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귀성(天貴星) 소선풍(小旋風) 시진(柴進)은 수호지(水滸志)의 등장인물이며 양산박(梁山泊)의 108 두령 중 한명이다. 천귀성(天貴星)의 화신이자 별명은 소선풍(小旋風)인데 덧붙여 대인배(大人輩)이다.
'시'씨는 송나라(北宋) 이전의 왕조인 주(周)나라의 왕성(王城)이며 시진(柴進)은 그 후손이다. 송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이 즉위할 때 전 왕조의 후손을 존중하여 제사를 잇게 하고 반역죄(反逆罪) 이외의 어떤 죄라도 사면해주는 단서철권(丹書鐵券;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을 내려줬으며 귀인으로 지내게 해주었기 때문에 시 대관인(大官人)이라 불리며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다.
천귀성(天貴星) 소선풍(小旋風) 시진(柴進)은 수호지의 소설 내에서 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인덕(人德)과 성품에 반하여 절하게 하는 이가 둘 있으니 첫째가 산동(山東)의 급시우(及時雨) 송강(宋江)이고, 두 번째가 창주의 천귀성(天貴星) 소선풍(小旋風) 시진(柴進)이다. 억울하게 귀양 가는 호걸들 대접하기를 좋아하여 그의 집에는 식객이 끊이지 않았는데 표자두(豹子頭) 임충(林冲), 행자(行子) 무송(武松)도 그의 식객노릇을 한 적이 있었으며 급시우 송강과 흑선풍(黑旋風) 이규(李逵)도 그와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귀양 가는 이를 붙들어 두고 대접할 만큼 영향력(影響力)이 있었던 것은 그의 가문 덕분이다.
송나라 태조 조광윤(趙匡胤)이 제위에 오르면서 송나라를 건국하게 되었는데 송태조(宋太祖)는 5대 10국으로 분열(分裂)된 여러 나라들 중 후주 시세종(柴世宗)의 장수였다. 이런 왕조의 교체에는 전 왕조의 후손들을 몰살하는 피바람이 불기 마련인데 송태조는 무혈정변(無血政變)이라 하여 꽤나 평화로운 방법으로 왕조를 교체했다. 이때 죽은 시세종의 어린 아들이 평화롭게 자신에게 황위를 물려줬다 하여 이 시씨 가문에 특권을 하사(下賜)하는데 손수 시씨 가문에 단서철권(丹書鐵券)을 하사하였고 그로 인해 시씨 가문은 조용히 살면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구사할 수 있었다.
일단 멸망한 왕조이긴 하지만 왕족의 후예(後裔)인데다 그 개인의 품성이 뛰어났는지 많은 사람들이 시진의 기품에 절로 고개를 숙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랬었는데 미염공(美髥公) 주동(朱仝)을 양산박으로 끌어들이려고 썼던 계책이 약간 틀어져 흑선풍(黑旋風) 이규(李逵)가 소선풍(小旋風) 시진(柴進)의 장원에 남게 되면서 신세를 아예 망치게 되는데 시진의 숙부인 시황성의 저택이 훌륭하여 고구(高俅)의 사촌동생인 고렴(高廉)의 처남 은천석(殷天錫)이 권세만 믿고 시황성(柴皇城)을 핍박하여 이 저택을 빼앗으려고 하다가 흑선풍 이규한테 맞아 죽고 만다.
시진(柴進)은 이규(李逵)를 도망시키고 고렴(高廉)에게 체포되는데 일단 시세종(柴世宗)의 후예로 단서철권(丹書鐵券)도 있긴 하지만 워낙 뒤가 구린 형태로 체포되는 바람에 죽기 직전까지 몰리게 된다. 양산박은 소선풍 시진을 구하기 위해 대대적인 출동을 하고 고렴의 환술(幻術) 때문에 계주(薊州)로 공손승(公孫勝)을 두 번이나 찾아가는 수고를 들여서 겨우 고렴을 죽이고 시진을 구출해 낸다. 창주의 떵떵거리던 시진은 일단 빨간 줄 간 신세가 되어 양산박(梁山泊)에 들게 되고 직접 싸움에 참가하는 일 보다는 첩보외교관(諜報外交官) 비슷한 형태로 활약을 많이 하게 된다.
호걸을 좋아하여 임충(林冲), 송강(宋江), 무송(武松)을 비롯한 많은 사람(食客)들이 시진(柴進)의 저택에서 신세를 졌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노잣돈 챙겨주고 등등 양산박(梁山泊)의 세력 강화에 일조(一助)한 인물이다. 명성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송강과 함께 이름만 밝히면 "시대관인(柴大官人)"라며 호걸들이 인사를 올리는 두터운 인망(人望)의 소유자이다. 시진 숙부의 큰 저택을 노린 간신배 고구(高俅)의 사촌동생 고렴(高廉)의 처남(妻男)되는 은천석(殷天錫)의 모략에 걸려 큰 곤욕(困辱)을 치르고 있는 것을 양산박에서 출동하여 공손승(公孫勝)을 다시 합류하고 구출한다. 그러나 심한 고문을 당한지라 노준의(盧俊義) 편에서 등장할 쯤에 다시 등장한다.
