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는 봄을 울음이라고 일컫는다. 자못 애틋함을 자아내는 말이다. 어차피 미련(未練)이 남는다는 건 그리움에 대한 아쉬움일 게다.
가는 봄을 잡을 수 없는 안타까움은 지난겨울이 모질게 추운 탓일까. 아니면 오는 여름이 너무 무더울 것 같아서일까.
봄철에 피는 꽃이 사계절 전체 피어나는 꽃의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문뜩 4월을 '잔인(殘忍)한 달'이라 하는 그 이유에 대해 감히 엉뚱한 의문 생긴다.
그 많은 꽃들이 비바람에 불려 고운 자색을 한껏 피우지 못한 채 낙화해서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 아니면 자기 사명을 다하지 못한 자책감(自責感)에 생겨난 꽃향기의 사그라진 결말에서일까?
4월이 되니 제일 먼저 영국의 극작가로 잘 알려진 T.S 엘리엇이 「황무지(荒蕪地)」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한 시구가 생각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황무지는 언제나 읽어봐도 명문이요, 걸작(傑作)이다. 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행은 자못 감명 깊다. 잔인한 달 4월을 보내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을 맞지만은, 4월의 그 화사한 꽃들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무튼 5월 초순부터는 초여름 날씨다.
아, 정녕 봄은 가는구나! 떠나는 봄과의 석별은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꽃잎에서 묻어난다. 간밤의 궂은비에 꽃이 진 걸 보고 이제 봄이 떠나는 줄 알았다. 차마 못 잊을 추억이 짜릿한 봄인데, 어쩌면 초목마다 정이 있고 꽃잎마다 뜻이 슴베인 다정다감한 봄인데...
올해는 유난히 봄이 짧게 느껴진다. 계절에 민감한 게 아니라면 오염에 찌든 극도의 공해(公害)로 치닫는 환경이 싫어서일까? 아니면 차갑고 냉정한 간극(間隙) 속에 짐승처럼 서로 물고 뜯는 세태가 미워서 서둘러 떠나는 걸까?
가는 봄 잡지 말고 오는 여름 막지 말랬다(往春可追 ,來夏可拒.)고, 이 세상 억지로 되는 일 어디 있더냐? 모든 것은 물 흐르듯 그저 순리에 따라 오고 감을...
삼동 겨울이 지나 따스한 봄이 옴을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 또 다시 쓸쓸한 가을이 이어짐을 그 누가 거부(拒否)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 모든 것이 또한 이와 같이 돌고 도는 것 아니던가! 태어남과 죽음, 만남과 이별, 소유와 비움,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희망과 좌절,.. 생존법칙(生存法則)이 이럴 진대, 내 지금 그 무엇을 억지로 가져 버거운 가슴 채우리오!
무릇 봄은 볕이 따스해 꽃이 피고, 만물이 소생(蘇生)하는 계절이요, 성장하는 계절이다. 즉 꽃을 피우는 일은 바로 말라버린 황폐한 산과 들에 싱싱한 새움을 싹 틔워, 다시 푸르게 푸르게, 붉게 붉게 물들이는 것이다.
-- 글 : 경개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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