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준의(盧俊義)는 소설 수호전(水滸傳)에서 양산박의 총병도두령 역할을 하던 인물로 천강성(天罡星)36인 중 천강성(天罡星)이다. 외모와 성품,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여 옥기린(玉麒麟)이라 불렸다.
옥기린(玉麒麟) 노준의(盧俊義)는 수호지(水滸志)에 등장하는 인물로써 양산박(梁山泊)의 부두령(副頭領)이다. 봉술(棒術), 창술(槍術), 박도술(朴刀術)의 달인이며 임충(林冲), 관승(關勝), 노지심(魯智深), 호연작(呼延灼), 무송(武松) 등 쟁쟁한 유명인사(有名人士)들에 가려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사실상 수호전 등장인물 중에서도 최강자(最强者) 중 한 명이다.
부두령의 위치상 다른 장수(將帥)들과 달리 직접적으로 싸우는 경우가 많지는 않고 임충(林冲) 같은 인기 인물들의 활약에 가려 있지만 노준의(盧俊義)가 참전한 전투나 일기를 자세히 보면 이들과는 차원(次元)이 다른 수준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가끔 휘하(麾下) 장수들이 고전하거나 혼자 빡 친 경우는 직접 출전(出戰)하여 나가는 족족 적장을 벤다.
그 뿐만 아니라 북경(北京)의 첫째가는 거상(巨商)이며 풍채가 당당하고 봉술에도 밝은 호걸(豪傑)이다. 이 '봉술에 능하다' 는 수호지의 거의 모든 인물에 붙는 일상형용사지만 이하의 서술(敍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준의(盧俊義)의 경우에는 겉치레가 아니며 오히려 이 인물을 묘사한 것만 보면 봉술에 능(能)한 것이 아니라 완벽히 통달(通達)했다고 말해야 옳아 보일 정도이다. 봉술 뿐 만 아니라 박도(朴刀)에도 능했다. 아무튼 싸움질에도 능한 상인이라는 시점에서 이미 이 사람의 완벽(完璧)함이 잘 드러난다.
송강(宋江)이 전 대두령인 조개(晁蓋)가 증두시(曾頭市)를 치는 도중에 사문공(史文恭)의 독화살에 맞아 전사하고 장례식(葬禮式)을 치루고 그 장례식의 주례를 맡은 중에게 북경의 명사를 묻는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다. 노준의(盧俊義)의 호걸스러움을 듣고 송강이 도적의 길로 발탁(拔擢)하려하지만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도둑질을 할리가 없으므로 고민하던 차에 책사 오용(吳用)이 꾀를 내어 노준의를 끌어내기로 한다. 오용은 이규(李逵)를 데리고 점쟁이와 벙어리 제자로 가장해 노준의에게 불길한 점괘(占卦)를 말해준 뒤 양산박이 있는 남쪽으로 향하라는 시구를 전한다. 그런데 정말로 노준의는 이 말에 낚여 남쪽으로 간다. 이때 집사인 이고(李固)와 연청(燕靑), 아내인 가씨(賈氏)에게 남쪽으로 간다고 말하자 이 셋은 당연히 반대하나 노준의는 어차피 양산박(梁山泊)을 털면서 간다고 무시하며 집사(執事) 이고를 데리고 남쪽으로 간다.
이고(李固)의 휘하 일꾼들을 모아 수레에 가짜 금을 싣고 그 속에 밧줄을 숨기고 양산박 남쪽에 당도(當到)한다. 양산박에 오면서는 참새가 봉황의 마음을 알랴 라며 희희낙락(喜喜樂樂)하던 노준의였지만 오용(吳用)의 벙어리 제자 역할을 했던 이규(李逵)를 보자 속은 것을 알아차리고 박도(朴刀)로 이규, 노지심(魯智深), 무송(武松)을 차례대로 공격을 가하지만 이들은 거의 2합 정도 만에 도망치고, 당연하지만 일부러 거짓으로 퇴각(退却) 하는 것이다. 유당(劉唐), 목홍(穆弘), 이응(李應) 3명과 싸우다가 화영(花榮)에게 모자의 깃털부분에 화살을 맞아 겁을 먹어 도망가던 중 이미 이고와 그의 일꾼들은 모조리 양산박(梁山泊)에게 붙잡히고 간신히 호수가에 도착한다. 고기잡이 어부에게 도움 받아 배타고 북경으로 되돌아가던 중 이때 오른쪽으로부터 완씨(阮氏) 삼형제가 등장하고 완씨 삼형제는 노래를 부르고선 끝에 남쪽으로 가라는 시구를 읊었다. 함정(陷穽)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이준(李俊)을 공격했지만 장순(張順)이 배를 뒤집는 바람에 양산박에게 붙잡힌다. 당연히 송강(宋江)의 특기인 잘 대접하고 사죄하며 포섭(包攝)하는 묘책을 썼지만 노준의(盧俊義)는 그런 것은 바라지 않았고 집사 이고를 보내는 대가로 양산박에 2달간 머무른다.
