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 고민 5년 전 부모님이 연달아 돌아가시고 직장에서 원치 않는 부서로 발령이 나면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그때는 그게 우울증인 줄도 몰라 괴로운 상태를 수개월 동안 내버려뒀습니다. 우울증을 진단받고 원래 저로 돌아오기까지 1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3년 전에는 아이가 학교폭력에 휘말리고, 이직해서 업무에 적응 못해 비난을 받으면서 전과 비슷하게 무기력해졌습니다. 잠을 못 자 병원에 빨리 가서 치료를 받아 그전보단 빠르게 나았습니다. 최근 비슷한 증상이 다시 시작되길래 정신건강의학과에 갔습니다. 그런데 전과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 예전에 비하면 절대 나쁜 상황이 아닙니다. 직장에서도 큰 문제 없고 도저히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원인을 모르면 잘 낫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던데 사실인가요?
A : 과거 원인으로도 증상 발생… 원인 찾기보다 빨리 병원 찾아야
▶▶ 솔루션
기분장애에서 일정 기간 증상이 지속했다 낫는 하나의 단위를 ‘삽화(episode)’라고 하는데요. 우울증에 걸린 환자들은 평균적으로 일생 다섯 번 정도의 삽화를 겪는다고 합니다. 어디까지나 평균이기 때문에 누구나 무조건 다섯 번을 겪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번을 포함해 세 번의 삽화를 겪으시면서 고생이 많았을 텐데요. 일단 첫 삽화가 발생할 때는 외부적 스트레스 요인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이후 우울증이 재발할 땐 외부적 요인이 없이 내인성(endogenous)으로도 삽화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외부 스트레스가 명확하냐 또는 그렇지 않으냐에 대해 정신건강의학에서는 많은 연구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원인과 증상 사이에는 시차가 꽤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학대를 당했으면 노인이 돼서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즉 반드시 최근에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바로 우울증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우울증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이 오래전 과거이든, 최근 일이든, 내가 생각하는 원인을 상담 시 얘기하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이 우울증의 진짜 원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 너무 먼 과거의 일이 원인이 된 경우에는 마치 지금 원인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우울증이 나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울증에 처음 걸렸을 땐 빨리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가지 않아 오래 걸렸지만 두 번째는 훨씬 빨리 나았다고 하셨습니다. 정신건강의학 영역에서도 증상이 있는데 치료를 받지 않은 기간(DUP·Duration of Untreated Period)은 향후 치료 여부와 재발에 있어 중요한 요인입니다. 사실 어떤 병이든 묵혀놨다 치료를 받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일찍 치료를 시작할 때 덜 고생하고, 나을 수 있는 확률이 늘어납니다. 원인을 찾느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단 하루라도 먼저 치료를 받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