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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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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양산박 두령 천고성(天孤星) 화화상(花和尙) 노지심(魯智深)

[圖片信息  천고성(天孤星) 화화상(花和尙) 노지심(魯智深)] 


천고성(天孤星) 화화상(花和尙) 노지심(魯智深)의 본명은 노달(魯達)이며 온 몸에 꽃문신이 있어서 화화상(花和尙)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양산박에서는 천강성 36인 가운데 천고성(天孤星)의 화신이 된다. 무송(武松), 이규(李逵)와 함께 수호지를 대표하는 무력형 인물로 가공할 힘과 완력의 소유자이며 맨주먹 싸움이건 무기를 든 싸움이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절륜(絶倫)한 전투능력을 자랑한다. 성격도 화통(火筒)해서 인정이 많고 의협심이 강한 반면 불같은 성미와 고약한 술버릇 때문에 자주 물의(物議)를 일으킨다. 하지만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성격 덕분에 수호지(水滸志) 등장인물 중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높다. 전형적인 협객형(俠客型) 주인공이다.

공식적으로는 불가의 승려(僧侶)이지만 술꾼인데다 이런저런 폭력 사고를 많이 일으키는 등 불가의 계율(戒律) 따위는 아랑곳없이 행동했기 때문에 파계승(破戒僧)의 대명사로도 잘못 알려져 있는데 작중 노지심(魯智深)은 공식적으로 파계를 당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일단 출가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 승려였던 것이 맞다. 소설 초반에는 파계만 안 당했을 뿐 계율을 자주 어기고 처벌도 많이 당하는 등 전형적인 중의 풍모를 보여주지만 방납 토벌(方臘討伐) 이후에는 방랍 전에 보여준 두 차례의 이계 소동 이후 완전히 득도(得道)해 진짜 승려에 걸맞는 모습을 보인다.

송나라의 위주(渭州) 경략부에서 치안을 책임지는 하위직인 제할(提轄)의 벼슬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술집에서 친구인 사진(史進), 이충(李忠)과 술을 마시다가 김취련(金翠蓮) 부녀가 백정 정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협객 노달(魯達)은 술김에 정도를 찾아가서 적당히 혼내주려고 했다가 실수로 때려죽이고 살인 용의자(殺人容疑者)로 쫓기는 신세가 된다.

여기저기 도망 다니던 노달(魯達)은 대주(代州)에서 자기 수배전단 앞에 서서 '우왕 무슨 내용인가'하고 구경을 한다. 전직 군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에 자신의 수배전단(手配傳單)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다행히 주변인들이 알아보기 전에 김씨 노인이 먼저 발견하고 숨겨줘서 김취련(金翠蓮)의 남편인 조원외(趙員外)에게 의탁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한 곳에 오래 머물기 힘든 신세인지라 조원외의 주선으로 오대산(五臺山)에 있는 절 문수원(文殊院)에 은신하게 되는데 이참에 노달은 승려(僧侶)가 되기로 작정하고 오대산(五臺山) 문수원(文殊院)으로 출가할 결심을 하게 된다. 문수원의 승려들은 그가 절에 들어오는 것을 꺼렸는데 이곳의 주지인 지진장로(智真長老)가 노달(魯達)을 적극 감싸면서 지금은 저렇게 단순무식 과격하지만 언젠가는 도를 깨달을 사람이라며 지심이라는 법명을 내리고 결국 출가를 허락한다.

그러나 노지심(魯智深)은 지진장로(智真長老)의 기대와 달리 승려가 되어서도 성질과 술버릇을 못 이겨서 항상 사고를 치고 다녔다. 고기가 고파서 개를 잡아먹고 술장수를 두들겨 패서 술을 빼앗아 먹고 선방(禪房)에 오줌을 누는가 하면 정자(亭子)를 무너뜨리며 기분 좋아 했다가 이걸 탓하며 나가라는 다른 승려들을 때리고 폭력사태(暴力事態)까지 벌이는 막장짓을 한다. 노지심이 계속 물의를 일으키자 그간 노지심을 적극 감싸주던 지진장로마저 답이 없다 싶었는지 노지심의 경거망동을 크게 꾸짖고 그를 자신의 후배인 지청장로가 있는 동경개봉부(東京開封府)의 대상국사(大相國寺)로 보낸다. 하지만 대상국사는 허울이고 결국은 절에서 나가서 알아서 살라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노지심은 다시 유랑자(流浪者) 신세가 된다. 지진장로(智眞長老)는 떠나기 전 노지심에게 네 귀의 구절을 읊었다.