노준의(盧俊義)가 없는 몇 달 동안 하북(河北)에서는 이고(李固)가 자신의 주인 노준의가 반역(叛逆)을 일으킨다고 북경에 알려서 사실이 기정사실화(旣定事實化)되었다. 그 이유는 오용(吳用)이 준 시구 때문이다. 시구의 앞 글자만 따면 '노준의가 반역한다' 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하게 대접받고 하북으로 돌아온 노준의는 이고에게 쫓겨 나가서 거지꼴이 된 연청(燕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뜬금없는 체포(逮捕)를 당한다. 하루 만에 죄인이 되어 이고가 채복(蔡福), 채경(蔡慶) 형제에게 뇌물(賂物)을 주어 사형 집행을 당하려다가 시진(柴進)이 채씨 형제를 구어삼아 사형 집행을 귀양지로 보낸 것으로 처리하지만 노준의(盧俊義)을 호송하는 동초(董超), 설패(雪覇)가 이고에게 뇌물을 받아 호송 중에 노준의를 임충(林冲)이 당했던 짓을 하고 그 다음에 노준의를 죽이려고 하려나 연청에게 화살을 맞아 둘 다 죽고 노준의 본인은 구출(救出)되지만 연청이 노준의에게 줄 식량을 구하는 도중에 금세 잡히고 그 다음에 진짜로 사형(死刑)을 당할 뻔하다가 연청에게 소식을 들은 석수(石秀)가 구출하던 중 둘 다 잡혀서 감옥(監獄)에 다시 갇혔다. 이후 양산박에서 구원병을 내어 관승(關勝), 선찬(宣贊), 학사문(郝思文), 삭초(索超), 안도전(安道全), 왕정륙(王定六), 채복(蔡福), 채경(蔡慶)을 얻어가면서 대명부(大名府)를 약탈하고 노준의(盧俊義)를 구한다. 노준의는 풀리자마자 자신의 집으로 쳐들어가 이고와 가씨를 처참하게 죽이고 갈 곳을 잃은 노준의는 양산박(梁山泊)의 두령이 된다. 송강의 '이 모든 것은 계획대로'의 순간이다.
양산박 총두령 조개(晁蓋)가 증두시(曾頭市)의 장수 사문공(史文恭) 적과의 전투 중 화살에 맞았고 이후로 숨을 거두기 전 사문공을 잡은 자에게 양산박의 총두령 자리를 물려주라고 유언(遺言)하였는데 그 사문공을 잡은 자가 바로 노준의(盧俊義)다. 사실 노준의가 나는 양산박에서의 공이 없으니 나도 참전(參戰)하겠다고 하자 오용(吳用)이 사실상 공을 세우지 말라고 구석에 쳐 박혀 있으라고 복병(伏兵)으로 두었다. 우연히 사문공이 그쪽으로 도망하는 걸 연청(燕靑)과 함께 사문공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래서 조개 사후 임시 총두령을 맡고 있었던 송강(宋江)이 그에게 총두령 자리를 주려고 하나 사양(辭讓)한다. 이후 서로 지겹게 양보(讓步)하다 못해 결국 누가 먼저 근처 고을 동평부(東平府)와 동창부(東昌府)를 잘 털어먹는지 내기하는 방식으로 총두령을 정하기로 했다. 송강은 내심 노준의가 잘되기를 바라며 노준의에게 책사 오용(吳用)과 도사 공손승(公孫勝)을 붙여주지만 돌팔매의 명수 장청(張淸)에게 노준의의 휘하 두령들이 줄줄이 실패를 당하면서 계획은 무산되었다. 위의 '계획대로'와는 반대의 경우. 결국 총두령은 송강이 되고 노준의는 부두령이 된다.
양산박이 조정에 귀순(歸順)한 이후 부대장으로서 요나라와 여러 반란 토벌에 출정(出征)하여 양산박의 두 군대 중 일군을 이끈다. 역적 토벌(逆賊討伐) 이후 간신들의 모략(謀略)에 의해 수은(水銀)으로 독이 퍼져 배 타는 도중에 균형(均衡)을 잃고 물속에 들어가면서 죽었다. 결과적으로는 도둑놈 소굴로 떨어졌지만 하북 최고의 부자에 곤봉(棍棒)도 천하에 맞상대가 없다고 하는 최고급 인물이다. 간신(奸臣)들이 송강과 노준의(盧俊義)를 독살(毒殺)할 때도 '노준의가 영용하여 송강을 먼저 독살하면 분명히 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노준의에게 먼저 손을 쓴 것이다.
