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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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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보다 더 말하는 손의 위력은 펜을 잡고 진실을 쓰기 때문입니다

나는 남보다 키도 작고 손도 얼굴도 작습니다. 그런데 나의 작은 손은 남의 입보다 말을 더 많이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지금부터 서술(敍述)하겠습니다.

태생적(胎生的)으로 내 손은 작고 하얍니다. 내 손은 천생 닭 모가지를 비틀지 못하나 펜을 잡고 글과 친(親)하는 ‘선비(士)’형 손입니다. 이 말은 제가 작은 손에 대한 열등감(劣等感)보다 자부심을 더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천명(闡明)하기 위해서입니다.

문헌자료의 고증(考證)을 알아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손을 의미하는 뜻인 기둥을 가리켜 말하는 언어와 연관합니다. 즉 손이 지지(支持), 힘(力), 강(强)함을 나타낸다고 일컫습니다. 로마에서도 손은 보호(保護), 권위의 상징이라고 지칭합니다. 상징으로서의 손은 언어를 대신한다고 역설(力說)합니다. 그러므로 언어장애자는 손짓인 수화(手話)로 말을 하고, 맹인은 손으로 만지는 점자(點字)를 통해 글을 읽습니다.

여기서 보다시피 손은 말이고 손은 눈이고 손은 귀입니다. 물론 손의 연구는 생물진화론(生物進化論), 인류학(人類學), 교육학(敎育學), 심리학(心理學), 생리학(生理學) 등 여러 연구 분야에서 그 해답이 속출(續出)합니다. 사지(四肢) 중 두 손은 생리적인 역할(役割)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그 육체 중의 문화를 창조하는 하나의 자체이기도 합니다. 인간 자체가 사지의 손안에 축소(縮小)돼 있어 손이 글을 써서 말을 대변(代辯)하는 역할이라고 간주합니다. 

흔히 수(手)자는 인간이 하는 일이나 직업을 일컫습니다. 즉 가수(歌手)로부터 시작하여 선박에서 키를 맡아보는 선원인 타수(舵手), 기술이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인 고수(高手), 기능이나 기술 따위에서 소질과 솜씨가 뛰어난 사람인 명수(名手), 화살이 잇따라 나가도록 장치한 쇠뇌를 쏘는 사수(射手), 조정 경기에서 노를 젓는 선수인 조수(漕手), 어떤 책임자 밑에서 지도를 받으면서 그 일을 도와주는 사람인 조수(助手), 행사 때 대열의 앞에 서서 기를 드는 일을 맡은 사람인 기수(旗手), 또한 봉급 이외에 따로 주는 보수인 수당(手當), 공사(公事)에 대한 사실을 상관에게 보고하던 서류를 뜻하는 수본(手本), 그리고 어떤 직업을 그만 두다는 세수(洗手; 나쁜 짓에서 손을 떼다)고 표현합니다.

사람들은 ‘손은 육체 밖에서 활동하는 뇌’라고 부릅니다. 손은 인간의 가장 뛰어난 재주를 가진 육체의 한 부분입니다. 손재주, 말재주란 말은 있어도 발재주란 말은 없습니다. 발재주가 있다면 주로 축구에서 발로 공을 잘 다루는 재주를 말합니다. 

나는 손재주도 그렇고 발재주도 그렇고 별 신통(神通)한 재주가 없습니다. 따라서 컴퓨터 조작도 하지 못하며 자동차 운전도 할 줄 모르고 전등이 고장 나도 교체할 줄 모릅니다. 나는 남들이 다하는 젓가락질도 할 줄 몰라 늘 음식을 흘리곤 합니다. 다만 내 손이 중요한 일을 해주는 것은 내 두뇌 속에 사유를 펜으로 써 주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내 손이 내 손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필(筆)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 손은 내 입보다 더 말을 합니다. 입도 못 하는 말을 내 손이 척척 대변(代辯)해줍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손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내 육신(肉身)에서 제일 작고 귀여운 내 손이 필을 쥐고 글을 줄줄 써내려가는 재간이 유일(唯一)한 자랑거리입니다. 하긴 좀 멋쩍은 말이지만 말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눈, 귀, 코, 위장, 간장, 그리고 대장, 소장, 어디하나 자랑할 만한 데 없는 내 병신 같은 육신에서 작은 손이 유일하게 나를 대변(代辯)해줍니다. 심리학자의 지론((至論))대로 “창조와 생산의 힘의 상징”인 내 손만은 작으나 건강합니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부려 먹어도 고달프단 말 한마디 없습니다. 또 쉬면서 하자는 말 한마디도 없습니다.  때로는 힘들다고 원망해도 무방하겠지만 그저 내 뜻을 수걱수걱 따라주니 참으로 신통(神通)할 뿐입니다.

누구도 나를 천재(天才)라 불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귀재(鬼才)도 아닙니다. 기재(奇才)도 아닙니다. 그저 수재(手才)입니다. 수재인 만큼 손으로 글을 쓰면서 컴퓨터 기계문명(機械文明)의 복을 누릴 줄도 모릅니다. 그러니 가혹하게 한마디 평가하면 나는 그야말로 둔재(鈍才)입니다. 

원체 어려서부터 병 치례를 하며 살아온 나는 신체의 모든 부위가 작고 약합니다. 그래서인지 다름 사람과의 접촉에서 매우 민감(敏簡)한 반응을 나타냅니다. 이를테면 음식물 반응에 예민(銳敏)하여 좀만 잘못 먹고 마시거나 입에 맞지 않으면 설사(泄瀉)를 곧잘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형제들의 보살핌과 관심을 많이 받아오면서 점점 민감한 체질적 감수성(感受性)을 가진 것 같습니다.

내가 육중하고 건장한 체질을 가진 아이였다면 가정의 배려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또 민감한 감수성에 훈육(訓育)되지 못했음도 자명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감수성이 사유하고 글 쓰는 데 정신을 집중(集中)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체구는 작아도 자기 구실만 하면 떼어 놓은 당상(堂上)입니다. 연장만 잔뜩 커도 제 구실을 못하면 오히려 비난의 대상되기에 충분합니다. 육체의 불리한 조건이 오히려 애로(隘路)를 넘어서면 창조적 에너지로 변신(變身)하는 신통력이 있습니다. 관념적(觀念的)으로 손의 대소 차이가 중요한 문제로 제시되지 않는 오늘날에 나의 손은 이성(理性), 사유, 신비, 감성의 상징체(象徵體)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말과 글의 경계를 넘어서 내 작은 손이 다 해주니 너무 고마운 존재입니다. 나는 작은 손을 하사(下賜)한 부모님께 거수경례(擧手敬禮)로 가장 숭고한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나는 나의 작은 손에 무한한 자신감을 가집니다. 그런 만큼 손이 작아도 인격(人格)이 작은 사람이 되지 말고, 또 앞으로 출중해질 수 있는 도고한 성품(性品)만은 다른 사람보다 더 큰 ‘거인(巨人)‘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念願)이 있습니다.

아무튼 펜을 쥐든, 필을 쥐든 아니면 붓대를 쥐던 간에 작은 손이지만 마음만은 남보다 더 큰 사나이로 성장(成長)하리라 다짐합니다. 어쨌거나 나는 내 작은 손을 브라질 아마존 강 유역의 삼림을 몽땅 준대도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자호감(自豪感)에 넘쳐 말하는 내 손이 장한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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