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큐정전(阿Q正傳)"으로 보는 문학작품의 의미
중국 현대작가 중에 서양의 작가 버금으로 가는 세계적으로 명성(名聲)을 떨친 사람이 있다. 바로 노신(魯迅)이다. 중국문학의 새로운 장을 연 노신은 중국 최초의 근대 소설 ‘광인 일기(狂人日記)’를 통해 중국 문학에 커다란 충격을 가했다. 노신은 문학 작품에도 사람들이 일상적인 대화에서 쓰는 말투를 그대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한마디 짚고 넘어가자. 중국문학은 고전적인 한문학(漢文學)과 현대의 백화체(白話體) 문학으로 크게 구별된다. 뿐만 아니라 문학 활동에서는 유교사회의 낡은 사상에 젖어 있던 당시 중국인들의 병폐(病弊)를 낱낱이 드러내어 중국의 근대화를 한 차원 높게 끌어올렸다. 특히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소설 “아큐 정전”에 노신의 이런 사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제 노신의 “아큐 정전”을 읽으며 구경 이 작품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를 자세히 알아본다.
▶ “아Q정전” 작품의 줄거리와 내용
“아Q정전”에 나오는 주인공 아큐는 이름이나 본적만 모호한 게 아니라, 웨이좡(未莊)에 오기 전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일손이 필요할 때나 곯려 줄 때만 아큐를 생각할 뿐 다른 때는 관심도 없었다.
아큐는 집도 없이 마을에 있는 투구츠(土谷祠; 지신과 곡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시골의 사당) 안에서 살았다. 게다가 고정된 일거리도 없이, 남의 집에서 품팔이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 나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쁠 때면 아큐를 생각하지만, 한가해지면 까맣게 잊어버리곤 하였다.
그런데 아큐 또한 자존심이 매우 강해서 웨이좡(未莊) 사람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심지어 웨이좡에 딱 두 사람밖에 없는 문동(文童; 과거 공부를 하고 있지만 아직 수재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에게까지도 웃어 줄 가치조차 없다고 여기는 형편이었다. 아큐의 말대로 하면, 옛날에 그는 ‘잘 살았고 학식도 높았으며 못 하는 게 없는’ 거의 완벽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쨌든 지금 그에게는 체질상으로 약간의 흠이 있었다. 그의 머리 몇 군데가 부스럼 자국으로 꽤 크게 벗겨져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벗겨지다’라는 말을 몹시 싫어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점점 확대되어 나중에는 ‘빛나다’라는 말도, ‘밝다’라는 말도 싫어하게 되었다. 급기야는 ‘등불’이나 ‘촛불’ 같은 말까지도 금기(꺼리어서 싫어하거나 금함)로 했다. 그리하여 그 금기를 어기는 자가 있으면, 아큐는 그 부스럼 자국이 시뻘개지도록 화를 냈다. 상대에게 욕을 퍼부으며 때리려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아큐는 혼을 내주려고 덤벼들었다가 되레 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아큐는 그에 대한 대응 방법을 바꾸기로 하였다.
동네 건달들은 아큐를 볼 때마다 “야아, 반짝반짝해졌는걸! 이제 보니 등잔이 여기 있었군.” 하고, 그의 머리를 쿵쿵 쥐어박곤 했다. 그들은 아큐가 단단히 혼쭐이 났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아큐는 십 초도 안 되어서 승리감으로 의기양양해졌다. 자신을 짐짓 벌레처럼 하찮은 존재로 생각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건달들은 결국 벌레를 곯려 준 꼴이 되는 것이니까. ‘네놈 따위가 뭐야. 나는 버러지야, 버러지라구.’ 아큐는 자신을 경멸할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서 자신을 경멸한다는 말을 빼 버린다면 남는 것은 ‘첫 번째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다. 어디에서든 ‘첫 번째’는 좋은 것이었다. 이렇게 묘한 방법으로 승리를 하고 나면 아큐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 해 봄날, 아큐는 술에 취해 건들거리며 길을 가고 있었다. 이 때 담장 밑에서 왕털보가 벌거벗은 채 이를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왕털보는 부스럼 자국으로 머리가 벗겨진 데다 털북숭이여서 모두 왕대머리 털보라고 불렀다. 왕털보는 이를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계속 잡아서 입에다 넣고 툭툭 소리를 내며 깨물었다.
아큐는 왕털보가 이 잡는 것을 보자, 갑자기 온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다 떨어진 겹저고리를 벗어들고 들춰보았다. 새로 빤 옷이라 그런지, 아니면 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서너 마리 잡을 수 있었다. 아큐는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나중에는 부아가 치밀었다. 자기가 깔보는 왕털보는 저렇게 많이 잡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적게 잡다니, 이것은 얼마나 체통을 잃는 일인가. 아큐는 잡은 이를 입에 넣어 용을 쓰며 깨물었다. 그러자 픽 하고 소리가 났다. 깨무는 소리조차 왕털보 소리에 미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자 아큐의 부스럼 자국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옷을 땅바닥에 냅다 팽개치면서 침을 바닥에다 탁 뱉었다.
“이 털버러지 같은 놈.” “문둥이 개 같은 놈, 누구한테 욕이야!” 왕털보가 눈을 치뜨고 말했다. 이런 털북숭이가 감히 함부로 지껄여? 아큐는 상대가 항상 얻어맞는 건달패들이라면 겁을 집어먹었겠지만, 왕털보쯤이야 못 당할까 싶어 용감하게 덤벼들었다. “누구긴 누구야! 바로 네놈한테지.” “너, 몸뚱이가 근질거리나 보구나?” 왕털보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워 입으면서 말했다. 아큐는 그가 꽁무니를 빼려는 줄 알고 잽싸게 달려들어 한 대 치려했다. 그런데 아큐의 주먹이 미처 왕털보에게 닿기도 전에 그에게 잡혀 버리고 말았다. 아큐는 곧 왕털보에게 변발(辮髮; 만주인의 풍습으로, 남자가12~13세가 되면 머리 뒷부분만 남겨 놓고 나머지 부분을 깎아 뒤로 길게 땋아 늘인 머리)을 낚아 채인 채 담장 앞으로 끌려가 머리를 처박히고 말았다.
아큐의 기억으론 아마도 이것이 평생에 있어 가장 큰 굴욕 같았다. 왕털보는 털북숭이라 자신이 늘 비웃어 주었는데, 도리어 그에게 손찌검을 당했으니 말이다. 아큐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때 멀리서 아큐가 제일 미워하는 첸 영감의 큰아들이 걸어왔다. 그는 도시에 있는 서양 학교에 들어갔다가 반 년 뒤에 돌아왔는데, 어찌 된 일인지 걸음걸이도 변하고 변발도 없어져 버렸다. 그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열 번도 더 통곡을 했고, 여편네는 세 차례나 우물에 뛰어들었다. 그를 볼 때마다 아큐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변발이 없으니 사람 노릇할 자격도 없으며, 그의 여편네도 네 번째로 우물에 뛰어들지 않았으니 정숙한 여자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중대가리, 나귀…….” 아큐는 그 동안 속으로만 이렇게 욕을 했지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화가 끓어 누구라도 붙들고 앙갚음을 해야 하던 참이라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지껄이고 말았다. 그러자 이 중대가리가 노랗게 칠한 지팡이를 손에 쥔 채 아큐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아큐는 딱 하는 소리가 자기 머리에서 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저 애한테 말했는데!” 아큐는 곁에 있던 한 아이를 가리키며 변명했다. 아큐의 생애에 있어 두 번째로 큰 굴욕이었다. 아큐는 천천히 걸었다. 선술집 문턱에 당도하니 망각이라는 보물이 효력을 발휘하여 제법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앞쪽에서 정수암(精修庵)에 있는 젊은 여승이 걸어왔다. 평소에도 아큐는 여승을 보면 욕을 해댔는데, 하물며 굴욕을 당한 지금이야! 그는 굴욕의 기억이 되살아나자 마음속에서 적개심이 일었다.
