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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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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관심 가지는 물품들을 주기적으로 수집하는 수집가의 취향


수집가(蒐集家)는 자신(自身)이 관심(關心)을 가지고 있는 물품(物品)들을 주기적(週期的)으로 수집(蒐集)하는 이들을 말한다. 수집(蒐集) 대상(對象)은 우표(郵票)나 골동품(骨董品), 지폐(紙幣) 및 동전(銅錢) 같은 잡동사니부터 지식(知識), 동물(動物), 식물(植物), 광물(鑛物), 원소(元素), 인간(人間)의 신체(身體)까지 다양하다. 간혹 비윤리적(非倫理的)인 물건(物件)을 수집(蒐集)하는 사람도 있는데‘(죽인 사람의 신체(身體) 일부(一部)를 수집(蒐集)하는 살인마(殺人魔), 밀렵(密獵)한 동물(動物)의 박제(剝製) 수집가(蒐集家), 음란물(淫亂物) 모으는 딸쟁이 등)‘ 착한 위키러라면 그러지 말자.

현실(現實)에서는 자주 찾아보기 힘들지만, 창작물(創作物)에서는 빈번(頻繁)하게 출현(出現)하는 캐릭터 유형(類型). 웬만한 장편(長篇) 작품(作品)이면 장르 불문(不問)하고 수집가(蒐集家) 기(氣)믹의 캐릭터가 몇 명(名) 정도(程度)는 나온다. 아무래도 특이(特異)한 물건(物件)을 등장시킬 개연성(蓋然性)을 확보(確保)하기 좋고, 덤으로 캐릭터의 개성(個性)도 뚜렷해져서 그런 듯싶다.

추리물(推理物)에서는 단골 중(中)의 단골이다. 수집품(收集品) 공개(公開) 행사(行事)에 주인공(主人公) 탐정(探偵)을 초대(招待), 특정(特定) 보물(寶物)의 경호(警護) 의뢰(依賴), 수집품(收集品) 도난(盜難) 및 분실(紛失) 사건(事件), 괴도(怪盜)의 도난(盜難) 예고장(豫告狀), 뒤가 구린 물건(物件)을 둘러싼 보복(報復) 살인(殺人) 등등(等等) 클리셰도(度) 다양(多樣)하다.

배틀물(物)에서도 은근히 자주 나온다. 보통(普通) 아군(我軍)으로 나올 경우(境遇) 열에 아홉은 무기(武器) 수리(修理) 및 강화(强化) 셔틀이고, 간혹(間或) 정보(情報) 전달(傳達) 및 해설역도(解說力道) 맡는다. 적(敵)으로 나올 경우(境遇) 보통(普通) 두 가지인데, 하나는 마찬가지로 무기(無期) 셔틀, 또 하나는 뭔가 위험(危險)하거나 비윤리적(非倫理的)인 물건(物件)을 수집(蒐集)해서 '내가 이렇게 또라이다.' 하는 어필.

심지어(甚至於) 별 상관(相關)없을 것 같은 개그, 러브 코미디, 순정만화(純情漫畫) 같은 장르에서도 종종(種種) 나온다. 이 경우(境遇)는 물건(物件) 자체(自體)에 초점(焦點)을 맞추기 보다는 캐릭터의 성격(性格)을 드러내는 용도(用途)로 쓰는데, 별다른 묘사(描寫)나 부연(敷衍) 설명(說明) 없이도 쉽게 개성(個性)을 확보(確保)할 수 있다. 최소한(最小限) 공기(空氣) 기믹은 면한다.

일단(一旦) 자신(自身)이 흥미(興味) 있는 것을 모으는 것이기 때문에 수집가(蒐集家)에게 수집(蒐集)을 하면서 장점(長點)은 만족감(滿足感)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러나 단점(短點)도 만족감(滿足感)인데 어떤 수집가(蒐集家)들은 단(單) 한 종류(種類)만을 수집(蒐集)하지 못해 오히려 역(逆)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境遇)도 있다.

