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작가 클라리벨 알레그리아의 나카라과의 문학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位置)를 차지하고 있다. 소설은 다소 충격적(衝擊的)인 소재를 안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주 이상한 ’할머니 일화‘를 많이 알고 있는 마누엘의 회상을 통하여 ‘제 정신’이라고 볼 수 없지만 아주 ‘용감한 여인‘인 할머니의 삶의 단면을 줄거리로 다양한 면모를 거친 전쟁연대(戰爭年代)를 살아내는 여성의 다른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아래에 그녀의 단편소설 “할머니와 황금다리”의 줄거리와 그 내용에 대해 알아본다.
마누엘은 아주 이상했던 자기 할머니의 많은 일화(逸話)를 알고 있다. 그의 할머니는 황금다리에서 500미터 떨어진 오막살이집에서 살고 있었으며, 그곳에 조그만 땅을 가지고 있었다. 이상한 할머니는 렘파강의 커다란 다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항상 ’내 다리‘라고 말했다. 여기서 한마디 부언(附言)한다. ’렘파강‘은 과테말라에서 발원하여 온두라스, 엘살바도르를 거쳐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강을 가리킨다. 또한 소설의 주제(主題)인 이 ’다리(橋)‘를 둘러싸고 스토리가 전개된다.
전쟁이 일어난 후부터 군대는 다리를 지키기 위해 다리 양끝에 검문소(檢問所)를 설치했다. 이상한 할머니는 군인들의 요리사로 일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콩을 삶고 토르티야를 만들고 밥을 한 솥이나 지었다. 그리고 음식을 모두 손수레에 실어서 집에서 가까운 쪽의 검문소 군인들에게 아침을 공급(供給)했다. 그런 다음 거의 2킬로미터나 되는 다리를 건넜다. 2킬로미터나 되는 다리, 그 다리 반대편에 있는 군인들에게 아침을 주었다. 그곳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준비해서는 다시 손수레에 실어 밀고 갔다.
여기까지는 이상한 할머니가 아주 열심히 사는 모습이다. 그리고 할머니의 이상한 점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음 이야기부터이다. 할머니가 이상한 것은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주면서 아주 싼 값을 받았다는 것이다. 거의 남는 게 없었다. 그런데 군대들이 ’그녀의 다리‘를 날려버리자 할머니는 머리칼을 빨간색으로 물들였다.
군대들이 다리를 날려버리기 전에 쌍방 간에 대격돌(大激突)이 있었다. 공병 팀이 폭탄을 설치하려면 다리의 양끝에 있는 검문소 군인들을 전멸(全滅)시켜야 했다. 첫 전투에서 아군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거기서 방어용 참호와 기관총들의 위치 그리고 양쪽에 투입된 병력의 정확한 수치가 기록된 도면(圖面)이 발견되었다. 며칠 후 시장에서 일하는 어느 아주머니가 이상한 할머니에게 군인들이 다리 경비대원(警備隊員)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을 찾는다고 가르쳐주었다. 그러자 이상한 할머니는 빨간 아나트 나무 열매와 립스틱을 구해서 집으로 돌아가면 될 거라고 생각하였다. 다음날 2명의 경비대원들이 찾아와 그녀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우리 할머니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내가 일주일전에 집을 빌려준 여자가 틀림없는 것 같군요. 다리가 폭파(爆破)되자 어찌할 바 모르면서 자기 딸이 있는 산 비센테로 가겠다고 말했지요.’ 그러자 군인들은 ‘당신은 누구요?’라고 의아쩍게 물었다. 이상한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난 수치토토에 있는 색시집 주인이오. 하지만 반란군(叛亂軍)들이 쉬지 않고 군인들을 공격하는 바람에, 손님들이 모두 떨어지고 말았어요. 이제 난 이런 일은 그만 둬야겠소. 바로 이런 것이 전쟁이죠.’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몇 주가 지난 후였다. 머리가 빨간 이상한 할머니가 광주리를 가득 실은 나룻배를 타고 힘차게 노를 저으며 강물을 거슬러 오시는 것을 보았다. 이상한 할머니는 ‘호코테(라틴아메리카의 열대 식물로 열매는 자줏빛이다), 파파야, 레몬, 달콤한 오렌지를 팔아요. 살 사람 없어요?‘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탄초 어멈.‘ 캠프의 최고 책임자(責任者)가 이렇게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이상한 할머니 내막을 모르고 있었다. 이상한 할머니가 일전에 바로 황금다리를 공격하도록 도면을 구해주었다. 이상한 할머니는 나무 밑에 나룻배를 묶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이상한 할머니는 군인들을 흘겨보면서 악의 없는 불평(不平)을 늘어놓았다.
