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국방장관 “그의 제거가 전쟁의 주요 목표” …잔인한 소시오패스
22년간 이스라엘 감옥에서 신문ㆍTV 탐닉하며, 완벽한 히브리어 구사
이스라엘 주요 정치가 저서들 다 읽어 “이스라엘을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완전히 이해”
이스라엘군의 가자 진격이 1주일을 넘어섰다. 전쟁의 최종 목표는 물론 10월7일 이스라엘 민간인 1400여 명을 살해한 팔레스타인 테러집단 하마스의 제거다. 그러나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이스라엘군의 처단 대상 1호는 바로 이 작전을 총기획한 가자(Gaza) 지구의 하마스 최고 실권자인 야히아 신와르(61)다.
이스라엘에게 신와르는 미국에서 9ㆍ11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라덴과 같은 존재다. 동시에, 가자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겐 ‘칸 유니스(가자 남부 도시)의 도살자’라고 불리는 공포의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가자의 팔레스타인 내부 ‘공모자’들을 색출해서는 잔인하게 처형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5일 신와르를 “동족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땅굴(bunker)에 숨은 리틀 히틀러”라며 “그는 곧 죽을 사형수(dead man walking)”라고 했다. 전날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그의 사진을 스크린에 띄우고 “이 전쟁이 끝나면, 가자에는 더 이상 하마스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야히아 신와르를 처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22년간 그를 감금하면서 그를 하마스와의 협상 창구로도 활용했고,이 과정에서 그를 ‘실용적인 인물’로 오판(誤判)해 지난 10월7일 그가 최종 명령을 내린 하마스 기습 작전의 조짐을 포착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신와르는 가자 남부의 도시 칸 유니스에서 태어나고 자라, 1987년 말 출범한 하마스(’이슬람저항운동’의 아랍어 영문표기 약자)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그는 이번 기습작전을 성공시킨 하마스 산하 이즈 애딘 알-카삼 여단의 창설을 도운 초기 멤버이자, 알-카삼의 전신(前身)이었던 팔레스타인 내부 보안 기구인 마즈드(‘영광’이란 뜻)를 세웠다.
칸 유니스의 난민촌에서 신와르와 청소년기를 같이 보낸 이웃 친구가 현재 알-카삼 여단의 총사령관인 모하메드 데이프(58)다. 10월 7일 기습작전은 신와르가 기획하고 데이프가 집행한 테러 사건으로, 두 사람은 현재 이스라엘군의 살해 목록 1,2호에 올랐다.
◇완벽한 히브리어 구사…시온주의자 서적 모두 섭렵해
마른 체격에 짧은 머리가 특징인 신와르는 이스라엘 병사들을 살해한 혐의로 1988년 체포돼 4건의 종신형을 선고 받고, 이듬해부터 2011년 석방되기까지 22년 간 이스라엘 감옥에 감금됐다.
이스라엘 정보관리들에 따르면, 그는 이 시기 히브리어를 완벽하게 습득했고 매일 수 시간 이스라엘의 일간지와 TV 채널을 보며 이스라엘 문화를 철저히 배웠다. 또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민족주의 운동 시온주의의 초기 멤버인 제브 자보틴스키, 메나헴 베긴과 이츠하크 라빈 전(前) 총리 등 주요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들이 쓴 책들을 다 읽었다.
이스라엘 국내 정보기관 신베트에서 신와르를 신문했던 전(前) 정보관리 미카 코비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우리에 대해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다 배웠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의료진이 뇌에서 농양 제거해 생명 구해주기도
신와르는 이스라엘 감옥에서 동료 하마스 대원들의 지도자로 떠올랐지만, 동시에 이스라엘 TV에 나와선 전쟁이 아니라, 휴전을 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이스라엘이 200개의 핵무기 위에 앉아 있고, 중동 최고의 공군력을 지닌 것도 안다. 우리에게는 이스라엘을 제거할 능력이 없다”며 평화를 외쳤다.
2004년 신와르가 수감 생활을 할 때, 이스라엘 의료진은 그의 뇌에서 농양을 제거해 신와르의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수감 중인 그를 접촉한 이스라엘 정보 관리들의 평가는 “잔인하고 권위적이고, 영향력 있고, 교활하고 매우 비밀스럽고, 군중을 선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신와르가 ‘말이 통하는’ 인물이라고 봤다. 신와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유대인 국가의 파괴가 아니라, 가자에서 하마스의 지배를 강화하고 이스라엘로부터 더 많은 경제적 원조나 이익을 얻어내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2006년 하마스가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리트를 납치해 5년간 억류했을 때, 이스라엘은 수감 중이던 팔레스타인인 1027명과 샬리트 한 명을 맞교환하는 협상을 벌였다. 이때 이스라엘과 하마스 지도부와의 대화 창구가 신와르였고, 이 포로 교환에서 그도 풀려났다.
◇“누가 핵무장국을 새총으로 맞서겠느냐”며 거짓 평화 외쳐
신와르는 석방된 뒤 “이스라엘인들은 감옥이 우리의 결의와 육체가 닳아 없어지는 무덤이 되기를 원했지만, 우리는 예배하고 공부하는 장소로 바꿨다”고 말했다. 그리고 타고난 카리스마 기질을 활용해, 하마스 내부에서 고속 승진했다.
2017년에는 하마스 내부의 비밀 선거를 통해서, 그동안 가자 지구의 하마스 최고 정치 지도자였던 이스마엘 하니예를 밀어내고, 최고 지도자가 됐다. 하니예는 가자와 요르단강 서안(웨스트 뱅크)을 모두 아우르는 하마스 전체의 정치 지도자 자리에 올랐지만, 사실은 거처를 해외인 카타르 도하로 거처를 옮겨야 하는 ‘좌천성(性) 승진’이었다.
신와르는 2018년 이탈리아 언론과의 매우 드문 인터뷰에서도 “전쟁은 특히 하마스에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가 핵무장 국가를 새총으로 맞서고 싶겠느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신와르의 지도 하에 하마스는 국경 너머 이스라엘 영토로 화염 풍선을 보내고 로켓을 쏘는 등 갈수록 호전성을 드러냈다.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국(局) 정보장교였던 미카엘 밀스타인은 FT에 “우리는 멍청할 정도로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제로(0)였다”고 한탄했다.
◇”목표를 위해선, 수만 명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는 소시오패스”
신와르는 또 하마스의 보안 기구인 마즈드를 통해, 이스라엘과 협력한 12명의 팔레스타인 공모자를 살해했다. 한 공모자를 처형할 때에는 공모자의 친동생에게 숟가락을 건네주고 생매장하도록 했다. 동생은 형이 죽을 때까지 수없이 숟가락으로 흙을 부어야 했다. 리하르트 헤크트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야히르 신와르는 악마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그는 2021년 5월 하마스 내부의 권력을 더욱 장악하려고, 또 다시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을 주도했다. 이스라엘은 11일간 가자 지구를 맹폭(猛爆)했다. 이 충돌이 끝난 뒤, 신와르는 공습으로 돌무더기로 변한 자신의 집터에 의자를 놓고 앉아 ‘승리’를 선언했다.
요르단강 서안의 한 팔레스타인 운동가는 서방 언론에 “10월7일 기습 작전 이전 많은 팔레스타인인은 그를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지금 그는 우리를 석기(石器)시대로 돌려놓으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숭고한’ 목적을 위해선, 수만 명 동족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sociopath)라고, 이스라엘 정보관리들은 말한다.
신와르는 이스라엘 정보당국의 레이더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수많은 땅굴 미로(迷路) 속에 은신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와르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고,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성공한다면 땅굴 속에서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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