‘오늘은 왜 이리 재수가 없나 했더니 너를 보려고 그랬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큐는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가 나게 침을 뱉었다. 젊은 여승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걷기만 했다. 아큐는 여승 옆으로 다가가서 새로 깎은 여승의 머리를 손으로 더듬으며 헤벌쭉 웃었다. “아이고머니나, 이런 무례가…….” 여승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종종걸음을 쳤다. 선술집 안에서 사람들이 와 하고 웃어 댔다. 아큐는 더욱더 신이 났다. 그래서 그 구경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번에는 힘을 주어 꼬집어 버렸다. 이 한 판의 승리로 아큐는 왕털보 일도, 가짜 양놈 일도 깨끗이 잊어버렸다. 오늘 생겼던 재수 없는 일이 모두 앙갚음된 것 같았다. “이 씨도 못 받을 아큐 놈아!” 멀리서 젊은 여승이 울먹이며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큐는 하늘이라도 날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투구츠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날 밤, 밤새도록 눈도 붙이지 못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보통 때보다 매끄러운 것 같았다. 젊은 여승의 얼굴의 매끄러움이 그의 손가락에 달라붙었는지도 몰랐다. “씨도 못 받을 아큐 놈!” 하던 젊은 여승의 목소리가 아큐의 귓속에서 다시 울렸다. 그는 생각했다. ‘그래, 여자가 있어야 한다. 자식이 없으면 밥 한 그릇도 공양(供養) 받지 못할 테니까. 이것은 사람으로 태어난 자의 가장 큰 비애다. 여자, 여자, 여자!’ 그는 젊은 여승의 모습을 떠올리자 마음이 적잖이 달떴다. 누가 알았으랴! 바야흐로 이립(30세)의 나이에 젊은 여승 때문에 마음이 달떠 버릴 줄이야. 그는 ‘남자를 유혹하려는’ 여자, 즉 자신에게 말을 거는 여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승은 자기를 보고 웃지도 않았고, 수상한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아큐는 여승에게 유혹(誘惑)당하고 말았다. 아, 이것은 여자가 나쁘다는 증거 중 하나가 분명했다.
다음날 아큐는 자오 영감 댁에서 하루 종일 방아를 찧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부엌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웠다. 그 때, 설거지를 끝낸 자오 댁의 하녀 우 씨 아줌마가 아큐에게 말을 걸었다. “마님이 이틀째 아무것도 드시지 않아. 영감님이 첩을 사 오신 뒤로…….” ‘여자……, 우 씨 아줌마……, 청상 과부……, 여자…….’ 아큐는 담뱃대를 팽개치고 벌떡 일어섰다. “나하고 자자! 나하고 자자!” 하고 아큐는 별안간 우씨 아줌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우씨 아줌마는 ‘어머나!’ 하고 질겁하더니,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아큐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꿇어앉아 있었다. 바로 그 때, 딱 소리가 나더니 머리가 어찔해져 왔다. 뒤를 돌아보니, 수재가 굵은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서 있었다.
“이 못된 놈! 감히…….” 수재는 굵은 대막대기로 아큐의 머리를 사정 없이 내리쳤다. 아큐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채 문 밖으로 달아났다. “염치 없는 놈!” 하고, 수재가 뒤에서 욕을 했다. 아큐는 방앗간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몹시 욱신거렸다. ‘염치 없는 놈’이라고 하던 수재의 말이 귀에 쟁쟁했다. 아큐는 마음이 꺼림칙했지만 곧 쌀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그런데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그 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 소리는 안뜰에서 나는 것이었다. 그 곳에는 자오 씨 댁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틀 동안 식사도 안 했다는 마님까지 끼어 있었다. 게다가 이웃의 쩌우치 댁과 자오바이옌, 자오쓰천도 있었다. 마침 작은 마님이 우 씨 아줌마를 끌고 나오면서 말했다.
“밖으로 나와. 네가 정숙하다는 걸 누가 몰라. 절대로 소견 좁은 짓을 하면 안 돼.” 우씨 아줌마는 손을 잡힌 채 끌려 나와서는 울기만 했다. ‘흥, 재미있는걸. 이 청상과부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아큐는 이런 생각을 하며 그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수재가 아까처럼 대막대기를 든 채 그에게로 달려왔다. 아무래도 자기와 관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몸을 휙 돌려 재빨리 도망쳐 버렸다. 뒷문으로 빠져 나와 단숨에 투구츠(土谷祠)로 돌아왔다. 잠시 앉아 있으려니 온 몸에 오싹오싹 한기가 들었다. 봄이라 해도 밤에는 아직 꽤 쌀쌀했다. 그제서야 저고리를 자오 씨 댁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그렇지만 가지러 가자니
수재의 대막대기가 너무 무서웠다. “아큐, 개 같은 자식! 자오 씨 댁 하녀까지 희롱(戲弄)하다니! 나까지 잠도 못 자게 됐잖아.” 하며, 그 때 자오씨 댁 하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하인은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았으나 아큐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결국은 밤에 폐를 끼쳤다는 이유로 하인에게 술값을 물어야 했다. 아큐에게는 현금이 없었으므로 털모자를 전당포에 잡혔다. 그러고도 다섯 가지 조항에 서약까지 했다.
1. 내일 붉은 초 한 쌍, 향 한 봉을 가지고 자오 씨 댁에 가서 사죄해야 한다.
2. 자오 씨 댁에서 무당을 불러, 목을 매어 죽게 하는 귀신을 쫓는 굿을 하는데 그 비용은 아큐가 전담한다.
3. 이후로 아큐는 자오 씨 댁 문턱도 밟을 수 없다.
4. 이후에 우 씨 아줌마에게 다른 일이 생기면 책임을 아큐에게 묻는다.
5. 아큐는 품삯과 저고리를 찾아갈 수 없다.
그가 다시 미장(未莊)으로 돌아온 것은 중추절(仲秋節) 직후였는데, 그는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새로 산 옷에다 모든 거래를 현찰(現札)로 지불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신기하고 새로운 물건들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여자들은 아큐가 가지고 온 물건들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은근히 만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큐가 도둑이의 앞잡이였다는 소문이 나돌자 이러한 흥미는 자연히 시들해지고 말았다.
아큐는 사죄 절차를 끝낸 뒤, 예전처럼 거리를 쏘다녔다. 이 날부터 마을 여자들은 아큐를 보기만 하면 문 안으로 숨어 버렸다. 심지어는 쉰 살에 가까운 쩌우치 댁까지도 남들을 따라서 숨어 버렸다. 게다가 열한 살밖에 안 된 계집애까지 불러들이는 게 아닌가. 아큐는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술집에서는 외상 술을 주려 하지 않았다. 또 며칠 동안 품을 팔아 달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외상 술을 주지 않는 것은 참으면 그만이지만, 품을 팔아 달라는 사람이 없게 되면 아큐는 배를 곯아야 했다. 이것은 확실히 ‘개 같은 놈’의 일이었다.