양산박에선 금전 재물을 관리하는 것이 본업이다. 대명부(大名府)에서 노준의(盧俊義)가 이고(李固)의 배신으로 당해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자 이고에게 매수된 채복(蔡福)을 회유하여 채복, 채경(蔡慶) 형제의 양산박 가담을 유도했다. 왕경전(王慶)에서 왕경의 맹장 미생을 유인시켜 폭살(爆殺)시키고 방납(防納) 토벌전에서는 시진(柴進) 본인이 공이 없다고 연청(燕靑)과 함께 적진에 들어가겠다고 진언(眞言)해서 시진은 "가인"이라는 가짜 이름으로 방랍의 부마가 되어 첩보활동(諜報活動)을 하는 대담한 활약을 보이기도 했다. 이때 방원동에서 쳐들어가온 화영(花榮), 관승(關勝), 주동(朱仝), 이응(李應)과 거짓싸움으로 방납(方臘)을 더욱 유인시켜 방납의 조카이자 방납군의 맹장인 방걸(方杰)을 창으로 찔러 낙마시키는 수훈(首勳)을 세웠다. 물론 방걸이 관승, 화영, 주동, 이응에게 공격을 당하고 지쳤고 시진의 갑작스러운 배신(背信)으로 인해 당황했지만 그래도 대단한 무력을 발휘하는 장면이다.
의외로 무술실력(武術實力)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허나 후반기를 잘 묘사하지 않은 창작물들이 있어서 잘 부각(浮刻)이 되었지 않는다. 대부호인 이응(李應)은 무력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양산박(梁山泊)에서의 활동을 보면 같은 부호 출신인 이응이나 눈치 빠른 연청(燕靑)과 행동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귀환 후에는 완소칠(阮小七)의 관직 삭탈(官職削奪)을 듣게 되자 시진(柴進)은 비록 계략이기는 했지만 방납(方臘)의 부마로 있던 것이 나중에 빌미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스스로 벼슬을 마다하고 원래 살던 창주(滄州)로 돌아가 자연을 즐기며 산다. 수호후전에서는 창주에 부임한 지부 고원에게 시달림을 받다가 옛 동료들에게 구출된 뒤 함께 섬라국(暹羅國)으로 향한다. 이준이 섬라국 국왕이 된 후 승상(丞相)에 임명된다.
별명인 '소선풍(小旋風)'이 이규의 별명인 흑선풍(黑旋風)과 유사하며 대송선화유사(大宋宣和遺事)의 108인 명단에는 이규(李逵)와 나란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본래 수호지 성립 이전에 시진(柴進)은 이규와 관련이 있는 다른 유형의 인물이었을 것이라는 가설(假設)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본 소설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이규랑 같이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다.
후주(後周)의 황제 시세종(柴世宗)의 직계후손으로 송의 태조에게 받은 단서철권(丹書鐵券)으로 치외법권(治外法權)을 행사한다. 귀족으로 호걸들을 불러 모으는 게 취미라 왕륜(王倫)과 두천(杜遷)이 터를 잡도록 도와준 적이 있어 양산박(梁山泊)과 인연이 오래되었다. 양산박에 입단하기 전에 임충(林冲), 무송(武松), 송강(宋江)에게 잘해주었다.
고구(高俅)의 사촌동생인 고렴(高廉)과 그의 처남 은천석이 숙부의 장원을 빼앗으려 숙부를 때려죽이자 흑선풍(黑旋風) 이규(李逵)가 은천석(殷天錫)을 때려죽여 대신 잡혀간다. 우물 속에 갇혀 죽게 될 뻔한 걸 양산박(梁山泊)에서 구해주어 입단한다.
원소절(元宵節) 등롱행사(燈籠行事) 때 궁궐에 잠입해 '산동 송강(山東宋江)'이라고 써놓은 병풍을 오려온다. 양산박이 조정(朝廷)의 명을 받아 난을 진압하러 나섰을 때 왕경(王慶)의 장수 미성을 화포공격(火砲攻擊)으로 살해하는 공적을 세웠다.
방납 토벌 때에는 방납(方臘)의 궁에 가인이란 이름으로 위장 침입(侵入)하여 방랍의 사위가 되어 있다가 근거지인 방원동을 점령(占領)했다. 뿐만 아니라 방랍의 조카 방걸(方杰)을 살해하기도 했다. 방납 토벌 후 창주도통사(滄州都統使)가 되나 반년 만에 관직을 반납하고 평민(平民)으로 살다가 앓지도 않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시진은 부잣집 샌님 같은 인상(印象)을 주지만 사냥을 즐기는 면모에서 나타나듯이 결코 어수룩한 무술실력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의 잠입(潛入), 위장능력은 대담성을 나타내면서 아울러 비범(非凡)함을 여실히 나타내주고 있다.
