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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限風光在險峰

모든 일에 대한 槪念을 정확히 알고 살면 좋다. 개념은 세상만사 기본이고 핵심이며 생각과 사고와 사유 기준이다. 개념은 추상성과 상징성, 다의성과 위계성, 객관성과 일반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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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떠오르는 생각을 말로 나타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영지(英志)는 훌륭하거나 영특한 뜻이란 말입니다. 이 고귀(高貴)한 단어를 끄집어내는 까닭이 있습니다. 왜냐면 어떤 말이나 글에는 그에 따르는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뜻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말이요 글입니다. 같은 값이면 말이나 글에 영지 같은 뜻을 나타내 사람들을 감복(感服)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4000가지 뜻을 나타내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난 미치도록 블로그에 글을 쓰고 싶어 합니다. 아마도 내 심혼에 숨어있는 뜻을 끄집어내 그대로 보여주려는 생각에서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하루에도 수백 번 글쓰기를 포기(抛棄)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또 하루에도 수백 번 글쓰기가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삽니다. 그런데 왜 글쓰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힘들고 어려운 이 길을 미치도록 걷고 있는 걸까요? 아직은 포기해도 늦지 않고 원점(原點)으로 돌아갈 법도 한데 말입니다.

갑자기 ‘생각’이란 괴물(怪物)이 나한테 물어왔습니다. ‘그렇게 힘든 일이라도 그 일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토록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는 데요? 절대 포기하지 말고 힘내세요. 그렇게 축 쳐져 있으면 어느 세월에 글을 쓴답니까?’

사실 쌀 속의 돌처럼 느껴졌던 시절을 잊고 살았습니다. 글 쓰는 일이 좋아서 선택(選擇)했다는 걸 난 수백 번 내뱉었습니다. 정작 내가 글쓰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건 아직 시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무한한 매력(魅力)에 끌리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생각보다 더 깊고 넓은 생각을 찾아내서 글로 나타내는 이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입니다.  

나는 뜻을 버린 사람들에게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힘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난 마음이 아파서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도 따뜻한 위안을 줄 수 있습니다. 난 절망(絶望)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글을 쓰기 전보다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보람차다고 자부하게 만드는 계기(契機)인지 모릅니다. 

가끔 이 길을 걷다가 지쳐 돌 뿌리에 걸려서 넘어지고 무릎이 너무 아파 길거리에 펄썩 주저앉기도 합니다. 그리고 난 힘든 그때마다 힘들다고 공연히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눈물 훔치고 일어나서 다시 걷고 또 걷습니다. 난 누구보다 글을 잘 쓰지 못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며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늘도 글이란 이 어렵고 힘든 난관 앞에서 의지가 약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난 어느 때든지 정말 좋은 글을 쓰게 될 것이고 사람들에게서 인정(認定)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설사 인정받지 못하더라고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난 나에게 힘을 불어 넣습니다. 이만한 일은 힘든 것도 아니라고 한번 씩 웃고 나면 용기(勇氣)가 솟구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훗날에 내가 멋진 글쟁이가 되어 나의 자존심(自尊心)에 힘이 되어주는 그날을 위해 스스로를 격려(激勵)합니다. 그리고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을 꿋꿋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글쓰기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글쓰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영 글을 잘 쓴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러나 아직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쓰고 또 쓰면 나중엔 좋은 글이 탄생되겠지요. 중요한 것은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을 한다는 것은 마음속의 무언가를 나타내기 위한 시도(試圖)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아직 정확히 모르고 있습니다. 중뿔나게 하는 말이지만 나의 생각은 항상 고정(固定)되어 있고 경직(硬直)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닫혀있는 나의 이런 생각은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지금 나는 자신의 생각에 대한 변화자체를 싫어하거나 귀찮아합니다. 자신의 인생이지만 남의 일 보듯 합니다. 변화를 싫어하는 이런 나에게는 도무지 발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너무 편견적인 지적(指摘)인지는 몰라도 이런 보수적인 생각 때문에 나의 글은 변화가 없고 진보(進步)가 없습니다.
   
흔히 유연한 생각이야 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德目)이라고 말합니다. 시대가 워낙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닫혀있으면 변화하지 못합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의외로 젊게 느껴집니다. 생각을 젊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 시대변화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으며 자신만의 주견(主見)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생각이 젊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젊은 사람은 열려있는 사고를 합니다. 타인의 의견을 수용(受容)하는 능력도 그만큼 큽니다. 이런 사람과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수월하고 잘 통합니다. 물은 흘러야 맑아집니다. 흐르지 않거나 고여 있는 물은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변화는 오지 않습니다. 자신 앞에 보이는 현상 자체도 바로 볼 수 없습니다. 생각의 유연(悠然)함과 긍정적인 생각은 많은 일이 가능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것이 바로 생각의 유연성이고 가능성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환경의 지배(支配)에 따라 부단히 변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그와 정반대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자신의 경험에 의하여 평생에 걸쳐서 변화(變化)됩니다. 만약 젊은 시절에는 밝고 온화했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나쁜 일을 많이 겪게 된다고 가정해봅니다. 그가 겪은 일들에 의해서 성격이 괴팍(乖愎)해지고 신경질적이고 부정적(否定的)으로 변하면서 젊은 날의 좋은 생각이 아니라 나쁜 생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나도 처음에는 사람의 생각은 잘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글쓰기가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모든 사물을 보는 방식(方式)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사물은 그저 하나의 물질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은 거시적(巨視的)인 생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물질(物質)뿐 아니라 어떤 현상에 대하여 바라보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부정적(否定的)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미래(未來)가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포기하고 ‘방법이 없다’라고 생각하고 닫아버린다면 아무런 일도 성사하지 못합니다. 외람(猥濫)된 생각은 미래의 불행의 씨앗을 낳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긍정적(肯定的)인 사고를 하는 사람에게는 성공적인 결과가 찾아오게 됩니다. 