사실 수호지의 두령들이 모두 모이는 데서 끝나는 판본에서는 후반에 등장하는 게 전부라서 별 활약이 없고 이게 다 김성탄(金聖嘆) 때문이다 노준의(盧俊義)의 집안 머슴출신 두령 연청(燕靑)이 개성적으로 묘사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분위기지만 작중 묘사를 보면 노준의의 무예(武藝)나 활약은 엄청나다. 우선 조개(晁蓋)의 원수인 사문공(史文恭)을 사로잡은 것도 노준의였고 반란군 토벌 중에는 하루에 두 성을 깨뜨렸으며 요(遼)나라 정벌 중에는 혼자서 요나라 야율득중(耶律得中)의 아들들인 4명의 장수들을 제압하는데 이 야율득중의 아들 4명과 일기토를 뜬 양산박 측 장수가 관승(關勝), 호연작(呼延灼), 서령(徐寧), 삭초(索超)로써 사실상 양산박 마군두령의 최상급 장수들이었고 각각 일대일로 야율득중의 아들들과 붙어서 승부를 내지 못했을 정도로 만만찮은 상대들이었다. 4대4 일기토가 각각 벌어지는 와중에 기회를 엿보던 장청(張淸)의 부상으로 인해 양산박 장수들이 먼저 일기토에서 물러났고 노준의는 전투에서 패배하고 퇴각(退却)하는 아군을 위해 혼자 후방에 남아 이 4명을 상대한 것이었다. 이때 노준의는 관승 등도 제압(制壓)하지 못한 이들과 1대4로 싸우면서도 막내인 야율종림을 창술로 즉살시켰고 나머지 3명은 동생의 원수를 갚긴 커녕 오히려 쫄아서 도망갈 판이었다. 심지어 그 전투가 노준의 군이 패배(敗北)하여 도망하는 와중이었고 상대방인 야율 4형제는 승기(勝氣)를 잡고 기세가 오를 대로 올라 신나게 추격(追擊)하던 중이었음을 고려하면 대략 노준의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전호(田虎) 토벌 전에 손안을 붙잡고 방랍(方臘) 정벌 중에는 여천윤과 방후의 목을 따는 수훈(首勳)을 세우기도 한다. 이렇듯 일기토 킬마크가 관승(關勝), 임충(林冲) 못지않은 데도 명예의 관련 게임에서는 무용(武勇)이 낮게 평가(評價)되곤 한다. 가만히 보면 명예가 묘하게 노준의(盧俊義)를 푸대접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무예가 뛰어난 편이라서 자만을 하는 경우가 많다. 첫 등장인 부분을 보면 알 수가 있고 하중보의 유인책(誘引策)을 하중보가 노준(盧俊義)의 본인을 무서워해서 도망쳐서 간다고 생각하다가 옥령에서 갇혀 고생한 적이 있다. 또한 아무리 세계 최강자라도 저격(狙擊), 기습(奇襲), 요술(妖術)에 장사 없게 당하는 장면도 있다.
수호전(水滸傳)과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동시에 비판한 '쌍전(원문 쌍전비판)'이라는 책에서는 노준의(盧俊義)를 예시로 들며 '제 3의 길이라곤 일절 없는 흑백논리(黑白論理)를 무의식중에 주입(注入)한다'고 비판하였다. 다만 노준의는 처음부터 이고(李固)와 가씨(賈氏)의 행동을 보면 양산박(梁山泊)이 아니라도 배신당할 운명이다.
노준의(盧俊義)는 반듯한 이마, 별처럼 빛나는 눈에 하얀 피부와 쭉 뻗은 콧대를 지녔다. 금실이 수놓인 순백색 장포 차림에 틀어 올린 긴 머리카락에 금으로 된 비녀를 꽂았다. 별명은 역시나 원전(原典)과 마찬가지로 옥기린(玉麒麟)이다. 눈동자 깊은 곳에서 위험한 불꽃이 이글거린다고 서술(敍述)된다. 그래도 평소에는 온화(溫和)한 성격이라고 한다.
산동의 급시우(及時雨), 하북의 옥기린(玉麒麟)이라 불릴 정도로 송강과 더불어 2대 호한(好漢)으로 일컬어진다. 의리(義理)를 중히 여겨 재물을 아끼지 않으나 약간 오만(傲慢)한 모습도 보인다.