자오 씨 댁에서는 샤오디를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있었다. 이 샤오디란 놈은 말라 빠져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놈이 자기 밥줄을 끊으려 한다고 생각하니, 아큐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며칠 후, 아큐는 첸 영감 댁 담장 앞에서 우연히 샤오디를 만났다. 아큐는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짐승 같은 놈!” 아큐는 눈을 부릅뜨고 으르렁거렸다. 입에서 침이 튀어나왔다. “나는 버러지야. 이러면 됐지.”
샤오디가 말했다. 아큐는 샤오디의 이러한 겸손이 도리어 비위가 상했다. 당장에 덤벼들어 샤오디의 변발을 잡아채었다. 샤오디는 한 손으로는 자기 머리채 밑을 감아쥐고, 또 한 손으로는 아큐의 변발을 잡아채었다. 옛날에는 샤오디 같은 것은 어림도 없는 상대였다. 그런데 요즈음 잔뜩 굶주린 아큐는 샤오디 못지않게 말라 있었다. 그래서 힘도 엇비슷해져 버렸다.
한 삼십 분쯤 흘렀을까. 그들의 머리에서 김이 올랐다. 이마에서도 땀이 흘렀다. 아큐의 손이 늦추어지자 샤오디의 손도 늦추어졌다. “두고 보자, 개새끼…….”
이 싸움은 이렇게 무승부로 끝났지만, 아큐에게는 여전히 삯일을 해 달라는 사람이 없었다. 꽤 따스해진 어느 날이었다. 그렇지만 아큐에게는 산들바람까지도 써늘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그나마 견딜 만했는데, 배가 고픈 것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큐는 어쩔 도리가 없이 밖에 나가 먹을 것을 구해 보기로 했다. 새로 모를 낸 연푸른 논들이 눈에 들어왔다. 간간이 밭을 가는 농부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큐는 ‘먹을 것을 구하려고’ 무작정 걷다 보니, 어느덧 정수암(精修庵)까지 와 버렸다. 나지막한 담 안에 드넓은 무밭이 펼쳐져 있었다. 아큐는 잠깐 주저주저하다가 사방을 돌아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큐는 담을 기어 올라갔다. 그러자 흙덩이가 우르르르 떨어져 내렸다. 아큐는 다리가 덜덜 떨렸다. 가까스로 뽕나무 가지를 붙잡고 뒤뜰 쪽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무를 뽑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둥그런 머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늙은 여승이었다. 아큐는 재빨리 무 네 뿌리를 뽑아 품속에 싸안았다.
“나무 아미타불. 아큐, 왜 남의 채소밭에 뛰어들어 무를 훔치는 거냐?” “내가 언제 채소밭에 뛰어들어 무를 훔쳤다는 거냐?” 아큐는 도망을 치다가 뒤를 흘낏거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건 뭐지?” “이게 당신 거야? 그럼 무더러 당신 거라고 말을 시킬 수 있어, 있어?” 이렇게 말하면서 아큐는 곧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커다란 검정개 한 마리가 쫓아와 아큐의 다리를 물어뜯으려 하였다. 이때 다행히 옷섶에서 무 하나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 검정개가 놀라 멈칫하였다. 그 틈에 아큐는 담장 위로 기어 올라가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 후 한동안 보이지 않던 아큐가 웨이좡에 다시 나타난 것은 그 해 추석이 막 지난 무렵이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아큐는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주막에 나타났다. 계산대로 다가가더니 허리춤에서 은전과 동전을 한 움큼 꺼내어 계산대 위에 뿌렸다. “현금이다, 술 가져와!” 입고 있는 옷은 새로 맞춘 겹옷이었다. 보아하니, 허리춤에 큰 전대(돈이나 물건을 넣고 허리에 차거나 어깨에 메도록 만든, 폭이 좁고 긴 자루)를 찼는데, 묵직하게 늘어져서 허리띠를 바짝 졸라 매고 있었다. 그러자 심부름꾼, 주인, 술 손님, 행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 존경심이 일어나는 사람도 있었다.
“호, 아큐! 돌아왔군! 돈을 많이 벌었나 본데!” “응, 돌아왔어. 문 안에 들어갔다 왔지!” 아큐에 대한 소문은 당장 온 마을에 퍼졌다. 사람들은 새 옷을 입고 나타난 아큐가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주막에서, 찻집에서, 사당 처마 밑에서 사람들은 아큐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어느 틈에 아큐는 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아큐의 말로는 문 안 거인(擧人, 과거에 급제한 선비) 영감 댁에서 일을 거들었다고 했다. 이 한 마디만으로도 듣는 사람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거인은 사방 일백 리를 통틀어서 그 사람 하나뿐이었다. 그 댁에서 일을 거들었다는 것은 당연히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큐는 거인 영감이 실제로는 ‘개 같은 놈’이기 때문에 다시는 일을 거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람들은 아큐의 말을 들으며 통쾌해 하기도 하고 탄식을 하기도 했다. 아큐가 거인 영감 댁에서 일을 거든다는 것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거들러 가지 않는다고 하니 아깝기도 했던 것이다.
“자네들, 사람 목 자르는 본적이 있나? 허, 볼 만해. 혁명당을 죽이는데, 굉장했해!" 아큐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몸을 흠칫했다. 그러자 아큐는 느닷없이 왕털보의 뒷덜미를 내려치며 “싹둑!” 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왕털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목을 움츠렸다. 하여간 얼마 안 가서 아큐의 명성은 안방에 있는 여자들한테까지 좍 퍼졌다. “쩌우치 댁은 아큐에게 남색 비단 치마를 샀대.” “자오바이옌 어머니도 애들에게 주려고 빨간 모슬린 저고리를 샀다는군. 단돈 30전에 말이야.” 여자들은 마주 앉아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아큐가 나타나길 눈 빠지게 기다렸다. 아큐에게 비단 치마를 산 쩌우치 댁은 너무 기쁜 나머지, 자오 마님에게 들고 가 자랑을 하였다. 자오 마님은 싸고 좋은 털배자를 사고 싶다며, 쩌우치 댁에게 즉시 아큐를 찾아 데려오라고 하였다. 자오 씨 댁 식구들은 초조하게 아큐를 기다렸다. 한참 만에야 아큐가 쩌우치 댁을 따라 들어왔다.
“아큐, 문 안에 가서 돈을 벌었다지? 다름 아니라 내가 좀 필요한 것이 있어 그러는데…….”
“다 팔고 남은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 팔았어? 그럼, 이 다음에라도 물건이 생기면 먼저 우리 집으로 가져오게나.” 아큐는 내키지 않다는 듯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 자오 영감과 수재는 아큐의 불손한 태도에 몹시 화가 났다. 그래서 이 염치 없는 놈을 마을에서 아예 쫓아내 버릴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심한 것 같아 그만두었다. 한편 건달패들은 아큐에게 돈을 벌게 된 내막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큐는 숨기려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우쭐거리며 자기 경험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거인 영감 댁에서 일을 한 게 아니라 도둑질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큐가 직접 담을 넘은 것은 아니고, 자기는 단지 밖에서 물건만 받아냈다고 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아큐가 좀도둑에 불과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이로 해서 마을 사람들은 ‘역시 아큐는 두려워할 만한 존재’가 못 된다고 생각하였다.