우림이기(遇林而起; 숲을 만나면 일어나고)
우산이부(遇山而富; 산을 만나 풍부해지며)
우주이천(遇州而遷; 고을을 만나면 옮기고)
우강이지(遇江而止; 강을 만나면 멈추리라)

노지심(魯智深)은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몰랐지만 일단 지진장로(智眞長老)가 읊은 네 개의 구절을 소중히 기억했다. 이 네 구절에 숨은 뜻은 그가 최종적으로 양산박(梁山泊)으로 들어가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 게의 첫 구절인 '숲(林)을 만나면 일어서고'의 숲은 임충(林冲)을 뜻하고 노지심이 임충을 만나 그를 구해준 것을 계기(契機)로 쫓기는 신세가 되는 걸 의미하고 '산을 만나면 풍부해진다'는 노지심이 이룡산(二龍山)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의미고 '고을을 만나면 옮기고'는 청주성(靑州城)을 공략하고 이룡산을 떠나 양산박으로 향하는 걸 뜻하고 마지막 구절인 '강(江)을 만나면 머문다'에서 강은 송강을 가리키며 송강(宋江)을 따라 양산박에 간다는 뜻이다.

정처 없이 유랑하던 노지심(魯智深)은 도화산 부근의 장원에 들렀다가 장원의 주인 유태공으로부터 자신의 외동딸이 도화산(桃花山)의 산적 두목인 주통(周通)에게 억지로 시집가게 된 사연을 듣고 특유의 의협심(義俠心)을 발휘해서 유씨 부녀를 돕기로 한다. 주통과 유태공(劉太公) 딸의 결혼식 날 밤 노지심은 신방에서 신부인 척 변장하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 몸이 달아 방에 들어온 새신랑 주통을 인정사정없이 패버린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서 도망친 주통은 이날 당한 개망신을 갚아줄 목적으로 도화산 산채의 첫째 두령으로 있던 이충(李忠)과 함께 장원에 쳐들어 왔다가 졸지에 노지심과 이충이 다시 만나게 된다. 이충과 주통은 노지심을 환대(歡待)하지만 이들은 근본이 옹졸한 인간들이라서 이래저래 노지심의 심기(心氣)를 건드리고 보다 못한 노지심은 결국 이충이 도적질한다고 잠시 산을 떠난 새에 소굴을 몽땅 털어서 떠나 버린다.

그러다가 군관시절 친분을 쌓은 사진(史進)과 재회한다. 처음엔 못 알아보고 서로 상대방에게 노상강도(路上强盜)를 하려고 했다. 그래도 노지심(魯智深)의 경우는 그나마 정상참작이 가능한 게 어느 절을 기지삼아 근처에서 노략질을 하던 도적 및 중(生鐵佛) 최도성(崔道成)과 비천야차(飛天夜叉) 구소을(邱小乙)과 싸우다가 배가 고파서 힘이 부쳐 도망간지라 뭐라도 먹고 난 다음에 싸우려고 또한 상대가 노상강도임을 짐작(斟酌)하고 역으로 강도질을 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래도 알아본 다음엔 서로 반갑게 맞았으며 사진(史進)이 먹을 걸 준 덕분에 다시 힘을 내게 되었고 사연을 들은 사진과 함께 돌아가서 반격하여 그 도적 및 중 패거리를 모두 해치웠으나 그 절에서 짓눌려 살던 진짜 승려(僧侶)들과 노리개가 되던 여성은 노지심(魯智深)이 달아나자 스스로 목을 맨 다음이었다. 사진이 그러기에 무턱대고 쳐들어간 결과가 이것이라고 탓하자 착잡한 얼굴로 죽은 승려들과 여성의 명복(冥福)을 빌며 화장해주었다.