결혼 5년 째 해에 지다성(智多星) 오용(吳用)의 가짜 점괘(占卦)에 넘어가 길을 나섰다가, 양산박(梁山泊)에 잡혀 두 달 간 있는 사이에 집사(執事) 이고(李固)와 바람난 부인 가씨(賈氏)에 의해 밀고(密告) 당해 처형당할 뻔 한다. 양산박의 북경성 침공(侵攻)으로 구조되어 입산하였으나 송강(宋江)이 내놓은 두령의 자리를 극구 사양(辭讓)한다. 구출된 뒤에는 부인 가씨와 이고에게 복수(復讎)를 한다.
증두시(曾頭市)에서 사문공(史文恭)을 잡아 조개(晁蓋)의 원수를 갚아 부두령이 되었다. 이응(李應), 유당(劉唐), 목홍(穆弘) 등 셋과 동시에 싸워도 지지 않을 솜씨를 갖고 있다. 요나라의 장수 넷과 필마단기(匹馬單騎)로 싸워도 밀리지 않고 천 명의 병사도 혼자 무찌르지만 군사를 이끌고 작전(作戰)에 나서면 실패(失敗)하는 경우가 많다.
사면(赦免)을 받은 뒤에 요(遼)의 야율종림 살해(殺害), 야율득화 생포(生捕), 왕경의 장수 두학, 방한 살해한다. 또 군사 금검선생 이조 생포, 방랍(方臘)의 황숙 방후, 진국대장군 여천윤 살해 등 많은 공적(功績)을 세운다. 왕경토벌(王慶討伐) 후 선무랑 대어기계 행궁단련사에 오른다. 방랍의 난 토벌 후에 여주안무사 겸 병마부총관을 받고 여주로 부임하였으나 양전(楊戩)과 고구(高俅)에 의해 수은(水銀)을 넣은 황제의 음식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강에 빠져 죽는다.
노준의(盧俊義)는 부두령이지만 별로 그런 위엄(威嚴)을 보여주지 못한다. 송강(宋江)이 늘 데리고 다녀 중심에 있는 것으로 인식(認識)될 뿐이다. 전투의 잦은 실패가 더욱 그런 면을 부각(浮刻)시킨다. 사실 다른 두령들에겐 느닷없이 나타나 2인자가 되었으니 별로 탐탁치 않을 수도 있겠다. 송강이 인덕(仁德)으로 인해 모두에게 추앙(推仰)받는데 비해 노준의는 단지 거부였던 귀하신 몸이라는 신분뿐으로 이것이 다른 두령들에게 존경(尊敬)받을만한 이유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노준의(盧俊義)는 송강(宋江)에게 부족한 뛰어난 무예실력(武藝實力)을 지녔기에 그나마 납득(納得)하는 것 같다. 노준의의 무예실력은 극중에서 볼 때 양산박(梁山泊)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양산박의 충의당(忠義堂)보다는 전장에 있을 때 그의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다.
하북의 삼절(三絶) 중 하나이며 무예 솜씨가 뛰어나고 특히 곤봉(棍棒)은 천하에서 그를 당할 자가 없다고 한다. 원래는 북경성 안의 대부호(大富豪)였으나 오용(吳用)의 계책에 빠져 집을 떠난 뒤 양산박에 두 달을 넘게 붙들려 있었다. 그 후 다시 돌아갔으나 그전부터 사사로이 정을 통하던 도관 이고(李固)와 아내 가씨(賈氏)가 노준의를 몰아붙이는 바람에 사문도(沙門島)로 귀양가게 되었다. 그 와중에 공인 동초(董超)와 설패(薛覇)에게 죽음을 당할 뻔하였으나 연청(燕靑)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더 큰 죄인(罪人)으로 몰려 다시 붙잡혀 가게 되고 처형(處刑)당할 뻔했으나 양산박(梁山泊) 사람들이 대명부(大名府)를 쳐서 구원받을 수 있었다. 송강(宋江)이 그에게 첫째 두령 자리를 물려주려 했으나 극구 사양하고 조개(晁蓋)를 죽게 만든 장본인인 사문공(史文恭)을 사로잡았다는 이유로 송강이 첫째 두령 자리를 계속 물려주려 하나 끝까지 사양한다.
결국, 송강(宋江)은 동평부(東平府)를 치고 그는 동창부(東昌府) 를 치게 되었는데 송강이 먼저 동평부를 함락(陷落)시켜 송강 다음 자리인 둘째 두령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 뒤 송강을 따라 부선봉의 자리를 맡으면서 요나라를 정벌하고 전호(田虎), 왕경(王慶), 방랍(方臘)의 세력을 토벌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방랍을 토벌한 뒤 무공대부(武功大夫)에 여주(廬州)의 안무사 겸 병마부총관(兵馬副總管)에 봉해졌으나 간신들의 간계에 빠져 수은이 든 수라상(水剌床)을 받아 음식을 먹은 뒤 몸이 마비(痲痹)되어 배를 타고 가다 사주의 회하(淮河)에 빠져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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