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李應)은 수호전의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천부성(天富星) 박천조(撲天雕) 독룡강(獨龍江) 앞의 세 마을 중 이가장(李家莊)의 우두머리다. 한 자루 혼철로 만든 점강창(點鋼槍)을 잘 쓰며 특히 다섯 자루의 수리검의 명수였다.
시천(時遷)이 축가장(祝家莊)에 잡히자 양웅(楊雄), 석수(石秀)가 그에게 도움을 청해 축가장에 사람을 보냈으나 거절당한 후 이를 따지려다 축표(祝彪)의 유인계(誘引計)에 빠져 팔에 화살을 맞았으나 양웅과 석수의 구원으로 목숨을 건진다. 축가장이 양산박(梁山泊)에 의해 패망한 뒤 조개(晁蓋)와 송강(宋江)의 계책으로 양산박에 합류한다.
당대의 유명한 부자로 독룡강(獨龍江) 일대를 구성한 축가장(祝家莊), 호가장(胡家庄)과 함께 이름 높았던 이가장(李家莊)의 주인이었다. 집사인 두흥(杜興)의 소개로 알게 된 양웅(楊雄), 석수(石秀)의 부탁으로 닭 도둑질하다 축가장에 잡혀간 시천(時遷)을 구하고자 축가장에 부탁하나 오히려 사이만 나빠지고 직접 가서 담판을 지으려 하지만 축표(셋째)에게 "늙은 놈"이라고 욕을 들었고 이에 격분해 축표와 맞서나 축표(祝彪)의 활에 맞아 금창(金瘡)을 입고 물러나간다. 결국 양웅, 석수가 양산박에 가서 외세인 양산박을 끌어오게 된다. 양산박이 축가장하고 싸울 때 송강이 이가장을 양산박에 끌어들이기 위해 편지와 선물을 보냈지만 이응(李應)은 정중히 이를 거절하고 중립(中立)을 지켜서 싸움에 가담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축가장(祝家莊)이 궤멸(潰滅)된 직후 갑자기 관군들이 장원으로 쳐들어오면서 두흥과 같이 끌려 나가는데 양산박이 이들을 구출(救出)했지만 사실 관군들의 정체는 양산박 군이었다. 덤으로 이가장(李家莊)은 이응의 가족들과 수족, 재산을 양산박으로 끌어오고 바로 태워버린다. 이건 뭐 병 주고 약주기도 아니고 결국 가족과 재산도 양산박에 있고 갈 곳이 없는 이응(李應)은 두흥(杜興)과 함께 양산박에 투신(投身)하게 된다. 그래도 양산박에서는 꽤 높은 지위였고 주로 양산박의 재산관리를 담당했다.
사용 무기는 점강창(點鋼槍)과 비도(飛刀)이다. 다만 같은 비도를 던지는 항충, 이곤, 두미(杜微)에 비해 사용빈도가 적지만 여러 적장들에게 비도를 투척(投擲)하여 비결을 나름대로 세웠다.
방납 토벌(方臘討伐) 후 운주 도통제가 되었으나 완소칠(阮小七)이 삭탈(削奪)당하고 시진(柴進)이 벼슬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듣자 부임한 지 6개월 만에 벼슬을 버리고 두흥(杜興)과 같이 독룡강(獨龍江)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부호(富豪)가 되었다. 수호후전에서는 완소칠(阮小七), 손립(孫立) 등이 등운산(登雲山)에 들어간 일로 인해 두흥이 잡히자 두흥을 구하려고 로비를 하려고하다가 풍표에게 붙잡히지만 양림(楊林)의 계략으로 풀려나 풍표를 나무 가지로 죽이고 옛 동료들과 다시 음마천(飮馬川)에서 뭉친다. 금나라가 정강의 변을 통해 북송을 집어삼키자 나머지 옛 동료들이 있던 등운산으로 향했으며 이 와중에서 귀양을 가던 고구(高俅), 채경(蔡京), 동관(童貫), 채유(蔡攸)와 마주쳤고 이들을 독살(毒殺)한다. 그 뒤로 이준(李俊)이 섬라국(暹羅國)의 왕이 되자 후작 겸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에 봉해졌다. 수호후전에서는 전체적으로 수호전 본편에 비해 비중이 많이 올라갔으며 섬라국으로 갈 때까지 실질적인 총사령관 역할을 한다.
