용한 수상전을 펼쳐 이들을 전멸(全滅)시켰다.

그 뒤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는 양산박의 수군(水軍)을 이끌었으며 능진(凌振)이 이끄는 포병 부대를 전멸시키는 등의 활약을 했다. 이후 관승(關勝)과의 싸움에서 장횡(張橫)이 붙잡히자 장순(張順)의 만류를 듣지 않고 독자적으로 관승(關勝)을 공격했으나 오히려 완소칠(阮小七)이 사로잡혔고 이후 양산박 동료들의 활약으로 완소칠은 구출(救出)되었다.

108성 집결 이후에는 수군 두령(頭領) 중 한 명으로 임명되었으며 관군과의 계속된 전투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이후 조정에서 양산박의 귀순(歸順)을 권하자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는 적극적으로 반대했지만 결국 양산박은 조정에 귀순하였다. 하지만 그 뒤에도 완씨 삼형제(阮氏三兄弟)의 활약은 계속되었지만 계속적으로 송강(宋江)에게 조정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 등 조정에 대한 불신감(不信感)을 드러내었다.

이후 방랍(方臘)의 난을 진압(鎭壓)하는 과정에서 강남(江南)이 하천이 많은 지형이라는 점을 이용해 활약했으며 자신의 형 완소이(阮小二)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 뒤 다른 수군 두령(水軍頭領)들과 함께 적에게 거짓 항복(降伏)을 한 뒤 적의 내부에서 적을 공격해 청계(靑溪)를 함락(陷落)시키는 데 공헌(貢獻)했으나 그 과정에서 누민중(婁敏中)에 의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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