그냥 어쩌다 보니, 혹은 필요(必要)해서 물건(物件)을 모았을 뿐인 사람은 제외(除外)하고, 취미(趣味)의 일환(一環)으로 물건(物件)을 모았거나, 적어도 어느 정도(程度)는 만족감(滿足感)을 위해 물건(物件)을 모은 사람만 기재(記載)할 것.

새로운 것이 넘치는 도시(都市)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결국(結局) 좋은 취향(趣向)으로 빚어낸 독특(獨特)하고 감각적(感覺的)인 공간(空間)들이다. 지극히 사적(私的)인 취향(趣向)으로 선별(選別)한 물건(物件)으로 가득 채운 공간(空間), 그리고 그곳의 주인장(主人長)들을 만났다.

한남동에 자리한 콜렉트는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家具)를 전시(展示)하고 판매(販賣)하는 셀렉트 숍이다. 딥티크와 몰스킨을 국내(國內)에 처음 소개(紹介)했던 Kollekt의 허수돌 대표(代表)는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를 통해 우리를 우아(優雅)한 삶으로 안내(案內)한다.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도 넘은 가구(家具)들이다. 어떻게 수집(蒐集)했나? 예전부터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家具)에 대한 동경(憧憬)과 애정(愛情)이 깊었다. 눈에 띌 때마다 하나씩 모아 오다가 본격적(本格的)으로 콜렉트를 오픈하면서부터는 전문(專門) 바이어의 도움도 받고 있다. 개인(個人) 판매자(販賣者)를 비롯해 오피스, 갤러리, 스튜디오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제품(製品)을 수집(蒐集)하고 선별(選別)해서 정기적(定期的)으로 들여온다.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家具)의 매력(魅力)은 무엇인가? 다양한 소재(素材), 감각적(感覺的)인 컬러 조합(組合)으로 어떤 공간(空間)에 두어도 확실(確實)한 포인트가 된다. 그 자체(自體)로도 충분(充分)히 디자인적(的) 아름다움이 있음은 물론(勿論)이다. 하지만 가장 큰 매력(魅力)은 역시(亦是) 대단한 디자이너들의 오리지널 피스를 소장(所藏)한다는 기쁨이다. 1940~70년은 디자인 가구(家具)의 전성기(全盛期)다. 우리가 말하는 이른바 ‘빈티지’는 단순히 ‘낡고 오래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테면 어떤 샤토에서 몇 년도(年度)에 만들었느냐에 따라 오래된 와인이 가치(價値)를 인정받는 것처럼 ‘그 시대(時代)’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 희소가치(稀少價値)가 있다. 콜렉트에서 다루는 것은 모두 이러한 디자이너 퍼니처들이다.

콜렉트를 운영(運營)하기 전(前) 무슨 일을 했나? 계속(繼續) 수입업(輸入業)을 했다. 시작(始作)은 1999년 ‘로모카메라’였다. 대학(大學)에서 전자공학(電子工學)을 전공(專攻)했지만 그쪽으로는 전혀 관심(關心)이 없었다. 신기(神奇)한 물건(物件), 처음 보는 물건(物件)을 워낙 좋아했다. 국내(國內)에 소개(紹介)되지 않은 물건(物件)들을 구경하고 찾아보다가 한 일본인(日本人)이 소개(紹介)한 70년대(年代) 필름카메라인 로모카메라에 호기심(好奇心)을 느껴 본사(本社)에 바로 이메일을 보내고 카메라를 구입(購入)했다. 로모카메라로 찍은 사진(寫眞)을 올려두기 위해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그게 쇼핑몰 형태(形態)가 되면서 정식(正式) 수입사(輸入社)인 ‘로모코리아’로 발전(發展)하게 된 거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로모카메라 열풍(烈風)을 일으키며 주목(注目)을 받았다. 이후(以後) 향초 브랜드인 딥티크와 몰스킨 다이어리도 국내(國內)에 처음 소개(紹介)했다.

