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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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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좋고 매부 좋은 무역정책과 흥청망청 배짱이가 경제를 부흥

[사진 = gotoperson]


무역 정책(貿易政策)은 외국과의 무역을 발전시키고 적절히 통제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국가 정책이다. 자유 무역 정책(自由貿易政策)은 외국과의 무역을 자유롭게 하는 정책이다. 수입 관세나 기타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무역 정책을 이른다. 보호 무역 정책(保護貿易政策)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상품과 동일한 것은 수입 가능 품목에서 제외함으로써 국내 산업을 보호 육성하려는 무역 정책이다. 정책 수단으로는 관세 정책을 포함한다. 전략적 무역 정책(戰略的貿易政策)은 외부 효과가 존재하는 과점 시장에서는 적극적인 무역 정책이 해당 경제의 후생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정책이다. 규모 경제와 제품 차별화가 있는 상황에서 연구 개발이나 마케팅 활동에 보조금을 제공하며 보조금을 어떤 형태로 제공하는지에 따라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데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 무역 정책 검토 제도(貿易政策檢討制度)은 자유 무역을 지향하기 위하여 세계 무역 기구 회원국의 무역 정책과 제도를 검토하는 제도이다.

공정무역 이론 
세계에는 최고의 부자 계급인 슈퍼클래스(super class)를 포함한 많은 부자들이 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이들보다 훨씬 더 많다. 제3세계 후진국(後進國)에는 무려 10억 명의 농민들이 매일 1달러 이하의 생활비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땀 흘려 농작물(農作物)을 재배하지만 막강한 구매력을 앞세운 선진국(先進國)의 제조 기업과 유통 업체들의 압력에 못 이겨 정당한 가격이 아닌 헐값에 농작물을 넘기곤 한다. 때문에 그들은 일하면 일할수록 농작물을 팔면 팔수록 가난해진다. 이처럼 선진국 수요자(需要者)와 후진국 공급자(供給者) 사이의 불공정한 무역은 현재까지도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제3세계 후진국 생산자들은 빈곤(貧困)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에 걸친 구조적(構造的)인 현상이다.

중진국(中進國)과 선진국 사람들은 가난한 제3세계 사람들을 돕기 위해 구호 물품(救護物品)을 무상 제공하거나 현금 원조(現金援助)를 해주고 있다. 하지만 구호 물품과 원조는 그 효과가 일시적일 뿐 지속적(持續的)인 문제 해결 방법은 아니다. 더구나 부패한 정부나 군인들에 의해 중간에서 갈취(喝取)당하는 경우도 많다. 그들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원조 방법은 없을까? 그들이 만들어내는 생산품을 착취(搾取)하지 않고 공정한 가격을 지불해 그들의 자존심도 살리며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주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공정무역 운동(公正貿易運動)은 바로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공정무역(公正貿易; Fair trade)이란 ‘생산자(生産者)들이 생산원가(生産原價)와 생계비(生計費)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는 무역’을 의미한다. 보다 쉽게 말하면 경제 발전 수준이 낮고 생활수준(生活水準)이 빈곤한 제3세계에서 생산된 농산물이나 원재료를 수입할 때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구입하자는 것이다. 그 대신에 중간 상인(中間商人)을 배제해서 중간 이윤을 줄여 구매자(購買者) 입장에서는 늘어나지 않은 그대로의 혹은 줄어든 원가로 구매할 수 있다.

공정무역은 시장에서 수요공급 법칙(需要供給法則)에 따라 냉정하게 거래를 하는 무역, 즉 자유무역(Free trade)과는 상당히 다르다. 자유무역(自由貿易)은 잘못하면 상대방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는데 자유무역의 이런 폐해(弊害)를 막기 위한 대안이 바로 공정무역이다.

영국의 국제구호기구(國際救護機構)인 옥스팜(Oxfam)은 1960년대 초에 제3세계 생산자들의 공예품(工藝品)을 수입하면서 공정무역을 시작했다. 옥스팜에 이어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하나둘씩 소규모로 공정무역(公正貿易)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 들어서 네덜란드의 프란스 판 데어 호프(Frans van der Hoff) 신부는 멕시코 농가의 빈곤을 돕다가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 우리는 원조(援助)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소비자(消費者)들이 우리 커피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면 삶은 나아질 것이다.”라는 멕시코 농민의 말에 공감(共感)하면서 멕시코 농가들과 손을 잡고 UCIRI라는 커피협동조합(咖啡協同組合)을 설립했다.

