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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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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 제갈량, 세객 제갈근이 “삼국지연의”에서 미치는 영향과 특수 관계


제가 어려서부터 제일 좋아한 책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이고 또 제일 많이 읽은 책이 “삼국지연의”입니다. 아마도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거의 오백 번 이상은 읽은 것 같습니다. 너무 뒤지고 만지다 보니 책은 그만 너덜너덜해졌습니다. 그래서 찢어진 부분을 밥풀로 붙였는데 참 가관(可觀)이었습니다. 이렇듯 “삼국지연의“는 저의 인생행로(人生行路)에 도움이 되는 양서(良書)라 생각되어 여기서 모사 제갈량과 세객 제갈근이 “삼국지연의”에서 미치는 영향과 특수 관계(特殊關係)에 대해 알아봅니다.

제갈 근(諸葛瑾, 174년 ~ 241년)은 중국 후한 말 ~ 삼국시대(三國時代) 오(吳)나라의 정치가로 자는 자유(子瑜)이며 서주 낭야국 양도현(陽都縣) 사람입니다. 제갈량(諸葛亮)·제갈균(诸葛均)의 형입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갈근(諸葛瑾)이 세객(說客)이라는 이미지가 뇌리(腦裏)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제갈량(諸葛亮, 181년 8월 20일 ~ 234년 10월 8일)은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재상(宰相), 정치인입니다. 자는 공명(孔明)이며 서주 낭야국 양도현(陽都縣) 사람입니다. 별호는 와룡(臥龍) 또는 복룡(伏龍). 후한 말 군웅인 유비(劉備)를 도와 촉한을 건국하는 제업(帝業)을 이루었습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제갈량은 전략이 뛰어난 모사(謀士)입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44회에는 제갈량(諸葛亮)이 동맹을 맺기 위해 오나라에서 활약(活躍)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주유(周瑜)가 제갈량의 재주를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자, 노숙(魯肅)이 건의하기를 제갈량의 친형 제갈근(諸葛瑾)에게 제갈량을 구슬려 동오(東吳)에서 함께 일하도록 하자고 합니다. 명을 받은 제갈근이 제갈량에게 유비(劉備)를 버리고 손권(孫權)에게 오라고 권합니다. 뜻밖에도 제갈량은 “형님께서 만약 동오를 버릴 수만 있다면 아우와 함께 유황숙(劉皇叔)을 섬기도록 하십시다. 그러한즉 위로는 한의 신하(臣下)가 되는 것이니 부끄럽지 않을 뿐 아니라 형제가 함께 모일 수 있습니다. 이는 정과 의 양쪽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계책(計策)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갈근(諸葛瑾)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작별(作別)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66회에선 유비가 서천을 얻자, 손권(孫權)은 제갈근의 처자식을 잡아들여 옥에 가두고 핍박하여 형주(荊州)를 돌려받을 핑계로 삼으면 제갈량이 혈육(血肉)의 정을 생각하고 반드시 승낙할 것이라는 장소의 계책(計策)을 받아들입니다. 제갈근은 그 계책에 따라 일을 행하고 제갈량도 유비에게 부탁(付託)을 하여 형주의 절반을 오나라에 돌려주는 척 합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제갈근이 형주로 가서 관우에게 세 군을 할양(割讓)하라고 하자, 관우가 완강히 거절(拒絶)하며 주지 않습니다. 제갈근이 다시 서천으로 돌아왔으나 유비가 핑계를 대며 미루니, 하는 수 없이 동오로 돌아가 복명(復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73회에는 제갈근이 다시 명을 받들고 형주로 가서 관우(關羽)를 만납니다. 손권의 아들과 관우의 딸을 혼인시키고 결맹(結盟)하여 함께 조조(曹操)를 쳐부수자는 건의(建議)를 합니다. 그러나 관우가 대노하여 “나의 딸은 호랑이의 자식이거늘 어찌 개의 자식에게 시집보낼 수가 있겠는가!”하며 제갈근(諸葛瑾)을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제76회에선 관우(關羽)가 맥성으로 패주(敗走)합니다. 내부로는 군량과 건초가 바닥나고 외부로는 구원병(救援兵)도 없이 그 위급함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처지였습니다. 이번에도 제갈근이 명을 받들고 와서 항복하기를 권하다가 관우에게 엄중한 거절을 받고 쫓겨납니다.