딥티크와 몰스킨 모두 지금(只今)은 대중적(大衆的)으로 아주 잘 알려진 제품(製品)들이다. 좋은 제품(製品)을 선도적(先導的)으로 알렸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이 조금은 있다.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家具)에 대한 관심(關心)은 꾸준히 있었는데, 2012년 몰스킨을 모나미에 넘기고 나서 본격적(本格的)으로 이 공간(空間)을 구상(構想)하게 됐다. 콜렉트가 문을 열고나서 최근(最近) 몇 년 사이 빈티지 디자이너 퍼니처를 다루는 공간(空間)이 여러 곳 생겼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나름의 개성(個性)이 드러나는 컬렉션이기 때문에 관심(關心)있는 사람이라면 두루 살펴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 당시(當時) 제작(製作)된 디자인 가구(家具)들은 여전히 최고(最高)의 가치(價値)를 인정받고 있다. 이유(理由)가 뭘까? 가구(家具) 디자인으로만 보면 지금(只今)보다 그 당시(當時)가 훨씬 발전(發展)된 시기(時期)였다. 임스 부부(찰스 임스&레이 임스), 포울 헤닝센, 한스 베그네르, 마르셀 브로이어, 조지 넬슨, 에로 사리넨 등 그 당시(當時) 활약(活躍)한 디자이너들의 면면(面面)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아마 지금(只今) 서울의 유명(有名) 가구(家具) 편집숍에서 가장 고가(高價)로 팔리는 제품(製品)들 중 상당수(相當數)는 이 디자이너들의 제품(製品)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요즘은 이를 뛰어 넘는 제품(製品)들이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이유(理由)는 간단(簡單)하다. 감각(感覺) 있고 똑똑한 디자이너들이 가구(家具) 디자인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전공(專攻)하는 젊은 친구(親舊)들은 대부분(大部分) 웹이나 유저 인터페이스, 게임 같은 영역(領域)으로 넘어간다. 당시(當時)에는 디자인 좀 한다고 하면 대부분(大部分) 건축(建築) 또는 가구(家具)였다.

이러한 디자인 가구(家具)들이 우리 일상(日常)에 어떤 영향(影響)을 끼치나? 이미 우리는 그 제품(製品)들 속에서 살고 있다. 수많은 카피 제품(製品)을 양산(量産)해 도처(到處)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예(例)를 들어, 에로 사리넨의 튤립 체어의 경우(境遇) 중국(中國)에서 5만 원이면 만들 거다. 하지만 거의 모든 것이 그렇듯 처음 아이디어를 내고 혁신(革新)한 사람들이 있다. 핀란드 출신(出身)의 건축가(建築家)이자 산업(産業) 디자이너 에로 사리넨은 1950년대(年代)에 의자(椅子) 다리가 하나인 체어를 만들었다. ‘왜 의자(椅子) 다리는 꼭 4개여야 하지?’라는 의문(疑問)에서 시작(始作)한 것으로, 다리 하나만 있는 의자(椅子) 자체(自體)가 그 당시(當時)에는 혁신(革新)이었다. 전쟁(戰爭)을 통해 금속(金屬) 기술(技術)은 훨씬 발전(發展)했고, 지금(只今)은 흔하지만 당시(當時)에는 신소재(新素材)였던 파이버 글라스가 처음 개발(開發)된 환경적(環境的) 요인(要因)도 무시(無視)할 수 없다. 이 제품(製品)은 미국(美國)의 놀(knoll)사에서 여전히 판매(販賣) 중이지만, 당시(當時) 제작(製作)된 오리지널과는 두께나 무게감 등에서 조금씩 차이(差異)가 있다. 지금(只今)은 다리 하나짜리 의자(椅子)가 전혀 이상(異常)하지 않지만, 이는 모두 수십(數十) 년 전 디자이너들의 혁신(革新)이 있었기에 가능(可能)한 일이다.

