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뭐든 빨리 배우고 빨리 인정(認定)받고 싶어 하는 강한 자존감(自尊感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굴강(屈强)한 자존감 때문에 나는 내가 할 일을 잘하고 싶고 내가 한 모든 일에 책임(責任)져야 한다는 사명감(使命感) 비슷한 성향(性向)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의연히 내 나이의 다른 사람들 보다 더 화려(華麗)하게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책임지는 삶을 살려고 많이 조심(操心)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 동안 자신이 쓴 문장의 캐릭터 중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는 나만의 개성적(個性的)인 '자존감'의 선재(仙才)를 꼽기도 했습니다. 나는 "글은 순수(純粹)함의 결정체 같은 표현이다"이라고 입에 달고 살면서 "항상 글에 책임감을 갖는 인물"이고 자존감을 지키는데 많은 심혈(心血)을 몰 붓는다고 자기주장(自己主張)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아무튼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책임지기입니다. 자기책임(自己責任)은 자존감에 필수적이며 동시에 자존감의 반영이거나 징표(徵標)이기도 합니다. 자존감과 그것을 받치는 든든한 기둥의 관계는 언제나 상호 보완적(補完的)입니다.
자기 자신이 살아갈 능력(能力)이 있고 행복을 누릴 만한 가치(價値)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려면 나라는 존재를 다스리는 통제력(統制力)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신의 행동과 목표(目標)를 달성하는 데 기꺼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는 곧 자신의 삶과 행복(幸福)에 책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자기 책임을 실천(實踐)할 때 깨달아야 할 문제점에 대해 알아봅니다.
나는 내 욕구(慾求)를 성취할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대신 이루어질 책임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 욕구를 만족(滿足)시킬 방법을 알아내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고 실천계획(實踐計劃)을 구상하고 실행할 책임도 나에게 있습니다.
나는 내가 한 선택과 행위(行爲)에 책임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행동의 주체(主體)로서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어떤 선택과 행동이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나 자신이 바로 그 선택(選擇)과 행동의 근원임을 인정(認定)해야 합니다.
나는 의식적(意識的)으로 일할 책임이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면 높은 의식수준(意識水準)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의식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유지(維持)할 책임이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마주할 때 온전히 그 순간에 머무르는가? 대화(對話)하는 그 순간에 존재하는가? 내가 한 말의 영향을 생각하는가? 나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影響)을 끼치는지 의식하고 있는가?
나는 동료, 고객, 배우자, 자녀, 친구를 대하는 내 태도(態度)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나는 말을 할 때나 들을 때, 지키거나 지키지 못한 약속(約束), 합리적이거나 비합리적인 태도에 나의 책임이 있고, 자신이 한 일을 두고 타인의 탓을 하는 것은 책임 회피(回避)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시간의 우선순위(優先順位)를 정할 책임이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는 방식(方式)과 그 가치와 조화(調和)를 이루게 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일입니다.
나는 내 의사소통(意思疏通)의 질을 책임져야 합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제대로 이해(理解)했는가? 상대방(相對方)에게 들릴 만큼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는가? 의견전달(意見傳達) 과정에서 상대방을 존중(尊重)하는 태도를 보였는가? 아니면 무례(無禮)했는가? 등을 자신이 알 수 있을 만큼 분명(分明)히 행동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행복(幸福)에 책임이 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책임진다는 뜻은 곧 자신에게 권한(權限)을 주고, 내 삶을 나의 것으로 되돌려 책임감(責任感)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받아들이고 선택한 삶의 가치(價値)에 책임이 있습니다. 가치를 결정(決定)하는 과정에서 선택과 판단의 중요성(重要性)을 기꺼이 인정하면 새로운 시각으로 내 가치를 평가(評價)하거나 내 가치에 의문(疑問)을 품을 수도 있고 따라서 필요하다면 그것을 수정(修正)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자존감(自尊感)을 높일 책임이 있습니다. 자존감은 내면에서 만들어지며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선물(膳物)이 아니며 누군가 자존감을 높여줄 것이라는 소극적(消極的)인 자세는 스스로 자신에게 절망적인 인생을 선고(宣告)하는 것과 같습니다.
미국 대통령 링컨은 말합니다.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조(强調)하였습니다. 내 나이 이제 60살, 이제 곧 반평생(半平生)이 넘는 나이에 왔습니다. 링컨의 이야길 생각하면 나는 내 얼굴에 어떤 책임을 져야할까? 라는 질문(質問)을 60살이 되는 2020년도에 해보게 됩니다. 이제 60대 후반(後半)을 시작하는데 무엇이 나를 나 되게 하는지 아직도 자신할 만한 것이 무엇일까?