1980년대에 네덜란드의 막스 하벨라르(Max Havelaar) 재단은 커피를 비롯해 바나나, 꽃과 같은 다른 농산물에도 공정무역(公正貿易)을 인증하는 막스 하벨라르 라벨을 부착(付着)하기 시작했다. 막스 하벨라르는 공정무역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조직으로 발전했고 제조·유통 업체들과 연계해 대규모(大規模)의 공정무역 운동을 펼쳤다.

유럽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공정무역(公正貿易)을 세계적인 사회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1997년 공정무역 인증 기구인 FLO 인터내셔널(Fairtrade Labelling Organizations International, 국제공정무역상표기구)이 설립(設立)됐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공정무역 라벨이 서로 달라 소비자들의 눈에 띄기 어려웠는데, 이 조직이 설립되면서 통일된 라벨을 만들었고, 이는 공정무역 확산(公正貿易擴散))에 박차를 가했다.

이제 우리 주위 여기저기서 공정무역(公正貿易) 라벨을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의 패션 기업인 막스앤스펜서 매장(賣場)이나 미국의 홀푸드마켓 매장에 가면 공정무역 라벨이 붙은 상품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스타벅스와 커피빈 매장의 원두커피 팩에도 공정무역 라벨이 붙여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카페데베르 커피숍에서 공정무역 커피와 초콜릿을 볼 수 있고 한국공정무역연합(韓國公正貿易聯合)의 공정무역 가게인 울림(fairtradekorea-com)에 가면 초콜릿, 커피, 시리얼 바는 물론이고 공정무역 축구공도 살 수 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전 세계 생산량의 3분의 2를 코트디부아르 같은 서아프리카 국가에서 채취(採取)하는데 이들 국가는 아동들을 노동 인원으로 착취하는 경우가 많다. 2009년 들어 서아프리카 아동 착취(兒童搾取)에 대한 기사가 화제가 되면서 밸런타인데이에는 울림에 공정무역(公正貿易) 초콜릿 주문이 쇄도(殺到)하기도 했다.

생두 커피는 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같은 동부 아프리카를 비롯해 중남미,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다. 이들 지역의 커피 생산 농가들이 원두 가격의 하락이나 비공정무역(非公正貿易)의 영향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떤 자구책(自救策)을 마련할까? 이들은 수입이 안 되는 커피보다는 돈을 더 벌 수 있는 마약 같은 환금성 농작물(換金性農作物)을 생산해 수입을 채운다. 물론 이 마약(痲藥)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으로 들어와 우리의 영혼과 사회를 갉아먹는다. 이는 우리가 공정무역(公正貿易) 커피를 사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그동안 공정무역 상품(公正貿易商品)은 생각보다 저조한 질에 높은 가격,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점 때문에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행히 최근 들어 공정무역 상품의 품질이 개선되고 유통 업체(流通業體)가 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정무역 상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와 같이 경제와 사회, 환경을 모두 감안해 소비 품목을 결정하는 사람을 로하스(LOHAS) 소비자라고 부른다. 로하스 소비자(消費者)는 가격이나 품질에 의거해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다. 로하스 소비자는 사회적 의식(社會的意識)이 있는 소비자이기 때문에 소비를 통해 생산자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는 이타적 의식(利他的意識)을 가진 소비자이다.

이타심이 고차원(高次元)의 이기심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이타심(利他心)이 사회 전체를 안정시키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경제적·사회적 안정을 이뤄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정무역 상품을 구매(購買)하는 행위는 한편으로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저축의 역설  
우리는 자신의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소비를 하면 저축(貯蓄)할 여윳돈이 없어서 자금(資金)이 쌓이지 않고 결국 가난하게 산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부자가 되기 위해 근면(勤勉)하게 일하고 어떤 때는 짠돌이가 되어 우리 소득의 상당 부분을 저축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런 논리가 개인에게는 적합(適合)하지만 국가 전체에도 해당될까? 국민 모두가 짠돌이가 된다면 정말 그 나라가 부강(富强)해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특히 불경기(不景氣)일 때 이 논리는 더욱 맞지 않는다. 그 이유를 한 번 보자.