아큐가 전대를 자오바이옌에게 팔아넘긴 그 날, 커다란 배 한 척이 자오 씨 댁 나루터에 닿았다. 그것은 바로 거인 영감의 배였다. 그 배는 웨이좡에 굉장한 불안을 실어다 주었다. 정오도 못 되어 온 마을이 술렁거렸다. 혁명당 때문에 거인 영감이 우리 마을로 피난 왔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아큐는 문 안에 갔을 때 혁명당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또 자기 눈으로 혁명 당원이 참수(목을 벰)당하는 것을 실제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선가 혁명당은 반역이며, 반역은 그에게 고난을 가져온다는 말을 주워 들은 적이 있어서, 그들을 막연히 증오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이 백 리 사방으로 이름을 떨치는 거인 영감까지 두렵게 하다니, 아큐로서는 신명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혁명이란 것도 괜찮은데……. 개 같은 놈의 세상을 뒤집어 엎어라. 빌어먹을……, 나도 혁명당이 돼야지. 혁명이다, 혁명! 좋았어! 내가 갖고 싶은 건 모두 내 것이다. 어떤 계집이든 모두!’ 자오 씨 댁 두 나리와 자오바이옌도 대문간에 나와 혁명 이야기를 주 고받고 있었다. 아큐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노래를 부르며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자오 영감이 아큐를 불러 세웠다. “아큐 군! 아큐 군, 저어…… 요새 돈 잘 벌리나?” “돈? 물론, 갖고 싶은 건 모두…….” “아……큐 형, 우리네처럼 가난뱅이야 괜찮겠지?” 자오바이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짐짓 혁명당의 속셈을 떠보려는 듯이. “가난뱅이라고? 너야 나보다 부자잖아.” 아큐는 그렇게 말하고는 계속해서 길을 걸어갔다. 그는 마음이 들떠서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다가 밤이 이슥해서야 투구츠로 돌아왔다. ‘혁명? 재미있는데…….
웨이좡의 촌놈들은 아마 볼 만할 거야. 무릎을 꿇고 애걸하겠지. 아큐, 목숨만 살려 줘. 누가 들어 준대? 첫 번째로 죽어야 할 놈은 자오 영감, 수재, 또 가짜 양놈……. 그러고 나서 수재 여편네의 침대를 우선 투구츠로 옮겨 놓고, 그리고 첸 가(哥)네 탁자와 의자를 늘어놓고……. 그 다음엔 여자를 데려와야지. 쩌우치네 딸년은 아직 애송이고, 그리고 가짜 양놈 여편네는 변발도 없는 녀석과 잤으니, 흥 좋은 물건은 못 되지.” 아큐는 이런저런 공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거리로 나가 보니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배도 고팠다. 아큐는 천천히 걸어 어느덧 정수암에 이르렀다. 암자는 지난번처럼 조용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문을 두드려 댔다. 검은색 대문에 흠집이 났을 때에야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늙은 여승이 고개를 내밀었다.
“뭐하러 또 왔지?” “혁명이다. 알고 있지?” “혁명, 혁명이라고? 혁명은 벌써 했어. 도대체 네놈들이 혁명한다고 우리더러 어쩌란 말이냐?” 늙은 여승은 핏대를 올리며 말했다. “뭐?” “몰랐어? 그놈들이 벌써 혁명했어.” “누가?” “수재하고 양놈하고!” 아큐는 너무나 뜻밖이었으므로 얼떨떨해졌다. 늙은 여승은 아큐가 풀이 꺾이는 것을 보고 재빨리 문을 잠가 버렸다. 한편 자오 씨 댁의 수재는 혁명당이 밤 사이에 입성했다는 것을 알자, 잽싸게 변발을 머리 꼭대기에 틀어 얹었다. 그리고 여태껏 상대도 하지 않던 가짜 양놈 첸 가를 아침 일찍 방문했다. 그들은 곧 동지가 되어서 혁명에 나서기로 약속했다. 그들은 머리를 짜낸 끝에 정수암에 ‘
황제 만세 만만세’라고 적힌 용패가 있다는 걸 생각해 냈다. 그래서 즉시 암자로 달려가서 혁명을 한 것이다. 늙은 여승이 막아서서 잔소리를 했으나, 그들은 여승을 만주 정부와 한 패로 몰아 몽둥이 세례를 주었다. 그들이 가 버린 뒤에 여승이 정신을 차려 보니, 용패는 벌써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아큐는 이러한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었다. 그는 오늘 아침에 늦잠을 잤던 것이 무척 후회스러웠다. 그런데 괘씸한 일은 그들이 자기를 부르러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웨이좡의 인심은 조금씩 진정되어 갔다. 다만 변발을 머리 꼭대기에 틀어 얹은 사람이 점차 늘어 갔다. 여름이라면 변발을 머리 꼭대기에 틀어 얹거나 잡아 매는 일이 조금도 신기할 것이 없겠지만, 지금은 늦가을이었다. 그렇게 뒤통수를 훵하게 비운 채로 거리를 나다니면, 사람들은 “와, 혁명당이 온다.” 하고 소리 쳤다. 아큐는 그 소리가 그지없이 부러웠다. 게다가 아큐는 수재가 머리를 그렇게 틀어 얹었다는 말을 듣자, 자신도 흉내를 내고 싶었다. 그는 대젓가락으로 변발을 머리 꼭대기에 틀어 얹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큐는 기분이 나빠 아무에게나 짜증을 부렸다.
수재는 가짜 양놈에게 부탁하여 자유당에 가입하고 복숭아 은배지를 달게 되었다. 자오 영감은 이것 때문에 갑자기 더 훌륭해져서는 아들이 처음 수재가 되었을 때보다도 더 오만해졌다. 아큐를 봐도 본 체도 하지 않았다. 아큐는 매우 못마땅하였다. 혁명을 하려면 그저 변발만 틀어 얹는 것만으로는 안 되며, 일단 혁명당과 연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가짜 양놈을 찾아가 의논을 해 보기로 했다. 가짜 양놈네 집 대문은 열려 있었다. 가짜 양놈은 뜰 한가운데 서 있었는데, 새까만 서양 옷에다 복숭아 은배지를 달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자오바이옌과 건달패 세 놈이 공손한 자세로 그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아큐는 슬그머니 걸어가 자오바이옌 뒤에 섰다. 가짜 양놈은 그를 보지 못했다. 그는 눈이 뒤집힐 정도로 연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큐는 그가 잠시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에…… 저…….” “뭐야?” “저도…….” “나가!” “저도 혁명을…….” “썩 꺼져!” 가짜 양놈은 지팡이를 높이 쳐들었다. 자오바이옌과 건달패들도 덩달아 소리 쳤다. “선생께서 나가라시잖아. 말이 안 들려!” 아큐는 할 수 없이 물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거리로 나오자 속에서 서글픔이 끓어 올랐다. 아큐는 여태까지 이렇듯 진한 쓸쓸함을 맛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모욕감까지 생겼다. 앙갚음을 하기 위해 당장 변발을 풀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한밤중까지 쏘다니다가 선술집이 문을 닫을 때쯤 해서야 터벅터벅 투구츠로 돌아왔다.