수집가(蒐集家)로서 나만의 안목(眼目)을 키우는 노하우나 팁을 알려 달라. 안목(眼目)을 높이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重要)하다. 가장 좋은 방법(方法)은 계속(繼續) 찾아보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좋은 제품(製品)을 선별(選別)해놓은 편집숍이나 셀렉트숍에 방문(訪問)해 직접(直接) 물건(物件)을 볼 것을 추천(推薦)한다. 구매(購買) 부담(負擔)을 가질 필요(必要)는 없다. 가구(家具)의 경우(境遇) 가격(價格)도 비싸거니와 어차피(於此彼) 한 번(番) 보고 사는 물건(物件)들이 아니다. 기존(旣存)에 내가 가지고 있는 가구(家具)들과 잘 어울리는지, 두고두고 봐도 좋을 제품(製品)인지 따져보고 사야 한다. 전문가(專門家)의 설명(說明)을 들으면서 제품(製品)에 대(對)한 이해(理解)도를 높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끌리는 제품(製品)들이 있다. 그런 과정(過程)을 통해 취향(趣向)을 뾰족하게 만들다 보면 ‘나만의 취향(趣向)’이 형성(形成)된다.

최근(最近) 자주 등장(登場)하는 ‘미드센추리 모던(mid-century modern)’은 1930~1970년에 걸쳐 나타난 새로운 양식(樣式)의 디자인 운동(運動)을 뜻한다. 연이어 터진 세계대전(世界大戰)으로 인한 물자(物資) 고갈(枯渴), 기존(旣存) 라이프스타일의 파괴(破壞)는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숙제(宿題)와 디자인 환경(環境)을 안겨줬다. 가구(家具)를 만들 소재(所在)가 부족(不足)해 군수물자(軍需物資)를 제조(製造)하다 남은 알루미늄을 활용(活用)하거나(어니스트 레이스의 BA체어), 폐목재(廢木材)와 버려진 군용(軍用) 낙하산(落下傘) 끈을 직조(織造)해 의자(椅子)를 만드는(젠스 리솜의 리솜 체어) 식(式)이었다. 동시(同時)에 광고(廣告), 영화(映畫), 만화(漫畫) 등 서브컬처의 영향(影響)을 받은 팝아트가 시대(時代)를 지배(支配)하면서 자유롭고 파격적(破格的)인 디자인도 쏟아져 나왔다.

어떤 물건(物件)이 이다음에 문화유산(文化遺産)이 될지 당대(當代)에는 모른다. 세월(歲月)이 흐른 뒤 그 물건(物件)이 지닌 역사적(歷史的) 의미(意味)와 가치(價値)를 판단(判斷)하는 것은 수집가(蒐集家)의 몫이다. 수집가(蒐集家)가 수집(蒐集)하지 않은 물건(物件)은, 역사(歷史)에 기록(記錄)되지 못한 사건(事件)처럼 후세(後世)에 전(傳)해지지 못한다. 수집가(蒐集家)의 안목(眼目)이 역사(歷史)가 된다. 이것이 나의 신념(信念)이고, 그 결과물(結果物)이 휴대전화(携帶電話) 박물관(博物館)이다.