다양한 생각의 가능성이 항상 열려있는 것입니다.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생각은 시작부터 지고 들어가게 됩니다. 이길 수도 없고 이기는 방법(方法)도 없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부작용은 애로가 되어 그 자리에서 답보(踏步)하게 됩니다.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어려운 일도 해 낼 수 있습니다. 실 날 같은 가능성에 도전(挑戰)하는 사람들은 무모(無謀)해 보이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성공을 이끌어 냅니다. 불가능한 시작의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懷疑的)으로 바라봤고 부정적 시선으로 말리기도 합니다.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라는 식으로 관조적(觀照的) 입장입니다. 멋지게 해내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성패(成敗)는 시작부터 다른데 바로 생각에서 차이가 나고 효과를 낳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단지 생각을 바꾸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나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깊이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능력에 한정(限定) 지으며 나를 옭아맸던 생각들을 바꾸고 난 후로 나는 진정한 정신적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홀가분한 생각은 새털처럼 가볍고 즐거운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긍정적(肯定的)인 생각과 함께 아이디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나는 기발(奇拔)한 상상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기발한 생각이 날 때마다 꼭꼭 명심해서 메모장에 적어 놓습니다. 그것들은 곧 세상에 나와 현실이 될 것입니다. 나의 머릿속에 상상으로만 존재(存在)하던 것들이 현실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예상보다 훨씬 더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그 사람의 진면목(眞面目)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여러 사람이 같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부주의로 진흙탕에 빠졌다고 가정해봅니다. 위급한 관두(關頭)에 어떤 사람은 자기가 구하겠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얄밉게 살짝 뒤로 물러납니다. 이럴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 순간에 선뜻 구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바로 후덕(厚德)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그 순간에 진흙탕이 더러워 자기 옷에 오물이 묻을 가봐 꽁무니를 빼는 사람은 박덕(薄德)한 사람입니다. 그 행동이 그 사람의 인간 됨이고 그 사람은 그런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의 인생이 됩니다. 바로 나의 본모습이 됩니다. 선한 일을 하면 그 사람의 인생은 선한 인생을 사는 것이고 그 사람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생활(生活)하면서 자주 화를 내는 사람은 그 사람은 화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는 말 한마디가 내 자신이 됩니다. 내가 고귀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먼 훗날 잘 살아서 다른 사람에게 많은 것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순간에 내가 하는 행동과 말과 선택(選擇)이 바로 내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순간순간이 모여서 내가 되고 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지금 이순간의 선택과 행동이 바로 내 자신이 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必要)가 있습니다. 움직이는 행동 하나 하나가 내가 누구인가 하는 나의 정체감(正體感)이 됩니다.  

착한 사람이 선한 제안(提案)을 했는데 악한 사람이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그 거절의 의미는 악한 사람에게는 악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절의 결과는 멸망(滅亡)이었습니다. 순간의 선택(選擇)과 결정이 나의 인생이 됩니다. 악을 선택한 순간 나의 인생은 끝이 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의 중요한 선택은 큰일에 대한 선택이 아닙니다. 사소한 일과 사소한 말 한마디가 나의 정체감(正體感)을 결정짓고 내가 누구인가가 판가름 됩니다. 선한 진실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오늘을 살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볼 때입니다. 또 이런 생각 그대로 글로 적으면 좋은 문장이 됩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그리고 만물의 영장(靈長)인 인류가 지금에 와서는 점차 타락(墮落)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가장 지혜로운 사람마저 인식(認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아주 이상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본즉 사람들은 모두 소리와 색깔, 미모와 맛, 향기 따위의 보잘 것 없는 것에 유혹(誘惑)되어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난으로 뒤덮인 이 세상은 불행의 함정(陷穽)과 같고 사람의 몸을 늘 엄습하는 질병은 죽음의 무덤과 같습니다. 따라서 소리와 색깔, 미모와 맛, 향기의 유혹(誘惑)은 마치 달콤한 꿀과도 같습니다. 극히 사소한 일로도 일생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나는 앞으로 올바른 길을 찾고 자기를 단속하여 제 구실을 하겠는지 장담(壯談)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무수히 하며 수많은 책을 탐독하고 또 끊임없는 생각을 필에 담아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무작정 끄적거립니다.

한동안 복잡한 생각을 정리(整理)한 뒤 나는 바로 글쓰기에 열중(熱中)했습니다. 참 감사하게도 늦게나마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삶을 인식(認識)하는 중에서 글에 대한 지식을 풍부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주위에서는 쓸데없는 이념(理念)을 고집하는 글쓰기를 한다고 하면서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다 뜯어 말립니다. 실제로 같은 취향(趣向)을 가지고 함께 문학도(文學徒)로 지내던 벗마저도 절대 이런 케케묵은 글쓰기를 하지 말라고 한사코 말립니다. 그러나 나는 고집스레 이런 케케묵은 글을 쓰려고 합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 누가 보건말건 나는 나만의 글을 나의 방식대로 쓰겠습니다.

난 그냥 내 길을 가고 싶습니다. 이 길이 내가 걸어야 할 길이라는 확신(確信)이 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 그냥 이걸 글로 남겨놓으면 다음에 부진상태(不進狀態)가 왔을 때 이 글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장황(張皇)하게 남겨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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