딱, 펑! 그 때,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아큐는 쓸데없이 참견하기를 좋아했다. 곧 어둠 속을 내달았다. 그러자 맞은편에서도 사람 하나가 이리로 달려오는 게 아닌가. 아큐는 덩달아서 급히 몸을 돌려 그 사람을 뒤따라 도망쳤다. 그 사람이 골목을 돌면 자기도 돌고, 그 사람이 서면 자기도 섰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샤오디였다. “자…… 자오 씨 댁이 약탈당했어!” 샤오디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달려가 버렸다. 아큐는 살금살금 길 모퉁이를 돌아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자세히 보니, 흰 투구에 흰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연달아 궤짝과 가구를 메고 나왔다. 아큐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싫증이 나도록 지켜 본 후에야 투구츠로 돌아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몹시 불쾌했다. 웨이좡에 드디어 흰 투구에 흰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를 부르러 오지 않았다. 좋은 물건을 무수히 들어냈는데도 내 몫은 없었다. 이건 전부 그 빌어먹을 가짜 양놈 때문이다. 내가 혁명하는 것을 그놈이 금지시켰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번에 내 몫이 없을 리가 없지. 아큐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내가 혁명하는 것을 막다니, 네놈만 혁명하냐? 좋아, 혁명해라. 혁명은 목이 잘리는 죄목이니까. 내가 고발해야지. 네놈이 문 안에 끌려가 목이 잘리는 꼴을 보아야겠다. 싹둑, 싹둑!”
자오 씨 댁이 약탈당하자 웨이좡 사람들은 매우 통쾌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워했다. 아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나흘 뒤, 아큐는 한밤중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사람들에게 붙잡혀 문 안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아큐는 목책(木柵; 말뚝 같은 것을 죽 늘여 박은 울타리)이 둘러쳐진 어느 집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넓은 대청 앞에는 머리를 빡빡 민 늙은이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병정들이 늘어서 있었다. 양옆에는 또 두루마기를 걸친 사람들이 십여 명 서 있었다. 그들도 늙은이처럼 머리를 빡빡 깎고 있었는데, 등에는 가짜 양놈처럼 한 자쯤 자란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모두가 험악한 얼굴로 아큐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큐는 무릎에서 힘이 빠져 나가 바닥에 털썩 꿇어앉고 말았다.
“서서 말해! 꿇어앉지 마!”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소리 쳤다. 하지만 아큐는 몸이 저절로 쭈그러 들어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노예 근성!”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경멸하듯 말했다. “사실대로 말해 봐. 나는 다 알고 있으니까. 바른 대로 말한다면 놓아 줄 수도 있어.” “저는 원래…… 혁명을 하려고…….” 아큐는 멍하게 앉아 있다가 겨우 떠듬떠듬 말했다. “그럼 어째서 여기에 오지 않았지?” “가짜 양놈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해도 늦었어. 지금 너의 패거리는 어디 있지?” “네, 뭐라고요?” “그 날 밤, 자오 씨네 집을 턴 패거리 말이야.” “그놈들은 저를 부르러 오지 않았습니다. 자기들끼리만 들고 가 버렸습니다요.” “어디로 갔지? 말하면 놓아 주지.” “저는 모릅니다. 그놈들은 저를 부르러 오지 않았습니다.” “달리 할 말은 없나?” 늙은이가 부드럽게 물어 왔다. 아큐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할 말이 없었다. “없습니다.”
그러자 두루마기 입은 사람 하나가 종이 한 장과 붓 한 자루를 아큐 눈앞에 가져오더니 붓을 쥐어 주려고 하였다. 아큐는 깜짝 놀랐다. 그는 한 번도 붓을 쥐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큐가 어쩔 줄을 몰라 머뭇거리자, 그는 손가락으로 한 군데를 가리키며 서명하라고 하였다.
“저……, 저는…… 글자를 모릅니다.” 아큐는 붓을 움켜잡은 채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그럼, 너 좋을 대로 동그라미나 하나 그려 넣어!” 아큐는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했지만 손만 부들부들 떨릴 뿐이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아큐를 위해 종이를 땅바닥에 펴 주었다. 아큐는 엎드려서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런데 빌어먹을, 붓이 말을 듣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면서 간신히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붓이 자꾸만 삐져나갔다. 그려 놓고 보니 수박씨 모양이었다. 이윽고 사람들은 그를 집 모퉁이에 있는 자그마한 방에 가두었다.
아큐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살다 보면 어떤 때는 끌려 나가기도 하고 끌려 나오기도 하는 것이며, 동그라미를 그려야 할 때도 있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다만 동그라미가 제대로 안 그려진 것이 하나의 오점으로 마음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아큐는 다시 대청 앞으로 끌려 나왔다. 늙은이는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할 말 없나?” “없습니다.”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과 짧은 웃옷을입은 사람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그에게 까만 글씨가 씌어 있는 흰 무명 등거리(조끼처럼 등에 걸쳐 입는 홑옷)를 입혔다. 아큐는 매우 기분이 나빴다. 이건 상복 같은데, 상복을 입으면 재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두 손이 등뒤로 묶이어 목책 밖으로 끌려 나갔다.
아큐는 포장이 없는 수레에 올려졌다. 수레는 곧 움직였다. 앞에는 총을 멘 병정과 자위 대원이 있었고, 양 옆에는 구경꾼들이 쑤군거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아큐는 깨달았다. 이거 목 잘리러 가는 게 아닌가.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살다 보면 목이 잘리는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왜 형장 쪽으로 가지 않는 것일까? 그는 죄인을 이렇게 조리돌린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알았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살다 보면, 어느 때는 조리돌리는 일도 있으려니 하고 생각했을 테니까. 아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따라오고 있었다. 뜻밖에도 길 옆 구경꾼 속에 우 씨 아줌마가 있었다.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아큐는 자신이 배짱도 없이 노래도 한 마디 부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머릿속에서 그가 아는 노래 제목이 바람개비처럼 휘돌았다. 그래, ‘쇠채찍을 손에 잡고 네놈을 칠 테다’를 부르자. 그는 손을 들어 올리려고 하다가, 자신의 두 손이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래 부르기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 속에서 승냥이가 울부짖는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수레는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큐는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구경꾼들을 바라보았다. 그 때, 그의 머릿속에 4년 전에 산기슭에서 만났던 굶주린 이리 한 마리가 떠올랐다. 그는 어찌나 무서웠던지 거의 죽어 나자빠질 지경이었다. 다행히 손에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있었기에, 마음을 다져 먹고 무사히 웨이좡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리의 눈은 잊혀지지 않았다. 불길하고도 무서웠다.그 두 눈은 도깨비불처럼 번쩍거렸다. 멀리서 쫓아와 자기 살을 꿰뚫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또다시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무서운 눈알을 보았다. 그 눈은 이미 자기 살을 씹어 삼켜 버렸으며, 이제는 자기 살 외에 다른 것까지 씹어 삼키려 하고 있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오면서, 이 눈알들은 하나로 합쳐져 벌써 그의 영혼을 물어뜯고 있었다. “사람 살려!” 그러나 아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눈앞이 캄캄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났다. 온 몸이 먼지처럼 풀썩 흩어지는 것 같았다.