20대에 가장 잘한 선택은 교육 분야(敎育分野)로 직업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 나를 나 되게 하는 것은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쏟고 있느냐로 부터 시작(始作)하면 될듯합니다.
20대 중반 부터 시작된 청소년(靑少年)과의 만남인 그 시작은 젊음의 감정(感情)이 가득 담긴 패기(覇氣)와 열정으로 시작했지만 그 거친 감정이 지식과 경험(經驗)으로 다듬어져 미래를 살게 하는 소명(疏明)이 되었습니다.
30대가 되어 전공(專攻)을 버리고 교육 분야에 직업을 선택하여 소명이 삶으로 어떻게 실현(實現)되어 가는지 그리고 갈 수 있는지 눈으로 보고 발로 뛰고 몸으로 체득(體得)하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아직도 잘 성숙(成熟)의 단계에 접어들지도 않았지만 이제 막 싹을 틔우는 시작의 시간에 있지만 열매의 단맛을 이미 맛보았기에 그리고 가야할 길이 너무 뚜렷하게 보이기에 기쁨으로 나의 시간을 즐기며 보냈습니다.
꿈을 꾸기에 나의 밤이 슬프거나 초라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의 눈을 의식(意識)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그 길을 즐기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빨리 가고 싶은 유혹(誘惑)도 조급함도 누군가에게 실려 가고 싶은 편안(便安)함도 그리고 쉬어가고 싶은 나태(懶怠)함도 지금의 나에게는 사치(奢侈)스러울 수 있습니다. 30대를 어떻게 가느냐에 40대의 얼굴이 만들어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의 무게가 묵직해집니다. 하지만 꿈의 무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별이지만 별빛을 따라 가면 늘 그리던 거기가 나올 것입니다.
매일 아침 감사(感謝)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루의 카이로스, 결정적인 감사들을 모멘트를 플래너에 적어갑니다. 아이의 천진한 웃음에 힘을 얻어 감사하고 직장에서 완벽한 기획서(企劃書) 하나를 통과해서 감사하고 지하철(地下鐵)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적어갑니다. 큰 감사면 더욱 좋겠지만 나의 인생의 순간순간의 매듭을 지어나갈 카이로스를 글로서 표현(表現)합니다.
대나무가 길게 뻗을 수 있는 것은 매듭을 지어 뻗어 올리기 때문입니다. 하루의 매듭은 잠자기 전에 짓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감사로 매듭을 지을 수 있습니다.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에 의미의 매듭을 짓는 카이로스는 나를 더 높이 견고하게 뻗어나가도록 돕는 역할을 해줍니다. 감사가 많을수록 매듭은 더 단단해지고 약해보이는 대나무이지만 길게 뻗어도 쉽게 꺾이지 않습니다. 쉽게 꺾이지 않고 꾸준하면 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특별(特別)하지도 않고 잘나지 않은 너무도 평범(平凡)하기 때문에 꾸준함과 성실(誠實)함 말고는 삶의 힘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끝까지 길을 가는 사람이 됩니다. 크고 위대한 일을 꿈꾸지만 그 일이 지금 이루어지지 않고 또 나의 세대(世代)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천천히 변하고 서서히 바뀌는 것을 나는 바랍니다.
나의 매듭이 40대에는 아주 굵은 매듭으로 더 높이 뻗어나갈 전환기(轉換期)가 되기를 나는 바랍니다. 그리고 50대에는 굵은 매듭으로 전환기를 맞이한 삶의 실천이 결실(結實)한 열매를 꽃피우는 내가 되기를 기대(期待)합니다. 나아가서는 60대인 지금의 삶을 소중한 매듭으로 굵게 뻗어 그 어떤 시련과 풍파에도 끄떡없는 남산의 소나무처럼 푸르른 기운을 자랑하는 나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따라서 나는 "글은 순수(純粹)함의 결정체 같은 표현이다"이라고 입에 달고 살면서 "항상 글에 책임감을 갖는 인물"이고 자존감을 지켜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많은 심혈(心血)을 몰 부으며 자기주장(自己主張)을 내세운 결심을 실천하는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깊이 깨닫는 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특히 내가 쓴 글이 다소나마 사람들에게 유익한 힘을 실어준다고 생각하며 변함없는 글쓰기에 줄곧 정진(精進)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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