’메미토, 쓸모없는 너희들 때문에 이 할망구 삶이 갈수록 고달파지는구나. 다리를 폭파한 후부터 매일 이렇게 노를 저으며 여기까지 와야 하거든.‘ 그러면서 이상한 할머니는 광주리에서 망고를 꺼내 껍질을 벗기고는 장사꾼처럼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파쇄 수류탄, G-3 총알 카트리지, 81박격포탄, 누가 살 거요?‘ 소설은 이렇게 끝났다.
여류작가 클라리벨 알레그리아 약력
(Claribel Alegría)는 1924년 5월 나카라과의 에스텔리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아우구스토 세사르 산디노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소모사가 정권을 장악한 이후 알레그리아 가족은 이웃 나라 엘살바도르로 추방된다. 클리리벨 알레그리아는 194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데, 이곳에서 스페인 시인 후안 라몬 히메네스를 만났다. 시집으로는 “물고기자리(Acuario , 1955)”, “내가 살던 시대의 손님(Huésped de mi tiempo, 1961)” 등이 있고, 단편집으로는 “하느님의 백성과 만딩가(Pueblo de Dios y de Mandinga, 1985)”, “검문소(El detén, 1977)”, “현실 나라의 루이사(Luisa en el país de la realidad, 1987)”이 있다. 여기에 번역 소개하는 작품의 원제는 ‘La abuelita y el Puente de Oro’이다.
여류작가 클라리벨 알레그리아와 그의 창작세계
우리가 주목해 볼 점은 클라리벨 알레그리아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증언(證言)이나 고발이라는 형식으로 권위주의 정권과 그 문화에 저항(抵抗)했던 경향이 아니라, 이러한 경험들을 타자화(他者化)하고 보다 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던 작가의 작업이다. 이런 태도들은 전통 좌파 그룹에 의해 엘리트주의적이고 실험적인 것으로 비판(批判)되었지만, 이 작업들은 그 시대를 기억하는 또 다른 형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판단(判斷)된다. 특히 소모사가 정권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을 모색했던 클라리벨 알레그리아의 작품 세계는, 이 시기 문학을 소모사가 정권에 대한 저항이냐 옹호냐 라고 하는 단선적으로 평가하는 데서 벗어나 당대 나카라과 지식인들의 지적 태도를 살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성찰(省察)의 틀을 제공할 것이다.
나카라과의 문학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녀의 작품세계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카라과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소모사가 정권과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相關關係)를 보여 주고 있다. 소모사가 정권 이후 나카라과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적, 심리적 경험들을 함축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는 그녀의 작품세계는, 다양한 층위에서 주어지는 억압과 나카라과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분열(分裂)과 병리적 현상들을 명민하게 포착(捕捉)하는 서사 전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서사전략은 당대 현실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사실주의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글쓰기의 자유로움을 통해 다양한 서사적 실험 속에서 당대 현실이 갖는 억압과 폭력(暴力)을 드러내고, 거기에 균열(均熱)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현실 참여 경향과는 차별성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작품의 단절된 언어는 소모사가 정권 이후 초기 나카라과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극심한 파편화를 재연하고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들이 배제(排除)된 세계 속에서 의미를 만들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이런 엘리티의 문학적 입장은 이후 민간정부(民間政府)로의 이행 이후에도 ‘시장의 지배’라는 또 다른 억압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問題提起)와 문학적 형상화 작업을 통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나카라과의 여류작가 클라리벨 알레그리아는,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기 조국의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작가(女性作家)로서 현대 라틴여성문학의 중견역할을 한다. 여기서 라틴여성문학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중남미 여성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기회가 아마도 우리나라에 중남미문학이 소개된 이후로 최초의 일이 아닐까 싶다. 클라리벨 알레그리아의 짧은 소설은은 이처럼 문학사적으로도 모뉴멘탈한 의미가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현대 라틴여성문학의 현주소를 적실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의 여성문학이 나아갈 지향점을 집약적으로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이들 여성작가들은 식민지 경험과 폭력과 내전 등으로 점철(點綴)된 중남미라는 제3세계 지역의 역사적 현실에 주목하는 동시에 그것들이 여성의 삶에 어떤 징후와 영향으로 작용하는지를 섬세하게 탐문하고 있다.
여러 상황으로 인해 자국을 떠나 작품 활동을 하는 약력(略歷)들을 읽으면서 여러 상념들이 스쳐지나가 간다.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어쩌면 정서(情緖)에도 좀 덜 맞을 지도 모르지만 놀랍고 아름다운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그야말로 신선하다고나 할까. 일독(一讀)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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