여론을 들어 보면, 웨이좡(未莊)에서는 별로 이의가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아큐가 나쁘다고 말했다. 그가 총살당한 것은 그가 나쁘다는 증거라는 것이었다. 나쁘지 않았다면 왜 총살당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문 안에서는 대부분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총살(銃殺)은 목 자르는 것만큼 볼 만한 것이 못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건 얼마나 시시한 사형수인가. 그토록 오래 조리를 돌렸는데도 노래 한 마디 듣지 못하다니! 그들은 헛걸음만 쳤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아Q정전” 작품 해설에서 본 ‘정신승리법‘
1) 이 작품은 신해혁명 전후의 무기력한 중국인을 희화화(戱畵化)한 작품으로 노신의 작가적 지위를 문학사에 자리 잡게 해준 대표작이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매우 싱거운 이야기에 불과하나, 이 작품이 그려내는 이른바 '정신승리법'이라는 독특한 인간심성과 작품의 밑바탕이 된 시대성 때문이다.
1911년에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신해혁명(辛亥革命)의 쓰디쓴 좌절을 맛본 중국인들은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저항(抵抗)할 줄 모르고 오히려 머릿속에서 자신의 정신적 승리로 소화해버리고는 주인공 아큐를 보고, 모두 자기 자신을 모델로 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2) 손문(孫文)의 혁명세력이 약해 원세개(袁世凱) 정권을 빼앗긴 신해혁명
1911년에 일어난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 손문(孫文)을 중심으로 한 혁명파는 청조(淸朝)의 타도와 공화제(共和制)의 수립을 주장한다. 그리고 청조로부터 독립하여 난징에 중화민국을 세운 뒤 손문이 대총통의 자리에 오른다. 이렇게 되자 청 정부는 실력자인 원세개(袁世凱)에게 사태 수습을 맡기게 된다.
원세개(袁世凱)는 청조의 황제를 퇴위시킨다는 조건으로 손문(孫文)의 대총통 자리를 빼앗은 뒤 베이징에 정부를 조직한다. 이후 손문(孫文)의 혁명파는 공화 정치의 실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신해혁명은 결국 서구 열강(西歐列强)의 지지를 받은 위안스카이의 탄압 속에 실패로 끝나고 만다.
하지만 신해혁명은 청나라를 멸망시켜 2천 년간 계속되었던 전제 정치를 막 내리게 하고, 새로운 정치 체제인 공화정치(共和政治)의 기초를 이루었다는 데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3) 청조 말기의 침체된 봉건 사회를 아큐라는 날품팔이 노무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아큐가 살고 있는 지방의 권력가와 그 가족·연고자들의 권세를 둘러싸고 있는 이면에 대한 문제까지 희극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여기서 노신은 등장인물들의 혁명에 대한 불안한 모습과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되는 아큐의 허무한 인생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여기에서 아큐에게서 볼 수 있는 공허한 영웅주의(英雄主義)와, 그것과 표리를 이루는 불쌍한 패배주의의 민족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즉,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을 직시하지 못한 채 항상 자기기만으로 현실을 호도(糊塗)하면서 살아가는 아큐의 이른바 '정신승리법(精神勝利法)'을, 민족적인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대국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낡은 지식인과 중국인민들에게서 발견하고 이를 형상화한 작품인 것이다.
신해혁명에 관한 희망과 혁명의 기회에 편승(便乘)하는 건달들의 모습을 조명하면서 자신의 심경을 기탄없이 드러내 보이는 작가는 아큐의 죽음을 구경거리로밖에 보지 않는 군중들에 대한 노여움을 아큐에 대한 동정으로써 질책하고 있다. 이러한 풍자적이고 야유적인 비판 속에는 중국인민들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식이 결여된 슬픔을 담고 있으며, 이렇게 실패를 교훈삼아 다시 민족결의를 촉구(促求)하는 주제가 강하게 흐르고 있다.
4) '아큐정전'은 작가의 이러한 구국혼(救國魂)이 가장 깊이 농축된 작품이다. 따라서 어리석고 불쌍한 아큐, 그를 통해 근대화 과정에 소용돌이치는 중국민중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그려보였다. 그런 아큐의 모습이 그때도 그랬지만 중국민중들에게는 '각성'보다 '위안'을 더 많이 주고 있어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가 없다.
노신이 입버릇처럼 내뱉던 푸념이 아직도 메아리치는 여운으로 남아있다. "중국인은 누군가가 나서서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5) 중국 현대 소설의 아버지인 노신(1881 ∼ 1936)의 중편 소설로 과거 구소설의 형식과 내용을 완전히 탈피하고 있다. '아큐'라는 중국의 전형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신해혁명을 전후하여 봉건사회의 몰락과정에서 보여 준 중국인의 나약성·비겁성·비굴성 등 중국인의 약점을 고발하여 민족의 각성을 촉구했다.
주인공의 '정신승리법'은 중국인들의 정신적 자학을 뜻하는 말로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반봉건·반제의 기치(旗幟) 아래 전개된 5·4운동의 기수가 되고, 중국혁명의 서막인 문학혁명을 주도하며 중국민중의 길고 긴 잠을 깨운 그는 문학으로 중국인의 우매성을 해부했다.
1) 생애와 작품활동 : 중국의 작가. 사상가인 노신은 1881년 예부터 절경으로 소문난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주수인. 필명인 노신은 투르게네프의 루딘을 모방한 것이었다. 당시 이름만 대도 다 알아주던 대지주의 장남으로 태어나 온 가족과 하인들의 애지중지 속에서 자랐다.
출신배경이 이런 노신이 급진적인 혁명사상에 눈을 뜬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릴 적부터 글 잘하는 수재로 소문난 노신이 13세 때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위한 과거시험에 연루되어 투옥되고, 아버지는 이때 받은 충격으로 병을 얻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거의 동시에 모두 사망, 집안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된다.
훗날 노신은 "나는 그때 비로소 세상 돌아가는 진면목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그 당시의 충격을 회고했다. 그리고 그의 고향 소흥은 실패로 끝난 두 혁명인 태평천국의 난(1861)과 신해혁명의 중심 영향권에 들었고, 당시 중국대륙을 유린한 외세진출의 통로 앞에 늘 놓여 있었다. 급진 혁명사상에 눈뜬 노신이 신학문을 배워 쓰러져가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일본에 유학길을 오른 것은 스무 살인 1900년. 당시 우매한 중국 한의술 때문에 부친을 잃었다고 생각한 노신은 서양의학을 공부하여 의학구국을 생각했다.
그러나 세균학 시간에 우연히 본 러일전쟁 시사영화에서 한 중국인이 러시아를 위한 스파이 혐의로 일본군에 의해 총살되는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는 중국군중을 본 뒤, 그는 민중의 육체적 질병을 고치는 일보다 민족적 자각을 시키는 일, 즉 정신적 질병을 고치는 것이 급선무라 여기고 의학을 중단하고 문학으로 전향했다. 그후 신문화운동에 참여하여 동경에서 ’신생‘을 발간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동생 주작인과 공동으로 성외소설집을 번역했다. 성외소설이란 당시 외국(유럽) 소설을 의미한다. 이대 그는 유럽의 약소민족의 문학, 슬라브 민족의 저항시, 니체 철학에 심취했다. 잠시 귀향하여 인습적인 결혼을 했으나, 그것은 그에게 큰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신해혁명이 성공하자 북경에 가서 채원배(蔡元培)에 초청되어 교육부직원으로 일하면서 처녀작 ’광인일기(1918)‘를 썼다. 잡지 ’신청년‘에서 활동하는 한편 백화운동. 문학혁명에 참가했으며, 북경대학 사범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경사 도서관장을 겸했다. ’광인일기‘는 낡은 봉건왕조를 청산하려는 중국 젊은이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으며, 중국 신문예를 탄생시키는 출발이 되었다. 그로부터 3년 후 발표된 ’아큐정전‘은 중국 국민적 성격의 전형을 풍자한 소설로서, 중국이 역사적으로 계승하여온 중화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자기만족으로 스스로를 기만하며 사는 정신 승리법과 우매성, 약점을 아큐에 집약하여 냉철하게 묘사한다.
