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미디어가 다양(多樣)해면서 점차 일반화로 보급(普及)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온라인상에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충만(充滿)합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는 후 자기 기호에 따라 칼럼이든 서평(書評)이든 자유자재로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려는 목적(目的)일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배려(配慮)일 수도 있습니다. 굳이 더 내면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자기표현의 욕구(慾求)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어떤 글이든 간에 읽는 사람의 생각이 어떤지를 알아보고 글 쓰는 것이 가장 타당(妥當)하고 적절한 방법인데 이것을 일컬어 ‘요령’이라 합니다.
글이란 열심히 쓴다고 해서 잘 써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리려면 선이나 색채를 써서 사물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평면 위에 나타내야 합니다. 즉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꼭 필요한 묘한 이치나 가장 긴요하고 으뜸이 되는 골자나 줄거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위 말하는 요령(要領)입니다. 그런데 저는 자신의 글을 남들과 빨리 공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 항상 조급증(躁急症)이 앞섭니다. 그러다보니 마음은 잘 쓰고 싶은데 글을 잘 쓸 수 있는 자신감이 없어지는 미묘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저는 습관적으로 어떤 책을 읽고는 늘 하던 대로 식의 의식흐름 기법(技法)에 따라 글을 쓰곤 합니다. 막무가내로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좀 더 글을 잘 써야 되지 않을까? 어쩌면 좀 더 그럴듯하게 글을 쓸 수 있는 비법(祕法)이 있을 텐데?'하는 궁리를 갖게 됩니다. 그리하여 인터넷 검색으로 ‘글을 잘 쓰는 법’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찾아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도 저의 비슷한 심리(心理)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혹시 제가 너무 빗나간 착각(錯覺)일 수도 있습니다.
하긴 제가 그렇게 원하던 "글을 잘 쓰는 법"이란 문장을 찾기는 했는데 이것이 나의 수준에 맞는 것인가의 문제 때문에 또 고민(苦悶)하게 됩니다. 늘 닥치는 문제지만 글이라는 것은 참외 맛보기처럼 미리 내용을 파악(把握)해보고 선택하기가 여간 어렵습니다. 차분히 읽어봐야 단지 쓴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면 이 글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끝까지 읽고 난 후에 이 글은 아니구나 하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판단(判斷)이 서게 됩니다. 혹시 마지막 장에 뭔가 머리를 확 스치는 놀라운 내용(內容)이 있을 수도 있다는 부풀은 기대감(期待感)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헌데 큰소리는 아니지만 이런 글을 딱 한 두 장만 읽어보아도 '포장(包藏)만 바꾼 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목차 어디를 보아도 "진실(眞實)"이라는 어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제목에만 "진실"이라는 글자가 버젓이 박혀있습니다. 읽다보면 온통 "자기 자랑"으로 잔뜩 도배(塗褙)되어 있습니다. 이런 글은 누구나 다 외면하지만 그 사람만은 기본이 되어 있지 않아서인지 이런 것조차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을 쓰는 방법에는 제목, 내용, 형식, 주제, 구성, 문법, 띄어쓰기 등등의 기초적이면서 전문성(專門性)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글 쓰는 법"이라는 좋은 책인 셈입니다.
우리가 통상(通常) 상상하는 "요령"이라는 것은 "글쓰기 요령과 문장 짓기 비법"과 같이 글쓰기의 방법에 가깝다는 느낌이나 인상이 풍깁니다. 요령이라는 말과는 어감에서는 물론 실생활에서 통용(通用)되는 느낌이 상당히 다릅니다. 오죽하면 제가 쓰는 글에 "요령(要領)"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겠습니까. 왠지 "요령"이라 하면 기본적인 뼈대를 지킨 매우 형식을 갖춘 글이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壓迫感)이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더 가볍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적 감상에 치우친 글이라는 느낌으로 "요령"이라고 쓰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조화로 이 책은 온통 요령에 대한 이야기만 가득한데 "글 쓰는 법"이 아니라 "요령 아는 법"이 되었단 말입니다 라고 몇 분 정도 의문(疑問)을 가져볼 수도 있습니다. 뭐가 의문인지 채 정리하기도 전에 답이 나옵니다. "글 쓰는 법"이라고 해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이 책을 집어 들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망망한 바다보다 더 드넓은 마음의 소유자인 독자들은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글의 장점(長點)만 취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렇게 보기에는 좀 길게 쓴 것 같기는 합니다.
글은 무엇이고 어떻게 쓰는 것인가? 이 글에서는 가치를 전달(傳達)하는 글이 내용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설명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핵심(核心)은 "가치 전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글쓰기 요령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무작정 화려하게 꾸미거나, 글을 무조건 난해한 언어로만 사용한다 해서 좋은 글일 수는 없습니다. 글을 읽고서 아무리 캐보고 따져 봐도 사람들이 가치관(價値觀)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글은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패서(悖書)가 되고 맙니다.