우리나라에는 세계(世界) 최초(最初)이자 유일(唯一)한 휴대전화(携帶電話) 전문(專門) ‘폰박물관(博物館)’이 있다. 이곳의 관장(館長)은 30년간(年間) 언론인(言論人)과 작가(作家)로 지내다 ‘폰(phone)’을 수집(蒐集)하기 시작(始作)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까짓 것 뭘 하러 모으느냐고” 우리 산업(産業) 문화유산(文化遺産) 중 45%는 사라졌다. LG전자(電子)는 그들이 1959년에 처음 만든 A-501 라디오가 없어서 모형(模型)을 만들어 전시(展示)했다거나, 현대자동차(自動車)가 포니를 전시(展示)하려고 수십(數十) 년(年) 전(前) 에콰도르에 수출(輸出)했던 것 중(中) 하나를 사왔다. 1983년(年) 이후(以後) 25년간(年間) 미국인(美國人)의 삶을 가장 크게 바꾼 것은 휴대전화(携帶電話)이다(2007년 조사(調査). 어느 나라를 조사(調査)했어도 결과(結果)는 비슷했을 것이다. 휴대폰은 20세기(世紀) 후반기(後半期) 이후(以後)의 산업(産業) 유산(遺産) 1호인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까짓 것 왜 모으느냐고 한다. 어떤 물건(物件)이 이다음에 문화유산(文化遺産)으로 가치(價値)를 인정받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월(歲月)이 흐른 뒤 수집가(蒐集家)가 가치(價値)를 알아보고 잘 수집(蒐集)해 후세(後世)에 전(傳)해야 역사(歷史)가 된다. 수집가(蒐集家)가 수집(蒐集)하지 못한 문화유산(文化遺産)은, 역사(歷史) 기록자(記錄者)가 기록(記錄)하지 못한 사건(事件)처럼 후세(後世)에 전해지지 못한다. 수집가(蒐集家)의 안목(眼目)이 역사(歷史)가 된다. 3차, 4차 정보혁명(情報革命)을 목도(目睹)하며 어느덧 70대가 된 저자(著者) 이병철은 폰 수집(蒐集)에 얽힌 에피소드부터 쉽고 재미있는 전화기(電話機)의 역사(歷史)까지, 휴대전화(携帶電話) 컬렉터가 세계(世界) 유일(唯一)의 폰박물관(博物館)을 만들기까지, 늘 우리 손에 붙어있는 ‘폰’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이 글에 담았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손으로 가지고 다니는(휴대) 쪽에 초점(焦點) 을 맞춘 우리와 달리 서양(西洋)은 통신(通信) 방식(方式)에 근거(根據)를 두고 있다. 미국(美國)은 이동(移動)(mobile), 유럽은 셀룰러cellular 쪽이다. 그렇다고 한 가 지로 통일(統一)된 것도 아니다. 초기(初期) 이동통신(移動通信)이 시작(始作)된 1921년(年)부터 오늘날까지 미국(美國)에서 쓰인 용어(用語)를 보면 그 나라도 꽤 혼란스럽다. 디트로이트 경찰(警察)이 순찰차(巡察車)에 장착(裝着)한 첫 이동통신(移動通信) 명칭(名稱)은 모바일 라디오 서비스(MRS)였다. 1946년 더 개량(改良)한 모바일 텔레폰 서비스(MTS)가 나왔는데, 이때부터 모바일 텔레폰이라는 말이 널리 쓰였다.

자주 다니면 길이 되고, 자주 쓰면 말이 된다. 일단(一旦) 길이 되고 말이 된 뒤에는 바꾸기가 쉽지 않다. 전화(電話)를 ‘건다’는 말이 그렇다. 자석식(磁石式) 전화기(電話機) 다음으로 수화기(受話器)를 ‘들면’ 바로 교환수(交換數)와 연결(連結)되는 공전식(共電式)共電式(교환국(交換局)과 가입자(加入者)가 배터리를 함께 쓰는 common battery system) 전화(電話)가 나왔지만 ‘건다’는 말은 ‘든다’는 말로 바뀌지 않았다. 송수화기(送受話器)를 들고 다이얼을 돌리는 자동식(自動式) 으로 바뀌고도 건다는 말은 ‘돌린다’는 말로 바뀌지 않았다. 기계식(機械式)에서 전자식(電子式)으로 바뀌어 버튼을 누르게 되고도 전화(電話)는 변함없이 ‘걸고’ ‘걸렸다’. 터치식(式) 휴대전화(携帶電話)가 쓰이는 요즘에도 ‘건다’는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그렇다면 문자(文字) 메시지 보내는 행위(行爲)를 문자(文字) ‘날린다’ ‘때린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할 수 있다는 믿음’. 수출(輸出)에 도전(挑戰)한다는 다짐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나는 한밤중(한밤中)에도 문득 일어나 전시실(展示室)로 가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전문(專門) 지식(知識)도 없고 길잡이로 삼을 책(冊)도 없이 전문가(專門家)의 길로 들어선 내가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극복(克服)할 길은 실물(實物)밖에 없었다. 보고 또 보고, 자주 보면서 생각하는 것 말고 무슨 방법(方法)이 있겠는가. 어느 날 문득 짚이는 것이 있었다. 1998년(年)에 나온 다른 폰 몇 개를 분해(分解)했더니 ‘할 수 있다는 믿음’은 SCH-6200에도 있었다. SCH-800과 SCH-6200, 둘 다 폴더였다. 뭔가 실마리가 잡힐 듯했다. 왜 1998년(年)에 나온 폴더형에만 그 글이 있을까. 무엇인가 번개처럼 스쳐갔다. 스타택! 스타택이 열쇠가 될 것 같았다.