찬반이 일어나지만 반봉건의 신문화운동을 기원하는 젊은 진보파들에 의해 옹호되었으며, 5. 4운동, 비공 운동의 기수로 앞장서기 시작한다. 1925년에는 청년지도기관인 주명사를 설립하여 계속 문학혁명에 앞장섰으며, 그가 관계한 여자사범대학에서 학생 운동이 일어나자 그에 동참, 당시 단기서 정부의 탄압(체포령)을 피해 북경을 탈출하여 교직을 광동 중산대학으로 옮겼다.
1927년 4월 국공 분열 후 다시 국민당의 탄압이 시작되자 불안한 사회정세를 피해 상해조계에 숨어서 운동을 계속했다. 1931년 여름에는 뉴욕에서 열린 노동자문화 연합대회의 중국측 명예주석으로 추대되었다. 한편 그는 북경대학 근무 당시의 제자 허광평과의 동거로 중국의 인습을 깨뜨렸다.
그는 중국작가동맹 좌익계의 중심인물로 활동하면서 극좌(창조사. 태양사)와 대립하여 참된 프롤레타리아 문학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그의 문학은 초기의 소설에서 차츰 평론. 수필로 옮겨갔고, 이른바 쫓겨 다니면서 발바닥으로 쓰는 시기를 맞았다. 우익 양실추. 두형 등의 예술 지상주의를 계승한 임어당의 공격을 받았다.
중일전쟁 발발의 전년 1936년, 폐결핵과 천식이 악화되어 향년 56세로 사망했다. 유해는 만국 빈의관에 옮겨 1만 명의 조객과 7 천의 옹위를 받으면서 만국공묘에 매장되었으며, 그의 비석에는 '민족혼'이란 글자가 새겨졌다.
2) 노신의 문학세계에 나타난 민족 개몽 사상
중국문학사에 수많은 별들이 있으나 노신이 남긴 작품만큼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것도 흔치 않다. 그것은 노신이 누구보다 강렬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평생 글을 써왔다는 사실에 기인할 것이다.
또 노신이 남긴 작품만큼 후대의 문학사조나 형식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많지 않다. 노신이 이처럼 위대한 민족의 문학가로 평가받게 된 것은 그가 몸소 민족의 수난기를 살아가면서 민족의 고뇌를 방관자로서가 아니라 선각자로서 껴안은 의연함을 가지고 끝까지 지켜나간 작가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노신의 문학생애는 전후 2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전기(1918-1927)는 실험적 문학창작기로서 이 기간에는 ’광인일기‘ ’약‘ ’고향‘ ’아큐정전 등 노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작들이 나왔다. 후기(1928-1936)는 문학 논쟁기로 단평, 잡감을 중심으로 독특한 문체를 개발했으며, 노신이 문단의 중심적인 인물로 영향력을 행사한 시기이기도 하다.
노신은 혁명가 이전에 뛰어난 문학가로서의 정신이 더욱 추앙 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대개 짧고, 가장 길다는 것이 ‘아큐정전’이지만 이것도 중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취를 더하며 그 깊은 뜻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불과 몇 장의 에세이조차에서도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그것이 비록 혁명을 위한 문학일지라도 안이한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삼지 않는 향기 높은 문학, 그것이 노신문학의 위대성이다.
문학이 정치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며, 정치체제가 바뀌었다고 해서 읽히지 않는 글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문학이 아니다. 노신은 ’현재의 우리들의 문학운동에 대하여‘란 글에서 "작가란 그 어떤 인물을 그리든, 그 어떤 소재를 사용하든 자유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작품에 '민족적 혁명전쟁' 이란 꼬리를 달고 그것을 내세워 가치로 삼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작품 뒤에 붙인 슬로건이 아니라 그 작품 속에 깃들어 있는 진실한 생활, 눈부신 투쟁, 약동하는 맥박, 사상과 정열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노신은 불행한 사람들의 정신개조를 생각하고 소설을 썼지, 결코 정치를 위해 소설을 쓴 것은 아니란 뜻이다.
인간이 바뀌지 않고는 사회도 바뀌지 않는다는 그 정신이 중국민족의 전형으로서 이 소설을 쓰게 한 것이다. 아무리 불행한 사람을 묘사하더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이 있음으로써 노신은 삶을 긍정적으로 보려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독자들의 마음을 격려하고 내일을 향해 살아가는 용기를 불어넣는 점이다. 그가 남긴 문학은 체제가 어떻게 바뀌든 불멸이다. 사회 때문에 인간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변함으로써 인간을 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지적이다. 금세기 사가들이 노신을 중국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요 영수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신중국 정신건설의 지주라고 하기도 하고 중국 근대문학의 기점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3) 중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 노신의 문화혁명
누구든지 자신이 여태까지 살아왔던 것과 다른, 새롭거나 낯선 문화를 받아들일 때는 많은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당장 우리를 생각해 봐도 그렇다. 학년이 바뀔 때를 생각해 보자. 그 동안 다정하게 지냈던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헤어지고, 말로만 듣거나 생전 처음 대하는 사람들과 다시 어우러져야 한다. 그 때 우리의 마음은 사뭇 복잡해진다.
낯선 사람들에 대한 어색함과 경계심,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한데 엉켜 있기 때문이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있던 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체제의 나라가 들어설 때는 국민들이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지나간 시절에 얽매여 있기도 하고, 신세계에 대한 꿈으로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노신이 살았던 시대도 그랬다.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청나라 왕조가 휘청거리자,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에 의해 신해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그 무렵 노신은 일본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 본 그는 의술의 빈약함을 가슴 아파하며 장차 훌륭한 의사가 되기로 다짐했던 것이다.
그 당시는 러·일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전쟁에 관한 영화를 자주 보여 주었다. 어느 날, 그는 영화 속에서 건장한 체격의 중국인 한 사람이 러시아의 첩자 노릇을 했다는 죄명으로 일본인에게 목이 잘려 처형당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그는 몸이 아무리 건강하고 튼튼하다 해도 정신이 병들고 약한 사람은 남들의 구경거리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당장 의학 공부를 중단하고 중국으로 돌아와 버렸다. 몸의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마음의 병을 고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신은 고향에서 교편생활을 하며 틈틈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1918년에는 중국 최초의 근대 소설이자 그의 처녀작인 ’광인 일기‘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당시 젊은이들과 학생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 무렵 중국은 이천 년이라는 기나긴 전통과 권위 속에 이어져 내려온 유교가 사회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문화와 도덕은 물론 사람들 자체가 온통 유교적 사고에 깊이 젖어 있었다.