제81회와 제82회에선 유비가 70만 대군을 거느리고 오나라를 칩니다. 동오 전체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제갈근(諸葛瑾)이 나섭니다. 서천으로 들어가 강화를 하여 유비에게 전쟁을 그만두도록 하겠노라며 사신(使臣)이 되기를 자원합니다. 한바탕 명쾌(明快)한 논리로 열변(熱辯)을 토했으나 유비가 크게 화를 내며 듣지 않습니다. 제갈근(諸葛瑾)은 하는 수 없이 다시 강남으로 돌아갑니다.

이상에서 나열(羅列)한 사건의 진실성은 어떠한가? “삼국지ㆍ제갈근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건안 20년, 손권이 제갈근을 촉에 사신으로 파견(派遣)하여 유비와 친분(親分)을 맺습니다. 그의 아우 제갈량과는 공적(公的)으로 서로 만났으나 물러나며 사적인 면담(面談)은 없었습니다.’ 또 “자치통감” 제67권에 기재(記載)된 바에 의하면, 제갈근이 당시 촉에 사신이 되어 간 이유가 형주(荊州)의 여러 군을 돌려달라는 요구 때문에 간 것이나 유비가 들어주지 않았다고 되어있습니다. 이는 바로 “삼국지연의” 제66회에 나오는 제갈근이 촉으로 들어가 형주를 돌려달라고 한 내용의 역사적 근거(根據)가 됩니다. 그러나 사서(史書)의 기재(記載)에 의하면 이때 제갈근이 촉으로 들어간 것은 정정당당(正正堂堂)한 사자로서 간 것이지, 결코 나관중(羅貫中)이 쓴 것과 같이 손권이 계책(計策)으로 제갈근의 처자식을 잡아 가둔 뒤 형주를 요구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삼국지ㆍ제갈근전”에는 유비의 동오 침공(侵攻)이 시작되자 오왕이 제갈근에게 서신을 주어 강화를 청하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서신의 내용 중에는, ‘문득 듣건대 귀하께서 대군을 이끌고 백제성(白帝城)에 이르렀다는군요. 촉의 대신들이 정사(政事)를 의논하며 오왕이 형주를 침략(侵略)하여 빼앗고 관우를 해하여 원망(怨望)이 깊고 화가 크니 오나라에서 제시(提示)한 강화를 마땅히 거절해야 한다고 여기지나 않을지 걱정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목표(目標)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큰 문제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 일이 됩니다.’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 경중대소(輕重大小)의 논리는 “삼국지연의” 제82회에서 제갈근이 유비에게 싸움을 그만두라고 권하는 말로 고쳐져 인용(引用)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갈근은 여몽(呂夢)을 대신해서 남군의 태수가 되어 공안에 머물고 있었으므로, 근본적으로 서천으로 가서 유비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삼국지ㆍ제갈근전”의 ‘제갈근은 후에 관우를 토벌(討伐)하고, 선성후(宣城侯) 수남장군(綏南將軍)으로 여몽을 대신해 남군태수(南郡太守)가 되었다.’라는 기록(記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갈근은 일찍이 관우를 토벌(討伐)하는 전쟁에 참가해 활약(活躍)했으며 “삼국지연의”에 서술(敍述)된 것처럼 결코 항복(降伏)이나 권하는 세객의 신분(身分)이 아니었습니다. 제갈근의 지위는 결코 낮지 않았고, 명성과 인망(人望)도 꽤 높았다. 결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그려진 것과 같이 늘 실패만 하는 세객으로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歷歷)하지 않으며 낭패하여 쥐구멍이나 찾는 그런 무능(無能)한 인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나관중(羅貫中)은 제갈근이 제갈량과 각기 다른 나라에 속해 있으면서도 친형제(親兄弟)라는 특수한 관계를 중시하여 제갈근을 비교적 여러 차례 들락거리는 세객의 이미지로 묘사(描寫)했습니다. 그를 통하여 손권과 유비가 연합(聯合)과 투쟁을 반복하는 특수한 관계를 더욱 부각(浮刻)시킬 수가 있어 이야기의 반전(反轉)과 생동감을 증가시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위에서 친형제 간인 모사 제갈량과 세객 제갈근이 “삼국지연의”에서 미치는 영향과 특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삼국지연의”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갈량(諸葛亮)의 형 제갈근(諸葛瑾)이 세객(說客)이라는 이미지가 뇌리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친형제 간이지만 각각 다른 나라에서 다른 군왕을 보좌하는 두 사람의 특수 관계에서 알 수 있는바 아무리 형제간이라 해도 정치적 주장과 관점이 서로 다르면 양립할 수 없는 관계가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피력(披瀝)하고 싶은 것은 형제간의 우애보다 각자의 나라를 위하는 충성심과 책임감이 갸륵하다는 점입니다.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이해하기엔 너무나 상식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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