신라(新羅) 토기(土器)와 휴대전화(携帶電話)는 두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첫째, 토기(土器)는 거의 비슷비슷하지만 휴대전화(携帶電話)는 기능(機能)과 모양(模樣)이 다 다르다. 비주얼 효과(效果)가 있다는 점이다. 둘째, 토기(土器)는 그것을 사용(使用)했던 사람이 볼 수 없지만, 휴대전화(携帶電話)는 관람객(觀覽客)이 자기(自己)가 사용(使用)했던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점(點)이 중요(重要)하다. 일반적(一般的)으로 박물관(博物館)에서 관람객(觀覽客)이 자기(自己)가 썼거나 오래 쓰고 있는 물건(物件)을 보기란 거의 불가능(不可能)하다. 박물관(博物館)들이 대개(大槪) 100년이 넘은 유물(遺物)을 전시(展示)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폰박물관(博物館)은 다르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자기(自己)가 썼던 물건(物件)을 발견(發見)할 수 있다. 얼마나 반가울까.

엊그제 나는 스켈러튼 원조(援助)를 구했다. 송화구(送話口)送話口(mouthpiece) 달린 쇠막대가 빙빙 돌아가는 아름다운 전화기(電話機). 우리나라에는 상륙(上陸)한 적 없는 이 희귀(稀貴)한 전화기(電話機)를 구하느라 나는 있는 힘을 다 쏟았다. 태풍(颱風)처럼 몰아닥친 경기(景氣) 침체(沈滯)와 고환율(高換率) 시대(時代)에 누구나 탐(貪)내는 당대(當代)의 걸작(傑作)을 사들이기란 보통의 결단(決斷)으로는 어려웠다. 온갖 심리적(心理的) 갈등(葛藤)을 겪고 나서야 나는 원조(援助) 스켈러튼을 구해 2호 스켈러튼 옆에 놓았다. 날마다 바라보고 쓰다듬고, 관람객(觀覽客)에게 보여주어 탄성(歎聲)을 자아낼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을 겪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휴대전화(携帶電話)를 수집(蒐集)한 지 2년(年)쯤 지나서야 SCR-536이라는 존재(存在)를 알았다. 성능(性能)은 보잘것없지만 인류(人類)가 처음 가진 휴대용(携帶用) 무선전화기(無線電話機). 0세대(世代) 초창기(草創期) 차량전화(車輛電話)가 화석인류학(化石人類學)에서 오스 트랄로피테쿠스 같은 존재(存在)라면, 0세대(世代) 중반기(中盤期)의 SCR-536은 화석인류학(化石人類學)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같은 존재(存在)이다. SCR-536을 구하지 못하면, 0세대(世代)에서 1세대(世代) 아날로그에 이르는 과정(過程)에 화석인류학(化石人類學)에서 말하는 ‘잃어버린 고리’가 생겨 계통(系統)을 나타내는 완벽(完璧)한 목걸이를 만들지 못한다. 그런데 그 귀(貴)한 것을 어떻게 구(求)한단 말인가. SCR-536은 13만 개나 생산(生産)되었지만, 70년(年) 가까이 지난 데다 군용물품(軍用物品)이니 절대로(絶對로) 구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2009년에 구했다! 그 심정(心情)을 어떻게 표현(表現) 하랴! 도널드 조핸슨이 아파렌시스를 발굴(發掘)했을 때 말고는 어떤 것도 비교(比較) 대상(對象)이 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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