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유색 인종·젊은 층 위한 정책적 지원 나설 것으로 예상돼
위태위태했지만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재선에 성공한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그 사이 터진 중동 화약고를 진화하고 같은 시기에 중국 최고 지도자로 올라선 시진핑 국가주석과 새로운 기 싸움을 벌이는 등 승리의 기분을 느낄 새가 없다. 앞으로는 더 큰 과제가 남아 있다. 내년 1월20일 새로운 4년 임기가 시작되면 자신을 살려준 각계의 유권자들로부터 빌린 빚을 갚으러 나서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새해 벽두부터 부채 갚기에 나설 것임을 예고해 놓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을 재선시킨 일등 공신은 7대 경합지였다. 플로리다·오하이오·버지니아·위스콘신·콜로라도·아이오와·뉴햄프셔 주가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다. 이곳은 유권자들의 살림살이가 다른 곳보다는 나은 중산층 지역이다. 그래서 볼품없는 지난 4년간의 경제 성적표가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곳에서 실시된 출구조사 결과가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출구조사에서 ‘누가 경제를 잘 다룰 것으로 보느냐’라는 질문에 유권자의 응답은 오바마 48%, 롬니 49%로 나뉘어 사실상 동률을 기록했다. 오랜 기간 뒤졌던 오바마 대통령이 막판에 따라잡은 것이다. 게다가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답변이 39%를 기록해 ‘나빠졌다’(30%)와 ‘변함없다’(29%)보다 많았다. 오바마 집권 2기는 중산층을 살려야 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유색 인종 지지에 이민 개혁 재추진할 듯
오바마 대통령은 히스패닉과 아시아계의 도움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흑인들 외에도 히스패닉과 아시아계가 사실상 몰표를 던졌다. 히스패닉 유권자들 중 71%가 오바마에게 표를 주었다. 4년 전의 67%보다 더 높은 득표율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히스패닉 표가 70%를 넘으면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여기에 더해 아시아계의 72%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투표했다. 히스패닉보다 더 높은 비율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쏠렸다. 물론 전체 규모에서는 히스패닉 유권자가 많지만, 이전 선거보다 득표 증가율에서는 아시아계가 더 높았다. 히스패닉과 아시아계의 몰표는 오바마 대통령이 플로리다·버지니아·콜로라도·네바다 등 경합지를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성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55%, 롬니 후보에게 44%의 표를 주었다. 반면 남성 유권자들의 표심은 오바마 45%, 롬니 52%로 반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한때 여성 유권자들이 롬니 쪽으로 돌아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적도 있지만 결국 여심을 잡은 쪽은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열쇳말은 ‘헬스케어’였다. 상대적으로 여성들이 의료보험 혜택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여성 표를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공화당 진영에서는 악재가 계속 터졌다. 공화당 연방 상원 후보들이 잇따라 “강간을 당했더라도 낙태만은 안 되며, 성폭행으로 임신한 것도 여성의 잘못이다”라는 투로 발언하면서 여성 유권자들의 마음이 돌아섰다. 연령별로 보면 10·20대 유권자들은 오바마 60% vs 롬니 37%, 30·40대는 오바마 55% vs 롬니 45%로 젊은 층이 오바마 대통령의 손을 더 많이 들어주었다.
히스패닉과 아시아계가 가장 목소리를 높여 요구해온 과제는 ‘이민 개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첫해인 2009년에 이민 개혁을 성사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공수표만 남발한 결과를 보였다. 이번에는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다시 한번 공약을 내걸었다. 두 번째 임기 첫해인 2013년에 이민개혁법을 완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번에는 선거 5개월 전인 지난 6월15일 불법 체류 청소년들에 대한 추방을 유예하고 취업을 허용한 ‘추방 유예 정책’을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대통령 행정 명령만으로 일시적이지만 불법 체류자 구제 조치를 실천한 것이다. 이 조치로 부모 때문에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살아가야 했던 이민자 출신 청소년 1백76만명이 구제 혜택을 받고 있다. 반면 롬니 후보는, 추방 유예 정책마저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경우 신규 시행을 중단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히스패닉과 아시아계의 몰표는 이런 정책적 차이에서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이제 오바마 대통령은 이민 개혁을 완수해내야만 하는 빚을 지고 있다. 당선 연설에서도 이민 개혁을 ‘3대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언급했다. 연방 상원에서는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의원이 파트너인 공화당의 린지 그래험 상원의원과 함께 ‘포괄 이민 개혁 법안’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했다. 히스패닉 등 이민자 표심을 무시했다가 두 번의 대선에서 잇따라 실패하는 쓴맛을 본 공화당도 변신할 채비를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정 절벽에 대한 해법을 연말까지 모색한 뒤 경제 살리기 차원에서의 이민 개혁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화당에서 일부 동참한다면 2013년에는 불법 체류 청소년 3백만명을 포함해 불법 이민자 1천100만명을 구제하고 합법 이민을 확대하는 조치를 핵심으로 하는 ‘포괄 이민 개혁 법안’이 성사될 수 있다. 2013년이 이민 개혁의 원년이 되는 셈이다.
청년 실업·학자금 융자 등도 해결 과제
젊은 층의 지지에 보답할 방법으로는 청년 실업과 학자금 융자 문제 해결이 거론된다. 미국의 대학생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학자금 융자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빚더미를 안은 채 대학문을 나서도 취업이 어렵다. 미국 대학생들의 학자금 융자 빚은 지난해 1인당 평균 4천9백63달러로 10년 전에 비해 63%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었다. 신용카드 빚보다 학자금 융자가 더 많다. 게다가 경기 침체로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개인 파산이 속출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몰려 있다. 학자금 융자를 갚지 못하는 비율은 경기 침체 직전인 2007년 6.7%에서 2009년에는 8.8%로 급등했다. 미국에서 학자금 융자는 개인 파산을 하더라도 탕감받지 못하고 반드시 갚아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에 발 벗고 나선 젊은 대학생들을 학자금 빚더미와 청년 실업난에서 구해내야 하는 ‘빚’을 지게 된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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