경기 침체(景氣沈滯)에 빠지면 미래가 불확실하므로 개인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 소비보다는 저축(貯蓄)을 더욱 늘리려고 한다. 그런데 모든 개인들이 소비를 줄이면 기업의 매출이 줄어들고 재고가 늘어난다. 따라서 기업은 생산과 고용(雇用)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되고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소득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미래가 더욱 불확실해져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져 전체 경기는 더욱 침체에 빠지는 악순환(惡循環)이 되풀이된다.

이처럼 개인 차원에서는 저축(貯蓄)이 합리적인 행동이지만 경제 전체적으로는 비합리적이 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다. 이를 ‘저축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라고 한다. 다른 표현으로는 저축의 모순(矛盾), 절약의 모순이라고도 한다. 논리학에서는 개인에게 타당한데 전체에는 타당하지 않은 것을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고 하는데 저축의 역설이 바로 구성(構成)의 오류에 해당된다.

이러한 절약의 역설(逆說)은 바로 1930년대 전 세계가 심각한 불경기에 봉착했을 때 나타났다. 불경기에 직면(直面)한 가계들이 모두 소비를 줄이면서 경기가 더욱 깊은 불황에 빠졌던 것이다. 이러한 역설적 상황을 통찰력(洞察力) 있게 인식한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가계가 소비를 늘리지 못한다면 정부라도 재정 적자(財政赤字)를 감수하고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정책 처방(政策處方)을 내렸다. 그래야 경제 전체적으로 수요가 늘어나 기업의 매출이 늘어나고 생산과 고용이 증가(增加)돼 결국 가계의 소득을 늘려 가계 소비가 늘어난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개인 차원(個人次元)의 저축과 경제 전체 차원의 저축이 다르다는 사실을 잘 파악(把握)했기 때문에 이런 정책 처방이 가능했다. 이와 같이 불경기 때에는 소비가 미덕(美德)이고 저축이 악덕(惡德)이라는 사실을 케인스는 그의 책 “일반이론” 에서 역설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인식(狀況認識)을 케인스가 처음으로 한 것은 아니다. 케인스가 활동했던 20세기 초반보다도 200여 년 전인 18세기 초반에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이 이미 이런 사실을 간파(看破)했던 것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의사이자 영국에서 자유주의 사상가(思想家)로 활동했던 버나드 맨더빌이 영국 사회를 풍자(諷刺)하기 위해 1714년에 썼던 “꿀벌의 우화(The Fable of the Bees)”에 나오는 풍자시 “투덜대는 벌집(The Grumbling Hive)”을 한 번 보자. 이 시의 부제는 ‘개인의 악덕 또는 공공의 이익(Or Private Vices, Publick Benefits)’이었다.

옛날에 한때는 매우 번성(繁盛)했던 벌의 왕국이 있었다. 왕과 귀족은 막대한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호화(豪華)로운 궁전과 별장을 짓고 멋진 의복을 만들어 입었으며 매일 산해진미(山海珍味)를 차려 놓고 파티를 열었다.

이 나라는 강력한 군대를 이용해 주변 국가를 침략(侵略)하고 식민지를 늘려나갔다. 그런데 많은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는 동안 대부분의 장수(將帥)들은 후방에 굴을 파고 그 속에 숨어 있었다. 그렇지만 개선(凱旋)할 때에는 이들이 항상 선두에 서서 영웅처럼 행동했고 따라서 훈장(勳章)은 언제나 그들의 차지였다.

재판에서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 판결이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판사와 변호사에게 갖다 바친 뇌물(賂物)에 따라 시비가 결정됐다. 상품 주문이 항상 넘쳐서 위에서부터 아래로까지 일이 끊이지 않아 모두가 사치(奢侈)스러운 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가 있었다.

