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소개
바람부는 저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길 있겠지
굽이굽이 산길 걷다보면 한발두발 한숨만 나오네.
아아~ 뜬구름 하나 삼포로 가거든
정든님 소식좀 전해주렴 나도따라 삼포로 간다고,
사랑도 이젠 소용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
저산마루 쉬어가는 길손아 내사연 전해 듣겠소
정든고향 떠난지 오래고 내님은 소식도 몰라요.
아아~ 뜬구름 하나 삼포로 가거든
정든님 소식좀 전해주렴 나도따라 삼포로 간다고,
사랑도 이젠 소용없네삼포로 나는 가야지
소개
강은철이 부른 [삼포 가는 길]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황석영의 동명소설 [삼포 가는 길]을 아주 감명 깊게 읽고 나서 인터넷을 검색해서 알게된 곡이다. 이 노래는 내가 좋아하는 Rock도 아니고, 요즘의 인기 있는 가수가 부르거나, 특별한 기교가 섞인 곡도 아니다. 하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소설속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조용히 가사를 들어보면 아련히 우리 인간이 걸어가야만 할 힘든 인생과 그 길에 대한 숙명을 보여준다.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이냐구? 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부터 [삼포 가는 길]을 들어보자.
참고로, 노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가사를 소개하면 [삼포 가는 길]의 전체 가사는 다음과 같다.
“바람부는 저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길 있겠지
굽이굽이 산길 걷다보면 한발두발 한숨만 나오네.
아아~ 뜬구름 하나 삼포로 가거든
정든님 소식좀 전해주렴 나도따라 삼포로 간다고,
사랑도 이젠 소용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
저산마루 쉬어가는 길손아 내사연 전해 듣겠소
정든고향 떠난지 오래고 내님은 소식도 몰라요.
아아~ 뜬구름 하나 삼포로 가거든
정든님 소식좀 전해주렴 나도따라 삼포로 간다고,
사랑도 이젠 소용없네삼포로 나는 가야지.”
자, 먼저 1절을 들어보자.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굽이굽이 산길 걷다보면 한발두발 한숨만 나오네.”
[삼포 가는 길]을 듣기 전에 반드시 황석영의 소설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설을 읽었다면 더 쉽게 이 노래를 이해하고 감동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우선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은 산업화 사회에서 인구는 도시로 몰려들고 곳곳의 땅이 파헤쳐지고 건물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목적지를 잃고 떠돌아다니는 소시민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런데 여기서 삼포(森浦)란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이 아니라 소설에만 등장하는 가상의 지명인데, 삼(森)이란 나무가 빽빽하다는 뜻이며, 포(浦)란 개울가를 의미한다. 따라서 삼포란 숲과 강이 모두 모여있는 땅이라는 뜻이니까, 단순한 지명설정이 아니라 산업화로 산과 들이 파헤쳐지고 강이 막히고 바다가 메워져가는 시대에서 일종의 이상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노래에서 화자인 나는, 이상향인 삼포를 찾아간다. 그러나 도중에 새찬 바람이 부는 들길과 험하디 험한 산길을 힘들게 지나가고 있다. 이는 이상향을 찾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독한 일인지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 구절을 들어보자.
“아아~ 뜬구름 하나 삼포로 가거든 정든 임 소식 좀 전해주렴 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
이 구절을 들어보면 삼포로 가는 것이 나 말고 하나 더 있다. 바로 구름이다. 그런데 왜 구름이 삼포로 가는 것일까. 잠시 생각해보자. 구름은 하늘 아래 있다. 그런데 구름이 삼포로 가니까 결국 삼포라는 땅은 하늘 아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즉, 내가 찾아가는 이상향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꿈속의 나라, 내가 죽어야 갈 수 있는 천당 같은 곳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존재하는 곳, 현실에서 찾아낼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곧이어 뒤를 들어보면 정든 임에게 나도 곧 삼포로 간다고 전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일단 여기서 임은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그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만해 한용운의 시에서처럼 종교적인 절대자 혹은 내게 각별한 의미를 가지는 소중한 그 무엇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가사에서 임은 불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내가 가려는 이상향인 삼포를 어떤 곳으로 설정하는가에 따라서 임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가사에서 내가 정든 임께 소식을 전해달라고 구름에게 부탁하는 것으로 보면 임은 이미 삼포에 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더하여 임을 정든 임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볼 적에 임은 내가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숙한 대상이 된다.
이 구절은 여기까지 생각하고, 다음 구절을 들어보자.
“사랑도 이젠 소용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
이상하다. 바로 앞 구절에서는 나는 임을 따라 삼포로 간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사랑이 소용없단다. 그렇다면 사랑하지도 않는 임을 그럼 왜 따라간다고 말했던 것일까? 임이 내게 빚을 졌기 때문에 따라가는 것일까? 주의를 기울이고 다시 생각해보자. 분명히 우리는 아직 임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지만 여기서 말하는 사랑을 반드시 일반적인 의미의 사랑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더 자세히 생각하면, 흔히 어떤 이성에 대한 좋아하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반드시 그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무엇에 열렬히 집착하고 갈구하는 것 또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욕망”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구절에서 사랑은 욕망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혹시 사랑과 욕망을 동급으로 다룰 수 없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우리는 가사에서의 사랑은 일반적인 의미의 사랑과는 달리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만 앞 구절의 문맥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이 구절에서의 사랑을 욕망과 동급으로 두고 가사를 다시 해석하면 “욕망도 이젠 소용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욕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2절의 마지막 구절을 이야기할 때 다시 이야기하자.