보통은 병영과 연병장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이가장(李家莊)에서 초반에 빠르게 호삼랑(扈三娘)과 이응(李應)에게 200~300명 내외의 병력을 쥐어준 다음 축가장(祝家莊)을 털어먹고 다 풀어주면서 축씨 삼형제와 본진을 맞바꾸는 방법이 가장 흔하지만 그보다는 시작하자마자 본진 버리고 하남부 같은 좋은 요새에 정착해서 사진(史進)을 빠르게 얻는 방법이 효율은 더 좋다.
이응(李應)은 독룡강(獨龍江) 동쪽 이가장(李家莊)의 대부호로 병관색(病關索) 양웅(楊雄)을 도와 축가장에 잡혀간 고상조(鼓上蚤) 시천(時遷)을 구하려다 축가장(祝家莊)과 사이가 벌어져 싸움을 걸었다. 축표(祝彪)에게 화살을 맞고 문을 닫아걸었으나 오용(吳用)의 계책으로 결국 양산박에 들어간다.
방납(方臘)의 장수 오웅성 살해하는 등의 공적(功績)을 세우고 방납을 토벌한 후에는 중산부 운주 도통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응(李應)은 독룡강(獨龍江)의 실력자 중 한명으로 이가장(李家莊)을 다스리는 대지주이다. 무예가 뛰어나고 재산이 많아 별명이 박천조(樸天鵰)이다. 혼철(混鐵)로 만든 한 자루 점강창(點鋼槍)과 다섯 자루 비도를 잘 쓴다. 두흥(杜興)의 주인이다.
독룡강(獨龍江)에는 축가장(祝家莊)의 축룡(祝龍), 이가장(李家莊)의 이응(李應), 호가장(胡家庄)의 호삼랑(扈三娘)이 세를 이루고 있었다. 양웅(楊雄)과 석수(石秀), 시천(時遷)이 계주에서 사람을 죽이고 축가장에서 소란을 피워 시천이 잡히자, 양웅의 부탁으로 축가장에 사람을 보낸다. 축가장의 축룡(祝龍), 축호(祝虎), 축표(祝彪) 삼형제는 시천을 풀어달라는 이응의 부탁을 거절하였고 이를 따지러 갔으나 화살을 맞고 부상당해 돌아온다.
양산박의 도움으로 축가장(祝家莊)이 함락되자 조개(晁蓋)와 송강(宋江)의 계책으로 양산박(梁山泊)에 합류한 후 시진과 함께 재물 관리 두령이 된다. 방납 토벌이후 관직(官職)을 얻었으나 시진(柴進)이 양민이 되자 관직을 버리고 독룡강(獨龍江)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감했다.
박천조(撲天雕) 이응(李應)은 소선풍(小旋風) 시진(柴進)이 관직을 반납했다는 소식을 듣자 따라서 반납(返納)하고 귀향하여 다시 부호가 되었다. 시진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재물을 유지하는 편이라면 이응은 농사일도 거들고 장사에도 관여하는 등 직접 노력해서 물론 천부(天賦)를 타고 태어나 저절로 돈이 모이는 운세이지만 부유함을 유지하는 기질(氣質)이 있다. 따라서 그의 장원은 그에게 삶의 터전이며 이 터전을 포기(抛棄)하고 양산박에 들어간다는 자체가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소선풍(小旋風) 시진(柴進)과 함께 양산박의 재정과 식량을 담당하였으며 방납 토벌(方臘討伐) 후에 시진의 관직 사직(辭職)한 소식에 자신도 벼슬을 반납한다. 이후 독룡강(獨龍江)으로 돌아가 많은 재물을 모으며 여생을 즐겁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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