이처럼 악이 횡행(橫行)하고 있는 벌의 왕국에 돌연히 한 스님이 나타나서는 모두가 잘못을 회개(悔改)해야 하다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윽고 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깨끗하고 바르게 살 것을 맹세(盟誓)했다. 왕후와 귀족은 궁전과 호화로운 의복을 모두 팔아 빚을 갚았으며 1년 내내 단 한 벌의 옷만 입는 등 검소(儉素)한 생활을 시작했다. 또한 군대를 해산하고 극장도 폐쇄(閉鎖)했으며 모두가 정직한 생활을 영위(營爲)하는 바람에 재판도 불필요해졌다.

이렇게 되자 파티와 연극(演劇)이 사라졌고 호화로운 의상을 만들던 재봉사(裁縫師)와 요리사(料理師), 목사(牧師), 석공(石工), 조각가(彫刻家), 배우(俳優) 등은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벌들은 심지어 건물에 사는 것도 사치로 여겨 모두 나무 구멍으로 이사(移徙)했으며 하나같이 깨끗하고 바르게 살 것을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들이 식민지(植民地) 삼았던 곳의 벌들이 대거 공격(大擧攻擊)해 왔고 착한 벌들을 모조리 잡아가 노예(奴隸)로 부렸다. 착한 벌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매일매일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됐다.

맨더빌은 이 시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傳達)하려고 했을까? 그는 덕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국민의 생활이 결코 윤택(潤澤)해질 수 없음을 주장하고자 했다. 또 절약해서 저축(貯蓄)하면 개인의 재산은 늘릴 수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도 그런 논리가 통용(通用)될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하고 싶어 했다. 그는 금욕과 이타심은 위선(僞善)이고 악덕이라는 욕심이야말로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며 기독교 윤리에 정면 도전했다. 그를 비난한 사람들은 그가 이처럼 드러내놓고 악덕을 옹호(擁護)했다고 해서 그의 이름 발음과 비슷하게 ‘인간 악마(人間惡魔; Man-Devil)’로 부르기도 했다.

맨더빌의 이 시를 매우 좋아했던 사람은 200년 후의 케인스였다. 그는 1930년대의 불경기가 유효 수요의 부족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强調)하기 위해 그의 대표작인 “일반이론”에서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를 인용했다.

1666년 런던에서는 대화재(大火災)가 발생해 영국 전체가 위기에 봉착(逢着)했다. 하지만 맨더빌은 런던 대화재가 엄청난 재앙(災殃)이긴 했지만 런던을 복구(復舊)하는 과정에서 유효 수요가 늘어나 영국 경제를 활성화(活性化)시킬 것이라고 낙관적(樂觀的)인 진단을 내린 바 있다.

지금도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불경기에 서민들은 소비를 줄이며 어렵게 사는데 부자들은 흥청망청 명품 제품(名品製品)을 구입하면서 호화로운 소비행태(所費行態)를 일삼는다며 부자들을 비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저축의 역설에 의하면 부자들의 이러한 소비가 전체 수요를 늘려 경기 회복(景氣回復)에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다.

가계가 소비를 늘리지 못하면 정부라도 나서서 정부 지출(政府支出)을 늘려야 하고 기업이 투자 지출(投資支出)을 늘리도록 투자 혜택(投資惠澤)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정부 차원(政府次元)에서 외국인 투자자와 관광객(觀光客)을 유치하여 투자와 소비를 늘리는 노력이 있어야 선순환 과정(先循環過程)을 통해 경기가 좋아진다.

여기서 덤으로 정부 지출(政府支出)은 경제 정부가 거둔 조세의 일부를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에 사용하는 일이다. 정부 최종 소비 지출(政府最終消費支出)은 경제 일정 기간 가운데 최종 생산물에 대한 정부의 소비 지출. 국내 총생산에 대한 지출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다. 정부 지출 승수(政府支出乘數)은 경제 조세 한 단위의 증가에 대한 균형 국민 소득의 변화를 말한다. 정부 소비 지출(政府消費支出)은 경제 일반 정부 활동에 필요한 재화 및 서비스 소비를 위한 경상 지출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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