일단 1절의 해석을 끝냈다. 그럼 이제 2절을 해석해보자.
“저 산마루 쉬어 가는 길손아 내 사연 전해 듣겠소. 정든 고향 떠난 지 오래고 내 님은 소식도 몰라요.”
삼포로 가다가 너무 힘들어 쉬고 있는데 옆에 길손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 길손에게 내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정든 고향은 떠난 지 오래고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소식도 없네... 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 구절은 이 노래에서 굉장히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정든 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힌트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임은 일단 내가 꿈에서도 그리워하는 옛 고향이나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아니게 된다. 왜냐하면 만약 임이 내가 살았던 고향이라고 한다면 굳이 삼포라는 가상의 지명을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노래의 모티브가 되는 소설 [삼포 가는 길]은 우리 문학사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소설로 꼽히는데 굳이 가상의 있지도 않은 지명을 사용하면서까지 고향을 신비스러운 장소로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다음으로 만약 임이 내가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1절에서는 삼포에 그가 있으니 가서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는데, 2절에서는 나는 내 님의 소식도 모른다고 했으니 앞뒤의 말이 맞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서 임은 내가 떠나온 고향도,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도 아닌 다른 그 무엇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임은 도대체 무엇일까? 정말 궁금해진다.
그럼, 의문을 간직하고 다음 구절을 계속 들어보자.
그런데 2절의 그 다음 구절은 1절의 마지막에서 반복된 3구절과 같다. 이제 더 이상 임이 무엇인지를 해석할 수 있는, 이 노래를 전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옛말에 ‘궁할수록 돌아가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해석을 찬찬히 다시 되새겨보자.
“나는 지금 삼포라는 이상향을 향해 가고 있다. 그곳은 너무 멀고 힘든 곳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삼포라는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장소라서 언젠가는 찾을 수 있는 곳이며, 나의 정든 임도 그곳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삼포로 가는 도중에 길손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내가 떠나온 고향과 아련한 옛 사랑을 이야기해준다. 그러면서 나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길을 재촉한다. 욕망이란 부질없는 것이라고...”
자, 여기에서 뭔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욕망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시 길을 떠나는데, 이것은 내가 고향을 잊어 버리고 옛 사랑에게서 떠난 것은 결국 욕망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욕망이 아닌 진정한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 힘들게 삼포라는 이상향으로 간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내가 욕망을 가지기 전 고향에서 옛 사랑과 가졌던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꿈이다. 젊은 날의 꿈, 젊은 날의 순수한 희망이 그것었다.
"나는 지금 세상에 나와 욕망이라는 것을 위해 달리다 보니 바쁜 세상과 사람에 시달리고 지쳐 버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지난날 젊었을 때 품었던 꿈과 순수한 희망을 되찾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이제 나의 나이, 나의 불안한 위치 때문에 내 희망은 마음대로 되지 않고 길은 멀고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나는 결국 내가 젊은 시절 가졌던 꿈과 희망을 찾기 위해서 그 멀고 힘든 길을 가려한다. 그리고 그 꿈과 희망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 노래에서 임이란, 정든 임이란 바로 내가 젊은 시절, 그 패기만만하고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던 시절에 가졌던 꿈이며 순수한 희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상향 삼포는 바로 그 젊은 날의 꿈, 내가 진정으로 바래온 것이 이루어지고 내가 살아있음을, 내 존재를 인식하는 상태, 그 순간이 되는 것이다.
이제, 이것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의미로 조금 더 확대해보자. 우리 사회는 과거, 인간과 인간에 대한 유대가 살아있는 사회였다. 비록 평균적인 생활수준은 지금보다 낮았고 물질적으로 편리하지 않았지만 정과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되면서 땅과 산이 없어지고 강과 바다가 메워지면서, 높은 건물과 넓고 큰 길이 들어서고, 돈과 권력이 중요해지면서 사람들은 소외를 겪고 서로 싸우고 갈등하기 시작했다.
현대사회가 개발과 혁신이라는 이름의 발전을 계속할수록, 평균적인 생활수준은 과거에 비해 높아지고 물질적인 편리함은 갖추겠만 인격은 사라지고 인간과 사회, 자연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낮아지는 사회로 진행될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당연히 살아있음에 행복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할 수 있었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과거의 추억과 여유를 그리워하고 산업화로 인한 몰인간성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이 노래 [삼포 가는 길]에 모티브를 제공한 소설 [삼포 가는 길]은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수작으로서 바로, 산업화된 사회의 몰인간성과 정체성 상실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그 노래 또한 그러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포 가는 길]이 정말 아름다운 노래, 길이 불러질 수 있는 노래, 많은 생각과 반성을 가져올 수 있는 노래일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한 주제 때문만이 아니다. [삼포 가는 길]은 주제를 강하게 이야기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숙명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아무리 꿈이 있고 순수한 희망이 있어도 현실은 그것이 자유롭게 펼쳐지길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수긍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길이며 숙명인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잠을 자고... 새벽에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아... 고독하고도 힘든 삼포로 가는 길이여... | 글 : 보경재(寶耿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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