“상호 간의 차이를 명료(明了)히 하고, 서로가 새로운 가치관을 키울 수 있는 토양(土壤)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는 글의 속성이 유용(有用)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치관이란 가치에 대한 관점. 인간이 자기를 포함한 세계나 그 속의 사상(事象)에 대하여 가지는 평가의 근본적 태도입니다. 글은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도구(道具)이고, 글쓰기는 읽는 이에게 가치를 전달(傳達)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보통 이런 책을 선택할 때에는 '이 책을 읽고 나면 나의 글 쓰는 솜씨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할만한 무언가가 생길 것이야!'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기 마련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을 들어서 이런 책을 읽을 리가 없습니다. 실제로 좋은 글에는 글쓰기의 기본에 대한 모든 것이라 할 만큼 잘 정리된 내용들과 실제적인 조언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읽는다고 나의 글 솜씨가 비약적(飛躍的)으로 발전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아, 좋은 책을 읽었구나. 이런 것들을 유의해서 쓰면 참 좋겠구나.' 정도의 짧은 깨달음을 줍니다. 물론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구체적인 내용들은 마치 고체 이산화탄소가 녹아 연기로 사라지는 것처럼 머리에서 증발(蒸發)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마디 더 첨부(添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즉 글이란 제목(題目)과 내용과 형식이 하나로 어우러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글을 지을 때 제목에 구속(拘束)되어 문장이 추구해야 할 원칙과 기준(基準)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 반대로 원칙(原則)과 기준에 구속되어 제목에 맞지 않는 글이 나오기도 한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좋은 글을 지을 수 없다. 오로지 본래의 제목을 간곡(懇曲)하고 진실하게 그리면서도 자연스럽게 문장의 원칙과 기준에 맞출 수 있어야 만족할 만한 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상술한 관점에 대해 나는 이렇게 강조(强調)하고 싶습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충분(充分)하다고 할 수 없다. 이른바 원칙과 기준이란 글의 제목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제목과 동떨어져 원칙과 기준이 느닷없이 튀어나와 누가 더 중요(重要)하냐며 승부를 겨룰 수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원칙과 기준은 제목에서 생겨난 것이고 따라서 제목과 동떨어진 원칙과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만약 글을 지을 때 특정한 제목으로는 글을 짓기 어렵다고 두려워한다면 그 사람은 글을 짓는 일에 숙련(熟練)된 사람이 아닙니다. 대체로 글의 제목에서는 본래 어렵거나 쉬운 차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글을 짓는 사람이 문장의 근본과 원천(源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평소 제목에 따라 목표(目標)를 세워 놓고 겉으로 드러난 껍데기만 베끼기 때문에 어렵거나 쉽게 생각될 뿐입니다. 생각은 통할 수도 있고 막힐 수도 있습니다. 이 간단(簡單)하고 어려운 생각 때문에 글을 잘 지은 옛 문장가(文章家)들의 작품 중에도 얻고 잃은 것이 많습니다.
따라서 글의 목적과 효용(效用) 그리고 글을 위한 준비에 필요한 것들이 다 글을 쓸 때 유의(留意)해야 할 점들입니다. 좋은 글을 위해 연습(演習)해야 할 것들과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방법 등을 알고 싶다면 많은 책을 부지런히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서책을 열독하거나 탐독하다 보면 문장의 진가에 대한 분석과 판단이 명철해질 수 있음을 저도 몰래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책을 읽어야만 점차 쌓이는 자기만의 체험이고 스스로 느끼는 자기만의 경험입니다.
"글이란 항상 대상의 진실성에서 시작된다"라고 한 말은 글에서 진실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남의 가르침을 잘 수용하는 저는 "진실이 글 쓰는 법이다"를 긍정하는 것으로 이 말을 재차 강조(强調)하려고 합니다. 글은 표현되는 대상의 진실(眞實)로부터 시작됩니다. 현실에서 어떤 대상을 인정하지 않는 한, 관찰을 할 수 없고, 관찰(觀察)이 불가능하다면 발견도 생겨나지 않고, 발견(發見)이 없으면 생각도 쌓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즉각적인 반응(反應)을 요구하는 현대에 긍정하는 태도를 사회에 퍼뜨린다면 조금이나마 침착함과 차분함을 제공(提供)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는 언어와 언어가 오르내리는 가운데 한숨 돌릴 수 있는 작은 계단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 쓰는 사람이 사물에 대한 긍정의 생각을 많이 할수록 더욱 큰 영향(影響)을 독자에게 줄 수 있습니다. 자아(自我)는 자기와 다른 사람과의 사이를 막고 있는 장막(帳幕)입니다. 글 쓰는 사람이 자아를 억제하고 긍정(肯定)할 수 있다면 모든 일은 좀 더 쉽게, 그리고 모든 일에 선의를 가지고 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아를 부정(否定)하는 사람에게만 진리의 가르침을 이해되는 것입니다.
글쓰기에서 참과 선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입니다. 진실로 말한다는 것은 글을 잘 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어느 것이나 다 기술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그것은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습관의 문제입니다. 나는 이와 같은 습관(習慣)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기회를 무익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실성은 글을 오만(傲慢)하게도 만들지 않으며 비굴(卑屈)하게도 만들지 않습니다. 진실이 가리키는 바는 언제나 쉬우며 겸손(謙遜)하고 단순합니다. 바로 글쓰기 요령은 진실을 쓰는 거기에 있다는 말이 됩니다. 금이나 은은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습니다. 녹이 슨다는 것은 부식(腐蝕)되어 변질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진실 속에는 참됨과 선함이 잠재하기에 생명력(生命力)이 영원한 것입니다. 글은 진실성만이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방점(傍點)을 여기다 찍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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