대상국사(大相國寺)에서 노지심(魯智深)은 절에 소속된 소작농(小作農)들이 일구는 채소밭을 관리하는 직책(職責)을 맡게 된다. 예전에는 그 절이 있는 동네의 양아치 노름꾼, 건달, 망나니들이 채소밭의 채소를 훔쳐서 팔아먹고 소작농들을 괴롭히고 관리하는 스님들을 때리는 등 행패를 부렸는데 노지심이 팻말까지 박아가면서 도둑질을 막으려 들자 양아치들은 이 시건방진 땡초를 손봐주려고 했다. 양아치 일당은 노지심을 찾아가 곱게 인사하는 척 하면서 근처의 거름 구덩이에 처박아버리려고 했지만 노지심(魯智深)은 오히려 양아치 일당들을 죄다 때려눕히고 거름 구덩이에 처박아버린다. 이후 양아치들에게 보스로 추앙(推仰)받았으며 나무 위에서 까마귀가 울자 거슬린다며 버드나무를 뿌리 채 뽑아버린 일로 거의 신적인 존재가 된다.

그러던 도중 임충(林冲)과 알게 되어 의형제를 맺는다. 임충이 고구(高俅)의 모함에 의해 유배되고 도중에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임충의 목숨을 구해주고 유배지(流配地)까지 호송해준다. 이때 임충을 압송(押送)하던 공인인 동초(董超)와 설패(薛覇)가 "어느 절에 계십니까?"라고 묻자 "고구한테 일러바치려고 그러냐?"라고 경계하는 치밀함까지 보여준다.

하지만 동초(董超)와 설패(薛覇)는 "대상국사(大相國寺)에 어떤 중이 왔다는데 아마도 그놈이겠다"라고 노지심(魯智深)의 신분을 대충 짐작했고 거기다 임충(林冲)이 무의식간에 "대상국사에서 버드나무를 뿌리채 뽑았다"고 누설(漏泄)한 바람에 동초와 설패는 임충을 창주(滄州)로 보내고 동경(東京)으로 돌아와서는 이를 고구(高俅)에게 고스란히 고자질했다. 고구가 자신을 잡으려는 것을 눈치 챈 노지심은 채소밭 공청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 여기저기 떠돌다가 채원자(菜園子) 장청(張靑), 모야차(母夜叉) 손이랑(孫二娘)과 만나면서 이룡산 산채의 두령 노릇을 하던 등룡을 죽이고 양지(楊志), 무송(武松)과 함께 이룡산(二龍山) 산채의 수령이 된다. 후에 함께 양산박(梁山泊)에 들어가게 된다.

노지심(魯智深)은 소설 수호전에서 천강성(天剛星)36인 중 천고성(天孤星)에 상응하는 인물로 등에 꽃 문신이 있기 때문에 화화상(花和尙)이라고 불렸다. 노지심의 본명은 노달(魯達)이었으며 광서(廣西)출신이다. 수호전(水滸傳)에서 그의 생김새를 묘사하기를 얼굴은 둥글고 귀가 컸으며 코는 곧고 입이 네모졌고 키가 여덟 자에 허리는 한아름 정도 되었다 한다. 그는 원래 위주(渭州) 경략부에서 제할(提轄)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구문룡(九紋龍) 사진(史進)과 타호장 이충(李忠)을 만나 술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김노인과 그의 딸 취련(翠蓮)의 곡소리를 듣고는 노기가 올라 정도(鄭屠)라는 악인을 주먹 세대로 때려죽였다.