시진(柴進)은 수호전의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천귀성(天貴星), 소선풍(小旋風), 옛 후주(後周) 시세종(柴世宗)의 자손으로 창주의 대부호이다. 또한 양산박 최고의 귀인이다. 보다시피 그의 별자리는 천귀성(天貴星)이다. 귀신 귀자가 아니라 귀할 귀자를 쓰는 천귀성(天貴星)이래서 그런지 그는 양산박 최고의 귀인이기도 했으며 뭇 호걸(豪傑)들의 귀인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실제로 태생조차도 존귀(尊貴)하기 짝이 없으니 바로 대주 화제의 적파 후손이 되는 것이다. 괜히 석용이 임금님의 후손이라고 하는 게 아닌 것이다.
송나라 태조 조광윤(趙匡胤)은 당시 평화롭게 자신에게 왕위를 넘겨준 서씨 가문에게 단서철권(丹書鐵券; 쇳조각에 지워지지 않게 주서(朱書)하여 공신(功臣)에게 주어 대대로 죄를 면하게 하던 증명서)를 내리게 된다. 물론 나라가 말년에 와서는 그 단서철권조차 제대로 효력(效力)을 발휘하지 못하고 시진은 죽을 뻔한 위기에 몰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호걸(豪傑)을 좋아하여 비범한 인물이라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극진히 대접하였다. 숙부 시황성(柴皇城)이 고렴(高廉; 고구의 사촌동생)과 은천석(殷天錫; 고렴의 처남)의 행패로 죽은 후 이규(李逵)가 은천석을 때려죽인 데에 연루되어 체포된다. 절급 인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뒤 양산박(梁山泊)에 합류한다. 양산박의 식량과 재정을 담당하였으며 왕경(王慶) 토벌전, 방납(方臘) 토벌전에서는 계책을 짜내 공을 세워 책략가(策略家)로도 활약한다. 방랍 토벌 후 귀향(歸鄕)하여 횡회군에서 병사한다.
시진(柴進)의 활약은 외교, 첩보에 많이 있다. 워낙 기품(氣品) 있는 풍채와 교묘한 말재주로 사람을 현혹(眩惑)시키는 게 그의 주된 활동이었는데 왠지 그가 사이비 교주(敎主)로 활동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시진이 외교, 첩보 활동을 할 때는 주로 낭자(浪子) 연청(燕靑)이 그를 보좌했다. 연청 또한 풍채와 언변이 시진의 경우에 속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외교(外交)나 첩보(諜報)는 아무래도 눈에 확 띄는 영향 있는 활약이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보니 역시 시진(柴進)의 활약상으로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건 왕경(王慶) 토벌전(討伐戰)에서 계책을 써서 미생을 죽이고 방납(方臘) 토벌전에서는 가짜 신분으로 잠입하여 방납의 부마가 되었다가 방걸을 창으로 찔러 죽이는 모습이다. 특히나 이 방걸(方杰)을 죽이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일류 첩보원이 저리가라 할 정도다.
시진(柴進)은 창주(滄州) 횡회군 출신으로 후주 시세종(柴世宗)의 후손으로 송태조(宋太祖)를 도와 송나라를 건국한 공으로 시세종의 후손은 해하지 않는다는 단서철권(丹書鐵券)을 가지고 있다. 의리(義理)를 중히 여기고 재물을 아낌없이 베풀어 수많은 호걸들과 친해 소선풍(小旋風)라 불린다. 귀양 가고 쫒기는 호걸들 중에서 시진을 모르는 이는 없을 정도였다.
고구(高俅)의 사촌동생인 고렴(高廉)이 고당주(高唐州)의 지부(知府)로 오고 그의 처남 은천석이 같이 시진의 숙부 시황성(柴皇城)을 찾아온다. 시황성이 사는 저택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시황성이 은천석(殷天錫) 패거리들에게 구타(毆打)를 당하고 병을 얻어 사망(死亡)하자 일을 진정하기 위해 시진은 이규와 고당주로 간다. 은천석의 태도에 분노한 이규(李逵)는 그 자리에서 은천석을 때려죽이고 시진(柴進)은 이를 막으려다 실패(失敗)하여 죄를 쓰고 고당주 감옥(監獄)에 갇힌다. 이에 송강(宋江)은 군사를 일으켜 고당주(高唐州)를 쳐 고렴(高廉)을 격파하고 감옥 안에 있는 마른 우물 속에 갇혀있는 시진을 구출(救出)한다. 양산박(梁山泊)에 들어가 곡식과 금전을 맡아 관장(管掌)하였으며 비밀 외교관의 역할도 해냈다.
방납 토벌(方臘討伐) 후에는 스스로 사직(辭職)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조용히 살다가 죽었다. 뭔가 간신배(奸臣輩)들의 모략으로 죽거나 병을 앓다가 죽지 않고 조용히 자연사(自然死) 하는 것 또한 왠지 참 시진(柴進)다운 죽음이라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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