그는 중국인들이 이러한 유교 사회의 케케묵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중국의 유교적인 가족 제도가 지니는 병폐와, 예절이라는 이름의 굴레가 인간을 얼마나 속박하는지를 미친 사람(狂人)을 통해 들춰 보이고 있다.
한편 노신은 이 작품을 통해 ‘오늘을 살고 있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은 오늘날에 실제로 쓰이는 말 그대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글에서 쓰는 말(文語)과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口語)을 하나로 통일(言文一致)하였다. 이것은 당시 중국에서는 문학 혁명이라 할 만큼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동안 중국 사회의 근본을 이루어 왔던 유교의 골 깊은 병폐를 ‘광인 일기’를 통해 파헤쳤으며, 또한 이 소설을 통해 중국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4) 아큐의 모습을 통해서 본 중국인들의 자화상을 묘사
노신의 처녀작 ‘광인 일기’가 중국 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작품이라면, 1921년에 발표된 “아큐 정전”은 노신의 작가적 위치를 문학사에 확고하게 심어 준 작품이다. “아큐 정전”은 신해혁명을 전후로 한 농촌을 배경으로 하여, 이름도 본적도 알 수 없는 날품팔이꾼 아큐(阿Q)의 이야기를 전기 형식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그는 아큐라는 품팔이꾼의 비극적인 운명을 통해 중국 민족의 나쁜 근성을 집중적으로 지적함으로써 그들을 각성시키려 하였다. 아큐는 집도 없고 뚜렷한 일거리도 없는 품팔이꾼이다.
그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어서 마을 사람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하지만 그는 그 동네의 지주인 자오 영감이나 가짜 양놈, 또 자기보다 힘이 센 동네 건달들한테는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비굴하게 몸을 조아린다. 그러나 자기보다 힘이 약해 보이는 왕털보나 여승들한테는 공공연히 덤벼들어 다른 사람들한테 당한 수모를 고스란히 갚아 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사는 마을에 혁명의 바람이 몰아쳐 온다. 사람들이 혁명이란 말에 벌벌 떠는 것을 보자, 그는 사명감도 목적의식도 없으면서 괜스레 혁명을 한답시고 떠들며 돌아다닌다. 어느 날 밤, 길을 가고 있던 아큐는 혁명 당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조영감네의 살림살이를 모조리 들어내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아큐는 갑자기 들이닥친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버린다. 조영감네 집을 아큐가 털었다는 것이다. 아큐는 쉽게 체념해 버린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으려니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큐는 수레에 실린 채 조리돌림을 당한 뒤 총살당하고 만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조리돌림을 당하는 아큐가 너무 가벼운 죄인일 뿐만 아니라, 처형이 싱겁게 끝나 버린 데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
여기에서 아큐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의 의식 밑바닥에 인간을 멸시하는 무기력하고 비겁한 노예 근성과, 이른바 ‘정신 승리법’이라고 하는 묘한 심리 때문이 아닐까? 정신 승리법은 자신이 위험에 처하거나 피해를 보게 되면, 머릿속에서 그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합리화하여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감싸고 있는 위기와 불안, 실패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과 부딪쳐 이겨 나가려 하지 않고, 정신 속으로 달아나 그 속에서 위안과 만족을 얻은 다음 현실을 외면해 버리려는 심리를 가리킨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마음속에 영웅주의와 패배 의식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에 약한 사람에게는 잔인하고 강한 사람에게는 아첨하는 경향을 띤다.
노신은 아큐가 가진 것과 비슷한, 그러한 중국인의 민족성이 신해혁명을 실패로 이끌었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아큐는 청나라 말기 유교 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중국인의 한 표본인 셈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아큐의 모습을 통해 중국인들이 거울을 바라보듯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5) 중국 작가·사상가인 노신은 1881년 예부터 절경으로 소문난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주수인(株樹人)으로 노신은 필명인데, 투르게네프의 루딘을 모방한 것이다. 당시 이름만 대도 다 알아주던 대지주의 장남으로 태어나 온 가족과 하인들의 애지중지 속에서 자랐다. 출신배경이 이런 노신이 급진적인 혁명사상에 눈을 뜬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처녀작 ‘광인일기(狂人日記)’를 1918년에 발표한 이래, 3년 후 발표된 ‘아큐정전’은 중국 국민적 성격의 전형을 풍자한 소설로서, 중국이 역사적으로 계승하여 온 중화(中華)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자기만족으로 스스로를 기만하며 사는 정신 승리법과 우매성, 약점을 아큐에 집약하여 냉철하게 묘사한다. 찬반이 일어나지만 반봉건의 신문화 운동을 기원하는 젊은 진보파(進步派들)에 의해 옹호되었으며, 5·4운동, 비공(批孔, 공자를 비판함) 운동의 기수로 앞장서기 시작한다.
중일전쟁 발발의 전년 1936년, 폐결핵(肺結核)과 천식이 악화되어 향년 56세로 사망했다. 유해는 만국 빈의관(殡仪馆)에 옮겨 1만 명의 조객과 7천의 옹위를 받으면서 만국공묘에 매장되었으며, 그의 비석에는 '민족혼(民族魂)'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노신의 문학 세계
1) 중국 문학사에 수많은 별들이 있으나 노신이 남긴 작품만큼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것도 흔치 않다. 그것은 노신이 누구보다 강렬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평생 글을 써왔다는 사실에 기인할 것이다. 또 노신이 남긴 작품만큼 후대의 문학사조나 형식 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많지 않다. 노신이 이처럼 위대한 민족의 문학가로 평가받게 된 것은 그가 몸소 민족의 수난기를 살아가면서 민족의 고뇌를 방관자로서가 아니라 선각자로서 껴안는 의연함을 가지고 끝까지 지켜나간 작가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2) 노신의 문학 생애는 전후 2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1918 ∼ 1927)는 실험적 문학창작기로서 이 기간에는 [광인일기], [약], [고향], [아큐정전] 등 노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작들이 나왔다.
후기(1928 ∼ 1936)는 문학 논쟁기로 단평, 잡감을 중심으로 독특한 문체를 개발했으며, 노신이 문단의 중심적인 인물로 영향력을 행사한 시기이기도 하다.
3) 노신은 혁명가 이전에 뛰어난 문학가로서 의 정신이 더욱 추앙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대개 짧고, 가장 길다는 것이 ‘아큐정전’이지만 이것도 중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취를 더해하며 그 깊은 뜻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불과 몇 장의 에세이조차도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그것이 비록 혁명을 위한 문학일지라도 안이한 관념 체계의 도구로 삼지 않는 향기 높은 문학, 그것이 노신 문학의 위대성이다. 문학이 정치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며, 정치체제가 바뀌었다고 해서 읽히지 않는 글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문학이 아니다.
노신이 아Q정전에서 묘사한 신해혁명의 신랄한 폭로
중국 근대문학의 창시자이자, 사상가, 혁명가인 노신의「아Q정전」은 신해혁명 전후의 중국사회를 살아가는 시골 날품팔이 아Q를 주인공으로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되는 그의 허무한 인생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주인공 아Q의 일생을 통해 중국인의 공허한 영웅주의와 패배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자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기기만으로 살아가는 이른바 중국인의 ‘정신승리법’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작품이다. 참된 혁명은 정치적, 경제적 차원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사상, 가치관, 습관, 풍속, 인간관계 등의 문명론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루쉰의 세계를 이 작품을 통해 독자는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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