이후 살인자가 되어 쫓기던 중 대주(代州)에서 김노인을 다시 만나 그의 사위인 조원외(趙員外)의 집에서 지내다가 관청에서 체포(逮捕)할 기미가 보이자 오대산(五臺山)의 문수원(文殊院)에 의탁하게 되었다. 이때 다수의 승려들이 노달(魯達)의 출가를 반대하나 주지승인 지진장로(智眞長老)는 후에 그가 크게 깨우칠 것이라 여겨 그를 받아들인다. 지심(智深)이라는 법명도 여기서 얻었다.

하지만 노지심(魯智深)은 승려로써 금해야할 행동을 행하고 승려(僧侶)들과 싸우며 불상(佛像)을 파손하였다. 자신의 무기인 62근의 수마선장(水磨禪杖)과 계도(戒刀)를 맞춘 것도 이 시기이다. 사실 그는 100근의 수마선장을 요구하였으나 대장장이가 관왕(關王)의 청룡도(靑龍刀; 82근)도 그보다는 무겁지 않다 하여 실랑이를 벌이다 어쩔 수 없이 62근으로 줄이게 된 것이다. 여하튼 노지심의 더 이상 용납(容納)할 수 없는 언행에 결국 지진장로(智眞長老)는 그를 대상국사(大相國寺)로 보내게 된다.

대상국사(大相國寺)에 도착한 그는 채마밭을 지키는 임무를 맡게 되는데 거기서 고구(高俅)와 고아내(高衙內)의 간계에 빠진 표자두 임충(林冲)을 구해냈다. 그 후 도주하다가 맹주(孟州)에서 모야차 손이랑(孫二娘)으로부터 약이 들어간 술을 먹고 쓰러졌으나, 그녀의 남편인 채원자 장청(張靑)이 그를 알아보고 겨우 살아나게 되었다. 그 둘의 추천으로 이룡산(二龍山) 보주사의 등룡(鄧龍)에게 몸을 맡기려 하나 쫓겨나 청면수 양지(楊志)와 조도귀 조정(曹正)의 도움을 얻어 등룡을 죽이고 관을 빼앗아 첫째 두령의 자리에 올랐다. 후에 호연작(呼延灼)이 이끄는 관군에게 몰린 타호장 이충(李忠)과 소패왕 주통(周通)을 구해내고 양산박군에 합류하여 양산박의 두령 중 한사람이 되었다.

양산박에서는 보군두령(步軍頭領)의 직위를 갖고 있으며 송강(宋江)의 취임식 때 나타난 비문에 의해 36천강성(天剛星) 중 천고성(天孤星)이 되었다. 108두령이 모두 모이고 나서 전호(田虎) 토벌전에서 신구자 마령(馬靈)을 사로잡고 방납(方臘) 토벌전에서 방랍을 사로잡는 등 큰 공을 세웠으나 회군하던 중 육화사(六和寺)에서 조신(潮信) 소리를 듣고 지진장로의 게언(偈言)을 떠올려 목욕재계(沐浴齋戒)한 뒤 가부좌를 튼 채 참선(參禪)하는 자세로 입적(入寂)하였다.

후에 방납(方臘)을 사로잡고 대찰에 앉은 채로 승천(昇天)하였다고 하여 황제로부터 의열조기선사(義烈照曁禪師)에 봉해졌다. 지진장로(智眞長老)는 노지심(魯智深)에게 두 번 계언(啟言)을 내렸는데 첫 번째는 대상국사(大相國寺)로 갈 때 내린 것이다.

양산박군에 패하고 청주(靑州)로 도주한 호연작(呼延灼)이 모용언달(慕容彦達) 지부에 의해 청주 일대에 대대적인 정벌을 시작되자 도화산(桃花山)의 이충(李忠)과 함께 관군을 막아내고 양산박에 들어간다. 보병 두령으로 활약하면서 전호 토벌(田虎討伐) 때 마령을 사로잡고 방납(方臘) 토벌 때 하후성과 방납(方臘)을 사로잡는다.

방납 토벌 후 회군하던 중 전당강(錢塘江) 육화사(六和寺)에서 강의 조신소리를 듣고 깨우쳐 좌선(坐禪)한 채로 입적(入寂)한다. 이후 의열조기선사(義烈照曁禪師)에 추존(推尊)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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